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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정도면 괜찮으려나. 

 

나는 가방을 챙긴채, 바라보고 있다. 가득 차 있는 가방. 이것저것 챙기긴 했다만 정작 필요할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돈 될만한걸 챙길걸 그랬나.

 

“아가씨 준비 다되셨죠?”

 

쾅-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건 다름 아닌 우르다. 금발 머릿결, 착 달라붙는 메이드복을 입은 그녀는 등 뒤에 자신보다 큰 가방을 메고 있다. 아버지는 이런 애를 데리고, 가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감시 겸 관리 감독으로, 우르를 붙인거나 다름 없었다. 아버지의 속내야 뻔하지. 우르를 데리고 가면, 내가 도망가지 않을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근데 꼭 너랑 같이 가야하는거야?” 

 

“당연하죠. 제가 있어야 아가씨를 지켜드리는거 아니겠어요?”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우르는 자기가 나를 지킬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못미더운 녀석이다. 메이드 견습이면 견습 답게, 다른 메이드들과 함께 수업이나 착실히 받을것이지.

 

“자 그럼 어서 챙겨서 가요. 아버지께 인사도 드리고 … ”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우르의 말을 귓가에 들리지도 않는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10억골드. 그러니까 3년만에 10억을 벌어오라는 이야기지. 기초 자본도 없는데 어찌 10억을 번단 말인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평범한 감자가 하나가 … 아니 하나에 얼마지. 서민들의 물가를 내가 알리 있나. 가문에서 모든걸 제공하는게, 서민들을 물가를 하나하나 알리 없다.

 

아무튼 3년으로는 무리다. 정말이지. 3년 안에 10억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그럼 아가씨 이제 가요.”

 

“버, 벌써?”

 

“아버지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그러셔야죠. 어서요.”

 

나는 우르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가 계신 서재로 향한다. 똑똑- 우르가 문을 두드린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들어오거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버지는 읽던 책을 놓고 나와 우르를 응시한다. 저 모든걸 꿰뚫어보는 눈이 무섭단 말이지.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앞에 선다.

 

“오늘부터 자력으로 살아나야 한다는건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말끝을 흐리며 아버지를 응시하자, 아버지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정도 기회를 주는것만으로도 감지덕지긴 하다. 내 유년시절이 어땠는가, 아버지의 관리하에, 철처하게 귀족 집안의 아가씨로 태어나지 않았던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면 이정도는 겪어야 하는것 아니겠느냐. 사회로 나가서 한번 경험을 …”

 

아버지의 연설에 멍해지고 만다. 이런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얼마나 지났을까, 대략 30분이 지났을 무렵. 아버지가 나를 향해 문서를 하나 건넨다. 낡아빠진 문서로 보이는데 이런걸 왜.

 

“자 어서 받거라.”

 

“예?”

 

“어서 노인네 손 떨어지는걸 보고 싶은거냐?”

 

나는 아버지가 건넨 문서를 받아서 펴본다. 낡은 문서를 펴보자, 이상한 문자가 쓰여져 있다.

 

어디서 본듯한 문서다. 

 

설마 이건.

 

영어? 갑자기 영어가 나온다고? 

 

20년 동안, 이세계에서 살아왔지만 문자를 모른다고 해서 불편한 점은 없었다. 기본적인 메이드나 평민들의 문자는 자동으로 한글로 번역됐으니 더더욱 그랬다. 한글로 자동으로 변역되는 있는 세상이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는 지금 문제에 직면하고 말았다.

 

영어로 된 문서가 나의 손에 쥐어지다니.

 

“하베 … 스트 … ”

 

나는 더듬더듬 영어를 읽어본다. 이럴줄 알았으면 영어 공부를 더 해둘껄. 고등학교 시절 영어 6등급의 힘이 이럴때 발휘하고 있었다. 가벼운 영어도 읽지 못하다니.

 

“공문서에는 늘 어려운 문자로 표기하니,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했거늘. 다시 줘보거라. 내가 읽어주도록 하마.”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문서를 아버지에게 건넨다. 

 

“하베스트 마을의 남쪽 외곽 공터 땅을 공작가 영애인, 아리스 그린할데에게 증여한다.”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든다. 하베스트 마을의 남쪽 외곽의 땅을 나에게 준다니, 

 

“네?”


“말 그대로다. 하베스트 마을의 작은 공터. 아버지로서 너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의라고 생각하거라.”

 

척- 아버지는 곧장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곤 나를 응시한다. 그렇다는 말은 아버지가 내게 땅을 주신다는 말이다. 다행이다. 그래도 아무 자본없이 보내진 않으실 모양인듯 하다. 나는 덥석, 땅 문서를 받아서 든다.

 

창문으로 고개를 응시하고 있는 아버지. 아버지는 의외로 자상하신 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의 땅문서와 메이드 견습생 우르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거다. 아마, 정말로.

 

*

 

“끄응 …”

 

아리사 폰 그린할데 아버지이자, 공작님인 카이저 폰 그란힐데. 꽤나 넓은 영토를 다스리고 있자만 늘 마음에 걸리는것이 있었다. 그건 누가 뭐라해도, 아리사다. 딸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음도 여리고, 아랫시종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조신한 성격인 아리사가 너무나 걱정이 된다.

 

요번 북부대공놈이 왔을때 단번에 쳐내는건데, 그 녀석과 아리사가 결혼이라니 절대 참을 수 없었다. 손에 뽀뽀를 했을때 당장이라도 쫒아내고 싶었지만 그럴 여건은 되지 않았다.

 

결혼은 절대 해선 안된다. 아니, 절대 할 수 없다. 그만의 철칙이 있었다. 카이저가 사랑하는 자신의 딸을 어디 시집을 보낼 수 있겠는가. 잠잠히 고민을 하던 카이저는 묘안을 생각해낸다.

 

사실상,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북부대공과의 제안. 자신의 딸과 내기를 하는것이었다. 자력으로 10억을 그 귀여운 아리사가 버는것이 목표로, 북부대공놈의 속셈에 넘어갔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묘책은 있었다.

 

재산 지원을 최대한 줄이라고 했으니, 메이드와 토지하나를 주는것으로 연막을 쳤다. 하지만 그 토지에는 숨겨진 내막이 있다. 아리사가 조금이라도 고민을 했더라면 부동산을 이용해 돈을 벌거라는 사실을 말이지.

 

공작가의 영애라면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을테지.

 

3년이 아니다. 분명 3개월만에 아리사는 10억골드를 들고, 이곳으로 돌아올거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르는 감시로 붙인것이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군.”

 

카이저는 바깥 창문을 바라본다. 아리사와, 우르가 가방을 멘채 저택을 빠져나가고 있다. 저 귀엽고 순수한 어린 여자아이가 뭘 한단 말인가. 분명 당찬 아이니니 뭐든 해낼거다. 분명 … 뭐든 해낼거라고.

 

카이저는 입술을 앙다문채, 그녀를 응시한다.

 

굳세어라 아리사. 뭐든 해내서 아버지를 기쁘게 만들어주는거다.

 

“여보! 이런곳에서 뭐하는거에요.”

 

공작가 부인, 카이저의 아내의 등장으로 카이저는 급하게 옷을 정리한다.

 

“아니, 책을 좀 보고 있었소만.”

 

“딸이 타지로 나가겠다는데 나와보지도 않고 …”

 

아내의 말에 카이저는 아무말 하지 못한다. 엄한 아버지를 연기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것이지. 카이저는 고개를 돌린채, 말을 잇는다.

 

“자기가 선택 한거니, 배웅같은건 필요없다. 난 딸을 그리 약하게 키우지 않았어.”

 

고개를 돌린 카이저의 단호한 어투였다. 

 

“네, 그러시겠죠. 그래도 챙길건 다 챙겨주신거죠?”

 

“무, 무슨! 그런 엄한말을!”

 

반박을 하는 카이저의 행동에, 아내는 천천히 자리를 옮긴다. 그때 뒤따라오던 하인이 급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공작님. 지금 잠입기사분이 오셨답니다.”

 

“그래?”

 

“예 밤낮을 달려, 중앙 왕성에서 오셨다고 …”

 

하인의 말에 카이저는 급한 마음에 뜀박질을 한다. 그가 왔다니, 잠입기사로 유명한 그 남자가 진짜 나타났다는 말인가. 카이저는 마음이 급할 수 밖에 없었다. 견습 메이드인 우르로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북부대공이 어떤 계략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상황. 그에 대비해서 우리도 비장의 조커카드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

 

“공작님 체통을 …”

 

“아, 아 마음이 급해져서 그만.”

 

가쁜 숨을 몰아쉬던 카이저는 응접실 문 앞에 선다. 흐트러진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숨을 내쉰다. 호흡이 중요하다. 기선제압과, 엘레강스한 어투. 기합을 준뒤, 하인이 열어주는 문에 맞춰 안으로 들어간다.

 

“아, 기사분 오셨습니까.”

 

온화한 말투와 함께 고개를 돌린다. 그의 시선이 향한곳에는 아무도 없다. 왜 아무도 없는거지.

 

카이저가 그리 생각할때 쯤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뺘!”


작은 단도를 몸에 차고 있는 어린 병아리의 모습. 머리위에 달린 이 버섯은 대체 뭐란 말인가. 옆에 있던 하인이 자리를 잡으며 통역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반갑습니다. 전 율리우스 라고 합니다. 왕실 소속 기사단으로써, 잠행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이게 기사라고?”

 

카이저의 눈이 휘둥그래 해진다. 병아리 기사라니, 듣도보도 못한 존재다. 정말 이런 병아리를 믿어도 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