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안으로 들어서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 카운터 쪽을 보니 원래라면 거기에 있을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책을 읽고 있거나 아니면 정리하고 있었을 텐데 안 보이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 향한 듯 싶었다.


직원이 어디로 향한 건지 궁금은 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청하에게 가서 점심을 얻어먹은 뒤, 사람이 보고 싶다고 난리치는 책의 모습을 보는 게 더 중요했다.


청하의 집으로 가는 길은 대충은 알고는 있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책갈피를 손에 쥐고 원하던 책을 찾던 그때처럼, 청하의 집을 떠올리며 걷다보면 나오지 않을까.


지금 내 손에는 책갈피가 없었지만, 대신 주머니에 책갈피를 대신할 수 있는 물건이 있었다.


주머니에서 복주머니를 꺼내어 그 안에 들어있는 비늘을 손에 쥐었다.


이것도 어떻게보면 청하가 내게 건네준 초대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청하의 집에 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대로 쭉 걷다보면 책장에 머리를 박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런 일은 아쉽게도 없었다.


어딘가에 부딪치는 일도 없이, 상상하면서 앞으로 걸으니 이쯤이면 됐겠지 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저번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의 청하의 옛날식으로 지어진 목재로 된 양반집이 보였다.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을 보아서는 편안하게 들어오라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문에 다가가서 살짝 두드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음! 이제 왔느냐!"


집 안에서 마당으로 뛰어나오는 청하는 앞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그 색깔이 하얀색이라 파란색 한복과 잘 어울리는 듯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미묘한 복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앞치마의 가슴 부분이 붕 떠있는 것을 보니 더더욱.


저렇게나 큰 걸 달고 있는 걸 볼 때마다 매번 드는 생각은 불편하지 않을까 였지만, 정작 청하는 별 생각이 없는 듯 싶었다.


내게 저런 게 달려 있었더라면 눈에 불을 키고 남자로 되돌아갈 방법을 찾았을 텐데.


지금도 달리거나 할 때마다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그럭저럭 견딜만 한 정도인데, 저 정도로 큰 게 달려있었더라면….


빨리 남자로 돌아가는 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 생각을 모르는 청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달려오려다가도, 맨발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급하게 툇마루 위로 올라갔다.


"어흠. 점심은 다 준비 되었으니 와서 먹기만 하면 되느니라."


"감사히 먹겠습니다."


청하의 등 뒤로 보이는 꼿꼿이 선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척을 했다.


뿔의 색도 온갖 푸른색이란 푸른색으로 변하고 있었지만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감정이란게 저렇게나 확연하게 보이는 게 가능하구나 싶었다.


…잠깐 시선을 줬을 뿐인데도 용이라서 그런 건지 청하가 눈치채는 속도가 어마무시하게 빨랐다.


"내가 매번 말하지 않느냐, 용의 감정을 멋대로 읽으려 들지 말거라!"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너무 명확하게 보인다면 당사자의 문제도 있는 게 맞지 않을까.


흥! 하고 팔짱을 끼고는 내게 등을 보이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서는 청하의 뒷모습을 보니, 삐진듯한 반응과는 다르게 꼬리는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용이라기 보다는 강아지가 더 맞는 표현이지 않나.


이런 내 생각을 청하에게 밝혔다가는 한동안 꼬리로 내 몸을 묶어 다닐지도 모르겠지만.


저 연약하고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건지. 아니,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특이하게 생긴 종족은 특이한 게 당연한 곳이었고, 평범하게 생겼을 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기에서의 평범이지 남자였을 때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특이했다.


아무튼, 이대로 서 있을 수는 없었으니 마당으로 들어서니 여전히 넓은 마당이 보였다.


이런 곳에서 혼자 살면 적적할 것 같다.


가뜩이나 넓은 집인데 마당까지 이렇게나 넓으니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 청하, 단 한명이라면 굉장히 쓸쓸할 것 같았다.


예전이라면 아마 청하를 시중드는 사람이나 종족이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이렇게 넓은 집도 왜 넓게 지어진 건지는 대충이나마 이해를 할 것 같았다.


자세한 건 청하에게 물어보는 게 맞겠지만, 일부러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마당을 둘러보는 것을 멈추고, 툇마루 밑에 놓인 돌에 걸어가서 신발을 벗어놓은 뒤, 툇마루에 올라갔다.


저번에 들어갔던 방으로 향하니 가운데에 식탁이 있었고, 청하와 내가 앉을 자리로 보이는 곳에는 방석이 놓여있었다.


등 뒤에 병풍이 있는 자리에 아마 청하가 앉을 테니 그 반대편에 앉았다.


납작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더 푹신한 방석의 촉감에 이것도 금향의 카페에 놓인 소파처럼 고급품인걸까 싶었다.


청하가 언제쯤이면 올까 문을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더니, 공중에 붕 떠있는 쟁반이 보였다.


식탁 위로 향한 쟁반은 그 위에 놓인 반찬들과 찌개로 보이는 빨간 국물이 인상적인 뚝배기를 가운데에 내려놓고는, 어딘가로 날아갔다.


가정 집이 아니라 식당에서 볼 법한 가짓수의 반찬들과 찌개의 모습에 이렇게 대접을 받아도 괜찮은 건가 싶었지만,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은 일이었다.


쟁반이 날아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하가 한 손에는 전기밥솥을, 한 손에는 밥그릇으로 보이는 물건 두 개를 갖고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문이 알아서 스스륵 소리도 없이 닫혔고, 청하는 밥솥을 식탁 옆에 내려놓고는 그릇에 밥을 퍼담기 시작했다.


"많이, 아니면 적게? 그것도 아니면, 적당히?"


"…적당히 부탁드립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적당히 퍼주는 거겠지. 설마, 용의 기준으로 퍼주는 건 아니겠지?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청하가 건네준 밥그릇에는 적당한 양의 밥이 담겨있었다.


"뭘 그렇게 보는 겐가. 카페에서 먹었던 양을 생각하면 딱, 그 정도가 적당하지 않느냐?"


"적당합니다만, 약간 불안했습니다."


"…내 기준으로 줄 것이라고 생각했느냐?"


청하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청하는 자기 밥을 퍼담는 것도 잊고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어린애로 봐드리는 게 더 좋습니까?"


"어, 어린애… 아니, 생각해보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구나."


언니라고 불러주길 원하느냐?


청하의 말이 내 머릿속에 울려퍼지고, 청하의 물음에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거부하니 뿌우 하고 볼을 부풀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면,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언, 니라고 부르기에는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좀…."


누나라는 말이 아닌 언니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말을 더듬고 말았지만, 청하는 별로 신경쓰는 기색은 아니었다.


언니.


언니라는 말이 왜 이렇게 불편한지.


남자였을 때에는 누나라는 말이 언니로 바뀌었을 뿐인데, 느낌이 참으로 이상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청하를 그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여태까지 보여준 모습들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나이를 추측해보면 할머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나.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한 청하였다.


"실례되는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대답은 바로 나왔지만, 살짝 떨리고 있는 손을 슬쩍, 식탁 아래로 내려 가렸다.


이상할 정도로 이런 부분에서 날카로웠다.


생각을 안 읽는다고 말한 것 치고는 너무, 내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


"흠… 뭐, 괜찮겠지. 아무튼,  내가 언니인게 좋느냐, 아니면 너가 언니인게 좋으냐?"


"둘 다 싫습니다만, 그냥 청하라고 부르면 안 됩니까?"


"…그것도 괜찮기는 한데, 그래도 한 번도 불려본 적 없는 명칭으로 불려보고 싶구나."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는 청하의 시선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래로 내렸던 손을 식탁 위로 올려서 두드리고 말았다.


툭, 툭, 툭.


세 번을 두드리고 나니 어느정도 정신이 진정되었고, 뭔가를 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점심이라도 먹고 생각하는 게 어떻습니까?"


눈 앞에서 식어가기 시작한 찌개와 반찬을 보며 청하에게 물어보자, 청하도 그제서야 깨달았는 지 화들짝 놀라며 찌개를 쳐다보았다.


"어흠, 내가 배고픈 사람의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구나."


머리를 긁적거리며, 머쓱함을 표현하던 청하는 그제서야 자기 밥그릇에 밥을 퍼담고는 숟가락을 들었다.


나도 숟가락을 들고 밥을 한 입 먹으려다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청하가 아직 먹지 않았다는 사실에 먼저 먹기를 기다렸다.


"…나를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느니라."


"그래도, 저보다 나이가 많지 않습니까."


"아니,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 집에 초대된 것은 주빈이니까, 주빈이 먼저 먹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집 주인이 먼저 먹는 게…."


"어허!"


뗵! 하고 자기 숟가락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는 내가 먼저 먹기를 기다리는 청하의 모습에 한숨을 내쉴 뻔 했지만, 어떻게든 참아내고 밥을 한 숟가락 퍼서 먹었다.


내가 식사를 시작하자, 내려놓았던 숟가락을 다시 드는 청하를 보니 역시 집 주인이 먼저 먹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대된 사람이 먼저 먹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단순히 밥 한 숟갈을 먹었을 뿐인데도 밥이 맛있다고 느껴지는 걸 보면 쌀도 뭔가 특별한 걸 사용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찌개나 다른 반찬도 그럼, 기대하고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기대감을 품고, 숟가락을 내리고 젓가락을 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반찬들과 찌개도 맛있게 먹어치웠다.


평소보다 더 많이 먹었을 정도로.


남자였을 때에는 이게 정상이었지만, 여자가 된 지금은 많이 먹었다고 느껴지는 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청하가 내준 차를 마시며 여기에 온 원인인 책에 대해 물어보았다.


"책은 어쩌다가 봉인이 풀렸습니까?"


"그게, 나도 잘 모르겠구나. 어느 순간부터 봉인이 풀려서는, 인간을 보여달라고 통 난리를 치지 않느냐."


덕분에 머리가 아파왔느니라.


그렇게 머릿속으로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쉰 청하의 모습은 평소에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렇게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 귀찮은 일에 엮인 게 아닌가 싶었지만, 점심까지 먹었으니 이제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책이 바라는 게, 단순히 사람을 보고 싶다는 요구입니까?"


"그것 뿐이라고는 하는 데, 솔직히 말하자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느니라."


꼬리를 바닥에 툭 툭 내리치며 그렇게 말하는 청하는, 앗 하고 자기 꼬리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구나."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어떻게든 해줄 테니, 걱정말게나."


"청하가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합니까."


청하에게 문제가 발생할 정도라면 옆에 있던 나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 청하가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질 뿐이었다.


"그렇군…. 그럼, 그 책을 이곳에 부르는 게 좋은가, 아니면 밖에 나가서 보는 게 좋은 지 골라보게나."


"…이왕이면 밖에서 보는 게 낫지 않습니까? 적어도, 집에 문제가 생기는 것 보다는 나을 테니."


"집 밖의 도서관도 어떻게 보면 내 집의 일부이기는 하느니라."


…집의 면적보다 도서관의 면적이 더 큰 건 어떻게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게 아닌가 싶었지만,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앞치마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청하의 뒤를 따라 일어서니, 식탁에 올라간 찻잔과 주전자, 그리고 식탁이 공중에 떠서는 어딘가로 날아갔다.


잠깐 그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며 어디로 가는 건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문 밖으로 나서서 신발을 신는 청하를 따라서 툇마루 밑에 놓인 돌에 올라간 신발을 신고, 마당을 걸어서 대문 밖의 도서관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