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tsfiction/99951916


https://youtu.be/tddZhV-My-U?si=Y3QsKF0WvkvFglSl




 그들은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전기식 기차는 넓디 넓은 8차선 도로의 정중앙에 깔린 레일을 물고 유유히 소리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창문을 열 수 있는 것이 신입 발키리는 퍽 신기했다.


 목적지는 초거대 쇼핑센터였다. 하늘은 맑고 거리는 말끔했으나 코끝을 맴도는 화약 냄새에 신입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내린다.”

 

 지잉─

 

 기차 문이 열리고 신입은 선배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승강장은 쇼핑센터 내부와 연결된 구조였다. 세 번째로 지나친 자동문 위에는 ‘GATE 4’라고 적힌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쇼핑몰이라기보다 어딘가의 공항 같다는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1층의 4번 게이트 부근은 가전제품을 다루는 구역이었다. 형형색색의 불빛을 내뿜는 TV, 드럼형과 통돌이로 나뉜 세탁기, 4도어 냉장고, 에어컨, 청소기 등등…….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던 신입은 잠시 뒤 어떤 이질감을 느꼈다. 이질감의 원인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무인 매장인 걸까. 그러나 이만한 규모에?

 

 신입이 말했다.

 

 “여기서도 텔레비전을 파네요?”

 

 “텔레비전? 저 조명장치 말인가?”

 

 신입은 질문을 그만두고, 매장 한 켠에 커다랗게 전시된 최신형 핸드폰을 보러 가까이 다가갔다. 핸드폰은 전파가 터지지 않았다.

 

 겉보기만 그럴싸할 뿐, 이곳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꼭 거대한 시뮬레이션 같네요.”

 

 “시뮬레이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선배는 되물었다.

 

 실제로 그녀는 신입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도 없었으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건 연장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선배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말했다.

 

 “너도 보다시피 별 볼 일 없는 곳이다. 이제 그만 필요한 걸 사러 가도록 하지.”

 

 그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거의 전체가 의류를 판매하는 구역이었다. 드문드문 점원이나 다른 손님이 보이기 시작해 신입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원하는 걸 골라보게.”

 

 “옷을요? 여기서요?”

 

 “그래…… 이 옷은 어떤가?”

 

 선배는 개량 한복 한 벌을 집어 들어 신입의 몸에 가져다 대보았다. 쪽빛 치마에 흰 저고리, 고름에는 나비를 수놓았다. 자신이 입은 도복보다도 사치스러운 물건이었다.

 

 선배로서 면을 세울 겸, 그보다는 솔직하게 이 미래인의 코를 납작 눌러주고자 하려는 속셈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이곳의 화폐 가치를 모르는 신입에게 통하지 않는 전략이었고, 다만 신입은 선배가 직접 옷을 골라준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 뒤로도 살 것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속옷, 양말, 생리대. 그 외에도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을 고르는 선배의 손이 묘하게 급해졌다. 신입이 이유를 묻자, “잠시 뒤에 가르쳐주지.” 그 말을 끝으로 선배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

 

 이제 쇼핑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 

 

 그들은 쇼핑몰 안에 입점한 카페에 들러 잠시 쉬기로 했다. 외부와 구분되는 벽이 없이 오픈 스페이스 형태인 카페는 멀리서부터 커피 내리는 냄새를 풍겼고, 그 냄새는 원천으로 갈수록 더욱 진해졌다.

 

 이제껏 맡아본 것 중에 가장 좋은 커피 냄새여서, 신입은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선배는 신입이 카페를 마음에 들어 한 것을 눈치챘고, 또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데, 여기 온 지 백 년이 넘었음에도 다른 누군가를 보며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선배는 자신이 품은 이유 모를 애착이 어디에서 왔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선배는 신입에게 발키리가 해야 할 일, 그리고 발키리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가르쳤다.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는 아인헤랴르의 전투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발키리들은 자신의 전사들을 도와 싸우거나, 그게 아니면 새로운 전사를 찾으러 지상으로 내려가기도 하지.”

 

 이제부터 신입 발키리도 해야 할 일이었다.

 

 “싸움이라면……?”

 

 “말 그대로의 의미다. 어디서든 눈이 맞으면 서로 총칼을 들고 죽고 죽이지.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말도록. 날이 저물면 되살아나니까.”

 

 신입은 놀랐다. 아까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평화로운 거리의 풍경이, 당장 지금 앉아있는 이곳이 전쟁터가 된다니.

 

 신입은 벽에 걸린 시계를 흘긋 옆눈질하며 물었다. 시침은 숫자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싸움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요?”

 

 “그것도 물을 줄 알았다.”

 

 원래라면 난감한 질문이었을 테지만, 선배는 싸움을 하지 않으려 드는 발키리 중 존경할 만한 이를 몇몇 알고 있었다.

 

 “실제로 여섯 시간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경우도 있어.”

 

 하나 그러한 케이스는 신입 발키리가 고를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선배는 경고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식료품, 의류, 그것 말고도 이곳의 모든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돈이야. 금화가 필요해. 그리고 발할라의 금화는 정당한 전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선배는 엄지와 검지를 말아 원을 만들었고, 신입은 혼잣말했다.

 

 “정말로 게임 속 세상 같아…….”

 

 우웅─

 

 그때, 벨이 울렸다. 신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 제가 가지고 올게요.”

 

 신입은 커피 두 잔을 쟁반에 받쳐 돌아왔다.

 

 그들의 화제는 이제 신입이 죽은 이유로 돌아갔다.

 

 죽은 이유를 말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 말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그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무 관계도 없는 시민들을 헤친 건 물론 명백한 잘못이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누구 하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그런 절망감이 일을 일으킨 근본 원인 아닐까요?”

 

 차츰차츰, 부분적으로나마 떠오르는 전생의 기억. 

 

 “널 죽인 놈들을 두둔한다고?” 그걸 듣던 선배는 스푼으로 신입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렀군. 넌 좋게 말하면 이상주의자지만,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하다.”

 

 “아하하….”

 

 “세상에 너 같은 이들만 있다면 싸움도 전쟁도 일어나지 않겠지. 반대로 말하면 네가 가진 태도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단 거다.”

 

 “그러고 보니 같은 과 선배한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넌 좀 더 참여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대학을 나왔나?”

 

 그렇게 묻는 선배의 얼굴에선 티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놀란 기색이 묻어나왔다.

 

 한편, 신입은 쓴웃음을 지었다. 커피는 향기가 무척이나 좋았지만, 맛이 좋은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과일 쥬스를 시켜볼 걸 그랬나…… 신입은 조금 후회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근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 고요를 다시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메웠다.

 

 인파가, 문자 그대로 사람의 파도가 두 사람이 앉은 카페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수행원들?’

 

 신입은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강인한 발키리 무리와 그녀들에게 에워싸인 발키리가 한 명. 분홍빛 머리와 순백색 드레스. 포근하고 달큼한 계열의 향수를 뿌린 것도 같았다. 표정부터 걸음걸이까지 기품이 넘치는 천사는 주위의 이들과는 근원부터가 다른 존재였다. 그 사실은 모르기가 더 어려웠다.

 

 한편, 말없이 커피잔 바닥을 내려다보던 선배는 뒤늦게 신입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손짓했다.

 

 “잠깐, 눈을 마주치지 마라.”

 

 선배가 신입 앞에서 처음으로 드러내 보인 감정.

 

 그것은 당혹스러움 내지는 공포였다.

 

 그러나 선배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천 년도 더 넘게 산 발키리들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무렵부터 활동하던 최고最古의 발키리에 대해. 지금은 비록 빛이 바랬으나, 핏빛 머리카락에 얽힌 전설도.

 

 “조심해라. 저들은 아주 강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추종자가 아니면 가차 없이 벨 만큼 성격도 나쁘지.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저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그게 아니면 처음부터 엮이지 말거나. 척을 진다는 선택지는 없어. 그 부분을 똑똑히 새겨둬라.”

 

 신입이 아무래도 이해가 잘 안 된다는 표정이었기에 선배는 덧붙여 말했다.

 

 “만나게 해줄 사람이 있다. 나보다 몇백 년 더 오래 사셨고, 몇백 배는 현명하신 분이지. 그분에게 조언을 구하면,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도 조금은 감이 잡힐 거다.”

 

 선배는 카페 옆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다행히 여기로 들어오진 않을 모양이군. 이만 일어나지. 시간 끌어서 좋을 것도 없어.”

 

 드르륵- 선배와 신입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봉투들을 챙겼다.

 

 “거기 당신들-” 그런 그들을 붙잡는 목소리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천 년도 넘게 산 발키리가 입을 연 것이었다.

 

 그녀는 바짝 긴장해 다음 말을 기다리는 발키리들에게, “저기.” 느릿한 동작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무줄을 떨어뜨렸어요.”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과연, 아까 산 고무줄이 떨어져 있었다. 급하게 움직이느라 쇼핑백에서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신입은 천 년도 넘게 산 발키리를 향해 배꼽에 손을 올리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천 년도 넘게 산 발키리는 그런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못 보던 얼굴인데. 신입인가요?”

 

 그리곤 싱긋 웃더니, “잘 가르쳐주도록 해요.” 선배 발키리에게 말했다. 선배 발키리는 깍듯한 묵례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 보군. 운이 좋았어.” 천 년도 넘게 산 발키리가 멀리 떠나가고 나서, 선배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 가지.”

 

 신입은 여전히 아무래도 이해가 잘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