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 : 타케유타카

통산 승수 4000승 이상, 현존하는 JRA 역대 최다 승리 및 승마수 기록. 더비 6승

87년 데뷔, 아버지는 잔디의 마술사라고 불리던 전설적인 기수

아버지는 경마협회 전 회장, 데뷔당히 홋카이도 경마협회 중진

백부는 목장주


그외의 이야기는 슈퍼크릭의 이야기를 참조

https://arca.live/b/umamusume/53523939




타케가 한번이라도 타본 적 있는 말딸들




에비나 마사요시 기수

87년 데뷔로 타케와 동기. 12년에 7번째로 JRA 2000승을 달성한 관동의 톱기수

21년 조교사 시험에 합격하여 현재는 조교사 근무하다가 22년 마굿간을 개업.


그의 최고 실적은 해외원정으로 95년 후지야마켄잔에 승마하여 홍콩에서 해외중상 첫승을 달성

98년에는 엘 콘도르 파사에 마토바 기수 대신 주전기수로 파트너가 되어서 해외 경주마들을 줄줄이 쓰러트리며 개선문상 2착을 거머쥐었다.

00년에는 미국으로 장기원정

10~11년에는 나카야마 페스타에 승마하여 엘콘도르파사와 같이 개선문에 참전. 또다시 아쉽게도 2착에 그쳤다


에비나 모임으로 해당 그룹을 모인다면 어떨거 같냐는 주제에서 인터넷 쓰레드에서는

"개성파 모임"

"연애의 편린도 느끼지 못하는 생각보다 성실한 아이들의 모임"

"잔소리하는 며느리"


"엘! 주위를 보고 달리세요!

카페! 들어오는 타이밍이 늦습니다!

페스타! 뭐든지 내기로 승부하지 마세요!"


"메뉴얼을 따르는 고지식한 사람이지만 엘이 선물한 치타 마스크는 착용할 것 같은 사람"





오카베 유키오 기수


67년 데뷔한 백전노장

미국쪽 경마에 감화되어 [경주마 우선주의] 를 비롯한 이념기나 기술을 일본에 도입

특정 마굿간이나 마주에게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수 있는 프리랜서 기수의 기틀을 마련했다.

07년까지는 최다승 기록자 (2943승)


기수클럽회장으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경마 평론가의 활동중

조련사의 길도 있었지만 인간관계가 중시되는 만큼 자신에게는 맞는 직업이 아니다라면서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프리랜서 기수라는 틀을 마련하는 한편, 기수와 마주가 완전한 상하관계(고용관계)에 두는 것 또한 싫어했던걸로 보인다.

비와 하야히데의 스토리 (https://arca.live/b/umamusume/54019856) 에서도 드러나듯이

일본 어르신들 특유의 허례허식이 그렇듯 소개나 보증인, 그리고 긴 시간의 교류를 중시하는 모습은 이러한 점을 반영

단순히 틀딱짓이 아니냐고 할수도 있지만 미국 원정도 다녀오고 교류도 활발했던만큼 단순히 미국의 풍습을 따르고 싶어했을가능성이 높을듯


우마무스메로 치면 테이오. 특히 2기의 인터뷰에서

테이오 : " 땅끝까지라도 달려나갈수 있는 말" 이라고 말한 것이 오카베 기수

젊은 혈기의 타케는 이에 질세라 "맥퀸은 하늘까지 날아오르는 말" 이라고 받아쳤는데 짬밥차이를 생각하면 엄청난 짓이긴 했음....



요코야마 노리히로

86년 데뷔


https://arca.live/b/umamusume/53598073

요코야마 기수와 메지로 라이언에 관한 이야기


이후 라이언에게 많은 것을 배운 요코야마 기수는 어엿한 기수로써 성장


첫 G1은 88년 사츠키상이었지만 진로방해로 실격, 이때는 마이넬 후릿세에 타고있던 타케도 같이 진로방해로 실격

이례적인 복수 실격 대회로 기록되어있다. 당시엔 현재의 강착제도가 제대로 정립되어있지않았고, 말이 없더라도 사행이 인정된다면 진로방해로 실격되는 경우가 있었기때문에 벌어진 일


90년 엘리자베스 여왕배에서는 겨우 G1 첫승 복구에 성공했지만 그 기쁨에 골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주먹을 불끈쥐면서 세레머니를 했고

이것이 불량하다고 판단되어 패널티를 받게 된다.


라이언때도 그렇지만 이래저래 타이밍이 안좋거나 흐름이 안따라주는 기수...

하필 1년 후의 87년에는 에비나 기수나 타케 기수 등 보기 드문 천재들이 다수 등장했기에 성격도 네거티브하게 변하기 쉬운듯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팬들의 응원과 관계자의 만류로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그래도 기수끼리의 관계 자체는 나쁘지 않으며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것이 드문 인물이었고 경마 잡지에서도 드물게 나온다 싶을정도로 관심받는 것은 싫어하는 성격

장애물 승마도 면허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 반납하였다.


요코야마 기수가 큰소리를 치면 진다라는 징크스가 있다.


자동차 면허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01년에 JRA에서 개최했던 GO! JRA 기수 캠페인에서 타고다니는 승용차란에 "세이운 스카이" 라고 기재했다. 트레센 근처에서 생활하며 자전거 통근. 13년에는 자동차 면허를 드디어 취득했다.


말들의 기질로 보면 기수 따라서 시대든 운빨이든 흐름이 제대로 안 따라주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그 실력만큼은 확실한 녀석들







이케조에 켄이치 기수(좌상단)

약칭 IKZE


98년 첫 승마. 타케 유타카를 동경하여 기수과정에 들어온 기수

중상에 참가한 89승 중 G1이 26승, 그중에서도 타카라즈카와 아리마기념에서 7승을 올렸기에 그랑프리의 남자라고도 불린다.

jra 기수열전 포스터의 캐치카피는 "너의 화려한 어퍼컷 세레머니를 보여줘" 이다.


개인적으로 믿고있는 럭키컬러는 빨강. 조련이나 승마때에는 양말과 모자띠는 빨강색을 착용한다


05~06년 연속으로 낙마하는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 쇄골골절 및 의식불명이었다. 그럼에도 돌아와서 말을 타는 것을 보면 정말로 말을 사랑하는 남자


22년 발렌타인데이 특집 프로에서 초콜릿을 주고싶은 기수 랭킹으로 57표 1위에 올랐다.

최근 이케조에 기수가 우마무스메의 스윕토쇼를 플레이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 되었다는듯?


말들은 사랑하지만 말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기수...


[성검] 듀란달

[마녀] 스윕토쇼

[폭군] 오르페브르


를 비롯해서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고 버티는건 기본, 물고, 내던지고

그래도 말들의 각각 실력은 확실하기때문에 IKZE 가 골에 들어갈때까지 고삐를 잡고 있으면 승리하는 이상한 경주가 시작된다.








코지마 후토시 기수(우상단)

66년 데뷔 젊은시절부터 사쿠라 관명의 경주마를 타온 주전기수

96년 은퇴까지 G1 10승을 비롯하여 중상 84승, 통산 1024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참전한 경주수는 8000경주로 안정적인 실력이 아닌편. 그러나 G1급의 대무대가 되면 그 본심이 발휘되기도 해서 표면적인 실적 이상으로 평가가 되는 기수이기도 하다.


폼이 안정되어 있기때문에 굉장히 멋있게 승마를 하는 기수로 인상이 깊게 남지만

동시에 우승후보인 인기말에 타도 사소한 실수가 많아 참패를 하는경우도 많기에 "멋지게 패배하는 기수" 라는 혹평이나 욕설도 많이 들은 기수


공사에 있어서도 스스로도 인정할만큼 레이스&사생활 양쪽에 있어서 꽤나 불량... 거진 협객(야쿠자)의 수준이 아닐까하는 소리도 들렸다고들 한다.

젊은 시절에서 기수로써 성공한 모습이나 얕보이기 싶지 않았던 모습이 폭주하는 느낌의 것

그러나 조련사로 있어서는 이런 모습을 씻어내고 검소하고 청렴히 살고있다는 듯


사쿠라관명과 관련된 만큼 전연식과 친분이 깊었고 옆에서 보기에 그 관계는 부자이상이라고 평가될정도였다.

전연식은 죽을둥말둥할때도 코지마 기수의 순탄찮은 성적을 걱정했을 정도였으며, "내가 조선인인것으로 인해서 JRA와 너의 사이가 삐걱이는 거라면 귀화할 생각까지 있다" 라면서 각별히 생각했다는듯


스모의 팬이며 이따금 스모 관련 미디어에서 논평 게스트로 참석할만큼 친분이 있다.

사쿠라 호쿠토 오와 사쿠라 치요노 오는 각각 스모협회회장 호쿠토우미, 치요노오는 58대 요코츠나 치요노후지 미츠쿠에서 따온것이다.





카와치 히로시 기수

74년 데뷔하여 간사이 신인상을 수상. 80년에는 연간 최다승리기수에 올랐으며 아그네스 일족 및 메지로 라모느를 비롯한 다양한 기록에 참전한 기수

통산성적은 14940전 2111승, GI 22승 중상 134승

은퇴당시까지 JRA 사상 2위의 기록이었다


장인적인 느낌이 풀풀 넘치는 기수로 동료들에게서도 그 모습이 높이 평가되었다.

후배가 되는 타케기수도 "자신이 억누르지 못할것 같은 말을 만난다면 카와치 선배의 폼을 떠올린다" 면서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모았다.


평판만 모아보면 "쓸데없는 움직임을 일절 하지 않는 기수", "일본제일의 아름다움" 이라면서 평가되고 있다.

성적이 좋은 각질은 선입과 추입. 선배였던 쿠니히코 기수가 선행을 하고 있다면 자신이 선행으로 같이 따라해봤자 활로는 없다. 그러므로 뒤에서 바짝 쫓는 전법을 구사했다 라고 말했으며 특히 메지로 라모느, 다이이치 루비, 니시노 플라워 같은 추격이 날카로운 타입의 말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이유로 선입과 추입은 필요할때까지 그 힘을 팽팽하게 모았다가 한번에 발휘해야하는데 암말의 섬세함이 여기서 발휘된다. 이들은 한번이라도 그 팽팽함이 풀리면 바로 무너지기때문에 조정하는 맛이 있다. 그런 장점을 살릴수 있었기에 [암말의 카와치] 라는 별명을 얻게되었지만 그걸 불명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라고 말했다.


기승을 할때에는 페어플레이를 존중. "다른 사람이 납득할수 있을만큼의 승마를 하고 싶었다."

"졌다면 어쩔수 없지"  라는 단순한 게 아니라 "이만큼의 경주를 쏟아냈는데도 져버렸다면 어쩔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경주를 하고 싶었다 라고 평했다.




마토바 히토시(우하단)

75년 데뷔하여 89년 닥터 스퍼트로 사츠키상을 제압

이후 90년대에 수많은 G1 경주를 얻어낸 명기수


특히 라이스샤워와 그래스원더와의 명콤비는 시대를 넘어 회자되며 특별한 기록이 걸려있는 말을 번번히 제압하는 것으로 붙은 별칭은 [히트맨]

통상성적은 12309전, 1440승으로 G1 13승을 포함 중상 68승으로 01년 은퇴하였다.


그 재능은 선배들도 눈여겨봤으며 레이스에 들어가면 유연성있게 대처하며 채찍의 사용처를 정확하게 꿰뚫는다며 상기했던 오카베기수와 시바타 기수(위닝티켓의 기수) 또한 "내가 저때에도 저만한 능력은 없었다" 라면서 놀라워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G1이 없는 기수로 평가되었다.


그 성적은 전체로 봤을때 굉장히 특출난게 없는 평범한 성적이라고도 말할수 있지만 데뷔때부터 은퇴까지 이르기까지 마토바 기수만큼 그 역량이 일정한 기수는 보기 드물며 팬들의 신뢰도도 두터운 인물이었다.


라이스샤워와 그래스원더로 유명하지만 

카네미카사의 나카야마기념 3연패 저지,

에이티토쇼의 나카야마기념 3연패 저지

댄스파트너의 엘리자베스 2연패 저지

안도 카츠미 기수의 첫 지방경마 출신의 G1 우승 저지 등등의 기록도 있다


"경주와 승부사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을뿐 악역도 무엇도 없다" 라면서 라이스샤워의 프레임 씌우기에는 불쾌감을 표명

작가였던 아키히코의 경우 "성실한 인상" 이면서도 제대로 "냉혹무비한 히트맨" 이라면서 평했다

그러나 그 원동력은 성실한 기교


마토바기수의 유명한 언급은 아래


"내가 이긴 게 아니라 말이 이겨준 것이다.

나만이 이긴 게 아니라 말과 관계된 모두가 이기게 해준 것이다.

그래서 말위에서 흥분하거나 멋있는 척할 필요는 없다. 무사히 경주를 끝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골을 먼저 통과하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무사히 말을 멈추고 아무일도 없이 마방에 들어오는 순간에서야 레이스가 끝난것이다" 


04년 데뷔한 카와다 기수는 마토바 기수의 강연에 감동받아 1착의 기뿐 순간에도 되도록 세레머니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인터뷰했다

이토 조교사는 레이스가 끝나면 반드시 마방에 찾아와서 말에게 부상은 없는지, 컨디션에 변화는 없는지 하나하나 확인했던 기수라고 했으며

"(레이스를 끝낸 말이 아무일도 없다라는건) 그건 도저히 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나만 봐도 모두를 파악할수 있다 그렇지만 구관이 명관이다라고 곧잘 평가되는 경마판에서 제대로된 훈육을 받은 기수" 라고 평했다.


매사에 진지하고, 거짓말도 안하며, 농담을 못하고, 공사구분이 확실하며, 모든 흐름이 깔끔하고 순리에 맞게 진행되어야 도리에 맞다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그래스원더의 면모는 여기에 반영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 

96년 데뷔. 87년 이래 타케 유타카를 따라잡은신인 50승을 달성

12월에는 해외원정에 나가 첫 승마실적을 남겼다.(9착에 그치긴했지만)


97년 실크피닉스에 승마하여 중상에서 첫 승리를 얻었고 파죽지세를 이어가나 싶었지만 98년 킹헤일로에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폭주하여 침몰한 흑역사도 있다.


지금에서는 중앙을 대표하는 기수중 한명이지만 데뷔당시에는 기수로써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컸던 것도 있지만 기교면에서 상당히 불안했고 정신적으로 서툰 부분 등등 여러모로 킹헤일로랑 비슷한 면이 있다.


"열심히 상반신은 뭔가 해보려고 하지만 하반신은 여전히 굳어있어서 노력하는 것으로 끝난다" 라며 지적했다

"(프로답지않고) 연수생 같은 상태"

"순진하게 말을 타고 있다"

"승리에 집착하지 않은 승마"


라는 등의 테크닉적인 문제에서는 여전히 말이 나오고 있지만 사람됨됨이는 유쾌하고 나름대로의 분위기 메이크를 하는등 자기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캐릭터 프로듀스'가 뛰어난 인물

실적에 있어서도 우회전에 약한 등 그랑프리 성적이 약하긴 해도 지오글리프, 카페파라오 등등 전체적인 중상에서 꾸준하게 우승하고 있어 나름의 팬도 있는 편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며 우마무스메에 관해서도 언급하며 고증이 잘된 게임이라고 칭찬하였다.




와다 류지(우상단)


96년 데뷔. 99년 오페라오를 통해서 00년까지 역사적인 G1 8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https://arca.live/b/umamusume/53250008

오페라오의 과장된 면모는 와다기수가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고 코스프레를 즐기는 모습에서 비롯된것




테무로와 르메르는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