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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익숙한 사무실 풍경이 날 반겼다. 해야 할 일이 빼곡히 박혀 있는 파티션, 제본된 종이와 서류철이 쌓여있는 책상, 그리고 컴퓨터 모니터까지…


설마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내가 만들어낸 꿈이었을까… 


마치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것처럼 몽롱하게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뿌드득.


몸을 쭉 펴서 기지개도 하고, 손가락도 꺾어서 소리도 내보고, 눈알도 굴리며 쌓여있는 피로를 해결해보고자 했다. 물론 무의미했지만.


그렇게 한창 일을 하는데, 갑자기 내 책상 주위로 어둠이 깔리더니 주머니가 잔뜩 달린 검은 옷을 입고, 동물 귀가 달린 사람들이 와서는 나를 일으켜 세워서 질질 끌고 갔다.


“대체 무슨 혐의로 끌고 가는 건가요!”


“스파이 혐의다.”


끌려가는 와중에 누군가가 내 말에 차갑게 대답했다. 빨간 눈에 파란색 머리카락 그리고 주황빛이 도는 뿔…?


“스파이 혐의라뇨, 무슨 소리입니까!”


“우르수스에서 보낸 스파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시치미 떼지 말고 얌전히 따라오도록.”


“아니 제가 스파이일 리가 없잖아요! 아는 것도 없는데!”


절대로 끌려가기 싫다고 발버둥치자 그녀는 칼을 칼집째로 들더니 내 뒤통수를 갈겼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서서히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고 흐릿해졌다.


풀썩.




.

.

.



“히엑…”


땀에 젖은 환자복과 함께 나는 잠에서 깼다. 잠옷으로 입을 게 없어서 환자복을 입고 잤는데, 그거 때문에 이상한 생각을 한 것일까.


아직 통신 기기를 받지 못해서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창문 밖에는 어둠이 깔려있다. 24시간 동안 잠든 것이 아니라면 아마 한 5시나 6시 아닐까? 


숨 소리가 들려서 옆을 돌아보니 


스읍…후우…


반대쪽 침대에는 코를 골며 자는 오퍼레이터이자 룸메이트가 코를 골면서 기묘한 자세로 자고 있었다. 


팔 하나는 머리의 위쪽으로 올라가 있고, 하나는 허벅지 아래로 내려가 있고.


거기에 다리 하나는 아예 침대 밖으로 던져져 있었다. 저러다가 바닥으로 엎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다리를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잡아서 침대 안에 넣어줬다. 그러고 보면 다리가 꽤 부드럽네.


“흐아암…”


절로 하품이 나왔다. 그렇지만 야근 후에 이제 좀 자려고 하는데, 일 터졌다고 강제로 깨어났을 때의 불쾌함과는 다른 묘한 상쾌함도 함께했다. 젊어져서 그런가 보다. 


화장실로 가서 양치하려는데, 생각해보니까 나한테 칫솔 하나 없었다. 


어쩌지.


그냥 물로 가글이나 할까?


에이 그건 아니다 싶었다. 나중에 충치라도 생기면 가비알 선생이 친절하게 ‘마취’ 시켜서 치료해줄 확률이 높았으니까.


물론 그게 물리적 마취지만.


하는 수 없이 나중에 미안하다고 말하기로 하고, 칫솔이 어디 있을까 수납장을 열어서 확인하기로 했다. 


여자는 원래 욕실 용품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인지, 온갖 것들이 있었다. 샴푸, 린스, 바디워시 같은 것은 나도 알겠지만 스킨 로션에 알지도 못할 화장품들까지…


그렇지만 칫솔의 ㅊ도 보이진 않았다. 세숫대 에 있는 칫솔 통 그리고 칫솔 두 개만이 전부였다.


혼자 사는데 왜 칫솔이 두 개일까. 예비용?


칫솔을 뚫어지게 쳐다보니까 하나는 척 봐도 칫솔모가 닳아 있고, 하나는 멀쩡했다. 


음…


페리테일, 나중에 꼭 갚을게.




* * *



입이 좀 찜찜했었는데, 상쾌해졌다. 하지만 머릿속은 아까의 꿈으로 찜찜해졌다.


왜 하필 꿈에서 첸이 나온 것일까. 그리고 날 스파이 혐의로 끌고 간 걸까. 아무래도 로도스 아일랜드에 오자마자 바로 계약하게 돼서 괜한 걱정을 한 것일지도…


그리고 첸은 용문의 경찰이니까 날 끌고 가는 역할로 나왔겠지. 


“하아…”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 잡다한 걱정이 든 것이 분명하다. 그럼 일을 하다 보면 걱정도 없어지겠지?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진짜로 뭘 해야지…


정리가 안 될 때는 종이에 적어보라고 전생에서의 친구가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그러면 최소한 뭘 해야 할지 눈에 보인다고 했던가?


책상에 있는 종이 한 장과 펜을 빌려서 해야 할 일을 적었다.


어제 인사팀에서 건네줬던 신입 오퍼레이터용 안내책자를 바탕으로 정리했는데, 은근히 많긴 했다. 


체력 훈련, 전술 훈련, 아츠 훈련에 팀으로 움직이는 훈련도 있었다. 테라의 상식, 각국 정세, 구급법, 언어교육 등등…. 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수료해야 했다.


음, 그 외에도 사장인 아미야와 지휘관 역할을 하는 박사와의 상담… 어 잠깐 박사?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생각하진 못했지만, 박사가 로도스에 있다. 전생에서는 내가 박사였을 텐데, 이젠 오퍼레이터이고, 원래의 박사랑 만나는 것이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플레이어가 NPC가 되어서는 플레이어 포지션의 인물과 만나는 꼴이니까.


이것이야 말로 아이러니 아닐까? 피식 웃으면서 해야 할 일을 더 적어내렸다.


“생각보다 많네…”


“도와줄까?”


나는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펄쩍 뛰었는데, 흡사 고양이 같았다. 아 필라인 종족이지.


“ㄱ, 괜찮아!?”


“미, 미안. 너무 놀라서 그랬어.”


“놀라게 하려고 한 의도는 아니었는데, 나도 미안해.”


서로 머쓱해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그게, 내가 로도스에 온 지 하루 정도밖에 안 지났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정리하고 있었거든…”


“그, 그래?”


“응.”


“얼마 전 있었던 일로 좀 어수선해서 그럴 거야. 내가 알려줄게!”


표정이 잠깐 어두웠다가 다시 밝아졌다. 아무래도 졸려서 그런가보다.


페리테일과 나는 신입 오퍼레이터용 가이드북을 같이 보면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해나갔다. 


.

.

.


약 30분간의 질문과 답 그리고 정리를 통해서 뭘 해야 할지 약간은 감 잡았다. 


“고마워 페리테일.”


“뭘, 힘든 게 있으면 말… 잠깐.”


“왜?”


“혹시 옷이 없어?”


“어….”


생각해보니까 로도스 아일랜드 갑판에서 정신 차렸을 때, 분명히 뭔가 입긴 입었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깨어나 보니까 환자복으로 갈아입혀 져 있었다. 


그러면 내 원래 옷은 어디 갔지? 아무래도 의료부서에 가서 물어봐야겠다.


“입고 있었는데, 갈아 입혀진 것 같아. 깨어나보니까 이 옷이었거든.”


“그러면 주말에 쇼핑하자. 옷 사줄게!”


“엑”


남자로써 싫어하는 게 쇼핑인데! 그래도 호의는 거절하긴 힘들었다. 게다가 진짜로 외출복과 잠옷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


나는 알겠다면서 끄덕였다. 




* * *


옆사람이 침대에서 코골고 있으면 밤이 괴롭죠. 하지만 다들 미소녀니까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