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 출처 https://arca.live/b/umamusume/54828595


전편 링크 [괴문서]와일드 & 블루의 톱을 향한 트레이닝(1)



데뷔 레이스날, 보드카의 레이스를 관람한 소감은 스칼렛과 달리 멋지다고 할 수 있는 파워풀한 주법은 확실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1착 수고했어. 정말이지 멋진 달리기야."


"그렇지? 그럼 상을 하나정도 받을 수 있을까? 레이스에서 이겼는데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상? 혹시 스칼렛처럼 곤란한건 아니겠지?"


저번 모의 레이스 이후에 스칼렛은 종종 뭔가를 해내면 상이라고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기에 해주고는 있는데...


분명 시작은 머리 쓰다듬어주기 수준이었는데 어느새인가 내 무릎 위에 앉기 같은 것 까지 해달라고 하니 묘하게 곤란한 상황이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학원부지 내에서 그렇게 행동하니 조만간 경찰서에 끌려가는게 아닐까 싶단 말이야.


"스칼렛이 해달라고 하는게 곤란한거였어? 거절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해주겠다고 트레이너실에서 해주는걸 보면 트레이너도 싫어하지 않는줄 알았는데?"


어라? 듣고보니 그렇네? 나 묘하게 조련당하고 있던거 아냐?


"아니아니, 중등부인 스칼렛이 그렇게 들이대니까 엄청나게 곤란하거든... 그러니 보드카는 뭐랄까... 스칼렛보다 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느낌? 그러니 상 정도야 들어줄 수 있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느낌이지, 보드카도 나에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건 매한가지다.


그래도 최소한 곤란하게 들이대지는 않잖아.


"흐음... 그런거야?"


내 대답에 묘하게 의욕이 한단계 정도 떨어진 느낌의 보드카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 상은 소원권 하나로, 이후에 내가 해달라는 것 하나 정도 해 줄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이 아니라 이후에 좀 해줬으면 하는게 있거든."


"지금 당장 그런 위험한걸 너에게 주면 스칼렛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어서 그건 좀... 차라리 이건 어때? G1 레이스에서 우승을 하면 내가 허용하는 선에서 소원권을 하나 주는건?"


솔직히 지금 내 담당 우마무스메인 스칼렛과 보드카의 실력이 너무 출중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커다란 당근을 앞에 던져두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했는데 꽤나 효과가 좋은 것 같다.


중요한건 '내가 허용하는 선' 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으니 경찰아저씨 여기에요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고, 보드카가 이걸 받아들이면 스칼렛도 같은 조건을 당연히 받아들일테니 둘의 라이벌 구도도 자연스럽게 만들어 질 것이다.


... 그런데 이후에 해달라는 거라니? 미래를 알고있으니 그것에 따라 뭔가 시키려는 것일 텐데 복권 번호라도 외워둔게 있어서 그런건가?


"정말이지? 그 말 확실히 기억해 뒀으니 잊어버리지 말라고! 그... 순정만화에서 어릴때 약속을 잊어버리는 꼴사나운 주인공처럼!"


"응? 대체 얼마나 이후에 부탁을 하려고 하는거야? 그것보다 일반적으로 그런 약속은 결혼약속 아냐?"


"엇... 어어... 그러니까... 흡!"


내 대답에 잠시 멍하니 있던 보드카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살짝 코피가 났다.


덕분에 보드카를 양호실에 데려다 준다고 스칼렛의 데뷔 레이스 시작에 약간 지각을 하는 바람에 그날은 벌로 하루종일 스칼렛에게 무릎을 빌려주게 되었다.



***



트레이너의 행동을 어느정도 컨트롤 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G1레이스 우승? 나와 스칼렛이 과거에 G1 레이스를 얼마나 많이 우승했는지 트레이너가 안다면 후회하지 않을까?


그런데 한 번만 트레이너가 그곳에 가는 것만 막으면 되는데 이렇게 많이 소원권이 생기다니... 뭘 부탁해야하지?


그 전에, 스칼렛이 이기면 슬금슬금 스칼렛이 나 빼고 트레이너와 가까워질 지도 모르잖아?


저번에 봤던 순정만화의 꼴사나운 조연처럼 뒤쳐져 버릴 수 없지! G1 레이스 우승 힘내자!



***



[얽혀들듯 들어와 골! 벚꽃상의 1등은 다이와 스칼렛! 코 차이로 들어온 보드카는 2착!...]


클래식의 대표적인 마일 G1 레이스, 그 중 벚꽃상은 내가 담당하는 둘이 당당하게 1착과 2착을 했다. 그것도 3등과 거의 대차가 날 정도의 압도적인 실력으로.


이 둘의 경주에서 내가 그렇게 해준 것은 없고, 경마장 지형 부분에 대해서만 열심히 연구해서 어느 부분에서 어떤 식으로 달려야 할지만 조언을 한 것이 다였다.


생각해보면 이 둘의 말이 사실이면 이미 한신 경마장에서 몇 번이고 뛰었을테니 큰 의미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내 최선을 다 했으니 뿌듯하기 그지없다.


"트레이너~ 봤어? 내가 1등으로 들어온걸!"


"크으으... 아쉬워라! 또 벚꽃상에서 2등이라니!"


당당하게 자신의 1등을 자랑하는 스칼렛, 그리고 아쉽지만 다음에는 지지 않겠다는 듯 팔을 들어서 주먹을 한번 꽉 쥐는 보드카


대기실에 돌아온 둘은 자연스럽게 내가 앉아있는 의자 양 옆에 접이식 의자를 옮기더니 그대로 앉아 내 몸에 머리를 기대었다.


평소와 같이 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들의 땀냄새를 맡고있자니 뭔가 마음이 평온해 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둘 다 수고했어, 코 차이면 별 차이도 없으니 1등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어? 진짜? 그럼 나도 소원권을 하나 주는거야?"


"그... 그건 좀... 하하.... 일단 스칼렛에게 소원권을 주긴 하겠다만... 혹시해서 그런데 결혼같은건 안된다? 몇달 전에 우마무스메 결혼 연령을 낮추는 법이 나오긴 했지만 중등부는 아니거든?"


"어머, 그럼 중등부가 아니면 된다는 이야기인거야?"


"당연히 안되지! 결혼같은 중대사는 좀 더 착실하게 생각하고, 다른 인연이 있는지도 생각해 보며 해야..."


스칼렛은 내 귀에 입을 가져다 대더니 속삭였다.


"난 이미 과거의 3년에 이번 1년동안 생각을 다 했는걸?"


그 말을 들은 내 얼굴이 붉어지자 옆에 있던 보드카가 외쳤다.


"자! 그런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그 소원권, 지금 사용할거잖아 스칼렛."


보드카의 말에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아 멍하니 있다보니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멈추게 되자 스칼렛이 일어나서 나를 보며 부탁했다.


"그래, 트레이너. 다다음에 출전할 추화상상, 그 때에 트레이너는 대회장에 나오지 말아줘."


스칼렛의 소원을 들은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들이 미래에서 왔다는 시간대는 그녀들이 아리마 기념 직전 즈음, URA와 드림 트로피를 준비할 즈음으로 시간상으로 1년 반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데?


하지만 스칼렛이나 보드카은 진지한 얼굴로 있는 것을 보아 무언가 중대사가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어 물었다.


"응? 추화상상? 그때는 왜?"


"트레이너 인생의 중대사가 걸린 문제니까. 트레이너의 성격상 우리가 말려도 보러올 것 같거든."


보드카의 대답을 들어보니 확실히, 가능하면 직접 가서 그녀들의 달리기를 보고 싶어 명확한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면 경기장에 갈 것이다.


아마 설명을 두루뭉실하게 할 수 밖에 없지만 내가 그곳에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소원이 아닐까?


그런데 뭔가 무서운데? 내가 그 날에 경기장에 가면 무슨 큰 사고라도 당해서 그런건가?


"그러니까 그 날은 집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내가 1등하는 모습을 봐줘. 그리고 다음 소원권을 얻으면 데이트를 하러 가자! 오크스 1등은 나일테니까!"


"트레이너! 이번 소원권은 우리 둘이서 똑같은걸 해달라고 할 예정이었지만 다음부터는 아니니 더비에서 꼭 내가 이겨서 소원권을 얻어 데이트를 할테니 내 멋진 모습을 지켜봐줘!"


"둘 다 다음 소원은 데이트로 결정인거구나... 일단 알았어. 애초에 추화상은 한참 뒤니까 다음 소원권으로 빌어도 되는거 아냐?"


"그 전에 나와 보드카가 같이 달리는게 이번 벚꽃상이 마지막이니까. 누가 이겨도 불만이 없을 레이스거든."


그 말을 들어보니 뭔가 두려워진다.


보드카가 트리플 티아라를 가는게 아니라 더비를 간다고 하길래 뭔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그냥 둘이 레이스가 겹치지 않게 하려고 한거 아냐 이거?


이러다 이 둘에게 소원권을 계속 발행하는 나날이 이어지지 않을까 두려워졌다.



***



여름합숙 중, 트레이너와 트레이닝 일정을 하루 빼서 같이 바닷가에서 데이트를 했다.


이제 트레이너와의 거리감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내 몸이 트레이너에게 밀착되더라도 트레이너는 얼굴을 붉히기만 할 뿐, 제지하지는 않는 수준까지 왔다.


은근슬적 열병에 걸린 것 처럼 속였더니 트레이너가 수영복 차림의 나를 업어서 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트레이너의 귀를 살짝 물어버렸지 뭐야.


첫 만남부터 초반에 강경책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약간 과한 스킨십을 당연하게 여기게 만드는 작전은 대성공!


거기다, 나와 보드카가 알고있던 미래와 달리 이 시간에서는 트레센 학원 학생인 우마무스메가 결혼이 가능한 나이로 되는 법이 제정되기까지!


역시, 그 때 트레이너가 들고있던 회중시계는 소원을 이뤄주는 물건인게 틀림없어! 보드카는 왜 같이 온건지 모르겠지만.


뭐, 그래도 보드카 정도라면 트레이너의 2등 정도는 줄 수 있어. 나와 같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한 친구이자 라이벌이니까.



***



여름축제 중, 트레이너와 조그마한 바이크 레이싱을 보러갔다.


트레이너와 즐겁게 손을 잡고 여름합숙중에 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걸어간 곳에서 본 레이싱은 내 기억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이번이 같은 레이싱을 두 번 째, 똑같은 결과를 보는 것이지만 저번과 달리 지금은 트레이너와 단 둘이서 본다는 생각에 가슴이 뛴다.


그러고보니 그 날, 내 개인 바이크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트레이너를 태웠을 때가 생각나네.


그 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바로 실행에 옮겼는데... 여러 우여곡절이 있지만 이 시간으로 온 것을 생각하면 정말 최고의 결과가 아닐까?


그러고보면 그 때 트레이너가 힘들에 들었던 회중시계는 대체 어디서 난 물건이었을까?


트레이너가 힘겹게 꺼내기에 나도 모르게 스칼렛과 내가 같이 잡고서는 분위기상 소원을 빌긴 했는데 말이지.


시간여행을 해주는 물건이라고 생각 했지만 내가 아는 과거와 다르게 바뀌며 소원을 반쯤 이루게 해준걸 보면 사실 드래곤볼 같은 소원을 이뤄주는 멋진 물건이 아니었을까?



***



"스칼렛의 추화상 우승을 축하하며!"


추화상 경기장에 직접 가지 못한지라 그 다음날, 뒷풀이 느낌으로 내 집에 셋이 모여 간소하게 파티를 열었다.


파티라고는 하지만 스칼렛과 보드카 둘이서 요리를 해서 먹는 거라서 파티보다는 모임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후후... 내 1등을 축하하며!"


"쳇..."


"보드카, 아무리 그래도 축하 정도는 해주는게 좋지 않을까?"


이 둘은 참 볼 때 마다 이해가 되지 않는게 어떨때는 서로 사이가 엄청 나쁜 라이벌 같으면서도, 어떨때는 합이 잘 맞는 단짝같은 느낌이란 말이야.


"그래도... 스칼렛이 소원권을 가져가잖아?"


"그러니 나처럼 1등을 했어야지."


그렇게 투닥거리는 둘을 보고있자니 헛웃음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말했다.


"소원권이라고 해도 평범하게 부탁하면 들어줄만한 일을 부탁하니 별 상관없는 것 같은데?"


하기야, 이 둘이 소원권이라고 했던 것은 평범하게 우마무스메와 트레이너가 하는 스킨십 정도의 일이었기에 별 문제가 없을 듯 하니.


"어? 정말? 그럼 오늘은 트레이너 집에서 자고가도 돼?"


"... 그랬다간 다음날 신문 1면에 올라올 것 같으니 안 돼."


"쳇."


그렇다고 선을 넘는건 좀 아니지...


파티가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 이번 추화상 레이스를 다시보기 위해 TV를 틀어 녹화한 영상을 틀려는 순간, 우마우스메 관련 채널에서 저번 추화상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추화상에서 다이와 스칼렛, 보드카 두 우마무스메가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어...]


프로그램의 내용은 내 집에 있는 둘의 이번 레이스에 대한 이야기, 스칼렛의 트리플 티아라 달성, 보드카의 이해 못할 행보와 같은 내용들이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 추화상이 끝난 후, 기자들 중 한 명이 이 두 우마무스메에게 이유 없는 협박을 당했다고 합니다. 해당 상황을 재연한...]


TV에서 나오는 내용이 갑자기 급변하여, 스칼렛과 보드카가 한 여기자에게 폭언을 하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엄포 하는 재연장면이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정보들에 몸이 굳어 그 내용들을 아무 생각 없이 보던 와중에 스칼렛이 나에게 와서 리모컨을 뺏아 TV를 꺼버렸다.


덕분에 제정신으로 돌아와 그녀를 돌아보니, 스칼렛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소원, 이 일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말아줘."


파티는 흐지부지하게 지나가버렸다.



***



[스칼렛 그 아가씨, 참한 아이던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 어머니, 그 아이는 중등부에요. 아무리 법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연령차이가 있어서 그렇게 당당히 결혼하는 트레이너와 우마무스메도 없다고요."


[옆에 있던 보드카란 아이는 당차서 마음에 들던데 그 아이는 어떠니?]


"그쪽도 중등부인데... 그런데 어머니, 그 둘, 어머니에게 소개시켜드리지도 않았는데 언제 만난거에요?"


[저번주 주말에 이쪽 명물이 먹고싶다고 둘이서 여행을 왔다고 하더구나. 우연찮게 만나서 이야기를 해봤는데 우리 아들의 담당 우마무스메라니, 어찌보면 운명 아니니 아들?]


"운명은 절대 아닐걸요... 아무튼, 이만 전화 끊을게요. 아리마 기념 전이라고 전화 주셔서 고마워요."


[그래! 우리 아들의 꿈이 이뤄지길 엄마는 바랄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둘, 자기들이 아는 정보로 어머니를 만나러 간 것 같은데 이쯤 되면 뭔가 슬슬 두려워진다.


그건 그거고, 지금은 지금, 곧 있을 스칼렛과 보드카의 마지막 클래식 레이스인 아리마 기념을 보러 가야지.


"네, 다음에 제가 먼저 전화할게요."


스칼렛과 보드카의 레이스 대기실에서 하고있던 전화를 끊고, 패덕에 가기 위해 자리를 일어서려는 순간,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처음보는 여성이 들어왔다.


목에 걸린 명찰을 보니 기자들 중 한 명으로 보인다.


"아! 혹시 스칼렛과 보드카의 트레이너 되시나요?"


"네, 제가 그 둘의 담당 트레이너입니다만... 혹시 누구신가요?"


"아... 저는 저번 추화상에서 그 둘에게 폭언을 받은 기자에요. 그 때에는 트레이너분이 없어서 이야기를 못했는지라 지금 좀 이야기를 해보려고 왔어요."



***



꿈이 이루어진다는 아리마 기념, 시간을 돌리기 전에는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처참한 결과를 냈었지...


하지만 지금은 모든걸 극복한 뉴 보드카의 멋진 달리기로 제패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은 패덕에서 트레이너와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을 보자마자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머리 한 구석에 박아둘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레이스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 때와 같이 11착이라는 나쁜 결과를 내버렸다.


결승선에 들어가자마자 트레이너가 있는 방향을 확인해보니 그년은 없었다.


스칼렛은 달리기에 집중한 나머지 그년이 있었다는 것 조차 모르는 것 같기에 스칼렛에게 내가 봤던 것을 말해주자 스칼렛은 트레이너가 있던 패덕으로 레이스에서 본 적 없는 속도로 달려가서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어라? 타즈나씨? 오늘은 휴일인데 무슨 일이신가요?"


"와! 마침 잘되었네요 트레이너씨. 이쪽의 기자분, 트레이너씨를 아는 것 같던데 트레센 학원을 좀 소개해 주시겠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타즈나씨의 옆에는 저번에 봤던 여기자분이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저번 아리마 기념에서 스칼렛이 말했던 '그 기자와 사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말 것.' 이라는 소원이 맴돌았지만 타즈나씨의 부탁이기도 하고, 어떻게 되면 업무의 연장선인 만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수락했다.


스칼렛과 보드카는 오늘도 내 고향에 간 것 같으니 그 둘을 마주칠 일도 없겠다, 아마 별 일 없을 것이다.


그렇게 기자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보니 뭔가 마음이 편해졌다.


비슷한 취미, 비슷한 흥미를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스칼렛과 보드카는 이 기자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가능한 피하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리 나쁜 사람 같지 않은데 말이야.


그 둘은 왜 이 기자분을 싫어하는거지?



***



"오랜만이야 트레이너~ 무려 3일만이라고!"


"빨리 바이크를 하나 뽑아야 할 것 같은데 왜 바이크 면허 취득 연령은 낮춰주지 않는걸까?"


"너희들 그래놓고 또 내 어머니 만나러 갔다온거지? 전화로 다 들었거든?"


트레이너실에 들어온 스칼렛과 보드카 둘은 이제 숨길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이 둘을 만나지 말라고 말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놀러간다는데 막을 방도도 없으니 참 애매하다.


잡무라도 없으면 아예 같이 갈 수 있기라도 할텐데 그것도 안되니.


"후후... 들켰네? 어머님이..."


"응? 왜그래?"


평소와 같이 내쪽으로 와서 옆에 앉아 얼굴을 내 어깨쪽으로 눕혀두려던 스칼렛의 움직임과 입이 딱 멈췄다.


"그년을 만난거야? 그년의 냄새가 나는데?"


"그년? 누구 말하는거야?"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스칼렛만이 아니라 보드카도 뭔가 굳은 얼굴로 있는게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 기자년, 내가 분명 소원으로 만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스칼렛이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트레이너, 스칼렛 말이 사실이야? 그년을 만났어?"


내 앞에서 평소에 만들어주던 도시락을 테이블 위에 탁! 소리가 나도록 두고는 내 옆으로 온 보드카가 말했다.


"으... 응, 트레센 학원 특집기사를 낸다고 학원에 왔다는데 타즈나씨가 일이 있어서 내가 학원 소개를 해줬거든..."


스칼렛과 보드카, 둘의 눈에서 나를 넘어선 무언가에 대한 적개심이 느껴질 정도로 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상황에 말을 약간 흐렸다.


"그렇구나? 개인적으로 만나는건 아니라는 말이지?"


"응, 응응, 어디까지나 공적인 일로 만난거야."


"그렇지? 트레이너는 약속도 지키지 않는 꼴사나운 인간이 아니지?"


"다... 당연하지! 소원권이라고 약속을 했는데 지키지 않을리가 없잖아!"


내 말에 싱긋 웃은 스칼렛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트레이너의 약속, 지키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몰라."


스칼렛의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



왜? 어째서? 분명 추화상에서 만났다고 들었는데 아리마에서 만나고, 학원 소개까지 트레이너가 하게 된거야?


이정도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 아니야? 나의 트레이너 1등 계획에 이런 상황은 상정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된다면...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가야 할 지 모르겠네?



***



그 기자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 뭔가 무섭게 눈치를 주던 스칼렛과 보드카는 그 때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평소와 같이 행동했다.


물건을 사러 갈 때 같이 가자고 하거나,

낮잠을 자야겠다고 하면 내 무릎을 베고 자거나,

아침마다 하트가 그려진 도시락을 싸 주거나,

담당 트레이너로써 그녀들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일에도 거의 1시간마다 문자로 연략을 주고받거나,

개인적인 집안일을 해야할 때면 내 집으로 와서 빨래를 해준다거나,

개인 사복 코디를 그녀들이 맞춰준다거나...


트레이너 학과에 있을 때에는 우마무스메와의 관계가 이렇게 가깝게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스칼렛과 보드카의 말 대로라면 트레센 학원에서는 이게 '평범'한 관계라고 하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른 우마무스메에게 물어보려고 할 때 마다 묘하게 눈치를 주기에 확신은 못하겠지만 작년에 나온 이상한 법 때문에 그런지 트레이너들 사이에서도 우마뾰이한 관계만 아니면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도 있으니까 맞는 말이겠지.


소원권을 쌓아두고 쓰지 않는 것은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그저 담당 우마무스메 둘이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해서 평범하게 되어감에 따라 소원권 같은걸 쓰지 않으려는게 아닐까 생각중이다.


"이번 레이스의 주인공은 내가 될테니 제대로 봐줘!"


"이번만큼은 내가 이길테니 각오하라고 스칼렛!"


"그래, 텐노상 가을, 둘 모두 최고의 달리기를 보여줘!"


둘 모두 게이트쪽으로 먼저 보내고 나 혼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저번에 그 기자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대체 그 기자는 어떤 존재길래 스칼렛과 보드카는 어떻게든 그 기자에게서 나를 떨어뜨리려고 하는거지? 그 기자는 사실 나를 암살하려는 암살자라도 되는건가?


"마음이 잘 맞는걸 보면... 설마 미래에 내가 중대한 무언가를 하고, 그 기자는 나를 암살하기 위해 모든걸 위장한 미래에서 온 자객인건가!"


라고 생각 했지만 이 무슨 중학생 시절 질풍노도를 넘어선 흑역사 망상인가 싶어서 집어치웠다.


"그럼, 상황에 따른 기자 발표 내용들도 다 정리했으니 가볼까..."


그렇게 입으로 내뱉은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저번에 봤던 그 여기자.


저번에 학원 소개를 할 때 전화번호를 주고서는 거의 까먹고 있었는데 무슨일이지?



***



텐노상 가을,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시니어의 아리마 기념 바로 앞의 레이스다.


이 레이스에서 1등을 한 뒤에 트레이너에게 고백하고, 아리마기념을 나간 뒤, 만약 출전이 가능하다면 URA까지 나간 뒤 은퇴를 할 생각이었다.


그랬었는데...


[제 4코너를 먼저 빠져나오는 것은 다이와 스칼렛, 보드카!]


해설의 말이 울려퍼지는 레이스 경기장에서, 옆에 있는 보드카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나는 볼 수 있었다.


트레이너의 옆에 있는 그년을.


왜? 왜 저년이 여기 있는거야?


그리고 트레이너와 저년은 왜 웃고있는건데?


그 잠깐의 생각으로 인해 페이스를 살짝 놓쳐버린 나는 보드카가 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



***



조금 전에 전화로 사전 인터뷰 겸, 트레이너와의 인터뷰 분량을 얻고싶다고 전화한 기자분과 같이 패덕에서 레이스를 관람하고 있었다.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에 가까우니 이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스칼렛과 보드카, 둘 모두 좋은 우마무스메입니다. 항상 레이스에서 우승하기 위해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도 서로를 도우며 성장해 나갔으니까요."


"정말이지... 트레이너님의 말대로 둘의 달리기는 볼 때 마다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그런데 왜 저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아...하하... 글세요? 저에게도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알 수 없는데... 아! 둘이 마지막 코너를 돌아서 오고있네요. 3등과 차이가 대차 수준이라니... 제 담당 우마무스메지만 참 자랑스러운 아이들이에요."


"후후... 그러게요. 그런 우마무스메를 키워낸 트레이너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걸요."


"칭찬 감사드립니다. 남은 부분을 집중해서 보고싶으니..."


내 말에 옆에 있는 여기자는 싱긋 웃더니 말 없이 스칼렛과 보드카가 한데 얽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정말이지... 처음 만날때만 하더라도 진짜 엉망진창이라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만남이었지만 이렇게나 찬란하게 빛나는 둘을 보면 그 따위는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니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스칼렛의 페이스가 약간 흐트러져서 보드카가 1착, 그래도 스칼렛과 3등 사이는 7마신 차이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스칼렛 또한 당당하게 이번 텐노상 가을의 주연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스칼렛은 평소에 보드카에게 졌을 때 약간 분하다는 표정이 아닌,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한 얼굴을 하더니 내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내가 있는 패덕의 방향으로 여지껏 본 적 없는 속도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진행요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레이스장의 레일을 넘고, 패덕 위로 뛰어오른 그녀는 땀범벅인 상태로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 스칼렛? 왜그래? 뭐 문제라도 생겼어?"


내 질문에도 그녀는 계속 나에게 말 없이 다가왔다.


그녀의 체취가 내 온 몸을 감쌀 수준이 될 때 즈음에서야 그녀의 입이 열렸다.


"소원권."


"응?"


"쌓여있는 소원권 중 하나. 지금 당장 사용할게."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하기도 전에 스칼렛은 나에게 달려들어 내 몸을 양 팔로 잡더니 입을 맞췄다.


아니, 입 수준이 아니라 입술 사이로 뜨거운 무언가가 들어오려고 하기에 필사적으로 입술과 이빨을 닫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우마무스메, 입 안쪽이라고 하더라도 평범한 성인 남성보다 강한 혀를 가진 그녀의 공격을 막아낼리 만무했다.


입술따위는 그녀의 직선 달리기에 허무하게 뚫려버렸고,


세게 껴안은 그 힘에 숨이 살짝 입으로 내쉬어지며 열린 이빨 사이로 그녀의 혀가 들어와 내 혀를 붙잡듯이 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 아니, 몇 십 분이 지났을지 모를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나를 놓아주었다.


내 입과 그녀의 입 사이에 있는 긴 실 하나가 조금 전에 있는 시간의 농후함을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예상도 못한 상황에 생각도 못한 기습공격으로 인해 아직도 힘이 빠진 나는 거친 숨을 쉬며 그대로 뒤에 있는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하지만 스칼렛, 그녀는 바로 옆을 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트레이너는, 서로에게 1등인 이런 사이니까 이 사이에 들어오려고 하지 마시죠."


그 방향은 조금 전만해도 평화롭에 이야기를 하던 기자가 있던 방향이었다.



***



"... 난리났네."


다음날 아침,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으며 신문을 보니 온갖 뉴스에서 나와 스칼렛이 애정행각을 한 사진이 나돌아 다니고 있었다.


뉴스 댓글을 보면 스칼렛의 팬들이 트레이너를 찢어버리겠다는 말을 하고있고, SNS에서는 비대칭전략무기 이미지 테러를 하고 있다.


특히나 스칼렛은 그 외모와 레이스 능력 덕분에 팬이 많은 만큼 그 반동이 크게 나에게 다가오는 중이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건 올해 초에 위닝 라이브에서 갑작스런 임신소식을 발표한 사쿠라 바쿠신 오의 기행이 있었던 탓인지 신문 1면까지 안갔다는 정도?


이러나 저러나, 겨우 하루만에 내 세상이 180도 뒤집어져버렸다.


대외적으로 나와 스칼렛 사이는 딱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 그 정도의 거리감이었고, 나는 실제로도 그런줄 알았는데...


스칼렛을 처음 봤을 때 같은 그 대담한 행동 하나에 주변의 평가가 뒤바뀌어버리니 대체 난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애초에 나는 스칼렛과 보드카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걸까? 그 기자는?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다.


"아 젠장... 일단 출근이나 하고 생각하자."


[띠로링!]


응? 뭐지? 아침부터 내 집에 들어올 사람이 있던가?


뭐 될대로 되라지. 일단 옷부터 다 마저 갈아입고 생각하자.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 현관문에서부터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매우 익숙한, 한 우마무스메가 레이스를 끝내고 고양된 숨을 내쉴때 나는 소리와 함께.


그래도 나는 담담하게 옷을 마저 입고, 내 뒤에서 나는, 익숙한 땀냄새에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스칼렛, 무슨일이야? 학원 수업은 들으러 가야지. 학업도 1등이라고 하지 않았어?"


내 질문에도 등 뒤의 기척은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등 뒤에서 나를 껴안더니 귀를 살짝 물고는 속삭였다.


"지금은... 학업보다 트레이너의 1등이 되고 싶은걸?"


'평범'한 스킨십이었던 그녀의 행위에 나도 모르게 살짝 우마닷치 해버렸다.


그녀의 체취가 내 코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해버린 것인데... 평소에는 이정도 까지가 아니었는데 대체...


일단 급한대로 살짝 고개를 숙여 그녀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숨겼다.


"어... 스칼렛? 오전에 개인적으로 자율 트레이닝이라도 하고 온거니? 뭐랄까... 일단 좀 씻으러 들어가는게 어떨까?"


스칼렛의 몸에서 나오는 향기가, 나를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게 한다.


지금 당장 뒤를 돌아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숨쉬고 싶다.


그녀의 품에 안겨서 이 살내음을 조금만 더 맡고 싶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조금씩 지배해 갈 수록 내 이성에 따라 점점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고 있으나, 스칼렛의 양 팔은 내가 내려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미안한데 스칼렛? 이 팔좀... 풀어주지 않겠어?"


숨이 가빠진다. 아마 내 얼굴도 붉어졌을 것이다.


"안. 돼. 트레이너? 후훗..."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이 공간에 잡아두는 느낌이다.


잠깐의 말을 끝낸 그녀는 내 귀를 오물대다가 숨을 후 불어넣으며 나를 계속해서 구속했다.


그런데...


내가 왜 스칼렛에게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는거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내 오른쪽 귀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말캉한 점막의 감촉이 사라지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모든것을 얻어 행복해 보이는 그녀가 보였다.


"역시, 타키온씨의 '향수'가 정답이었구나?"


향수? 그게 무슨 말일까? 오늘따가 고혹적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공기에 대한 말일까?


아름다운, 승부복을 입고 땀범벅으로 보이는 스칼렛은 팔을 풀고 침내에 걸터앉아 나를 보았다.


"트레이너, 나 트레이너를 좋아해, 사랑해, 1등으로 말이야."


"하... 하지만, 스칼렛 네가 좋아하는 트레이너는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왔다는 미래의 트레이너잖아?"


"아니, 지금 내가 사랑하는, 1등인 트레이너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이니까."


그렇게 말한 스칼렛은 침대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그녀의 그 행동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체취가 나의 침구에 잔뜩 배어날 것이라는 것 뿐이었다.


"그러니... 오늘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해줘."


슬쩍 목의 리본을 풀은 그녀가 말했다.


"소원권, 지금 쓰는거니까 말이야."


그날, 나와 스칼렛은 트레센 학원에 가지 않았다.



***



레이스 중에 스칼렛의 상태가 이상해지더니 레이스가 끝나고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스칼렛이 트레이너에게 뛰어가서는 그대로 트레이너와 입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년, 우리가 계속해서 견제하던 그 여자가 놀란 얼굴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아아... 진짜 꼴사납다.


저번에는 그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대처를 스칼렛이 해버렸고, 이번에는 스칼렛이 선수를 쳐버렸잖아.


거기다 다음날에는 둘 다 학원에 나오지 않고, 트레이너의 몸에는 스칼렛의 냄새가 잔뜩 배어있는데...


이렇게 된다면... 그 때 처럼 멋진 악당이라도 되고 말겠어.



***



"어... 어? 갑자기 여행?"


"아빠의 지인이 운영하는 호텔의 숙박권이 있는데 기간이 얼마 안남았다더라고. 그래서 트레이너와 둘이서 가고 싶어. 소원권을 쓸테니까 같이 가자고."


보트카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스칼렛을 바라보았다.


스칼렛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둘이서 여행을 가봐. 왜 그런 얼굴 하는거야? 내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잖아?"


이 이야기에 대해서 스칼렛이 한 소리를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순순히 허락한 그녀의 반응에 보드카와의 여행은 별 문제가 없이 끝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 순순히 여행을 수락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응? 호텔이라며, 웬 바이크야? 그리고 뭔가 익숙한 바이크인데?"


"아빠의 바이크를 빌렸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드라이브를 해보겠어?"


"그런가? 그래도 호텔이면 대중교통으로 잘 연결 되어서 굳이 바이크를 타고 갈 필요가 있나 싶어서."


"트레이너는 여행의 멋을 모르는구나? 가는 길도 다 여행의 일부잖아?"


보드카의 말에 딱히 반박할 생각이 나지 않아 그녀의 바이크를 탔다.


분명 보드카는 면허가 없을텐데 걸리면 어떻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 정신연령은 3세를 더해야 하는 그녀니 어떻게든 하겠지 하는 안일안 생각이었다.


그렇게 보드카와 둘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도심지 한 가운데에 있는 트레센 학원을 지나, 바이크는 한적한 지방도로를 달리며 여러 풍경을 보여주었다.


... 이상했다.


네비게이션이 없어 실제 위치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이야기한 호텔은 이런 촌구석에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바이크에 타서, 그녀의 허리를 잡고 한참을 지나온 이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나는 순순히 그녀가 운전하는 곳에 끌려갔다.


그렇게 바이크가 구르고, 지나고, 나아가서 도착한 곳은...


"이건 아무리 봐도 호텔이 아니라 숲속 한가운데에 있는 별장인데...?"


나의 순수한 질문에 보드카는 어디선가 로프를 하나 가져오더니 말했다.


"미안 트레이너."


"응? 보드카? 뭘 하려는거야...?"


로프를 들고 오는 그녀의 눈은 살짝의 동요를 보였지만 이내 결심을 한 듯 똑바로 나를 보더니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이 상황에 나는 머릿속 한 구석에서 부정하던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거짓말이구나?"


내 말에 보드카는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거로 날 묶어서 어떻게 하려는거야?"


"... 스칼렛과 같은 일을 할거야."


"다 알고 있는거구나?"


"응."


"그렇게 한다면 좋은 결과는 얻지 못할 것은 알고 있지?"


"그래, 하지만 저번에도, 이번에도 결국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 트레이너가 내 엔진에 붙인 불을 꺼주지 않으면 나는 그대로 폭발해 버릴테니까."


뭔가 의미심장한 보드카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제발로 보드카를 향해 걸어가서는 그녀를 껴안아주었다.


"읏... 트... 트레이너?"


"이러면 되는걸까? 너희 둘에 대해 마음을 정리하지 못해서 헤멨지만, 최근에서야 정리가 다 끝났거든."


"하... 하지만, 이러면 스칼렛은 어쩌고?"


"지금은 중혼이 가능한데?"


"... 아!"


작년 초에 제정된 법은 출산률 감소의 해소라는 명목 하에 우마무스메의 결혼 가능 연령 조절 외에도 일부다처제가 가능한 법이었으니까.


어... 그런데 왜 최근에 은퇴한 선배 트레이너가 야메로! 하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지...?


"그... 그럼..."


보드카는 별장의 문을 열고 쑥스러운듯이 말했다.


"신혼집에 어서오세요."



***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열리지 않았던 문이 끼익대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찰싹 붙어서 서로의 숨소리만을 듣고 있는 두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았는지, 침입자는 그 둘의 바로 옆까지 가서 입을 열고 나서야 둘의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 별장 전체에 인자냄새가 꽉 차있는데 둘 모두 탈수증세는 나지 않은거야?"


그 말에 뱀마냥 찰싹 붙어서 있던 보드카가 상체를 살짝 들어 침입자, 다이와 스칼렛을 보며 말했다.


"스... 스칼렛?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거야?"


"그야, '저번'에 나와 네가 이 즈음에 여기로 트레이너를 '납치'해 왔었으니까 또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그 말에 보드카는 슬쩍, 자신의 아래에서 장장 3일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었던 트레이너가 곤히 자고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하하... 그건 그렇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이번'에는 트레이너가 묶여있지 않은걸 보면 잘 된 것 같은데?"


"응, '이쪽'은 내년이면 우리 둘 모두 결혼이 가능하고, 중혼도 되니까 트레이너는 우리 둘을 선택해 준다고 말해줬어."


"그럼 그년과는 완전히 헤어지는거겠네?"


"그래, 하지만 이렇게까지 트레이너를 타고[커팅XDrive] 있었으니 내가 이겼겠지?"


"글세? 내가 1등일걸? 트레이너의 1등으로 들어온 것이 내 붉은 것과 만나서 만개[브릴리언트 레드 에이스]했을 거거든."


그렇게 말한 다이와 스칼렛은 하복부를 살살 쓰다듬었다.


"젠장, 졌잖아..."


"그러니 여기에 나도 좀 껴도 되겠지?"


다이아 스칼렛은 싱긋 웃으며 트레이너의 뺨에 키스를 했다.



***



"이상이 이번 일에 대한 경위입니다만..."


다이와 스칼렛, 보드카 둘의 은퇴에 대한 경위를 작성해서 학생회장 특별비서인 남자에게 넘겨준 뒤, 짤막하게 요약해서 말했다.


"베테랑 트레이너의 경우에는 이전에 같이 있었던 우마무스메와 같이 합을 맞추던 우마무스메 둘과 같이 중혼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만 이건 또 참 신기한 일이군."


"그리고... 그거와 별개로 그녀들이 말하는 미래... 가 아니라 지금은 과거겠네요. 과거의 제 기억이 저에게 들어왔는데 말이죠."


"흐음? 그건 또 무슨 상황인거지? 미안한데 조금 상세히 말해줄 수 있을까?"


"그게... 그 시간을 돌린 그 날이 제 결혼식이었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황당하기도 하고, 스칼렛과 보드카 둘이 그렇게 행동한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하다.


"정확히는 그 기자분이랑 저랑 시니어 사츠키상에서 만나서 계속 교제를 하고, 12월 초에 결혼식을 올리는 상황이었더군요."


"응? 그 둘중 하나가 아니라?"


"네, '그쪽'은 작년 초에 만들어졌던 우마무스메 결혼 연령이나 중혼 관련 법이 제정되지 않았기도 하고, 스칼렛은 묘하게 계속 차갑게 대하지, 보드카는 어딘가에 대해 도전을 하려고 해서 끌려만 다니니까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스칼렛과 보드카 둘 모두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둘 중 하나를 고른다거나, 장장 3년을 더 기다린다거나 하는건 아닌데다 그 기자분과 꽤나 합이 잘 맞았어서 그렇게 된 이야기이다.


"아무튼, 결혼식 당일날에 스칼렛과 보드카가 마대자루로 제 얼굴을 가리고는 바이크로 그 별장에 납치해서는..."


"... 쥐어짜였나보군, 회중시계는 아리마 기념에서 쓰겠다고 대여를 했었겠지."


"네... 그 때에는 둘 모두 '트레이너를 넘겨줄 수 없어!' 하며 진짜 끝의 끝까지 쥐어짜려고 하더군요. 이대로 가다가는 복상사 생각이 들어서 시간을 되돌리는 회중시계가 떠올라서 겨우 꺼내 들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의미없는 짓일 것이다. 회중시계는 우마무스메의 미래를 위해 쓰이는 경우만 동작한다고 했으니까.


그 때 내가 빌은 것도 시간을 조금밖에 되돌리지 못한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인지 몇 분 전으로 돌려서 말을 할 수 있는 기력이 있을 때로 돌아가려는 정도였으니...


"그리고 그걸 본 스칼렛과 보드카는 둘 모두 제 손을 잡고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트레이너와 맺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남자는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건 또 뭔... 시간만 돌리는줄 알았는데 이제 평행세계로 이동까지 하는건가?"


"그래서, 시간을 되돌리는 외계인은 어디서 죽이면 되나요?"


"개그 수준이 우리 루나보다 못하군.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어떻게 하긴요. 그대로 결혼해야죠. 그 기자와 결혼하겠다고 한 것은 저쪽, 반면에 스칼렛과 보드카 둘과 결혼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쪽이니까요."


"처음 봤을때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는군."


"테세우스의 배인지 뭔지, 목제로 건조된 배가 철강으로 바뀌고 잠수능력까지 있으면 이미 다른 배가 아닐까요. ...이야기는 다 끝난 것 같으니 슬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몸조심하고... 조만간 영양보충에 좋은 물건이라도 좀 보내주겠네."


이 무뚝뚝한 듯 유머감각이 미묘한 남자의 말이 고마웠다.


안그래도 최근 1달 사이에 거의 10킬로가 쭉 빠졌으니까...


"아! 트레이너! 트레이너의 오른쪽은 내가 1등!"


"앗! 그럼 나는 왼쪽! 에헤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둘에게 사랑(조교/training)받는 생활은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와일드 & 블루의 톱을 향한 트레이닝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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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쓴 것

사쿠라, 끝을 향해 나아가라!
증명할 필요가 없는 tach-nology

영원히 반복되는 황제의 길


필력 딸리고 오탈자 분명 있을 겁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고 나니 (2)의 앞부분 일부를 (1)에 넣는게 맞는거 같기도...

(1) 부분은 일반적인 메가데레같은 느낌으로, (2) 부분부터 얀데레화 + 트레이너 조교(?) 방향으로 하려고 나눈건데 약간 미묘한 느낌

분량도 이쪽이 1.8만자나 됨


소재야 그냥 흔한 후회 집착물에 둘을 스까넣었음


이후에 소재 떠오르면 더 쓸지 모르겠는데 이전에 쓴것들 모아서 조금 손 보고 R18파트를 제대로 넣은 다음에 노벨피아에 올릴까 생각중이라 한동안은 더 쓸지 어쩔지 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