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 원본 https://www.pixiv.net/artworks/89881060




갑자기 눈 앞의 상황이 바뀌었을때는 놀랐다.


눈을 한 번 깜빡이자 평소에 가던 쇼핑몰에 있었으니까.


다만 평소와 달리 보드카나 트레이너가 없다는 점에서 위화감이 크게 느껴졌다.


분명 조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흐음... 모르겠네.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평소에 쓰던 다이어리를 꺼내들었다.


처음에만 해도 1등을 하기 위한 훈련 계획과 레이스 일정이 빽빽하게 적혀있던 다이어리는 끝으로 갈수록 트레이너의 1등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할 지가 적혀지기 시작했었지...


어라? 그런데 이 다이어리, 이렇게 깨끗했나?


어어? 내가 적었던 3년간의 기록, 그 기록들이 다 어디로 간거지?


아! 꿈이라서 내가 3년 전의 과거를 체험하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때의 트레이너를 만나서 튕기지 말고 그대로 애정표현을 해준다면...



***



[어머니, 아들은 드디어 내일, 담당 우마무스메를 정할 선발 레이스 참관을 하게 됩니다.

중학생 시절 경마장에서 봤던 우마무스메의 매력에 빠져 트레이너의 길을 가고자 할 때 묵묵히 지원해주신 아버지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마무스메 트레이닝 학과에서 있던 4년이라는 기간이...]


[삐익... 띵동~]


뭐지? 오랜만에 장문으로 부모님에게 안부메세지를 쓰고 있는데 난데없이 도어락 인증 실패 소리와 함께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 시킨것도 없는데 뭘까?


아마 옆단지에 있는 장난꾸러기 벨튀범 우마무스메 꼬맹이인가보지 뭐.


[...멀게만 느껴지지만 드디어 저도 어엿한 신입 트레이너로써...]


[띵동~ 띵동띵동띵동~]


"아니, 대체 누구야?"


벨튀범 꼬맹이가 이렇게 누른적이 없는데 대체 무슨일이지?


일단 이상사태라고 생각되어 카카오톡으로 쓰고있던 안부글은 잠시 제쳐두고 스마트폰을 쇼파 위에 대충 던져둔 뒤, 인터폰으로 밖을 슬쩍 확인하며 외부 마이크를 켜두자 처음보는 우마무스메가 집 앞에서 계속 서성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으으... 트레이너는 집에 없는건가? 그보다 트레이너 집 비밀번호가 왜 어머님 생신이 아닌거지?]


오프숄더에 치마를 입은, 길다란 갈색의 트윈테일과 머리에 쓴 티아라가 잘 어울리며 입가에는 약간의 송곳니가 귀엽게 나 있고 가슴이 묘하게 큰 우마무스메 한 명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인터폰의 스피커를 통해 들리고 있었다.


"뭐지? 층을 헷갈린 이웃인가?"


[띠로링!]


그렇게 입 밖으로 말을 내놓는 순간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역시! 이때는 트레이너의 아버님 생신이 비밀번호구나!]


그와 동시에 철컥! 하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 방향을 보니 좀 전에 인터폰에서 보였던 처음보는 우마무스메가 현관에서 뭔가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더니 나를 보고서는 씨익 웃고는 그대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트레이너어어! 응? 뭐야? 우리사이에 갑자기 왜 이러는거야?"


순간 소름이 돋아 현관문 앞의 유리 미닫이문을 닫아 돌진을 막자 급제동을 한 침입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싱긋 웃더니 유리문에 손을 뻗었다.


"당신 누구야! 왜 남의 집에 불법침입을 하고서 친한척을 하는건데! 이거 강화유리야!"


하지만 상대는 우마무스메, 인간과 피지컬 차이가 월등히 나는 그녀는 당연하다는듯이 유리문을 천천히, 세게 열었다가는 내 손이 찍힌다는걸 생각한 것 처럼 열기 시작했다.


"흐으음... 역시 나만 갑자기 과거로 온건가? 그렇다면... 트레이너는 지금 솔로인거지?"


침입자는 뭔가 살짝 풀이 죽은 느낌이더니 갑자기 눈에 열의가 보일 정도로 활기차진 그녀는 문을 열고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트레이너의 1등이 되는거겠네?"


혓바닥을 낼름 거리고 입술을 핥으며 오는 그녀는 이상한 위압감을 보여 그녀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나는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석까지 몰리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폰 근처로 갔어야 신고라도 할텐데! 갑자기 모르는 우마무스메가 내 집 안에 멋대로 들어와서 우마뾰이를 하려고 하는 분위기라니!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정조역전 세계라도 떨어졌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택침입은 엄연한 범죄잖아!


"뭐... 뭐야? 너는 누구길래 그러는거야? 여긴 내 집이라고!"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침입자는 오히려 더 기쁘다는 듯, 나를 향해 계속 다가왔다.


"후후, 트레이너... 귀여워라... 이 때의 트레이너는 이렇게나 귀여웠구나? 그렇다면 이대로 트레이너의 1번이 될 수 있는거지?"


완전히 구석까지 몰려진 나는 달뜬 숨을 내쉬며 다가오는 그녀가 하는 말을 이해할 겨를도 없었다.


아무리 이런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우마무스메라고 하더라도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잖아! 나는 이렇게 우마뾰이 당하고 싶지 않아!


그녀의 붉은 고양이 같은 눈이 내 몸을 구석구석, 먹잇감을 살피듯 한 모습에 그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외쳤다.


"아... 안되요! 싫어요! 하지마세요!"


하지만 그 말은 역효과였는지 이 미쳐버린 우마무스메의 숨결이 얼굴에 닿는 수준까지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마법사의 길에 살짝 발끝만 담글 뻔 했던 아들은 남성 위주의 우마무스메 트레이너 학과에서 여친 한번 사귀어보지 못해 나이=여친없음인 상태로 갑자기 생전 처음보는 우마무스메에게 동정을 빼앗기게...


[띵동~]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뜬금없는 벨소리와 같이 아직도 마이크가 켜져있는 인터폰에서 제 3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트레이너? 혹시 안에 있어? 지금은 키카드가 없으니 트레이너가 열어줘야 하겠는데?]


그 소리에 그녀의 오프숄더 상의와 나의 티셔츠 하나를 경계로 그 커다란 가슴을 내 가슴팍에 밀착시키고 있던 우마무스메가 흠칫했다.


그런 모습에 제 3자의 목소리가 생전 처음듣는 목소리에다 나를 알고있다는 이상사태임에도 지금 이 상황을 타파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된 나는 소리쳤다.


"살려줘요! 모르는 사람이 와서 저를 우마뾰이 하려고 해요!"


[뭐? 트레이너! 지금 당장 들어갈게!]


그와 동시에 끼익! 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쾅! 하는 소리가 들리고서는 제 3자가 내 집에 난입했다.


"에엑? 스칼렛? 너는 왜 여기에 있는거야?"


제 3자도 우마무스메였다.


귀에 있는 금속고리와 앞머리와 뒷머리 끝의 흰색 부분이 특징적인, 짙은 밤색의 짧은 포니테일을 한 우마무스메의 외침에 내 앞에서 육탄돌격을 하던 우마무스메는 나를 갑자기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고는 현관문으로 대시했다.


"저리 비켜 보드카! 아무래도 너도 과거로 온 것 같지만 트레이너의 1번은 바로 나라고!"


그 말에 제 3자로 들어온 우마무스메는 강화유리 미닫이문을 닫아 경로를 막아버렸다.


덕분에 나를 안고있던 우마무스메는 급정거, 나는 땅에 발을 붙일 수 있게 되었지만...


"뭐? 과거? 너도였어? 그렇다고 해도 트레이너는 넘겨줄 수 없어! 나는 트레이너와 같이... 흡!"


그렇게 말한 제 3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코피가 살짝 날뻔 했는지 손등으로 코를 살짝 훑어내고는 내 왼팔을 잡고 당겼다.


"흥! 나에게 3번이나 졌던 보드카에게 그런 말은 듣고싶지 않거든!"


묘하게 라이벌 의식이 있는 것 같은 침입자는 가슴을 이용해 내 오른팔을 포근하게 끌어안고는 당겼다.


"마지막으로 텐노상 가을에서 졌으면 그걸로 끝이지! 트레이너도 지금 너 때문에 난처하잖아! 꼴사납다고!"


"그럴리가! 트레이너는 나를 항상 1번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런 트레이너를 난처하게 만드는건 너잖아!"


지금 그 둘 모두 떄문에 난처합니다. 특히 양쪽 어깨가 빠질 것 같습니다.


이대로는 내일 있을 선발 레이스 관람은 커녕 병원으로 갈 것 같은 느낌에 외쳤다.


"너희 둘 다 누구냐고오오오오!"



***



젠장! 과거로 왔다고 알아채는게 너무 늦었잖아!


멋지지 않더라도, 꼴사납더라도, 어떻게든 트레이너의 옆에 있고 싶다고 했었던 나는 시작부터 뭔가 대차게 말아먹었다.


트레이너의 집에 가보니 스칼렛 녀석이 먼저 들어와 있었다.


스칼렛 녀석은 미래에 트레이너의 부모님과 몇 번 슬쩍 만나서 트레이너의 아파트 집 비밀번호를 알아냈지만 나는 비상시를 대비한 키카드만 받았었다고!


그런데 트레이너를 만나기 전이라 키카드는 없고, 트레이너의 비명이 들려 와서 급한 마음에 문부터 부숴서 들어갔더니 결국 경비에게 끌려나가고...


문제는 트레이너가 우리 둘을 전혀 모르는 눈치라는 것인데... 아무래도 나와 스칼렛 둘만 과거에 떨어진 것 같단 말이지.


과거에 온 미래인이라니, 엄청 멋있잖아! 라고 생각을 했지만 트레이너와의 우정도가 0에서 시작하는 이 상황이 상당히 답답하다.


처음 트레이너를 만났을 때에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나와 트레이너, 스칼렛은 서로 당연하게 친하게 지냈는걸...


물론 스칼렛이 트레이너와 약혼을 하려고 계획을 하기에 나도 아빠에게 한 번 트레이너를 남편감으로 만나봐 달라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전에 봤었던 순정만화 캐릭터 만큼 사랑싸움을...


... 으아아! 꼴사나워! 내가 왜이리 소녀틱한 생각을 하는건데! 이건 다 트레이너 때문이야! 그 트레이너가...


...


그래, 이렇게 새로운 인연으로 만난 트레이너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서든 진척시켜서 후회하지 않는 미래를 쟁취하겠어! 좋아! 멋지잖아 이거!


그런데 트레이너와의 첫 인상이 그런식이라 이거 괜찮은걸까? 이게 다 스칼렛이 잘못한 거긴 하지만 나도 꽤 꼴사납게 퇴장했으니...


일단 트레이너의 담당 우마무스메가 되는 것이 최우선일테니 여차하면 스칼렛과 임시동맹이라도 맺어야 하는게 아닐까?


과거로 오기 전에 스칼렛과 나는 나름 죽이 잘 맞았었으니 이번에도 필요하자면 손을 잡는게 좋을지도?



***



어제 우마무스메 침입자와 제 3자의 난입 사건에 대해 이 근방의 우마무스메에 대해서 가장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상담을 받기로 했다.


어제 그 둘, 성인이 아니라고 짧게 계도조치만 해서 보내줬다는 경비의 말에 상황을 좀 더 확실하게 알아야 할 필요를 느꼈으니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타즈나씨, 이 둘 분명 아직 선발 레이스에 나가지도 않은거 확실한건가요?"


"네, 그럼요. 둘 모두 아직 중등부인걸요?"


"중등부요...? 토카이 테이오나 마야노 탑건과 같은 중등부요? 아무리 생각해도 발육수준이..."


하지만, 트레센 학원 비서인 하야카와 타즈나씨에게 어제 있던 일을 이야기 해보니 오히려 더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타즈나씨, 이 둘 분명 아직 선발 레이스에 나가지도 않은거 확실한건가요?"


"네, 그럼요. 둘 모두 아직 중등부인걸요?"


"중등부요...? 토카이 테이오나 마야노 탑건과 같은 중등부요? 아무리 생각해도 발육수준이..."


트레센 학원 비서인 하야카와 타즈나씨에게 어제 있던 일을 이야기 해보니 오히려 더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다.


보드카라고 불렸던 쪽도 키가 못해도 고등부 수준이었고, 스칼렛이라고 불린 쪽은 그냥 성인이라고 해도 상관 없을 수준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트레이너씨가 말한 둘은 다이와 스칼렛이랑 보드카인걸요? 둘 모두 중등부에 오늘 오후 선발 레이스가 예정되어 있어요."


"네? 오늘 오후 선발 레이스요? 혹시 제가 참관하는 그 레이스가 맞나요?"


"네, 그 레이스에요."


뭘까, 이건 운명이라고 해야하나? 이 둘이 딱 내가 첫 관전하는 선발 레이스에 나오다니...


"아무리 그래도 미래에서 왔다고 하는 정신이 이상한 우마무스메를 담당하는 일은..."


내 말에 묘하게 타즈나씨의 눈동자가 이리 저리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뭔가 숨기고 있는건가?


"아하하... 둘 모두 착실한 아이들이에요. 실력도 출중하니까 담당이 되어주시는 것이 운명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그 둘의 성적이 좋다보니 좋은말을 해 주려고 생각하던 중이었나보다.


"만약에 한다고 해도 신입 트레이너가 복수의 우마무스메를 담당할리는 없..."


말을 하면서 슬쩍 창문 밖을 내다보니 쉬는시간인지 나와있는 우마무스메 중, 어제 내 집에 침입한 침입자와 제 3자가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며 웃었다.


그 직후, 그 모습을 본 서로가 으르렁대는 모습에 어제의 난장판이 오버랩 되었다.


그 때 현관문 파손으로 확인차 왔던 경비가 없었다면 나는 트레/이너가 되었지 않을까?


"저나 아키카와 이사장이 허락한 다거나, 학생회장이 허락한다면 가능한 일이긴 해요."


"... 그 허락 내지 말아주세요."


뭘까? 나는 그저 평범한 트레이너 생활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트레이너 생활 바로 전날 부터 이러는 것은...



***



"대단하다..."


그녀들의 달리기를 직접 본 내 소감은 이 말 밖에 할 것이 없었다.


앞쪽에서 잠자코 숨죽이고 있다가 가로막는 주자들 사이를 아름답게 지나 앞으로 나와 거리를 벌리는 다이와 스칼렛

뒤에서 기회를 보다 밖으로 돌아 그대로 폭발적인 가속력을 보여주며 강력하며 멋진 달리기를 보여준 보드카


둘 모두 기초적인 훈련과 마장별 특훈만 조금 한다면 현역 우마무스메라고 해도 믿을만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저 둘, 골에 들어온 이후부터 엄청나게 싸워대고 있네.


"이번에는 내가 1착으로 들어왔거든? 그러니 트레이너는 내가 데려갈거야!"


"선발 레이스라서 사진판독이 없으니 증거가 없잖아!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더 먼저 들어왔거든?"


"내가 1등이야!"


"내가 이겼어!"


잘 싸운다 잘 싸워, 참고로 내가 봤을 때에는 다이와 스칼렛이라고 하는 우마무스메가 가슴크기 차이로 먼저 들어왔다.


뭐, 그만한 질량을 가지고 달린 패널티에 대한 이점이라고 해야하나...


그런데 저 둘, 말싸움 하면서 왜 이쪽 패덕으로 오고 있는거지?


"그렇다면 트레이너에게 물어보자. 트레이너는 분명 내가 1등인걸 알아줄걸?"


"흥, 아무리 그래도 사실은 변하지 않거든! 그리고 등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멋진 모습에 나를 담당할걸? 그렇지 트레이너?"


이쪽으로 오던 보드카라고 하던 우마무스메가 나를 쳐다보더니 물어보았다.


두 우마무스메의 관계를 보고 있던 다른 트레이너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더니 자리를 슬쩍 뜨고는 다른 우마무스메에게 가서 영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젠장, 나도 슬쩍 나와서 도망을 갔어야 했는데...


"저얼대로 아니거든! 트레이너! 내가 1등이지! 나를 담당할 거지?"


"그럴리가! 트레이너! 내가 이겼지? 내 멋진 모습에 막 영입을 하고 싶지?"


발을 떼지도 못하고 눈치만 슬금슬금 보고 있던 사이에, 이 둘은 어느새인가 패덕에 성큼 올라서더니 내 앞에까지 와서는 서로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슬쩍 주변을 보니 다른 트레이너들은 아예 이쪽에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응? 트레이너? 왜그래? 왜 다른 우마무스메를 보고 있는거야?"


"스칼렛 네가 계속 몰아붙이니 그런거잖아!"


"뭐? 보드카 네가 트레이너에게 들이대니까 그런거지!"


아... 이건 대체 무슨 러브코미디일까? '처음보는 우마무스메가 나에게 집착한다X2' 정도로 하면 인기 있을 1화 소설로 나올 것 같은 이 상황에서 내가 말할 것은 짧은 말이었다.


"대체 누가 너희들 트레이너인건데!"


내 외침에 스칼렛과 보드카는 말싸움을 멈추더니 서로를 보던 눈을 내쪽으로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당연히 그쪽이지! 말 나온 김에 지금 당장 하러 가자!"


보드카가 내 왼쪽 팔에 상체를 붙이며 외쳤고,


"물론 내가 1등으로 등록할테니 보드카는 저리 가지?"


스칼렛이 내 오른쪽 팔에 상체를 붙이며 투덜댔다.


"뭐? 트레이너는 내 담당 트레이너거든! 나 먼저 등록한 뒤에 등록을 기다리시지!"


"무슨 소리야! 내 담당 트레이너거든! 나와 트레이너의 사이를 방해하려는 속셈이지!"


"너희 둘 모두 담당할 생각이 없으니 좀 놓아주면 안될까..."


지금 이 둘이 나를 사이에 두고 샌드위치를 하고 있는데 여기는 조금 전에 선발 레이스가 끝난 패덕 위다.


조금 전까지 이 둘과 같이 달리던 우마무스메들, 그리고 여러 트레이너들이 이쪽을 보고 수군대기 시작한 이 상황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흠... 보드카, 우리 일단 휴전할까?"


"아무래도 그래야겠네. 그럼 그렇게 할까?"


"그... 그래? 그럼 난 이만 가봐도 되는게 맞지?"


그런 내 희망과는 달리, 서로 눈빛으로 대화를 하던 두 우마무스메는 그대로 양쪽에서 나를 어깨동무 하듯이 들더니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야! 너희들, 어디로 가는거야!"


살짝 저항을 해보려고 했지만 나는 그냥 인간 남성, 상대는 현역 우마무스메 2명.


현역 우마무스메의 전투력은 성인 남성 특수부대원 4명과 맞먹는다는 드립을 봤을 때에는 트레이닝 지식으로 키배를 떴었는데 사실 그 드립이 사실이 아닐까 생각될 수준이었다.


"트레이너가 우리 둘을 처음 봤을때 분명 루돌프 회장에게 갔었지?"


"그 때 무릎을 꿇고서는 '저는 신입 트레이너지만 이 둘을 라이벌로, 반드시 훌륭한 우마무스메로 키워보겠습니다!' 하고 외쳤었지."


그 신입 트레이너는 대체 어디사는 누구시길래 학생회장실에 쳐들어가서 그런 말을 했다는 걸까?


그보다도 대체 이 둘은 어디로 가는거야?


"아니, 사람 말은 좀 들어주면 안될까? 그리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무슨 말이긴. 그 누구도 너를 외면하더라도 나만은 너에게 남아 반드시 1등으로 만들어서 빛나게 해주겠다고 선언하던 트레이너의 이야기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참 멋졌는데..."


"나에게는 누구보다 멋진 보드카라는 오토바이의 엔진을 꺼지지 않게 정비해 주겠다고 했었지, 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담당 우마무스메 영입 멘트 보다는 프러포즈가 아닐까?"


"그러니까 대체 그건 어디사는 누구 이야기냐고..."


""누구긴, 당신/그쪽 이야기인데?""


틀렸다. 이 둘은 정신이 나가다 못해 골드십 수준의 괴짜다!


아니, 골드십처럼 트레이너를 강제 등록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 이상으로 가고있잖아!


망상과 현실을 혼동할 정도라니... 지금 당장 양호실에 가는게 좋을 것 같은 이 둘은 나를 질질 끈 상태로 학생회실까지 데려 와서는 당당히 문을 열었다.


"응? 스칼렛, 보드카. 무슨 일이지? 선발 레이스 번호도 떼지 않고... 이 신입 트레이너는 대체..."


이 상황을 본 여제 에어 그루브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도와줘! 이 둘이 나를 강제로 여기까지 들고 왔어!"


성인 남성이 여학생 두 명에게 들려서 여기까지 끌려왔다는 점, 그리고 부탁을 하는 쪽도 여학생이라는 점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외쳤다.


이 둘, 이대로 가면 뭔가 엄청난 일을 저지를 것 같아 무섭단 말이야!


"아뇨, 회장, 신입 트레이너의 복수 우마무스메 담당 신청을 하려고 왔어요."


"회장님, 저랑 스칼렛이랑 같이 이 트레이너의 담당으로 넣어주세요."


내 양 옆의 우마무스메의 말을 들은 에어 그루브는 나의 살려달라는 눈빛에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가까이 온 뒤에 무언가 제스쳐를 취하려던 에어 그루브는 갑자기 들려온 파안대소에 멈칫하며 행동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 풉... 푸하하핫! 이 무슨 동상이몽인가! 하하핫!"


그런 나와 양 옆의 우마무스메를 차분히 쳐다보던 우마무스메,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황제, 심볼리 루돌프는 폭소했다.


대체 왜? 아니, 생각해 보면 트레이너쪽은 전혀 담당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강제로 데려온 우마무스메가 이런 소리를 하니 웃기지 않는게 더 이상하긴 하겠네.


옆에 있는 심볼리 루돌프의 특별비서라고 불리는 남자도 웃음을 참고 있는게 엄청 쪽팔린다.


"대충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것 참 걸작이야! 그렇겠지, 그 트레이너는 결자해지 함이 당연한 일이지. 그래, 그 신청 바로 수락해주겠다."


그 루돌프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사고가 일순간 정지했다가 얼이 빠져서 입 밖으로 말이 새어나왔다.


"네...에?"


그에 반해 내 양 옆에 있는 우마무스메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죽이 잘 맞는 것 마냥 웃으며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건데!



***



황당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질문이 나왔다.


"그러니까 그걸 믿으라는 건가요?"


내 말을 들은 것은 심볼리 루돌프의 특별비서, 유일하게 학생회실에 당연하게 있는 트레이너 이외의 인간 남성이다.


"그래, 그 둘의 이야기는 거짓말이 아니야. 진짜 미래에서 그쪽과 같이 있었는데 과거로 온 경우일 테니까."


"도라에몽이 진짜라고 말하는게 더 현실성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말한 것은 다 사실이야."


그렇게 말한 남자는 재킷의 속주머니에서 회중시계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게 그 회중시계니 말이야."


그 무방비한 모습에 손을 뻗어 회중시계를 뺏어, 양손으로 잡고는 빌었다.


제발, 그 둘을 만나기 전 시간으로 돌려달라고, 시간이 돌아가면 바로 근처 모텔에 방을 잡고 선발 레이스 관람 일정을 어떻게든 미루고 말겠다고.


나의 간절히 빌기! 하지만 아무일도 없었다.


"... 역시 거짓말이잖아요 이거..."


허탈한 마음에 손의 힘이 풀리자 눈 앞의 남성은 싱긋 웃으며 회중시계를 다시 가져가며 설명했다.


"이건 빛나는 꿈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 우마무스메의 미래를 위한 바램이 아니면 동작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녀들이 말한 '트레이너'라는 사람은 제가 아니잖아요? 사람이 하룻밤 자는 사이에 교체되는 세포의 갯수를 고려하면 전날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은 다른 사람이라는 말도 있는데 말이죠."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로군. 하기야 맞는 이야기야. 그녀들이 과하게 사랑하는 '그'는 자네가 아니니까.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잘 알고 있지."


그는 나를 오른손 검지로 가르키고는 선언했다.


"하지만, 트레이너 이외에는 대여가 불가능한 이 시계를 썼다는 것, 그리고 그녀들만 과거로 왔다는 것 또한 특이점이자 우연이자 필연이라고 할 수 있어."


"뭐, 엘 프사이 콩그루라고 말이라도 해야하나요... 다이버전스 계수는 어디서 보면 되죠?"


진지하게 말하는 이 남자에게 비아냥대며 물었다.


이 말이 사실이면 일부 우마무스메의 트레이너는 시간의 마술사가 빙의되서 타임매직을 썼다는 말이잖아.


이 이야기를 믿자니 허탈함 반, 황당함 반으로 머릿속이 꽉 찰 것 같고, 믿지 않자니 완벽한 레이스를 보여준 우마무스메 둘의 행동과 능력이 설명되지 않는다.


"아니, 그런건 없어. 그저 우마무스메의 빛나는 미래를 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까. 그러니 자네는 그녀들과 잘 지내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뭔가 멋지게 말을 하고 계신데 말이죠...


"저 아래에서 저녁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살짝 무서운데요."


담당 트레이너 등록 관련 처리를 다 끝내고 이 특별비서와 이야기를 시작한지 꽤나 시간이 되어 밖이 어둑어둑 해 져 가는데 스칼렛과 보드카는 계속 밖에서 무언가 말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적인 우마무스메라면 친한 친구라도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겠으나, 저 둘은 분명 나를 기다리는게 분명하다.


내 말을 들은 눈 앞의 남자는 그제서야 창밖을 보고서는 두 우마무스메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깨닿고 잠시 침묵을 했다.


"... 미래의 자네와 저 둘의 관계가 어찌된 것인지, 미래의 자네가 어떻게 되었던 것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화이팅!"


"화이팅이고 뭐고 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이 남자, 자기 일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데 당사자 입장에서는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뭐가 뭔지 모를 이 상황에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죽이러 온다는 게임 문구가 생각났다. 딱 지금 내 상황 아냐 이거?


미래의 나,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거야?



***



"... 너희들은 나에게 지도를 받지 않아도 되는게 아닐까?"


지금 다시 보더라도 정말 센스라고 해야하나, 조금 전 스칼렛의 모의 레이스를 보면 재능 자체가 넘쳐나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저번에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미래에서 왔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녀의 달리기는 정말 아름답고 멋지다는, 홀린다는게 이런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트레이너, 그래서 이번에도 1등을 한 나의 모의 레이스 관람 소감은 어때?"


"굉장히 아름다웠어. 누구보다도 빛나고 있었지."


진짜 솔직한 소감이었다.


성격과 나에 대한 이 관심도만 빼면 정말 완벽한 우마무스메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런 내 소감을 들은 스칼렛은 씨익 웃고 몸을 나에게 밀착시키며 속삭였다.


"그렇게 빛나는 나는 트레이너가 말하면 언제든지 트레이너의 1등이 되어줄 수 있는데?"


"중등부 학생이 그런 소리 했다가는 내가 잡혀가거든..."


"하지만 내 정신적 연령은 고등부 수준인걸?"


"고등부라고 해도 졸업도 안한 수준이니 안되는건 그대로인데 무슨 소리야. 아무튼 슬 떨어져주지 않을래? 주변에서도 엄청 이쪽을 보고 있거든?"


히죽이며 조금 전의 레이스 때문인지 묘하게 상기된 표정을 지은 스칼렛이 이쪽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내 트레이너에게 붙어있을 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야?"


방금 전에 중거리 레이스를 뛰고 온 스칼렛의 몸에서 나오는 체취와 묘하게 밀어붙이는 가슴에 아래쪽이 우마닷치할 위기가 찾아오고 있으니까 그렇지!


상대는 중등부다! 외모가 중등부 수준이 아니라고 해도, 정신이 어른이라고 해도 법적으로 위험하다고! 그것도 다른사람이 다 쳐다보는데 그러면 사회적으로 죽는단 말이야!


"다음 마일 모의 레이스에 보드카가 나오니까 그쪽을 관람해야 하니 그런거지. 보드카의 레이스가 진행되는 레일 위치상 저쪽으로 이동하는게 더 나으니까 말이야."


"흐으음~ 그런거야? 정말?"


그렇게 말한 스칼렛은 입술을 살짝 낼름거리며 아예 양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안으려고 하던 찰나...


"트레이너어어~ 곧 모의 레이스 시작되니까 이쪽으로 이동해!"


저 멀리서 들어오는 보드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스칼렛의 어깨를 잡아 살짝 밀쳐내었다.


"아하하... 빨리 가볼까?"


보드카의 모의 레이스를 보기 위해 이동하려는 찰나, 뒤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살짝 들린 것 같지만 애써 무시했다.



***



오늘따라 묘하게 흥분상태가 가라앉지 않아 트레이너에게 약간 어필을 해봤더니 트레이너가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을 짓는 것이 귀여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해보자고 생각해서 밀어붙이다가 보드카 때문에 중간에 끝낼 수 밖에 없었긴 하지만 이런 트레이너의 모습, 내가 알던 모습과 달리 신선해서 계속 보고 싶었단 말이야... 하아...


눈치 없는 보드카가 말려주지 않았다면 어디까지 갔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이 중등부라는 연령적 문제가 제일 크게 다가온다.


빨리 시간이 지났으면... 완전히 나의 트레이너로 만들 수 있게 되는 날이 왔으면...


후편 링크 [괴문서]와일드 & 블루의 톱을 향한 트레이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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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소재는 츤 빠진 다스카와 그런쪽 내성이 생겨서 들이대는 보드카가 합심하는 상황+기존에 쓴것 설정

저번에 썼던 영원히 반복되는 황제의 길 설정 좀 들어감, 정확히는 이전에 썼던 것에 있던 설정들도 같이 나올 예정이긴 한데 사실 안봐도 읽는데는 문제 없을거임 아마?

메인 캐릭터가 둘이라 분량이 커지다보니(이게 1.25만자) 나머지는 내일 마저 쓰겠음


사실 내용 구상은 저번주에 다 했는데 간악한 자본주의의 첨병인 7토노 다이아 간나가 키타산 블랙 동무를 납치한지라 광산 캐서 위대하신 아키카와 령도자의 우승컵 장식장을 채워주고, 존경하는 라이언 서기장님에게 뇌물도 좀 찔러넣고, 사서들에게서 우마무스메 기록에 숨겨진 당근을 얻는다고 시간 없어서 이제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