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나가요~"

그 말과 함께 문고리를 잡았던 남자는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이내 기분 탓이겠지. 하면서 문을 연 순간, 


"후후... 열었구나."


문 앞에 서 있던 창백한 인상의 뱀파이어가 미소 짓자 긴 송곳니 두 개가 반짝였다.


"이리 초대를 해주다니, 그럼 들어가야겠지?"

"오, 오지 마!"

남자는 재빨리 문을 닫고, 허둥지둥 자물쇠까지 채웠다.


"에이 씨. 탕수육을 시- 우아아악!!!"
"후후, 소용없다."

하지만 어느새 뱀파이어는 남자의 집 거실에 선 채. 남자를 조롱하듯 손을 흔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제야 남자의 머릿속에 뱀파이어의 특징이 떠올랐다. 그들은 초대받지 않는 한 남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자신을 뱀파이어를 집에 초대하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젠장, 그 놈의 탕수육이 뭐라고.


"이, 이 간악한...!!!"

다음 순간, 뱀파이어가 들고 있는 철가방을 본 남자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어, 배달은 맞네요?"

"그래."


어쩌면 돈을 받으면 돌아가지 않을까, 해서 남자가 지갑에 손을 대자, 뱀파이어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 돈은 됐다. 피로 받을 테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남자의 집은 어둠으로 뒤덮혔고, 어둠보다 더 시커먼 뱀파이어가 광소했다.


"이 얼마만에 보는 순결한 영혼이란 말인가! 34년이 넘도록 순결을 지키는 깨끗한 피는 정말 오랜-"
"그만!!!"

입맛을 다시던 뱀파이어는 남자의 피 맺힌 절규를 듣고는 흠칫 놀라 말을 멈추고 말았다.


"제발... 그만..."
"미, 미안하다..."


뻘쭘한 표정으로 사과하던 뱀파이어는 아차 싶어 표정을 고쳤다. 먹잇감에게 사과라니 말도 안 되지.


"빈틈이다!"
"앗?!"


그 잠깐의 틈을 타 남자는 지갑에 들어있던 작은 은십자가를 꺼내 뱀파이어에게 들이댔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소멸하라 악귀야!"
"아, 나 유대교 믿으니까 그건 소용없다."
"뭐?"


뱀파이어가 지껄인 개소리가 잠깐 할 말을 잃었던 남자가 소리쳤다.


"뱀파이어가 유대교를 왜 믿어!!!"
"내 아버지가 유대인이라서 그렇다."

태연히 대꾸한 뱀파이어가 망토를 펼치며 양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자, 그럼 잘 먹겠-"
"그럼 이건 어떠냐!!!"
"그, 그건?!"


남자가 꺼내든 또 다른 책. 그 책에 적힌 제목 <트와일라잇>


"크아아악!!! 치, 치워!!!"
"우아아아아!!! 현대 문학의 맛 좀 봐라!!!"

존재 자체로 뱀파이어라는 종족을 능욕하는 책을 정면으로 보게 된 뱀파이어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하하! 어디 낭독도 해 줄까?! 이사벨라-"
"크윽, 이대로 소멸할소냐!!"
"아 뜨거!!!"

괴로워하는 뱀파이어의 눈동자가 번쩍. 남자는 불이 붙어 버린 소설책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헉헉... 하마터면 소멸할 뻔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구나."

"젠장, 이건 쓰지 않으려 했는데...!!!"

남자가 내민 또 다른 책, 그 표지에 그려진 콧수염이 난 남자의 얼굴.

"너, 너너너.... 너어어어!!!!"
"하일 히틀러!!!"
"캬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