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는 OO그룹 후계자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굴기의 대기업 가문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시아에게 식구들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엄격한 집안 어른들, 삭막한 가정환경, 권력에 눈이 먼 형제자매들이 시도때도 없이 서로를 견제해대는 통에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낸 시아는 형제들 중 가장 유약하다는 이유로 정략결혼용 장기말로 소비되었다.


시아는 XX그룹의 후계자 김틋붕에게 시집을 갔다 

그러나 끔찍한 불행에서 벗어난 줄만 알았던 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른 불행이었다.


"불임입니다."

"...네?"

"난소의 상태가 불량합니다, 안타깝지만 부인은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한지 2년이 지났음에도 아이를 가지지 못하자 산부인과를 찾은 시아에게 의사는 매정하게도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전했다.


정략결혼용 장기말로써도 쓸모없어진데다, 내심 아이를 간절히 바라던 시아는 밤낮없이 오열했다.

"괜찮아, 당신 탓이 아니야. 울지 마, 뚝."

"흐윽, 그...그치만..... 당신은 그룹 후계자인데....."

다정한 남편인 틋붕이는 애써 시아를 달랬지만 시댁의 분노까지는 막지 못했다.

결국 틋붕이와 시아의 이혼이 결정되어 시아는 그 지옥같은 집으로 돌아갈 운명에 처했다.














"당신 괜찮아요? 혼자서 할 수 있겠어요?"

"할 수 이서."

의자에 힘겹게 올라가던 틋붕이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것을 시아가 가까스로 붙잡았다.

"봐요, 이 의자는 이제 당신이 올라가기엔 너무 높다구요."

"이거 나."

"기다려 보세요, 의자에 앉혀드릴게요. 자-"

"혼자 올라갈끄야."

틋붕이는 다시 낑낑거리며 의자에 올라타려 애썼고 시아는 틋붕이가 혹여나 다시 떨어질까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1년새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이혼 직전, 갑작스런 피로감에 병원을 찾은 틋붕이는 유녀화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성인 남성의 신체를 급격하게 어린 여자아이로 바꿔버리는 희귀질환. 틋붕이는 순식간에 5살정도의 어린 여자아이로 변해버렸다.


그 즉시 틋붕이는 후계자 경쟁에서 탈락했다.

XX그룹은 경영 활동이 불가능해진 틋붕이에게 주기적으로 생활비를 주는 대신 틋붕이와 아예 손절을 했고, 틋붕이와 시아의 이혼은 자연스레 취소되었다. 틋붕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틋붕이와 시아에게는 전혀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내심 그룹의 계승에 부담감을 느끼던 틋붕이는 그 부담에서 완전히 해방되었고, 시아는 이혼을 피하는 동시에 그토록 원하던 자식을 가진 기분을 간접체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점심은 머야?"

"당신이 좋아하는 치즈밥이에요."

"치즈밥!"

유녀가 된 여파로 입맛이 어린애로 바뀌어버린 틋붕이가 아기자기한 숟가락으로 치즈밥을 한가득 펐다.


"그러다 체하겠어요."

"갠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