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데이다.”


 길명윤의 마른 얼굴이 날 내려다본다. 언뜻 보면 무표정하지만 길명윤의 턱이 살짝 떨리는 게 보인다.


 이럴 때면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거다. 주로 섹스할 때, 뭔가 희한한 체위를 요구할 때 저런 반응을 보였는데, 왜 발렌타인 데이를 말하면서 저러는 거지?


 그래서 말했다.


 “좆 빨아달라고?”


 “커, 흠, 흠흠. 미친년. 주변 사람 생각 안 하냐?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라고 말했는데 무슨 그런….”


 “명윤아, 사귄 지 벌써 일 년이다. 남자이기까지 했던 내가 좆 쥐고 있는 수컷의 마음 따위, 모를 리가 있겠니? 너 다양하게 하는 것보다 펠라 제일 좋아하잖아.”


 “아니… 하. 맞는 말이긴 한데, 그, 수컷이란 표현 좀 안 쓰면 안 되냐?”


 “너도 시발, 맨날 나한테 처박아댈 때마다 ‘암캐, 암캐!’ 소리 지르잖아.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음탕한 년. 그걸 또 다 기억하고 있네.”


 “지는.”


 길명윤의 얼굴이 빨갛다. 좋아. 오늘치 길명윤 놀리기 할당량은 이걸로 달성했다. 나는 녀석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조금 힘을 풀며 손등을 살살 쓰다듬으니 옆에 걷던 길명윤이 그제서야 말을 다시 잇는다.


 “발렌타인 데이는, 그, 여자가 남자한테 뭔가를 주는 날이잖아.”


 “응. 그렇지.”


 “지금 유솔, 넌. 누가 봐도 여자고 말이야.”


 “정체성에 문제가 좀 있지만… 응. 그렇지.”


 대체 뭔 헛소릴 하려고 이런 빌드업을? 내가 그런 눈초리로 올려다보자 길명윤이 어색한 얼굴로 말한다.


 “…그러니까 오늘 넌 나한테 뭔가를 줘야 한단 말이지.”


 “너 시발 내가 초콜릿 안 가져왔다고 이 지랄 하는 거냐? 내가 말했잖아. 만들던 거 망해서 내일 준다고.”


 내 손을 잡고 있는 길명윤이 묘하게 자기 몸에 무게를 싣는다. 그 무게를 따라가니 우리는 어느새,


 “야. 니 처음부터 여기 갈 생각이었지? 거봐, 결국 이 생각 뿐이었다니까? 발렌타인이니 뭐니 다 미끼였어.”


 “역시 내 좆을 꽉 잡고 있는 암캐답군. 뛰어난 통찰력이야.”


 방금까지 얼굴을 붉히던 말라깽이는 어디 가고 웬 늑대 한 마리가 내 손을 잡아 끌고 있더라. 난 끌려가면서 볼멘소리를 한다.


 “…나 끝난 지 얼마 안 됐다고.”


 “그러니까 찬스지.”


 “아직 아프단 말야. 너가 대자연의 고통을 알아? 응?”


 “내 마음이 더 아프다. 나이 사십 넘은 병원 원장이 내 앞에서 초콜릿 자랑하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는 그 마음, 넌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어?”


 “아니….”


 이렇게까지 말하니 할 말이 없네. 내가 졌다. 항복.


 그렇게 투닥거리면서도 우린 자연스럽게 옷을 벗고 있었다. 그래도 난 녀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브라를, 팬티를 벗는다. 섹스한 숫자가 늘어도 서로 너무 자연스러워지는 건 피해야 했다. 그게 내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였다. 섹스하면서 지혜란 말 하니 좀 그렇긴 하다만, 실제로 너무 서로의 몸을 당연시 여기게 되면 빨리 식기 마련이다. 난 길명윤과 결혼하고 싶었다. 천천히 식고 싶었다.


 “그래서, 발렌타인 특집으로 뭘 원하시는 거려나? 우리 남친 님께선.”


 우린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난 이불 속에서 길명윤의 맨가슴을 쿡쿡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했다. 조금 애교를 섞어 말한다.


 “응? 응? 뭘 원하시길래 그런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 걸까요? 응?”


 길명윤은 진짜 긴장한 거 같았다.


 처음 관계를 가질 때도 안 이랬는데, 딱딱한 돌하르방처럼 굳어서(좆 말고 몸뚱이 말이다) 멍하니 TV만 보고 있더라. 그러다가 돌연 고장난 기계처럼 삐걱삐걱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대뜸 내뱉었다.


 “파이즈리.”


 “…….”


 파, 파이즈리?


 “나는 원한다. 너의 가슴을. 파이즈리를 원하고 있다.”


 시, 시발. 그렇게 애니 주인공처럼 비장한 말투로 말하지 말라고.


 괜히 나까지 부끄러워진다. 뭘 굳어 있다 했더니, 지가 생각해도 좀 부끄러웠던 거겠지. 아무리 씹덕 새끼라 해도 길명윤은 좀 덜한 편이었으니까. 미소녀 사진 보여주는 건 가끔 했어도 파이즈리라니, 저런 소릴 쉽게 할 수 있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좀 도와주기로 했다.


 난 얼굴이 빨갛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며 길명윤에게 몸을 붙였다. 내 가슴이 길명윤의 따뜻하고 단단한 팔에 닿는게 느껴진다.


 “여기에 싸고 싶어?”


 “…….”


 “여기 사이에 넣고 싶냐고.”


 “…….”


 대답이 없다. 좀 귀엽네. 맨날 주도권을 쥐던 새끼가 이러는 모습이 귀여워 죽겠다.


 “벌써 세우고 있네? 진짜 진심이야?”


 “그렇다.”


 뭐 재입대했냐? 군인이야? 말투가 왜 이래? K-2 소총 대신 지 좆을 세우면서 이러는 게 퍽 웃기더라. 난 이불을 걷고 몸을 숙였다. 길명윤의 하반신을 덮고 있던 모텔 이불로 얼굴을, 상체를 밀어넣는다.


 답답한 이불 안, 어둠 속에서 내 두 가슴을 가져다 댄다. 녀석의 물건은 딱딱하다 못해 뜨거울 정도였다.


 “음.”


 문제가 있었다.


 이불 안이 어두컴컴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 거 말고, 그, 내 가슴이….


 “야.”


 “어, 어?”


 길명윤이 멍청하게 내려다본다. 난 이불 밖으로 얼굴만 쏙 내민 채 말하고 있었다.


 “미안.”


 “어? 뭐가?”


 길명윤은 저렇게 말하면서도 아쉬운 눈치다. 거절당헀다고 예상한 거겠지. 하지만, 음, 좀 다른데.


 “아니, 나도 해주고 싶은데 그….”


 “그?”


 “작아.”


 좀 더 몸을 밖으로 빼, 내 하얀 가슴을 내보인다. 길명윤의 팔을 꽉 쥐고 내 가슴을 쥐게 하면서 말한다.


 “봐. 이렇게 모아도 겨우 이 정도야. 아무래도 B컵 정도로 파이즈리는 역부족인 모양이다. 미안.”


 솔직히 존심 상했다.


 75B라는 게 엄청 큰 사이즈가 아니란 건 안다.


 단지 전체적으로 내 몸이 얄쌍했으니까 라인이 돋보인다는 거야, 그 정도 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었단 거지.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남친 판타지 하나 충족 못시켜준다는 게 퍽 아쉽더라.


 내가 남자였으니까 더 잘 안다. 각자 꿈에 그리는 페티쉬 하나 정돈 다들 갖고 있기 마련이잖아? 발렌타인 데이 팔아먹으면서 지껄일 정도니 길명윤은 파이즈리에 진심인 남자였을 거다.


 그런 남자, 파이즈리에 진심인 길명윤 씨가 날 본다. 어느새 눈동자는 활활 타고 있었다. 뭐? 타오른다고?


 “거기 싸기만 하면 된다.”


 “응?”


 뭔 소리래?


 “굳이 끼울 필요 없어. 가슴을 통한 성교도 섹스 체위만큼이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야. 잠깐만. 눈이 좀 무서워. 길명윤은 막 입대한 이등병처럼 비장하고 처절한 얼굴로 내게 명령한다.


 “누워라, 유솔.”


 “꺅!”


 길명윤이 내 어깨를 밀었다. 등에 닿는 침대가 출렁인다. 그렇게 날 복종한 개처럼 배를 까뒤집게 하더니 올라탄다. 내 가슴에 좆을 들이대더니 말한다.


 “입을 같이 쓰면 된다.”


 결국 펠라잖아 씹새끼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