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옆에서 메릴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데 꽤 재밌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많은 디저트를 혼자 먹었다는 거지?"

"아니, 여기 네것도 챙겨왔잖아."
나는 나에 대한 변명도 할 겸 메릴에게 남은 디저트를 건네 주었다.

"너무하네..."
메릴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미안해. 하지만 정말맛있었단 말이야. 나중에 같이 가는 건 어때?"

"내가 단 것을 잘못 먹는다고했지?"
메릴은 어린 아이처럼 투덜거렸다.

이럴 때는...

나는 책상 위에 상자를 놓고 열어서 아직도 반들 거리는 예쁜 모양의 셰크셰크를 손으로 꺼냈다.

"자, 아~ 하세요."

"뭐야 그게..."

그런데 메릴은 귀엽게도 입을 아~ 하고 벌렸다.
귀여운 녀석.

나는 메릴의 입안으로 셰크셰크를 넣어주었다.

"응? 이거 맛있는 데?"

"그치? 맛동산 같은 맛인 데 조금 더 바삭하고 버터 맛이 느껴지는? 버터링 과자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렵네."

"신기하네..."
메릴은 오물거리면서 맛을 느끼는 듯 보였다.

"단 것도 괜찮지?"

"나 복근 다 빠지고 배 볼록 나와도 좋아해 줄 거야?"

나는 씨익 웃고는 그의 볼에 키스를 했다.

"물론이지. 메릴."

"에휴... 알겠어. 좋아해 보도록 노력할게."

"좋아!"
나는 메릴을 꼬옥 껴안아 주었다.

"왜 악마한테 속아서 타락한 느낌이지."

"착각이야 착각."

메릴이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만약에 그를 닮은 남자 아이가 있다면 정말귀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에..."

"벨라, 너 지금 표정이 되게 야해."

"미안. 조금 사적인 생각을 했어."
그와 결혼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아이가 무슨 일이 생길까 봐에 대한 걱정은 종종 했지만 그와 날 닮은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은 잘해보지는 않았다.
엄청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금세 분홍빛 꿈이 사라졌다.

"그건 그렇고 사람들은 많이 만나봤어?"

"어떻게 알았어?"

"바텐더 일을 하면서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벨라니까. 그럴 거라 생각 했어."

"넌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메릴."

나는 그의 다리 위에 올라 탔다.

"진정해 벨라. 아직 저녁은 안 먹었으니까."

나는 그를 바라보며 정말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숨결과 체취를 천천히 느꼈다.
그의 어깨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성이 겨우 나를 붙잡아 주었다.

"오늘 아침에 귀여운 웨이트리스 분 기억나? 네가 새터민이라고 말해준 분 말이야."

"응, 그게 어릴 때 안산에서 지낸 기억이 있으니까."

그의 어린 시절은 꽤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실 그가 자초한 일이지만 아버지에게 반항감을 느끼는 아들이란 흔한 일이니까.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공사판을 전전하던 메릴은 안산의 문화에 녹아들었다.

TS나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새터민 등 약자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같이 사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런 배경을 가진 그가 나를 좋아해 주는 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배려 받음은 언제나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한다.

"네 말이 맞았어. 하지만 반쯤 맞았지. 북한을 통해서 러시아예 귀화한 친구야."

"친구? 그 짧은 시간 동안 친구를 만들었네?"

"정말 사랑스러운 친구거든. 그리고 그녀는 웨이트리스이자 바텐더니까."

메릴은 장난스럽게 내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앗, 간지러워. 나 거기 민감한 거 알잖아."

"다른 곳들도 많이 아는데?"

메릴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쳇, 능글맞아."
나는 투덜거렸다.

"그래서 그 웨이트리스 분이랑 친해진 거야?"

"맞아. 그 사랑스러운 친구의 이름은 레베카야. 굴곡있는 삶은 살아와서 그런지 나와 금세 공통점을 찾아서 친구가 되었어."

"상처 부위가 비슷하면 친해지기 빠르지."
메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대화할 때 자신과 상대방의 공통점을 찾아 공감대를 형성하려 한다.
그 공감대는 빠르게 친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나는 바텐더 일을 하면서 이것을 배웠고 관계를 맺는 법을 몰랐던 남자시절과 달리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다.
그중에 제일하나가 내 눈앞이 이 남자고.


"레베카 씨랑 친해진게 오늘의 모험의 전부는 아닐텐데?"

"그리고 레베카가 오른쪽 끝에 있는 카페 칸을 추천해 주었어. 가는 길에 바얀이라는 중년의 모피상인 분을 만났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놀라운 데? 정말 모든 사람과 친해지는 능력이 있잖아."

"그게 애매해. 바얀 씨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홀리듯 그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톰 씨와 비슷한 느낌인가?"

"말투나 분위기는 비슷한 데 조금 체격이 작으셨어. 그리고 난잡스러운 말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

"상인들은 보통..."

"맞아. 나도 그런 색안경을 끼고 그와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바얀이라는 분은 아니라는 뜻이네."
메릴은 내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자 나는 머리를 살짝 내렸다.

그는 내 예상과 같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분의 이야기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덕분에 복잡한 시간대의 커피 칸을 피할 수 있었어."

"좋은 일이네."

"그리고."
나는 상자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맛있는 카페를 발견했지."

"디저트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네."

"맞아. 그리고 내가 차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솔직히 아직도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 홍차도 맛있었는데 그냥 맛있다는 느낌 뿐이야."

"다도는 항상 어렵지."

"다도 해봤어?"
나는 메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모르는 재벌이 배워야하는 것들 중에 하나야. 배우는 데 엄청 시달렸지."
메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 보고 이마에 키스를 해 주었다.

그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그곳의 예의 바른 제과사 겸 바리스타 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런 남자분이 계셨어. 이름은 알렉세이라고 하셨지."

남자라는 말에 메릴의 눈이 살짝 흔들렀다.

"잘생기시고...음... 수염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말이야."

슬쩍 메릴을 보니 질투의 눈빛이 살짝 깃들어 있었다.

"질투하는 거야?"

"아니거든요."
메릴은 이럴 때는 어린 아이처럼 굴었다.

그러고 보니 바에는 길 리 안 씨를 제외한 그렇다 할 남자 분이 없다는 게 메릴의 마음을 편히게 했나 보다.
맥그리거 씨나 자비스는 일단 논외니까.

나는 메릴을 놀리는 것이 재밌지만 이런 것으로 그에게 심려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의 큼직한 손을 잡아서 내 가슴 쪽으로 대었다.

그는 깜짝 놀란 듯 얼굴을 붉혔지만 나는 웃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자, 들려?"

"그걸 손으로 듣기에는 너무 무리가 있는 데?"
메릴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 머리를 이쪽에 대어보던가."

"그건 아직 무리야."

"왜? 관계할 때는 항상 날 장난감처럼 다루더니."
나는 장난스레 말을 했다.

"그런 말 하지 마 벨라. 나는 널 정말 아낀다고. 그리고...섹스랑 관계 없이 이런 것들은 다른 느낌을 준단 말이야."

"헤에..."
나는 디저트보다 달콤한 그의 말에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앗, 느껴진다."

"심술궃어 메릴."
나는 실눈을 뜨고 피식 웃었다.

"자, 이게 오로지 메릴 너 하나만을 바라본다는 증거로 삼아줄래?"

"물론이지. 그리고 고마워. 내 질투심을 너무 시험하지 않아서 말이야."

"가끔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남자의 질투심을 느끼면서 그 안에서 무언가 우월감을 느끼거나 뿌듯함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생기곤 해."

나는 그런 생각도 종종 들었다.
메릴이 내게 얽매이고 내게 집착하는 모습이 사랑이라 착각하며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시험하는 행동들 말이다.
보통의 여자들이 하는 실수 중 하나인 그것을 통한 확인은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좋은 결과보다는 안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한다.

"그렇지만...나도 전에는 남자였으니까. 그런건 지양하고 싶어. 그리고 무엇보다 널 사랑하는 데 쏟을 시간이 줄어 들잖아."
나는 배시시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삶이 짧다고 말할 수 없지만 주어진 시간에 만족감을 느끼는 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숨김 없이 부끄러움 없이 표현하는 것 말이다.

부끄러워도 어설퍼도 그리고 어리숙해도 그것이 진실되고 숨김이 없다면 상대방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라는 것 말이다.

내 말을 들은 메릴은 나를 보고 볼이 빨개지더니 결국 내 이마에 검지와 중지로 만든 고리를 이용해 고통을 주었다.

"뭐 하는 거야?"

"너무 느끼해 벨라."

"너한테 배운 거라구우..."
나는 아파서 그곳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메릴은 피식 웃더니 내가 아파서 만지작거리는 곳에 키스를 해 주었다.

"미안. 나도 부끄럼쟁이인가 봐. 너무 달콤해서 그런지 몸이 마구 흥분돼서 뭐라도 하고 싶었어."

"그래서 날 때린 거야?"
나는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때렸다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 때린 게 아니야. 사랑의 표현이지."

"사랑의 표현이 참 거치신데요 메릴 씨?"
나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심해. 그러다가 밥 먹기 전에 허리 통증을 경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는 투덜거렸다.

메릴은 우월한 채격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날 항상 녹다운 시켰다.
맥그리거 씨와 네메시스 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쪽은 반대가 되어 있으니까.

나만 약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매번 생각이 드는 거지만 이 여자 몸은 너무 민감한 것 같고 말이다.

"민감한 게 아니야 벨라."

"내 생각 읽지 말아줄래."
입이 툭하고 삐져나왔다.

"어쩔 수 없잖아. 얼굴에 다 드러나는 걸."

"가끔은 후회돼. 너무 솔직한 게 아닌가 싶어서."

"솔직함은 종종 미숙함이나 어리숙함으로 오해되곤 하니까."

"맞아. 부정할 수가 없네."

세상이 모두 올바른 사람들로 이루어져 선으로 향한다면 좋겠지만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 사이에 나쁜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그들이 왜 악한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들의 주요 목표는 선량한 사람의 호의였다.
남자일 때는 그런 사람들에게 당할까 봐 걱정하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지도 못 하였다. 이것도 변명이지만.

하지만 선량함이 가진 힘을 알게 된 뒤로는 이런 생각이 사라졌다.
내가 베풀 수 있으니까 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마음으로는 누구보다 풍족했다.

메릴이 내게 주는 사랑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한 데 바에 있는 사장님과 다른 사람들이 주는 관심과 진심어린 애정들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래서 벨라 네가 더 좋아."

"무슨 말이야?"

"너는 거짓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말 하지도 않고 거짓으로 내 환심을 사지도 않아. 그저 정말 순수하게 내 마음을 받아줘."
메릴은 애정어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를 거야. 순수함을 가진 사람과 함께한다는 행복을 말이야."

"그럼 넌 순수하지 않다는 이야기야?"
나는 장난스레 그에게 말했다.

"순수함과는 많이 멀지?"
메릴의 얼굴에 잠깐이지만 야릇한 미소가 걸렸다.

"하여간 능글맡기는."

"그래서 싫어?"

"아니. 좋아."
나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도톰한 그의 입술로 느껴지는 촉촉한 촉감과 보드라운 입술이 느껴졌다. 그리고 따스하게 감겨오는 것들에 맡겼다.
여러 번 해왔지만 그와의 키스는 언제나 두근거림보다는 쿵쾅거림을 내게 주었다. 머리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심장은 마구 두근거렸고 손은 어디둘지 몰라서 항상 그가 내 손가락에 깍지를 끼어주었다.

그와 키스할 때면 어린 아이가 되는 느낌이었다.

기분 좋은 느낌.
그리고 사랑받는 다는 느낌.
그런 행복함 속에서 그와 같은 공간 그리고 같은 시간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부디 이런 행복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했다.

욕심이지만 평생 이 행복을 곁에 두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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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쿠키를 굽다가 베이킹 소다를 너무 넣어서 쓴 맛 때문에 다 버렸읍니다... 크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