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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슬레이어의 아침은 빠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식사보다 먼저하는 게, 매일의 일과인 미궁 마라톤이다.

'전설의 신들의 이상향'의 3층으로 달려가 마인 오리올의 봉인을 확인한다.

보통은 며칠에 걸쳐 나아가는 미궁을, 고블린 슬레이어는 왕복 1시간 정도로 끝내버린다.

도중에 위험한 마물이 고블린 슬레이어의 앞을 가로막는다.


"이 놈들과 처음 싸웠을 땐, 말 그대로 죽을 뻔 했죠."


고블린 슬레이어가 그리 자조한다.

지금은 그냥 스쳐지나가며 처리할 수 있는 적에게 패배한 과거가 있다니... 인간의 성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과인 마라톤을 끝낼 무렵엔 높은 스테이터스를 가진 고블린 슬레이어도 땀투성이가 된다.


"힘들지 않냐고요? 당연히 힘들죠. 그래도 이 일은 저밖엔 못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고블린 슬레이어의 얼굴엔, 세계를 지킨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보였다.

마라톤 다음은 활력의 공급이다.

묵고 있는 숙소로 돌아가 아름다운 간판아가씨의 눈부신 미소와 짧은 치마에서 엿보이는 허벅지를 반찬으로 맛없는 아침밥을 먹는다.


"그녀의 미소만이 고생의 보답이에요."


고블린 슬레이어는 오늘 최고의 미소로 그렇게 말했다.

소소한 눈요기를 하고나면 장비 점검이다.

애검인 소울이터는 적을 아무리 베어도 날의 이가 상하지 않는 든든한 친구다.

그럼에도 고블린 슬레이어는 매일 거르지 않고 애검을 손질한다.

다음은 각종 로션...아니 포션을 확인한다.

지구전이 되는 고블린 사냥에서 HP와 MP 포션은 빠뜨릴 수 없다.

마지막은 장신구인 델리케이트 베리어 점검이다.

어떤 의미로는 무기보다도 중요한 물건에 고블린 슬레이어의 눈도 진지해진다.


"목숨을 맡기는거니까요.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부족하죠."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후계자 부족이라는 듯 하다.


"역시 즐기면서 고블린을 죽일 사람이 후계자가 되어줬으면 하니까요... 그런 사람이 좀처럼 없네요."


그런 고블린 슬레이어의 얼굴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아무리 고블린이라도 약한 생물을 일방적으로 죽이는 것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고블린 슬레이어의 가장 큰 적일지도 모른다.

직장 '무리지은 오니의 왕국'으로 향해 한결같이 고블린을 사냥한다.

할당량은 하루에 1만 마리의 고블린과 10마리의 킹 토벌.

미궁처럼 몬스터가 무한히 공급되는 곳이 아니면 멸종할 기세다.


"딱히 고블린이 싫은 건 아니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무표정으로 고블린들을 죽이는 고블린 슬레이어.

증오에 찬 것도 아닌데 작업적으로 학살하는 고블린 슬레이어의 모습은 옆에서 보면 완전히 사이코패스 그 자체다.

이곳에 그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물론 고블린 슬레이어도 멋이나 호기심으로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수행.

다가오는 세계의 위기를 대비해 힘을 기르는 것이다.

힘내라 고블린 슬레이어! 세계의 운명은 너에게 달려 있다!


...뭐래니.

뭐 장난삼아 해봤지만 이걸로 지금 내 생활패턴은 이해했을까.

이러니저러니 일주일 정도 이런 매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오리올의 봉인을 확인.

그 후엔 오로지 고블린 사냥이다.

앞서 말한대로 아무 의미 없이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칭호를 얻기 위한 것이다.

내가 이 일주일 동안 획득한 칭호는 다음과 같다.


'일기당천' : HP+200, MP+200, 근력+10.00, 반응+10.00, 내구+10.00, 마력+10.00, 의지+10.00, 감각+10.00 액티브 스킬 <<대호령(역주. 大号令)>>

'만부부당(역주. 万夫不当)' : HP+400, MP+400, 근력+20.00, 반응+20.00, 내구+20.00, 마력+20.00, 의지+20.00, 감각+20.00 액티브 스킬 <<짐승의 안광>>

'고블린 학살자' : HP+100, MP+10, 근력+1.00, 반응+1.00, 내구+1.00, 마력+1.00, 의지+1.00, 감각+1.00 패시브 스킬 <<고블린 살해>>

'약자폭행' : 액티브 스킬 <<트라우마 오라>>


일기당천은 전에도 설명한, 인간형 몬스터를 하루에 1000마리 죽이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칭호다.

스킬 대호령은 MP소비 없이 아군의 근력과 의지를 크게 올려주는 정말 편한 스킬이다.


만부부당은 일기당천의 상위호환이며 10000마리를 죽여서 얻을 수 있다.

스킬 짐승의 안광은 상대에게 디버프를 걸어 공포와 스턴 상태이상을 줄 수 있다.

공포에 걸리면 정신계 상태이상에 걸리기 쉬워지고 일정 확률로 'OO는 몸이 움츠러들어 움직일 수 없다!' 가 되어 공격이 불가능해지기에 적극적으로 노리고 싶은 상태이상이다.

그런 공포와 스턴을 높을 확률로 거는 짐승의 안광은 정말 좋다고 할 수 있다.


고블린 학살자는 특정 종족을 총 10000마리 잡으면 얻을 수 있는 학살자 시리즈 칭호로 그 종족에 대한 특공 속성을 준다.

특공 속성은 상대에게 데미지를 2배로 늘리고 받는 데미지는 반으로 줄여주는 패시브 스킬, 그 몬스터에겐 대부분 이길 수 있게 되기에 초반에 얻어두면 공략이 훨씬 쉬워진다.


약자폭행은 또 자기보다 10레벨 이상 약한 적을 하루에 10000마리 죽이면 얻는 칭호다.

이 세계에는 레벨 차이가 10 이상인 적은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기에 그것을 무릅쓰고 무의미하게 학살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스텟도 올라가지 않고 딱히 좋은 인상도 아니지만 스킬인 <<트라우마 오라>>가 일정시간 동안 레벨차 10 이상인 적과의 조우를 완전히 막아주는 스킬이기에 미궁 공략중에 약한 적과의 조우가 귀찮을 때 정말 도움이 된다.


이상 설명으로 알 수 있듯이 이 칭호들은 획득 조건이 비슷해서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우선은 고블린을 1000마리 죽여 영웅 클래스와 일기당천을 획득.

지력을 높여 고블린 10000마리를 죽이고 학살자 칭호를 획득.

고블린 살해 패시브 스킬을 얻어 더욱 효율을 높이고 만부부당화 약자폭행을 획득... 이라는 식으로 연속으로 칭호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을 한 번 해버리고 나머지는 코볼트나 자콘 등 다른 송사리들의 학살자 칭호를 얻어서 앵간한 OO 살해 패시브 스킬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규모 미궁이라도 웬만한 송사리들은 순살할 수 있게 된다.

...라고 할지 게임 후반부터는 적이 장난아니게 강해서 이게 없으면 플레이가 쉽지 않다.

사실은 저번 회차때도 이 칭호들을 얻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의 미숙함과 자만심으로 고블린에게 패배해 당시는 영웅 클래스와 일기당천 칭호로 타협한 것이다.

뭐... 만약 그 칭호들을 얻었다고 해도 나는 아마 오리올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쓸데없는 수고를 줄여서 좋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걸로 내 전투력은 배가 됐다.

약 20000마리의 고블린 학살과 20마리의 킹 고블린을 토벌해서 내 레벨은 18까지 상승.

스테이터스는 다음과 같다.


[메인 스테이터스]

■ 알케인 = 건강

■ 클래스 = 영웅

■ Lv = 18

■ HP = 2342 / 1012 (+1330)

■ MP = 1633 / 503 (+1130)

ㆍ근력 = 14.27 (+68.00)

ㆍ반응 = 17.56 (+72.00)

ㆍ내구 = 14.63 (+53.00)

ㆍ마력 = 11.50 (+47.00)

ㆍ의지 = 14.91 (+53.00)

ㆍ감각 = 17.02 (+67.00)


■ 보너스 스텟 = 49.00


[칭호]

'초급 모험가'

'숙련된 모험가'

'일류 모험가'

'초급 미궁주자'

'백전연마'

'니노타치요라즈'

'심안'

'백명베기'

'일기당천'

'만부부당'

'고블린 학살자'

'약자폭행'


[스킬]

<<클래스 스킬>>

 · 강타

 · 지목

 · 파이어볼

 · 힐

<<마검술>>

 · 축지

 · 아지랑이

 · 소나기

 · 이슬비

 · 가을비(역주. 秋雨, 아키사메)

<<일도양단>>

<<간파>>

<<츠지기리>>

<<목베기>>

<<대호령>>

<<짐승의 안광>>

<<고블린 살해>>

<<트라우마 오라>>


보는대로 폭발적인 스테이터스 상승을 볼 수 있다.

새로운 칭호에 의한 보정치 증가도 크지만 레벨업으로 인한 본연의 스테이터스 증가도 현저하다.

레벨별 스테이터스의 증가가, 레벨 10을 넘은 걸로 배가 되고 또 클래스의 성장 보정치가 더해진 걸로 전부 배 이상 올라있다.

보너스 포인트도 단번에 40이나 늘어나 있어 스테이터스의 인플레이션이 엄청나다.

그래도 칭호의 보정치가 몇 배는 더 많다는 점이 칭호의 혜택이 엄청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클래스 스킬에 강타, 지목, 파이어볼, 힐. 마검술에 가을비가 추가됐다.

클래스 스킬 쪽은 솔직히 애매...하달지, 마법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파이어볼과 힐을 쓸 수 없기에 지금으로선 없는 스킬과 같다.

이것을 쓰기 위해선 가게에서 파는 마법서를 읽으며 독학하거나 비싼 돈을 주고 학원에 다녀야 했다.

독학은 시간이 걸리지만 돈은 들지 않고, 학원은 시간은 걸리지 않지만 돈이 든다.

참고로 학원에서 만나는 히로인도 있기에 플레이어들은 보통 학원에 다니는 선택지를 고른다.

솔직히 이번 클래스 스킬에서 쓸 만한 건 지목 정도일까.

이건 도적계열 스킬로, 함정이나 숨겨진 문을 발견해주는 유익한 스킬이다.

도적직 스킬은 미궁 공략에 필수적인게 많고 그 중 몇몇개는 영웅 클래스도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한편 마검술인 가을비는 꽤 쓸만한 기술이다.

조만간 쓸 기회가 있다면 소개하려고 한다.

...이번 강화로 나는 분명 국내에서 톱클래스의 전투력을 얻었다고 해도 좋다.

지금의 내 스테이터스와 마검으로 계승한 기술이라면 설령 마검이 각성하지 않아도 오리올을 봉인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마인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어도 봉인하는 방법은 있다.

나는 그걸 쓸 수 없지만 권력자라면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리올이 부활했을 땐 그것을 보고해 협력을 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저 일반인인 내 의견따위는 받아들여질리가 없으니 그때의 대비를 생각해야하지만...

뭐 마검 소울이터가 각성하지 않고 봉인 수단이 손에 들어오지 않아도 수단이 없는 건 아니다.

단지, 그 때는 반드시 정체를 숨겨야 하기에 얼굴을 가릴 필요가 있는데...

순간 내 머릿속에 '칠흑의 어둠' 이라는 단어가 지나갔고, 나는 머리를 흔들어 그것을 뿌리쳤다.

'칠흑의 어둠' 안된다. 절대.

나는 자신을 타일렀다.


아무튼, 이 일주일간 노리던 칭호를 손에 넣은 나는 모처럼 쉬기로 했다.

조금 삐걱거리기 시작한 장비를 정비 맡기거나 일주일 동안 모인 킹 고블린 드롭아이템을 환금할 필요도 있고, 무엇보다 몸에 피로가 쌓여있다.

이쯤에서 한 번 몸도 마음도 재충전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 이유로 시내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문득 인산인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저번에 봤던 그 여자가 있었다.

여전히 창녀마냥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붉은 머리 여성.

처음엔 그 풍만한 가슴 골짜기에 남자들이 이끌렸나 싶었는데 잘 보니 여성 모험가들도 드문드문 보인다.

대체 여기서 뭘...?

저번 일도 있어서 그녀를 믿지 못하고 있는 나는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네 다음 분 들어오세요."

"아 넵."


금발의 젊은 남자가 쭈뼛쭈뼛 자리에 앉았다.

신참 모험가인지 장비는 새것같은데다가 움직임이 어색하다.

그는 올리브의 선정적인 옷차림에 눈둘곳이 없는지 빨간 얼굴로 눈동자가 헤엄치고 있다.

올리브는 그런 그의 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은 뭘 점쳐줬으면 하는 걸까?"

"그게, 실은 쓰던 방패가 망가졌거든요. 새로운 방패가 갖고 싶은데 이왕이면 전에 것처럼 스턴 상태이상 면역이 붙어있고 전에거보다 좀 더 좋은 걸 갖고 싶어서... 아, 전의 방패는 미궁주인 아이언보어가 주는..."


횡설수설 설명하는 청년이지만 올리브는 신경쓰지 않고 책상에 놓인 3개의 상자를 가리켰다.


"흠흠... 알았어. 그럼 여기 3개 상자에서 제비를 하나씩 뽑아볼래?"

"네."


시키는 대로 제비를 뽑는 청년.


"그 종이에 적힌 키워드 미궁에 가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거야."

"감사합니다! 구하면 다시 보답하러 올게요!"


청년은 감사를 표하고 제비를 소중히 안고 떠났다.

아무래도 그녀는 점쟁이를 가장한 정보상같은 일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해가 안되는 게,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운에 맡기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걸로 밖에 안보이는데...


"오? 케인이잖아."

"아 레리아나."


뒤에서 불려 뒤돌아보니 레리아나가 있었다.


"오랜만! 케인도 점 보러 왔어?"

"아니..."


순간 대답을 망설이다가 반대로 레리아나에게 묻기로 했다.


"나는 우연히 지나가던 길인데... 레리아나는 여기 잘 알아?"

"뭐야 케인은 몰랐어? 요 며칠 꽤 유명했어. 잘 맞는 점쟁이가 있대."

"...조금 미궁 공략에 빠져있었거든."


그렇구만... 요 며칠 유명했다 이건가.

전 회차때도 유명했었는지 신경쓰이는구만... 이 시기때는 엘리제 관련으로 바빴으니까...


"레리아나는 점 쳐봤어?"

"그래! 물론이지! 엄청 정확했어!"


내 질문에 레리아나가 크게 가슴을 흔들며...가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음 그런가. 실제로 당첨...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파는건가.

그러면 사람이 모인것도 이해가 되네.

믿을 수 있는 정보상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렵다고 할 정도니까.


"...그럼 나도 한 번 점 봐볼까."

"한 번 해 봐!"


레리아나와 둘이서 줄을 선다.


"레리아나는 뭘 점치려고?"

"어? 나? 나는...꼭 좀 필요한 게 있거든. 실마리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서."


...아마 '흐르는 시간의 달빛결정' 이겠지.

조만간 기회를 봐서 알려주려고 했는데 레리아나 스스로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그렇구나, 뭐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줘. 언제라도 도와줄게."

"어 고마워!"


진심을 담은 나의 말에 레리아나가 눈부신 미소를 보였다.

무심코 넋을 잃고 볼 정도로 귀여운 미소였다.

레리아나의 성숙하고 색기있는 몸매에 소년처럼 활기차고 표리없는 미소가 참으로 언밸런스해서 반칙적으로 끌리고 있었다.

피가 끓는 것을 느껴 슬쩍 레리아나에게서 눈을 돌렸다.

정욕을 품게 만드는 육체에 이렇게나 순수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면 남자로서 정복하고 싶다는 욕망이 마구 솟아난다.

최근 성욕을 전혀 처리하지 않은 이 몸에 레리아나라는 존재는 독에 불과했다.


"그래서 케인은 요즘 뭘 하고 있었던거야?"


그런 내 속마음따윈 알 리 없는 그녀가 무방비하게 몸을 붙여온다.


"수행을 조금 말이지."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내 대답에 왠지 레리아나가 수상쩍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렇구나, 좀 강해진 것 같아?"

"뭐 전보다는."

"그런가 그런가."


레리아나는 더욱 미소를 진하게 만들더니 몇 번이나 끄덕였다.

대체 뭐지? 수상하다.


"그럼 있지 다음에 나랑 승부해볼까?"

"승부?"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래 나랑 말야. 한 번 싸워보자고."


레리아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큰일이다. 완전 칼싸움 놀이 할 때 소년의 눈이다.

나와 너, 누가 더 센지 승부! 라는 느낌.


"에이 난 딱히 흥미 없는데..."


꺼려하는 내게 레리아나가 몸을 기대며 물고 늘어진다.


"그러지 말고. ...만약 너가 이기면 뭐든지 소원 하나 들어줄게."

"뭐, 뭐든지라고!?"


뭐든지라는건... 무엇이든지 라는 말이지?

그렇다면, 그렇다는 건... 이 매혹적인 가슴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아니 아니지. 그런 건 저번 회차때 졸업했다.


"크흠. 여자가 쉽게 그런 말을 해선 안 돼."

"나도 아무한테나 이런 말 하는거 아냐."


응? 그건... 무슨 말?

나는 무심코 레리아나의 얼굴을 본다.

하지만 거기 있던 건 예상과는 달리 부끄럼의 조각도 없는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아, 이거 자기가 질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는거네.

이거 언젠가 큰코 다칠거야.

애초에 내가 나쁜놈이었다면 이미 강간 각이 서있고 말야.

여기서 일단 나처럼 아픈꼴 당하기 전에 교육이 필요하겠어.


"흐음... 그렇게까지 말하면 한 번 해볼까."

"헤헤 역시 그렇게 나와야지! 만약 내가 이기면 너도 뭐든지 들어줘야한다?"

"...야한짓은 안 돼."

"!? 하겠냐! 그리고 그거 내가 할 말이잖아!"


가볍게 농담해보자 레리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네 다음 분 오세요~"


어느새 우리 차례가 온 것 같다.


"내가 먼저 할거야!"


그렇게 말하고 레리아나가 빨리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 농담의 복수일 것이다. 귀여운 녀석.


"그럼 오늘은 뭘 점쳐줬으면 하는 걸까?"

"...'흐르는 시간의 달빛결정'라는 것의 위치를 점쳐줬으면 하는데."


와, 진짜 정통으로 들었네.

어떨까, 이건 평범한 정보상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게임에선 레리아나가 무슨 방법을 써봐도 얻을 수 없었던 아이템이니까.

주인공도 우연한 획득... 이라는 이벤트에서 얻는 것.

이렇게 간단하게 점쳐서 얻으면 고생하지 않았겠지.

반대로 말하자면 여기서 대답할 수 있다면 그녀는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되지만.


"...'흐르는 시간의 달빛결정'? 으음, 일단 제비를 뽑아볼래?"


'흐르는 시간의 달빛결정' 이라는 이름을 들은 그녀가 순간 난처한 얼굴을 하고 제비를 가리켰다.

...지금 반응은 뭘까?

그냥 모르는 정보를 듣고 곤란했을 뿐? 아니면 그 아이템에 대해 뭔가 알고있어서?


"좋아! 나와라~"


그런 내 생각은 뒷전으로 레리아나가 힘차게 제비를 뽑았다.

그녀는 그냥 순수하게 잘 맞는 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라? 백지인데?"

"어머 죄송해요. 저로서는 그게 어디있는지 못알려줄 것 같네요."

"뭐~ 그럴수가~"


추욱 눈꼬리를 내리는 레리아나.


"으음, 추측하기엔 꽤나 귀중한 물건이거나, 아직 그게 있는 미궁이 태어나지 않았던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음, 지금 발언은... 뭐지... 좀 신경 쓰이네.


"그래... 알았어, 고마워."


레리아나는 그렇게 말하고 풀이 죽은 모습으로 일어났다.


"네 다음 분 오세요~"


드디어 내 차례구만.

앞으로 가서 자리에 앉는다.

거기서 처음 눈치 챘는데 제비 상자 말고 작은 상자가 하나 더 있고 거기에 요금을 넣는 듯 했다.

가격은 은화 한 장, 꽤나 비싸다.

하지만 뭐 정보의 가치에 상관없이 같은 금액이라면 적당하다고 할만한 가격이다.

참고로 안에는 금화처럼 보이는 것도 꽤나 들어가 있는데, 점이 적중한 고객의 답례라고 생각된다.

나는 가벼운 서비스와, 그녀에게 내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굳이 금화를 넣었다.


"어머나 금화. 우후후, 기합넣고 점 쳐야겠네요."


올리브는 내가 넣은 금화를 보고 반갑게 웃은 뒤 내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당신 어디선가... 아 생각났다. 저번에 조금 얘기했던 아이네."

"오랜만이네요."


나를 알아본 올리브는 지금까지의 사무적인 미소에서 어딘가 야한 미소로 바뀌었다.

그러자 주변 분위기까지 변한 느낌마저 들었다.

향수 향기가 살짝 바람을 타고 날아와 머리가 저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뭘 점쳐줬으면 하는 걸까?"

"음......"


...그러고보니 물어볼 게 없다.

줄서는 동안 생각하려고 했는데 떠들었으니까 말이지.

아 맞다 이건 어떨까.


"아이템은 아니고 몬스터 정보라도 괜찮나요?"

"후후 정보가 아니라 점인데 말야. 물론 몬스터도 괜찮아."


...점이라고 고집하는구나.

아 그렇구나. 정보상이 아니라 점쟁이라면 틀려도 불평할 수 없으니까.

과연 능숙하다.


"그럼 박스걸이 있는 곳을 아시나요?"


내 질문에, 주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느꼈다.

박스걸은 모든 미궁에서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특수 몬스터다.

겉모습은 커다란 보물상자에 들어간 알몸 소녀, 적을 발견하면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상자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게된다.

그 때문에 기습 말고는 쓰러뜨릴 방법이 없다고 말해지는 몬스터다.

출현하는 건 랜덤에 한 번 쓰러뜨리는 금화 천 장이라는 큰 돈이 손에 들어오기에 모든 모험가가 박스걸을 쓰러뜨리기를 꿈꾼다.

지구에서 자주 '로또에 당첨된다면~' 이라는 만약의 이야기를 한다면 이쪽 세계에선 '박스걸을 잡는다면~' 이라는 얘기가 술집에서 흔히 들린다.

일확천금의 대명사인 몬스터다.

참고로 이 박스걸을 쓰러뜨리는 방법이 공격으로 죽이는 것 말고도 있다는 건 이 세계에서 나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방법으로 쓰러뜨리면 박스걸은 금화가 아니라 무지개빛 구슬이라는 아이템을 드롭한다.

이걸 사용함으로써 대량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그 경험치는 엄청나서, 저렙이면 10은 상승하고 추가로 칭호까지 얻을 수 있는 맛있는 몬스터인 것이다.


"그래 박스걸 말이지. 제비를 뽑아보렴."


내 질문은 복권의 당첨번호를 물어본 것과 똑같다.

만약 이걸 대답한다면 그녀는 단순한 정보상이 아닌 것인데...

나는 조금 긴장하며 제비를 뽑고...


"백지...네."


뽑은 제비는 백지였다.

뒤에서 몰래 들여다보던 사람들의 낙담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 유감이야."

"뭐 그냥 시도나 해봤죠."


그렇게 말하고 제비를 버리려고 하자 문득 종이가 두겹으로 되어 있는 걸 눈치챘다.

올리브와 눈이 마주친다.

윙크. ...설마?

나는 자연스레 제비를 주머니에 넣고 실망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망하지 말고 또 오렴~"


올리브의 김빠진 목소리를 등으로 받으며 떠나자 레리아나가 히죽히죽 웃으며 서있었다.


"유감이구만."


...이건 그거네.

자기만 백지인게 아니라서 기뻐하는거지. 틀림없다.

나는 애같은 그녀에게 기가 막히곤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래서 승부는 어쩔거야?"

"나는 지금도 괜찮은데?"


팍, 하고 주먹과 손바닥을 부딪치는 레리아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지금 막 볼일이 생긴 것이다.


"아 미안한데 내일 괜찮을까? 실은 볼일이 있거든."

"에이, 어쩔 수 없네... 아 맞다. 그럼 모처럼인데 이건 어때?"


레리아나가 순간 실망했지만 곧바로 명안이라는 듯 손뼉을 쳤다.


"뭔데?"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물어보자, 레리아나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투기장에서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