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이세계에 떨어져서는 성녀가 되어버린 틋녀.


지구에서 애타게 자신을 찾을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하루빨리 돌아가야 하지만 조건조차 알 수 없어 갑갑하기만 하고


주변에서는 자꾸 성녀님, 성녀님 하면서 떠받드는 한편 자꾸만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 때문에 쌓여가는 스트레스.


하지만 본성이 선했던 틋녀는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을 내버릴 정도로 모질지 못했지.


힘이 없다면 모를까, 어째 써도 써도 줄지않는 신성력 덕분에 사람들을 치유하고 축복하면서 나름의 보람을 느끼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여전히 귀환을 바라며 썩어가는 마음.


그러던 어느 날.


마왕군의 침공소식이 전해지며 틋녀는 이거야말로 귀환의 단서임이 틀림없다 생각해서 마왕 토벌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


물론 성녀니까 당연히 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말이야.


그리고 마왕의 침공 소식과 함께 성검을 하사하는 여신. 


그 성검을 받은 용사와 함께 동료들을 모아 마왕성을 급습할 특공대를 결성하여 출진하는데


마왕군의 침공은 너무나도 거셌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인류의 영토. 죽어나가는 사람들.


그럼에도 빠르게 마왕을 처리해야 모든 일이 끝나기에 그들을 뒤로 하고 발길을 재촉하지.


그러면서 머릿속 한구석에서 자꾸만 피어오르는 이기적인 생각.


마왕만 잡으면 지구에 돌아갈 수 있다.


돌아가기만 하면 이딴 세계따위...


하지만 그건 현실에서의 도피일 뿐.


이 세계는 진짜였고, 죽어나가는 사람들 역시 진짜.


그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나아가는 주제에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점점 혐오스러워지는 가운데.


끝내 당도한 마왕성에서 최종결전을 펼치는 용사파티.


파티는 승리할 수 있었어.


틋녀를 제외한 파티원들은 전멸했지만 말이야.


이미 기나긴 여정길에서 그들과 너무 친해져 버린 틋녀는 그들의 시체를 끌어안고 엉엉 울기를 한참.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돼.


이 세계에 남기로 말이야.


지구에서 기다릴 가족들이 아직도 아른거리지만, 이미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이 세계에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성녀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 지 뻔했거든.


무엇보다 소중한 동료들의 무덤도 만들어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리 다짐하며 겨우 일어선 순간.


틋녀의 등 뒤에 열리는 차원의 틈.


바로 틋녀를 돌려보내기 위한 여신의 짓이었어.


그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틋녀는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빌고 또 빌었어.


제발 이 세계에 남게 해달라고. 하다못해 뒷수습이라도 하고 보내달라고.


하지만 여신은 대답해주지 않았어.


성녀랍시고 끌고온 주제에 여태 말 한마디는커녕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아 틋녀의 마음 속에 혐오가 가득 쌓이게 했던 그 무심한 행태 그대로.


결국 점점 틋녀를 끌어들이는 차원의 틈.


틋녀는 추하게 바닥을 기고 손발톱이 다 뒤집어까지도록 땅바닥을 긁으며 저항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지.


그렇게 차원의 틈에 몸의 태반이 끌려들어가고, 이미 싸늘하게 식은 용사의 텅빈 동공을 마주한 것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는 틋녀.


결과적으로 귀환에는 성공했고 차원의 연결은 끊어졌는데, 어이없게도 여전히 넘치는 신성력.


그 버러지 같은 여신의 잔재가 몸안에 남았음이 너무나 혐오스러워 자해를 반복하지만 그조차 금세 회복되어 죽을 수도 없었지.


그렇게 하루하루 스스로를 미워하며 폐인이 되어가기 시작하는데...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귀환 성녀가 보고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