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 끝나고 컨시어지 데스크로 돌아가는 도중 하우스키핑 부서를 들러보기로 했다.
마리 씨가 잘 지내고 있을까 생각이 들어 만나고 싶었다.

물론 바에서 선물을 주며 만난 마리 씨였지만 그래도 업무 중에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자비스 잠시 컨시어지 데스크 좀 맡아 줄 수 있어?"

"마리?"

"응. 마리 씨좀 만나고 오려고."

"알겠다."
자비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탑승하고 먼저 올라갔다.

하우스키핑 부서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편이라 사람이 적은 지금이 제일 적당했다.
노크하고 하우스키핑 부서에 들어가니 그곳에는 마리 씨와 다른 하우스 키핑 부서분들이 보였다.

"앗, 벨라 씨?"
호텔 유니폼이여도 잘 어울리는 마리 씨를 보며 부러움이 배가 되었다.

"헤헤. 잘 지내시나 보러 왔어요."

"잘 왔어요."

"다들 바쁜신데 죄송해요."
나는 안에서 오더 처리를 하는 게스트 서비스 담당분들과 오더 테이커 분들에게 죄송함을 표시했다.

"이쪽에 앉으실래요?"
마리 씨는 웃으며 일하시는 자리 옆을 내게 내주셨다.

"감사해요."

"뭐 좀 드실래요?"
마리 씨가 서랍을 열자 여러 가지 부전부리들이 눈에 들어 왔다.

"괜찮아요. 조금 전에 면접 끝나고 많이 집어 먹었거든요."

"아, 식음료 부서 직원분들에게 들었어요. 오늘 컨시어지 면접이 있었다면서요?"

"네, 저랑 자비스 그리고 에밀 씨랑 같이 들어 갔는데 따로 질문한 것은 없었어요. 오히려 질문을 받아서 당황했죠."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어떤 질문이요?"

"대부분 업무 관련 질문이나 회사 방침 그리고 주휴 같은 것들이었어요. 그런 것들은 인사과 에밀 씨가 대부분 이야기해주셨는데 컨시어지 데스크 스케쥴은 제가 짜서 제가 대답해야 했죠."

"스케쥴 짜기 힘들죠..."
마리 씨는 크게 공감하며 말했다.

그녀는 하우스 키핑 부서의 직원으로 오더테이커와 메이드와 직원들 스케쥴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페어 린넨을 구매 발주를 넣는 일도 했다.

"바쁘시겠네요. 에밀 씨 아시죠?"

"네, 잘 알죠. 그래도 에밀 씨는 하우스키핑 부터 일을 시작하셔서 저희 업무가 중요한 걸 아시더라구요. 그래서 가장 먼저 T.O를 맞출 수 있었어요."

"공감해요."
호텔 내 하우스키핑이 없다면 객실을 판매할 수 없으니 가장 중요한 역할이긴 했다.
하지만 일이 고되다 보니 많은 단기 알바생을 구해서 충원했다.

"컨시어지도 많이 바쁘시죠?"

"이제는 괜찮아질 거 같아요. 주임 두 분 모두 고용하기로 인사과와 본사에서 허락이 떨어졌으니까요."

"다행이네요!"
마리 씨는 마치 자기 일처럼 좋아해 주셨다.

"내일부터 바로 인사과 교육을 받기로 했어요. 일주일 정도는 더 고생해야겠지만요."

"그래도 이제 벨라 씨도 여가가 있는 삶을 즐기실 수 있겠네요."

"맞아요. 퇴근하고 호텔 내 바 래빗에서 맛있는 칵테일을 한 잔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나는 베키가 만들어 주는 칵테일이 생각났다.

"베키 씨랑 아는 사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러시아 여행하면서 만났어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바텐더를 하던 친구죠. 남자친구는 보안과의 이반이에요. 같이 한국에 정착하기로 했어요."

"잘됐네요."
마리 씨는 웃으며 말했지만 얼굴에 살짝 그늘짐이 보였다.

"고민 있으세요?"

"아...아니에요."
마리 씨는 금세 얼굴색을 바꾸셨다.

"음..."
나는 고민하고는 마리 씨 옆에 있는 오더테이커 분에게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겠냐고 물어 보았다.

"네, 지금은 객실 정리도 끝났고 게스트 서비스 분들이 린넨을 내리고 있으니까요."

"그럼 잠시 마리 씨좀 빌려갈게요."

"벨라 씨?"
마리 씨는 순순히 내게 손목이 잡혀 밖 직원 휴게 공간으로 가게 되었다.

"제가 더 이상 바텐더가 아니라서 술로 마리 씨를 위로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제 가장 친한 분들을 위로해 줄 수는 있어요."

"그렇게 티가 났나요?"
마리 씨는 조심스레 내게 말을 하셨다.

"제가 표정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벨라 씨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드러내시잖아요."

"굳이 짚어 주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나는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직원 휴게실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맡은 편에 마리 씨가 앉으셨다.

"혹시 아스카에게 들은 것이 있으신가요?"

"네, 사실혼 이야기...그리고 입양 이야기요."

"아스카 답네요."
마리 씨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스카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에요."

"동의해요."
나는 마리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와 지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시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 단계는 넘어선 지 오래였죠. 다만... 아이 문제에요."

"아스카 말로는 마리 씨도 동의하셨다고 하셨는데..."

"맞아요. 동의는 했는데 불안감은 그대로죠."

"제게는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시는 이유는 역시..."

"맞아요. TS라서 그렇죠."
마리 씨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이를 입양하는데 어려움이 있으신가요?"

"정부 정책이 바뀌어서 그 부분에 관해서는 어려움이 없어요."

"그러면..."

"네. 제 자기 문제죠."
그녀는 나와 비슷한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 아스카가 내게 말했던 것과 같은 고민이었다.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까라는 고민 말이다.
특히나 나나 마리 씨는 TS로서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해 오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벨라 씨."
마리 씨는 내 손을 잡아주었다.

"저는 비지니스 바에서 미소를 파는 일을 했었어요."

"마리 씨는 항상 빛나는 분이었죠. 물론 그때 그 고충을 기억하지만요."
마티니를 좋아하던, 제임스 본드처럼 되고 싶어 했던 그녀였다.

"기억해 주시네요?"
마리 씨는 다소곳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물론이죠. 마리 씨와 첫 만남이었으니까요."

"특별한 칵테일 마티니."

나는 머쓱해서 대답대신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는 특별한 존재일까요?"

"너무 특이한 존재죠."
나는 그녀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이가 제 과거를 알고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아스카 말로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겠다고 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그래야 제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았거든요."
마리 씨는 침착하게 이야기하셨다.

"잘하셨어요."

"그리고 벨라 씨도 비슷한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스카가 다 이야기했군요."

"다이어리를 쓰신다면서요?"

"맞아요. 나중에 제 아이가 진실을 알길 바라요."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벨라 씨는 좋은 엄마가 될 거에요. 이건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 말은 마리 씨도 해당하는 거 아시죠?"

"고마워요 벨라 씨. 위로가 되었어요."

"생각 같아서는 여행을 다녀오라 추천해드리고 싶지만 이제 곧 성수기라 힘들 것 같네요."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으셨나요?"

"많은 것을 보고 배웠죠."
나는 내가 다녀온 곳들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무엇이 벨라 씨를 바꾸었나요?"

"여행이라 말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인 것 같아요. 정확하게는 메릴이죠."
나는 그를 생각하며 입에 미소를 지은 채 이야기를 했다.

"벨라 씨의 미소가 자연스러워진 것은 역시 메릴 씨 덕분이었군요."

"어색한 게 많이 줄었죠?"
나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메릴 씨와 닮아지신 것은 굳이 짚어드리지 않아도 되겠죠?"
마리 씨는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셨다.

"요즘 능글 맞다거나 너스레를 많이 떤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어요..."

"보기 좋네요."
마리 씨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스카는 왜 마리 씨를 닮지 않은걸까요?"

"그 귀여움이 매력이죠. 그리고... 사실 제가 그녀를 닮아가고 있어요."

"네?"

"표현하기 어렵지만요. 조금씩 한 발자국 씩 아스카와 가까워지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이제는 그녀가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죠."

"...아름다운 표현이네요. 아스카를 닮아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스카는 시적인 표현을 즐겨하니까요."
마리 씨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른 부분은 타나 씨와 샤롯테 씨에게 많이 배우고 있어요."

나는 파티 때마다 아스카와 마리 씨 그리고 타나 씨와 샤롯테 씨가 모여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종종 보았다.

"타나 씨가 고생하신다는 데요."

"아스카는 좋아하길래 알려드렸는데 말이죠."
마리 씨는 샤롯테 씨와 닮은 미소를 내게 보여 주셨다.

음...
솔직히 조금 무섭다.
내가 여자되어서 일까 아니면 예전에 아스카와 미리 씨와 함께 불장난을 친 적이 있어서 그런 걸까.

"벨라 씨도 참 귀엽네요."

"칭찬 고마워요."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벨라 씨."
마리 씨는 장난스럽게 내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하.하.하..."

"장난은 그만 둬야겠네요."
마리 씨는 얼굴에 드리운 어둠을 걷어 내고 밝은 표정으로 돌아오셨다.

"감사합니다..."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벨라 씨 고마워요."

"저는 마리 씨가 가진 고민에 관해 어떤 조언도 하지 못했는데요?"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은 해결만이 아니니까요."

나는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 주고 공감해주고 그리고 이해해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한 것들이 많았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벨라 씨라서 더 위로가 되었어요."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니까 고마워요."
나는 마리 씨의 진심어린 감사에 내가 더 감사한 기분이었다.

"벨라 씨는 술 없이도 사람을 위로할 줄 안다고 이야기해주셨는데 그 말이 맞네요."
마리 씨는 일어서는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나도 일어나서 그녀를 마주 보았다.

"술이 있었다면 더 효과가 좋았을까요?"

"음...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요."

"나중에 퇴근하고 바 래빗에 오시면 제가 마티니를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기대할게요."
마리 씨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둘의 대화는 아무런 해결도 그렇다고 진행이 된 것도 아니지만 나도 마리 씨도 그 짧은 대화에서 많은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 말이다.

마리 씨는 마감을 하기 위해 하우스키핑 사무실로 돌아가셨고 나도 슬슬 퇴근 준비를 하러 컨시어지 데스크의 로그북을 기록 하러 다시 컨시어지 데스크로 돌아왔다.
프론트 데스크와 컨시어지 데스크를 보고 있던 자비스는 내가 돌아온 것을 보고는 다시 프론트 데스크로 향했다.

"고마워 자비스."

"금방 왔네. 벨라."

마리 씨와의 대화가 짧아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잡아먹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슬슬 퇴근 시간인데 준비 안 해도 돼?"

"이제 함."
자비스도 퇴근 준비를 하려는 듯했다.

컨시어지 데스크에서 로그북에 인수인계 사항을 적고 야간 근무자를 기다렸다.
본사에서 지원 나온 직원분인데 간단한 인사하고는 인수인계 사항을 전달했다.

나는 그분에게 수고하라는 말하고 그분은 내게 고생하셨다고 이야기해주셨다.

내려와서 직원 탈의실에 도착하니 메이드 여사 분들이 샤워하고 계셨고 그 옆으로 마리 씨와 레베카가 보였다.

"여기야 벨라!"

"내 서랍장은 여긴 데?"
나는 내 서랍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갈아입고와."
베키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다시 베키와 마리 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리 씨와 친해진 거야?"

"응, 금세 친해졌지."
베키의 친화력은 놀라웠다.
거기다 러시아판, 정확하게는 북한판 아스카인 베키라 마리 씨도 금방 친해진 듯 보였다.

"맛있는 버팔로 윙 가게를 지배인 님에게 소개를 받았어. 마리 씨랑 같이 갈 생각인데 너도 갈래?"

"이반도 가는 거야?"

"물론이지. 메릴도 같이 가도 될까?"

"난 괜찮아."
베키는 마리 씨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도 괜찮아요. 아스카도 같이 가거든요."
마리 씨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나는 베키와 아스카가 만나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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