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번역 채널

이따금 나타나는 적을 쓰러뜨리고 보물상자를 무시하며 보이는 함정은 피해 최단루트로 나아간다는, 모험의 재미를 일절 버려버린 기계적인 공략을 하기를 몇시간.

우리는 드디어 보스 방 앞에 와 있었다.

높이 10m 정도의 거대한 각인이 새겨진 문.

그것을 앞에 두고 나는 레리아나와 가벼운 보스 공략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여기 보스인 라스캣은 마법공격이 통하지 않는데. 그만큼 공격력이 다른 십이지미궁과 비교해 높고 특히 민첩함이 높아서 공격횟수랑 회피로 농락하는 것 같아."

"흠흠."

"주의해야할 건 HP 가 1/3까지 떨어지면 '분노' 상태가 돼서 공격력이 올라가. 이 상태가 되면 단숨에 쓰러뜨려야 해. 그건 레리아나의 고유스킬에 맡길게."

"어라? 나 케인한테 고유스킬 말한 적 있었나?"


아 이런. 실수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리아나에게 나는 내심 당황했지만.


"아, 아니... 크흠. 뭐 한 번 싸워봤잖아, 나 정도 되면 한 번 검을 맞댄 상대에 대해 알아낼 수 있거든. 레리아나의 고유스킬은 아마 능력치의 변환이지?"


그렇게, 조금 빠른 어조로 말했다.

나의 어색한 변명에 레리아나가 눈동자를 빛내며...


"그렇구만 역시 케인! 맞아! 내 '음양대극의 이치'는 스테이터스를 다른 스테이터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야."

"여, 역시 그렇지. 그럴 것 같았어. 응. 그럼 분노 상태가 되면 레리아나가 최대의 공격을 넣어. 나는 거기에 맞춰서 공격할게."

"오케이!"

"힐러가 없으니가 스스로 조심하면서 포션 마시고."

"알고 있어!"

"그럼... 갈까."


우리는 일어서서 문의 각인을 만졌다.

문이 빛을 발하며 사라지고──.


"구오오오오오오오오!!!!"


동시에 짐승의 포효가 울려퍼졌다.

온몸에 쭈욱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적을 강하게 노려봤다.

길이가 30m 정도 돼보이는 거대한 검은 고양이.

꼬리는 둘로 나뉘어있고 눈동자는 피처럼 붉고 불길하다.

발 밑에는 무수한 짐승들──쥐인건가?──의 뼈가 흩어져있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간다아아아아아!!"


맞대응하듯 지르는 내 한마디가 붉은 빛의 비늘이 되어 나와 레리아나의 몸에 달라붙었다.

솟구치는 활력, 스킬 <<대호령>>에 의한 버프다.

난 축지를 섞으며 질주해 순식간에 마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순간이동같은 속도로 달려온 나를 마묘가 완전히 놓쳤고, 나는 그 무방비한 배에 투기를 두른 검을 휘둘렀다.


"흡!"

"!? 가르르르르르르!!!!"


역시 중규모 미궁의 보스인 만큼 그 모피의 방어력이 높아 지금까지 없던 저항을 느꼈지만 내 일격은 그 고양이의 몸에 2m에 가까운 균열같은 상처를 입히는 것에 성공했다.

상처에는 나의 투기가 붉은 아우라가 되어 머물고 있으며 그 오라는 조금씩이지만 상처를 넓혀간다.

마검술──가을비.

투기를 두른 상처를 만들어 지속 데미지 및 회복을 방해하는 기술이다.

방대한 HP 때문에 장기전이 되는 보스전에서 사용하는 정석적인 기술이다.


"그르아아아아아아!!!!"


조금씩 번져 고통을 준다는 악질적인 기술에 마묘가 고통으로 소리를 지르면서도 눈 아래의 내게 그 거목같은 팔을 휘둘렀다.

축지를 사용해 몸을 피하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것을 틈타 나는 아지랑이를 사용해 내 기척을 옅게 만들었다.

물론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는 아지랑이라도 적에게 발견된 상태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실제로 마묘는 흙먼지 속에서 나를 순식간에 찾아냈다.

하지만.


"날 잊으면 곤란한데!"


나에겐 아직 한 명의 파티원이 남아있다.

주먹에 불꽃을 두른 레리아나가 높게 뛰어올라 라스캣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목을 뒤로 크게 젖힌 마묘였지만 그다지 큰 데미지는 없었다.

지금 레리아나의 레벨로는 위력이 부족한 것이다.

물론 [음양대극의 이치]를 쓴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일단 상황을 보기 위해 지금은 쓰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위력 부족이라곤 해도 순간 라스캣의 주의를 끌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마묘의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라스캣은 레리아나보다 내가 더 위협이라고 판단했는지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지만 거기에 레리아나의 공격이 차례로 들어간다.


"오라오라오라! 파이어볼! 아이스니들! 윈드커터!"


물리 위주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고 본 레리아나가 마법 공격으로 바꿔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듯 했다.

처음엔 그것을 무시하고 나를 찾아내는 데 주력했던 마묘가 점차 화가 났는지 레리아나로 목표를 바꾼다.

공격 대상의 전환.

그것은 나에 대한 약간의 틈이었고,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마검술, 소나기.


"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묘의 오른쪽 뒷다리에 내지른 8연격은 마묘의 힘줄까지는 끊지 못했지만 다소 기동력을 빼앗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아지랑이를 이용한 기습으로 내게 앞으로 한 턴의 어드밴티지가 있다.

나는 새겨진 상처에 겹치듯이 가을비를 때려박았다.


"샤아아아아아아!!"


마묘의 반격을 검으로 받아내며 그 기세를 이용해 크게 떨어진다.

이걸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묘의 기동력은 사라져 갈 것이다.

붉은 눈동자를 나를 향한 분노로 더욱 불길하게 물들이는 마묘에게 레리아나의 중급 마법이 쏟아졌다.

폭염이 거대한 머리를 휩쓴다.

데미지를 높이기보단 마묘의 주의를 끌고 잠시나마 시야를 막기 위한 공격.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아지랑이를 사용해 기색을 감췄다.


'...패턴화 됐구만.'


다시 나를 놓치고 초조해진 마묘를 보며 나는 싱글벙글했다.

레리아나가 주의를 끌고 내가 일격을 먹이고 이탈.

이 콤비네이션으로 얼마간은 안정적으로 마묘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파티플레이를 한 건 처음인데 이거 편하다.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바뀐 것만으로 이렇게 전투가 편해질 줄이야.

비록 레리아나가 유효타를 줄 수 없어도 주의를 끌어주는 것 만으로 충분히 도움이 된다.

엘리제와 파티 때는 주로 내가 케어하는 쪽으로 움직였고 강적과 싸우지 않았기에 파티의 이점이 실감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좋다고 할지, 호흡이 잘 맞아 유대감을 느끼고 기분이 고양된다.

이게 궁합이 잘 맞는다는 걸까.

나와 레리아나의 톱니바퀴가 딱 맞물리는 걸 느낀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싸우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깊게 집중하고 있던 탓에 시간감각이 이상해져있다.

몇 분 밖에 안 된 것 같기도 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난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건 우리가 마묘를 조금씩 몰아넣고 있다는 것 뿐.

양 뒷다리는 내 집요한 공격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위협적이었던 기동력은 상실됐다.

한쪽 눈은 찌그러졌고 온몸의 아물지 않는 상처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구오오오오오!!!!"


포효와 함께 라스캣이 변모한다.

온몸에 검은 장기를 두르고 체모는 이리저리 꿈틀대며 눈동자에서 피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분노 상태야! 단숨에 끝내버려!"


나는 재빠르게 지시를 보내고 마묘의 주의를 끌기 위해 정면에서 돌격했다.

지금 레리아나의 내구력으로는 분노상태의 공격력을 감당할 수 없다.

이번엔 내가 주의를 끄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오케이!"


레리아나가 그리 대답하며 [음양대극의 이치] 오라를 몸에 둘러 영창을 시작했다.

다가오는 내게 라스캣은 앞다리의 힘만으로 도약하여 그 앞발을 내려찍었다.

그 속도가 팔의 힘만으로 뛰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라 분명 근력이 대폭 강화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거체에서 내질러지는 일격은 중량만 생각해도 위협적, 칭호작을 한 내 스테이터스로도 받아내기 힘들다고 판단한다.

나는 축지를 사용해 간발의 차로 앞발을 피하고 동시에 스킬 일도양단을 그 발목에 때려넣었다.

일도양단의 방어력 무시 효과로 그 딱딱했던 강철의 체모가 천처럼 찢어져 그 힘줄을 완전히 절단했다.

이걸로 남은 사지는 왼쪽 앞다리 뿐.

하지만 힘줄을 끊었다곤 해도 발목 위로는 움직이기에, 그 팔을 휘두르는 것 만으로 큰 데미지를 먹을 수 있는 이상 아직 주의는 필요하다.

나는 그대로 앞발 위에 올라타서 그 위를 달렸다.

곡예사같은 그 움직임에 라스캣의 외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그 입이 크게 열려 그 안쪽에 열기와 함께 춤추는 불꽃이 보였다.


'브레스 공격!'


지금까지도 몇 번 있었던 그 공격 징조에 순간적으로 뛰어내려 피하려고 했지만───그 직전.


"블리자드 자벨린!!!"


눈보라를 감싼 거대한 고드름이 마묘의 입안에 처박혔다.

고드름의 크기는 길이 5m, 반경 1m쯤 될까.

엄청난 기세와 중량이 엄청난 운동에너지를 만들었고 고드름이 목구멍에 피어오르던 브레스를 소멸시킬 뿐 아니라 뒤통수까지 관통했다.

그건 분명 치명상을 입힐 공격이었고, 지금까지 레리아나를 귀찮을 뿐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라스캣에게 완전한 기습이었다.

나는 속으로 레리아나에게 박수를 치며 팔을 뛰어올라 그 목에 일도양단으로 일격을 날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크고 굵은 목은 한 번으로 절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정도 해야 겨우 마묘의 목을 떨어뜨리는 것에 성공했다.

쿵...! 하고 중량감 넘치는 소리로 땅에 떨어지는 고양이의 머리.

몇 초 늦게 몇 배의 굉음을 내며 거구가 땅에 쓰러졌다.


"후우... 힘들었네."


가볍게 착지했지만 불시에 쿵 하는 충격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레리아나가 달려든 것이다.


"케인! 해냈구나! 굉장해굉장해! 진짜 둘뿐이서 그 보스를 잡다니! 우리 최강 콤비인가봐!"


흥분한 레리아나가 내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으며 기쁨을 드러낸다.

나는 그저 받아들이며 그 가슴의 감촉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부, 부드러워.

그리고, 존나 커!

완전히 내 머리가 묻혔다.

조금 땀을 흘려서 그런지 묘하게 관능적인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큰일이네, 조금 전까지 싸워서 그런지 발기할 것 같다.

큐바슈의 체취에 흥분 작용도 있었던가.

아니 이러다 쓰러지겠다.

뇌가 어질어질 흔들리고 내 마음도 성욕에 질 뻔한 순간.


"...원통, 하다."


갑자기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레리아나를 떼어내고 라스캣을 쳐다봤다.

아 자식 아직 소멸 안했구나.

칼 끝을 라스캣에게 향해도 그 잘린 머리는 그저 원망스러운 듯이 우리를 볼 뿐, 싸울 힘은 없어보인다.


"조만간의 '축제'에 이 몸도 참가할 수 있었거늘..."

"마, 말했어!!!"


레리아나가 경악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나도 같은 기분이다.

이녀석... 말 할 수 있었던가.

그런 얘긴 들은 적 없는데. 게다가 축제? 그건 뭐지?


"분하다..."


그렇게 라스캣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곳엔 커다란 금색 보물상자만이 남겨졌다.

...방금은 대체 뭐였지?

축제... 설마... 미궁도시 습격 이벤트, 는 아니겠지?

미궁도시 습격 이벤트는 마인 알테나가 십이지 미궁의 보스와 무수한 마물의 군세를 이끌고 미궁도시를 습격하는 이벤트다.

패배할 경우 미궁도시는 마인의 손에 넘어가 게임오버.

몇 달 후 마신이 부활해 세계가 멸망했다는 짧은 글만이 표시된다.

사전에 십이지미궁을 공략하는 것으로 덮쳐오는 적의 수를 줄일 수 있기에 이벤트 난이도 자체는 높지 않다.

그런데 이 이벤트는 중반 쯤에 나올 터.

이런 초반에 일어날 리가 없는데...

아니, 하지만 아까 올 때의 미궁 봉쇄, 그건...


"케인? 왜그래?"


퍼뜩 정신을 차리자 레리아나가 걱정스레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지금은 생각해도 별 수 없다.

마을에 돌아가서 십이지미궁에 이상이 생겼는지 조사해보자.

만약 십이지미궁의 보스가 강화되어 있다면 적중이다.


"뭐 지금은 그것보다 보물상자를 열어보자!"

"그래! 나 아까부터 신경쓰였다고!"


내 말에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끄덕이는 레리아나.

보스가 드롭하는 보물상자는 함정도 자물쇠도 없기에 순전히 보상느낌으로 열 수 있었다.

우와 뭔가 엄청 두근거리는구만!

이래저래 말했는데 나도 보물상자 여는 거 처음 아닌가?

정말 흥분된다.

소년이 좋아하는 3가지. 모험, 비밀기지, 보물상자 니까 말이야.

그리고 소년의 마음을 가진 레리아나 역시 보물상자를 좋아할 것이다.

아까부터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히죽 웃으며 함께 보물상자를 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