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관을 향해 한 발자국, 그곳에서 멈춘 명마들 #1편 - 사상 최강의 암말, 쿠리후지 |
경주마는 언젠간 죽는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죽음이라도, 병으로 인한 죽음이라도.
그리고 여기, 죽음으로 인해 다시는 3관에 발을 들이지 못한 비운의 2관마가 있다.
사람들은 그 경주마를 가리켜 "환상 속의 말(幻の馬)"라 부른다.
그 이름은 토키노 미노루 (トキノミノル).
타즈나 씨의 원본마라는 추측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토키노 미노루의 생애이다.
토키노 미노루의 아명은 퍼펙트였다. 마주는 퍼펙트가 단거리 적성이라고 생각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경주마 등록 때도 별다른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채 퍼펙트라는 아명 그대로 등록을 했다. 데뷔전에서 레코드를 달성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그게 누군데?"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퍼펙트는 곧 마주의 최애마로 급부상했고, 마주가 존경했던 인물이 쓰던 관명인 "토키노"에 결실을 맺는다는 의미의 "미노루(ミノル, 実る)"를 붙여 토키노 미노루라는 이름이 새로이 붙게 된다.
데뷔전 이후, 아사히 3세 스테이크스 (현 아사히 퓨처리티 스테이크스)를 포함한 7전을 무패로 질주. 이것이 경마를 하지 않는 일반인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면서 사츠키상에서는 인기 1.1배(지지율 73.3%)라는 압도적인 인기로 출주, 기존 기록을 무려 6.1초나 단축시키며 1착을 따냈다. 보통 사츠키상은 갓 클래식에 올라온 말들이 대부분이기에 어지간해서는 1배 대의 배당이 나오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토키노 미노루는 그만큼 대단했던 말이다. 그 압도적이었다던 딥 임팩트조차 사츠키상에서는 지지율 63.0%의 1.3배였으니.
하지만 여기서 악재가 발생한다. 평소 좋지 않았던 토키노 미노루의 오른쪽 앞다리 발굽에 금이 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앞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 주로 체중을 실었던 왼쪽 앞다리마저 붓기 시작해 더비 출주가 불투명한 상황이 되었다. 마주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고, 더비 전날 붓기도 가라앉고 발굽도 나아지면서 출주할 수 있게 되었다.
사츠키상 레코드에 이어 일본 더비마저 레코드로 승리한 토키노 미노루. 이제는 킷카상을 향할 때였다. 허나 토키노 미노루의 앞길을 병마가 막아섰다. 바로 파상풍. 명확한 원인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추측컨대 오른쪽 앞다리 발굽에 금이 간 것으로 인한 감염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마주는 토키노 미노루가 잘 뛰지 못한다는 보고를 듣고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후 파상풍에 걸렸음을 알고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파상풍 치료제를 구하려 했다. (당시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상황이라 경주마용 파상풍 치료제는 커녕 사람에게 쓰는 치료제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마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토키노 미노루는 더비 제패 17일만에 마주의 곁에서 숨을 거둔다.
인기가 엄청났던 토키노 미노루이기에 그의 죽음 역시 커다란 화제로 다뤄졌다. 언론은 마주를 욕하기에 바빴고 마주는 그러한 비판을 반박 없이 받아들였다. 이때 마이니치 신문의 한 기사에서 토키노 미노루에게 "환상 속의 말(幻の馬)"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는데, 이 수식어가 지금까지도 남아 쓰이고 있다.
토키노 미노루의 파상풍 진료부터 죽음까지 모든 것을 기록한 진료 일지는 수의학 발전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한다. 죽음이 오히려 의학의 발전에 도움이 된 케이스. 그리고 마주는 토키노 미노루를 기리며 '토키노' 관명을 더 이상 쓰지 않았다. 때문에, 이 마주가 소유한 말 중에는 토키노 미노루를 제외하고서는 '토키노' 관명이 붙어있는 말은 없다.
그만큼 임팩트도 컸고 그가 떠났던 자리도 컸기에, 1969년부터는 교도 통신배에 부제로 '토키노 미노루 기념'이 붙으며 정식 명칭이 "교도 통신배 토키노 미노루 기념(共同通信杯トキノミノル記念)"이 되었다. 또한 경마계에 큰 업적을 남긴 경주마를 기리기 위해 1984년부터 매년 제정되는 "JRA 경마의 전당 현창마" 원년 멤버로 선정되었다.
토키노 미노루는 경마계에 있어서 하이세이코와 오구리 캡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하이세이코는 제 1차 경마 붐을 이끌면서 쉰내나는 아저씨들 뿐이었던 경마장에 청년과 여성을 불렀고, 오구리 캡은 제 2차 경마 붐을 이끌면서 경마가 도박이 아니라 스포츠의 일환이라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토키노 미노루는 아예 "경마"라는 장르 자체를 대중들에게 접하게 한 계기가 된 말이라고 한다. 당시 제 2차 세계대전 후유증으로 인해 경주마가 턱없이 적었고, 중앙 경마 또한 지방 경마에게 메리트가 밀리면서 더비를 개최하는 것 조차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토키노 미노루 덕에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고 정상적인 개최가 가능했었다고.
3편은 "광기의 대도주" 카부라야 오가 주인공이 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