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22세기, 인류의 마도 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히 빛날 수는 없었다. 길고 긴 전쟁의 끝에, 계속 빛나기 위해 벌였던 대전쟁에서 인류 문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빛나고는 소멸했다. 

 바다는 마르고 땅은 갈라져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듯하였다.

 하지만,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다!
 
 대전쟁으로 황폐화된 세계는 다시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로 변해버렸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남겨주십시오! 이 목숨은 당신에겐 필요 없지 않습니까?”

 “싫은걸? 햣하, 모조리 죽여라! 오물은 소독이다아아아아!”

 지금의 시대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 마냥,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빼앗고, 갈취하고, 수탈했다.

 “오오, 이것 봐! 물이다! 식량도 있군, 통조림인가?”

 가방을 뒤적거리던 여자는 죽은 남자가 소중하게 품고 있던 가방을 제멋대로 뒤지고는 좋을 대로 떠들어댔다. 한 남자가 이루어낸 삶의 결과가, 처음 보는 여자에게 모조리 빼앗겨진다. 가족을 지키려던 가장은 벌써 차가운 대지에 누웠으며, 그의 죽음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눈물이 흙에 스며들었다. 

 “응? 돈? 이런 멍청이 같으니. 이딴 것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나? 이젠 휴지만도 못한데 말이지!”
 
 “으으, 신은 죽었단 말인가! 어째서 저런 녀석들이 활개치고 내버려 두는 거야!”

 약자의 절규는 처절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힘이 곧 정의인 세상이기에.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에,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자들은 철저한 약자의 위치에 있었다. 마법의 힘 앞에 신체능력은 무의미했고, 지금의 시대는 대화와 타협이 아닌 폭력과 야만이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아앙? 신? 잘도 지껄여대는군. 이 멍청이가! 그딴 게 있을 리가 없잖아!”

 폭력단의 대장은 자신을 저주하는 남자를 주먹으로 계속해서 강타했다. 얼굴이 제법 반반한 남자는, 위대하신 분께 진상해야하니까, 얼굴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하게. 많은 남자를 바치면 천년제국에서 자신의 지위는 더욱 올라가리라.

 “아니, 신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폭력단의 두목이 남자를 구타하던 때, 멀리서 한 인영이 나타났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기에 자세한 생김새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체격이 작은 것이 남자 같지는 않았다.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니까 잘 먹지 못하고 자란 소년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네 녀석은 대체 뭐냐?”

 폭력단의 두목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자의 말에, 후드를 뒤집어쓴 자는 이렇게 답했다.

 “사신.”

 그 짧고 강렬한 단어에, 폭도들은 그저 비웃음을 흘려댈 뿐이었다. 두목은 모처럼 만난 정신병자를 보고 오랜만에 고기를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기말에 식인 따위는 흔히 일어나는 법이기에, 두목의 생각은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정상적이었다.

 그러나 두목의 생각이 실천으로 옮겨지기도 전에, 사신을 자칭하던 자가 손을 뻗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도 않아, 접근하던 폭력단 한 명의 몸이 내부에서부터 폭발했다.

 “뭐야!”

 두목이 다른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에, 사신이라 칭한 자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다른 단원들의 머리가 시시각각 터져 나왔다. 따뜻한 피와 뇌수가 차가운 땅을 덥히는 광경에, 두목은 벌벌 떨기 시작했다. 어느덧 남아있는 자는 자신뿐이었기에.

 “에, 헤헷. 마법사였습니까? 그렇다면 미리 말씀해주시면 좋았을 탠데요.”

 이런 세상에서 자존심만큼 쓸모없는 것도 찾기 힘들다. 두목은 생존을 위해 사신을 칭한 자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자비를 청했다. 두목이 고개를 숙이자, 자칭 사신은 후드를 벗었다. 후드를 벗자 보이는 얼굴은, 절세미녀를 칭하기에는 부족할지라도, 예쁘게 생겼다는 말을 대부분의 남성에게 들을 수 있을 법한, 그럭저럭 훌륭한 외모를 가진 차가운 인상의 여자였다.

 그녀가 냉정한 눈초리로 두목을 노려다보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키는 두목보다 작았지만, 두목은 무릎을 꿇고 있었기에 그녀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말해라. 이 남자들을 납치해서 어디로 데려가려고 했지?”

 그러고서는 다시 주먹을 움켜쥐려 하자, 두목은 머리가 터질까봐 황급히 대답했다.

 “위대하신 분께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위대하신 분이라니?”

 허튼 소리를 하면 죽이겠노라는 분위기였기에, 두목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모조리 떠벌리기 시작했다.

 “천년제국의 영애지요! 그 녀석은, 이 망해버린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정복 활동을 개시하고 있으며, 남색을 밝히기에 계속해서 미소년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의 생명력을 빨아먹는다는 소문까지 있죠. 그래서인지 아직도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그 녀석을 ‘악역 영애’라고 부릅니다!”

 “그 분이라고 하던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 녀석이라고 부르나?”

 두목에게 차가운 냉소가 쏘아졌지만, 두목은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멀리 있는 악역 영애 따위보다 눈 앞의 후드가 더 무서운 것이 자명한 이치 아니겠는가?

 “그렇군. 좋은 정보였다.”

 순간 두목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으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순식간에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럼 죽어라.”

 “아는 것은 다 말했잖아! 그런데, 나를 죽이……”

 두목은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머리가 터져 땅에 뉘이고 말았다. 그리고 여자는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고는 더러운 것을 봤다는 것 마냥 두목의 시체를 짓밟았다. 그러고 나서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다가갔다.

 “당신들에게 일어난 일은 유감입니다. 저 녀석들의 시체를 뒤지면, 스스로를 보호할 무기와 생존을 위한 식량정도는 챙길 수 있겠죠. 그럼 이만.”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런 강력한 마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희 같은 약자를 살려주시다니.”

 여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하지만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밝힐 만한 이름은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을 살려준 이유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그 발언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위험을 무릅썼다고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할지라도,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이유 따위는 필요 없는 법이죠.”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뒤돌아서는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여자가 너무 멀어지기 전에, 남자는 다시 여자에게 질문했다.

 “잠깐. 당신은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악역 영애를 쳐부수러 갑니다. 그 녀석이 살아있는 한, 사람들의 눈물과 비탄은 끊어지질 않겠죠.”

 남자는 여자가 떠날세라 황급히 자신의 짐을 챙기고는 여자에게 건냈다. 생명을 구해준 보은이라 말하며, 먼 길을 떠나가는데 부디 이것이라도 받아달라는 남자의 청을 여자는 거절했다. 그녀가 말하길, 안 그래도 살아남기 힘든 약자에게 무언가를 갈취할 만큼 썩어있지는 않다나. 

 그리고 그녀는 정의는 그 자체로 옳기 때문에 실천하는 것이며, 보답을 바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남자는 감동받아 눈물흘리며 그녀를 격려했다.

 “크흑, 감사합니다! 제발, 승리하세요!”

 그녀를 응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저런 약자들의 눈물이, 탄압받고 고통받는 자들의 비탄에 찬 목소리가, 자신을 이곳까지 오게 했노라고. 그리고 그들의 슬픔과 두려움을 닦아내, 사람들에게 미소를 되찾아 주는 것.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토록 구원을 바라는 세계이기에, 자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겠는가.


 환생하면서 얻은 마법소녀의 힘은, 이런 곳에 쓰라는 것이겠지.


 “기다려라, 악역 영애.

 구역질나는 악이여.

 내가, 너를 찾으러 간다.

 내가, 너를 찾으러 가겠다.”

 그렇게, 세기말 악역 영애와 주인공 양의 전설은 시작되었다.

 * * *

 악역 영애물을 본 다음에 북두의 권을 보고 잠깐 눈을 감았더니, 조금 전에 본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묘한 싱크로가 일어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