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트 카드 고증 #0 - 키타산, 사토노
서포트 카드 고증 #1 - [불침함의 진격] 골드 십


서포트 카드 12개 중에 하나씩 골라달라고 해서, 나온 거 전부 평균을 구하니까 대충 7.7이더라

그래서 7번 미스터 시비로 했음







[Dear Mr. C.B.] 미스터 시비

일섭에서는 파인, 능테이오, 능구리와 함께 능지카드 사천왕으로 자리잡고 있는 SSR 지능 서포트 카드이다.




" 클래식 3관 트리플 크라운 "


이 칭호에, 영예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력을 쏟았는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 했는가.

오늘, 그 지고의 자리에 선 셋째 말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일본 경마가 시작되고 "3관"이라는 개념이 생긴 뒤 2022년 현재까지 3관마는 총 8마리에 불과하다. 혹자는 3관마의 출현 간격이 대략적으로 10년 남짓이라고 하는데, 1984 루돌프 - 1995 브라이언 - 2005 딥 - 2011 오르페 - 2020 콘트레일인 걸 보면 대충은 맞는 듯싶다. 허나 여기, 2년 연속으로 삼관마가 된 해가 있다. 바로 1983 미스터 시비와 1984 심볼리 루돌프이다.


일본 경마의 역사 자체는 186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그 시작을 찾을 수 있지만, 현대 경마로써 정립된 것은 1924년 경마법이 시행된 이후로 본다. 1924년 이후로 많은 말들이 3관마에 도전했고, 결국 1941년 전쟁이 한창이던 때 세인트라이트가 첫 3관을 달성한다. 이후 1964년 신잔이 다시금 삼관마를 달성했다.


20년 가까이 3관마가 나오지 않던 일본 경마. 이때 혜성처럼 등장해 3관에 성공한 말이 바로 미스터 시비인 것이다.




흐릿하게 처리돼서 잘 보이지 않지만, 미스터 시비의 뒤로 보이는 것은 경마장 관객석. 그 곳을 향해 시비가 손을 흔들고 있다. 아마도 어떤 레이스를 이기고서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팬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원본이 되는 레이스는 무엇일까. 바로 1983년 사츠키상이다.


지금이야 어드마이어 베가, 스윕 토쇼, 골드 십 등 개성적인 추입마들이 많이 있지만, 미스터 시비가 있기 전까지 일본 경마에 있어서 "추입"이라는 전략은 없었다. 도주, 선행, 선입으로만 구분됐을 뿐, 최후방에서 치고 올라오는 전략따위 없었던 것이다. 도주는 선두를 달리고, 선행은 도주를 쫓으며, 선입은 칼찌를 노린다. 최후방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최후방에서 그렇게까지 대담하게 스퍼트를 걸 만한 깡이 있었을 리는 만무하고, 자칫하다간 마군에 막혀 그대로 꼴찌로 꼴아박을 만한 작전을 세우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스터 시비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롱스퍼트 추입"을 처음 선보이며 일본 경마에 추입이라는 개념을 새로 새겼고, 사츠키상은 시비의 추입이 얼마나 강한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경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시비는 처음부터 추입을 시전해 경기를 이겼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위에도 말했듯 추입은 리스크가 꽤나 있는 작전이다. 만약 말의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아서 스퍼트에 차질이 생기면 그대로 꼴아박는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때문에 스타트에 문제가 있거나, 초반 자리 싸움이 너무 약하지만 그래도 스퍼트 하나는 지리는 말들이 추입을 주로 사용한다. 실제로 추입을 메인 작전으로 사용한 말들은 스타트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일부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시로는 골드 십과 스윕 토쇼가 있다.


시비는 본래 선행으로 달리려는 말이었다. 데뷔전을 선행으로 출발해 이겼고, 그 외에도 몇 번 선행을 시전해 승리한 전적이 있다. 허나 시비는 스타트에 문제가 있었고, 가끔 출발 전에 골드 십처럼 난동을 부려 늦게 출발한 적도 한두번 있었다. 때문에 마주와 조교사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자, 시비의 장점인 스퍼트를 살리면서 늦은 출발이 떠도 이길 수 있는 추입을 선택한 것이다.


선행을 무리해서 선택했다가 결국 3전째에 뼈아픈 2착 패배를 당하고서 그 이후부터는 완전히 추입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렇게 교도통신배, 야요이상을 연이어 승리하고 사츠키상에는 1번 인기로 출주하게 된다. 더군다나 미스터 시비의 아버지는 토쇼 보이. 한때 TTG라 불렸고, 지금에 와서는 그레이드 도입 전 일본 경마계의 레전드라 불리는 3인방인 토쇼 보이, 텐 포인트, 그린 그래스의 일각이기도 한 그 토쇼 보이였다. 토쇼 보이가 사츠키상을 제패한 전적이 있기에, 아들인 미스터 시비 또한 부자의 사츠키상 제패가 될지 사람들의 관심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1번 인기에도 불구하고 단승은 겨우 2.4배. 4번 인기였던 오르페브르(10.4배)를 제외하고, 사츠키상에서 1번 인기로 출주했던 같은 3관마 나리타 브라이언(1.6배)이나 딥 임팩트(1.3배)에 비하면 상당히 저조한 수치이다. 이유는 바로, 사츠키상 당일 나카야마 경마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 비로 인해 상당히 중마장이었던 것이다. 미스터 시비가 발을 내딛는 방법이 중마장에 상당히 불리하고, 아버지 토쇼 보이도 중마장에 약한 모습을 보였었기에 비에 약할 것이라고 평가받고 1번 인기임에도 높은 배당을 받게 되었다.


미스터 시비는 선천적으로 발굽이 말랑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편자를 말굽에 박아도 단단하게 고정되지 않고 자주 빠졌다고. 그렇다보니 뛸 때도 발에 충격을 크게 주지 않기 위해 가볍게 밟는 스텝을 사용했는데, 중마장에서는 확실하고 파워있게 밟아야 하다 보니 불리했던 것이다. 유전자와 몸 조건에 있어서 모두 불리를 견뎌야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사츠키상의 게이트는 열렸다.





미스터 시비는 언제나처럼 16~17순위로 레이스를 시작했고, 3코너에서부터 롱스퍼트를 걸어 최종코너에서는 어느새 선두에 섰다. 이후 10번 인기로 재팬 컵을 일본마로써 처음 이기게 되는 카츠라기 에이스를 제친 뒤, 같이 추입 전략을 채용한 메지로 몬스니를 반 마신 차이로 거리를 좁히지 않은 채 그렇게 나카야마 경마장 위닝 포스트를 통과했다.


당시 과거 시대인 만큼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던 잔디 상태와, 엄청난 비로 인해 불량마장이 되면서 진흙이 무지막지하게 튀었다고 한다. 때문에 기수는 얼굴에 진흙 범벅이 되어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걸 고증한 그림이 바로 아래 그림이다.



서포트 카드 그림에도 미스터 시비에게 진흙이 잔뜩 묻어있지만, 실제 기수에게는 더 잔뜩 묻어있었다고.


사츠키상이 비가 잔뜩 오는 상황에서 개최되었었다 보니 말딸에서는 미스터 시비가 비를 맞는 걸 좋아하는 설정이 들어갔다.

아직 한섭에는 없지만, 일섭에 존재하는 1컷 만화에는 비를 맞으며 산책하는 미스터 시비가 있다.




이후 더비와 킷카상에서도 추입을 선택하고, 모두 우승하며 미스터 시비는 삼관을 완벽하게 따낸다. 특히 킷카상에서는 평소 다른 말이라면 절대로 시도하지 않을, 교토 경마장 제 3코너 언덕에서 스퍼트를 거는 상식을 벗어난 레이스로 1착을 따내면서 3관이 그냥 이루어지지 않음을 보였다. 비록 바로 다음해 똑같이 3관을 따낸 심볼리 루돌프에게 삼관 간의 대결에서 패하면서 그 이후 미스터 시비는 힘을 잃고 추락했지만, 사상 3번째 3관이라는 미스터 시비의 이름은 언제까지고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