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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나와 레리아나는 십이지미궁 원정부대 모집지인 미궁 성기사단의 본부로 향하고 있었다.

미궁 성기사단의 본부는 거리의 북쪽구역... 영주의 성 근처에 있다.

그 때문에 본부로 가려면 콧대 높은 귀족들의 거주구역을 가로지를 필요가 있어서 우리처럼 본부로 가는 모험가들은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참고로 평소라면 문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이기에 모두 철거되어 있다.

뭐 이 시국에 신체검사를 한다면 모험가들은 아무도 원정부대에 참가하려고 하지 않을테니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고보니... 레리아나는 원정부대에 참가해도 돼?"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레리아나에게 원정부대에 대해 분명하게 대화하지 않은 걸 떠올린 나는 옆을 걷던 그녀에게 물었다.

내 물음에 레리아나가 어리둥절하며,


"이제와서? 갑자기 왜?"

"아니 그... 고향에 전해줘야하는거 아냐?"


내가 말하는 건 물론 '흐르는 시간의 달빛결정' 이다.

그녀는 그것을 구하기 위해 미궁도시에 온 것이니, 손에 들어왔다면 빨리 마을로 보내고 싶을 것이었다.

그녀의 고향마을이 어디있는진 모르지만 적어도 하루만에 갔다 올 거리는 아닐 것이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녀가 나를 따라올거라고 생각했지만, 곧 미궁범람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그녀가 고향을 우선시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 것이다.

그런 내 말에 레리아나가 '아아' 하고 납득했다는 듯이 동의했다.


"그건 이미 다른 녀석한테 넘겼어. 지금쯤 한창 마을로 가고 있을 걸."


레리아나 말에 따르면 '흐르는 시간의 달빛결정'을 구하기 위해 이 도시에 온 큐바슈는 레리아나 뿐 아니라 몇 명의 번식형 서포트 요원도 함께 온 것 같다.

그들, 번식형 큐바슈는 창녀나 무희, 술집 점원 등을 하며 정보 수집을 하고, 레리아나가 물건을 얻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다.

솔직히 까놓고 어른이 되지 못한 레리아나 한 명에게 일족의 운명을 걸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아마 메인은 번식형 큐바슈고 레리아나는 마지막에 무력을 사용할 전투요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정보수집에 관해선 기대받지 못하던 레리아나가 훌쩍 '흐르는 시간의 달빛결정'을 가져왔다.

들어보니 그 협력자는 대가로 레리아나를 원했고 그녀 자신도 딱히 싫지 않은 듯 하다.

도시는 뭔가 미궁범람의 징조로 혼란스러워지니 빨리 마을로 돌아하는게 좋지 않나?

...라는 얘기가 큐바슈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것 같다.


"라는 걸로 물건은 그 사람들한테 맡기고 먼저 돌아가라고 했어. 그러니까 지금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는 거고."

"그렇구나."


그렇다면 안심이네.

만약 큐바슈들에게 뭔가 문제가 생겨 '흐르는 시간의 달빛결정'을 잃었다고 해도 한 번 더 얻으면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본부에 도착했다.

본부는 검소하지만 큰, 요새같은 건물이었고 수련장처럼 보이는 넓은 공터에 많은 모험가들이 모여 있었다.


...그래, 마치 초등학교나 중학교 같은 건물이라면 이해하기 쉬울까.

그걸 중세 유럽풍으로 재해석한 것 같은 모습이다.

본부 앞에는 아직 들어가지 않은 모험가들이 몇 줄로 서있고 접수처로 보이는 장소에서 문답을 주고받는 듯 했다.

그 중에는 문전박대를 당한 사람도 있는 듯, 욕을 하면서도 얌전히 돌아간다.

레리아나와 함께 서 있으니 곧바로 우리 차례가 왔다.


"원정부대 희망자인가?"


접수처의 성기사단원 남자가 우리들의 장비──중규모 미궁 클래스의 무구──를 보고 그렇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장비에서 1차적으로 판단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귀족 자제가 통과해버리겠지만... 아마 안에서 대련하는 것으로 판단하겠지.


"고지를 보고 온 자라면 알겠지만 지금 우리... 나아가 행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정예다. 못해도 십이지미궁 클래스의 미궁을 답파할 수 있을 것, 그것이 조건이다."


나와 레리아나가 끄덕이는 것을 보고 그도 수긍한다.


"그럼 그대들의 이름과 클리어한 미궁을 난이도가 높은 순서대로 말해주게."


뭔가 거만한 말투다.

혹시 기사 가문 출신일까?

수장이 크리스 전하인 것도 있어 미궁 성기사단은 귀족 출신이 많다고 들었다.

아무튼, 살짝 오만하게 느껴지는 건 그냥 서민의 색안경일까...


"저는 알케인, 클리어한 미궁은 '속아버린 마묘의 출발점' 과 '시간 여행자의 종착점'."

"난 레리아나, 케인이랑 같아."

"흠?"


나와 레리아나의 말에 성기사단 남자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마묘는... 13번째 십이지미궁이었지... 게다가 시간 여행자는 마묘의 드롭 아이템 지도로 출현하는 미궁. 난이도는 소규모지만 적의 강함은 대규모 미궁 클래스... 좋다, 안으로 들어가라."

"...꽤 쉽게 믿네요."


상당히 시원하게 승낙받았기에 무심코 그리 말하자 기사단원 남자가 코웃음 쳤다.


"물론 그 쪽의 말을 무조건 믿는 건 아니다. 지금부터 제군들의 실력이 정예에 걸맞는지 실기로 시험할 뿐."


그것으로 대화는 끝나고 우리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우린 뭘 하면 되는거야? 그냥 기다리면 되나?"

"...그러게."


통과한건 좋은데 이제 뭘해야하는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 갑자기 우리...라기보단 레리아나에게 말이 걸렸다.


"어라, 너 혹시 투기장 레리아나 아냐? 너도 원정부대에 왔구나."


목소리의 주인은 2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갈색 머리 남자였다.

성기사단 풍의 경장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사벨, 등에는 커다란 활을 지고 있다.

머리를 정돈하고 귀걸이를 한 그 모습은 확실히 도시남자처럼 보였고, 시골출신인 나는 그를 보자마자 불쾌해졌다.


"앙? 넌 누군데."


경박한 태도로 말을 건 남자에게 레리아나가 수상쩍은 시선을 보냈지만 남자는 신경쓰지도 않고 실실 웃으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난 존. 네 팬이야. 매번 경기 챙겨본다고."


그렇게 말하고 레리아나의 어깨에 손을 대려던 남자의 손을 고양이같은 움직임으로 슬쩍 피했다.


"매정하네."


쓴웃음지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존.

그제서야 그가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듯이 날 보았다.


"아~ 혹시 너는... 레리아나의 파티멤버 그런건가?"


나를 품평하는 것 같은 시선에 레리아나가 가슴을 펴고 대답한다.


"내 동료야."

"동료? 흥, 이 녀석이... 그리 강하겐 안보이는데."


그 남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뿜어버릴 뻔 했다.

아까 매 경기를 본다더니 사실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레리아나도 불쾌한 듯이 존을 보고있다.

그는 그것도 모르고 뭔가 꾸미는 눈을 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건 어때? 지금 마침 단원이 희망자들의 실력 테스트를 하고 있거든. 거기서 나랑 한 번 모의전을 해보는 건."


흠?


"보면 알겠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모험가들이 있지. 이대로면 한참 기다려야할 걸. 그러니까 나랑 모의전을 하고 끝내자는거야."


내가 흥미 기색을 보이자 존이 걸렸다는 듯 빠르게 떠들었다.


"현역 성기사단인 나를 이기면 주위 모험가들도 인정하겠지. 그대로 성기사단에 스카우트 될 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은, 이 놈이 이몸을 이길리는 만에 하나라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

이 남자가 생각하는 것 따윈 훤히 보인다.

아마 레리아나가 보는 앞에서 화려하게 날 꺾고 그녀의 마음을 뺏으려는 거겠지.

정말 바보나 할만한 생각이다.

실력을 과시해 여자를 꼬시는 건 고전에서야 약속이지만 실제로 그런짓을 해도 여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진 남자에게 정나미가 떨어지는 일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그때까지의 교제 나름.

그것도 모른다는 건 그만큼 진심으로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것.

즉 이 방법을 쓰는 남자 = 인기 없음 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녀석의 분위기가 단번에 우스워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게할까요. 근데 레리아나는?"

"오오 그렇게 나와야지! 레리아나는 너가 내게 이기면 합격하는 걸로. 진다면 이어서 나와 테스트하는거지."


우선 나를 철저히 쓰러뜨린 뒤 레리아나에게 자기의 강함을 과시하는 작전일 것이다.


"그럼 그걸로. 케인이 너따위한테 질리도 없으니까."


악의없는 레리아나의 말에 존도 역시 얼굴을 경련시켰지만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평정을 되찾았다.


"그렇게 강한건가. 기대되네, 갈까."


존을 따라 수련장으로 향하니 마침 시험관 역할의 기사단원이 모험가를 테스트한 것 같았다.


"합격! 다음!"


다음 모험가를 부르려고 한 순간 존이 시험관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봐 베른. 지쳤지? 잠시 바꿔줄게."

"음? ...존인가. ....그렇군, 과연."


베른이라고 불린 덩치 큰 남자는 존과 우리... 특히 레리아나를 보고 작게 코웃음쳤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듯이,


"술 한 잔 사라."


그렇게 말하며 존의 어깨를 두드리고 자리를 떴다.

그것을 배웅한 존이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고. 무기는 거기 세워져 있는거 뭐든지 써도 돼. 마도구라서 상대를 상처입히지 않는 대신 체력을 빼앗아. 폭도 진압용 무기지만 기사단 훈련으로도 쓰고 있어."


호오... 하며 나는 모의검을 손에 들고 바라봤다.

상대를 상처입히지 않고 체력만 깍는다니 실로 합리적인 도구다.

시중에 팔진 않나?

...아니 어렵겠네.

이걸 사용하면 범죄로 악용할 수 있으니까.

나는 그 중에서 마검 소울이터와 비슷한 크기의 검을 선택하고 존에게 향했다.

주변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험가나 기사단원들이 멀리서 우리를 구경하며 속삭이고 있었다.


"누가 이길 것 같냐?"

"그야 기사단원 존이겠지."

"'메 배기' 존 맥크리 인가. 뭐 철판이네."

"...아니 잠깐, 저 녀석 본 적 있어. 분명 투기장에서 레리아나를 이긴 알케인이야."

"아 저 녀석이... 근데 레리아나는 언더 20 아니었나?"

"그럼 저 녀석도 레벨은 20 이하인가."

"그럼 역시 힘들겠지."

"기사단원이라면 최소 30은 넘으니까."


흠 일단 존의 승리 확정이라는 분위기네.

지금 내 레벨은 벌써 27인데... 역시 단숨에 이렇게 오른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겠지.

지금 대화가 존에게도 들렸는지 그의 표정은 오나전히 승리를 확신한 그것이었다.

그는 검을 아래로 향한 채 말했다.


"준비는 됐나? 언제든지 덤벼."

"...그럼 사양않고."


아무래도 선공은 양보해주는 듯, 나는 마도구의 효과를 믿고 전력으로 가기로 했다.

축지는 사용하지 않고 그냥 뛰어들어가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다가오는 내게 존은 여유를 보이는 듯이 아직도 아무런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여유로운 표정 그대로다.

검이 그의 머리로 빨려들어간다.

...아직도 방어를 하지 않는 건가? 아니면 방어계 고유스킬?

머리까지 앞으로 10cm... 5cm... 1cm.


'아... 이거 그냥 반응 못한거네.'


내가 겨우 그걸 깨달았을 때는 빡 하는 소리를 내며 검이 그의 머리에 닿아 있었다.

마도구의 효과는 에너지의 모든 것을 피로감으로 변환하는 것인지, 존이 상처를 입거나 날아가는 일은 없었지만 대신,


"케흐에에..."


라고 뭔가 얼빠진 한숨소리도 아닌 소리를 흘리며 털썩하고 무릎부터 쓰러졌다.

한 박자 뒤, 쉬이이이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사타구니에 얼룩이 퍼져간다...

...아무래도 그 일격이 오줌을 참을 체력까지 전부 뺏어간 것 같다.

구경꾼들은 마치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듯 순간 조용해진 후,


"오오오오!? 뭐야 저거!? 하나도 안 보였어!"

"오, 오줌싸고 있잖아!! 푸학, 아, 안돼, 웃겨서 배가 아파아아!"

"언제든지 덤벼, 하자마자 순살은 존나 웃겼다."

"위, 위험한데..! 아무리 그 마도구라도 이건 안 돼! 과로사할거야! 스태미너 포션 가져와, 포션!"

"존 꼴 좋구만! 그 자식 마음에 안들었다고."

"기사단의 수치같은 놈... 오늘로 끝이군."


경악, 조소, 걱정 등 여러 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레리아나가 내 등을 짝 때렸다.


"역시 케인! 저런 놈 따윈 별거 없지!"


그녀가 웃는 얼굴로 축하해주고 얼굴을 살짝 내 귓가에 갖다댔다.


"근데 뭔가 단번에 강해진거같은데? 어제 말했던게... 이거?"


역시 내 비정상적인 파워업을 눈치챈 것 같은 레리아나에게 애매한 미소를 돌려줬다.

지금의 그녀라면 내 비밀을 알려줘도 되지만 과연 이 장소에선 안된다.

그렇게 넌지시 눈으로 전하자 그녀도 깊게 추궁하지 않고 물러섰다.

그리고 그런 내게 베른이라고 불린 남자가 다가왔다.


"...아~ 그 뭐냐. 실력은 잘 알았다. 원정부대에서도 그 실력을 발휘해주게. 그리고 거기 동료는 어쩔거지? 너와 파티라면 시험은 면제해줘도 상관없다."


힐끔 레리아나를 보는 그의 눈은, 레리아나도 나같은 괴물이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지만 나는 굳이 오해를 풀지 않았다.


"그럼 부탁해요. 레리아나도 괜찮지?"

"음~ 조금 싸워보고 싶기도 했는데... 상관없어."

"그, 그렇군... 그럼 원정 때 잘 부탁한다."


...아무래도 그에게 조금 공포감을 준 것 같지만 이걸로 목적 중 일부는 달성했다고 봐야할까.

크리스 전하와 쌍벽이 될 구심력이 되려면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실력을 과시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지름길이다.

그리고 그건 별 실력이 없는 민준보단 어느정도 적의 힘을 아는 강자 앞에서 보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나는 투기장에서 민중을 향한 실력과시보단 이렇게 실력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과시하는 것으로 중견 이상 모험가에 의한 입소문을 노린 것이다.

쐐기를 박기 위해 투기장에서 싸우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아니... 역시 취소. 투기장은 안 된다.

분명 또 이상한 트러블이 생길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며 귀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