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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릭.





하고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머리 속에서는 동굴 속에서 내뱉은 혼잣말처럼 몇 번이고 울린다.


네가 날 알아본 것처럼. 나도 알아본다.

귀를 감추지도 않았고, 그 때처럼 똑같은 머리를 하고 있으니까. 


흔들림 없는 푸른 눈망울은 가을날의 호수를 닮았다. 밤에 비추어진 호수. 트레센 학원의, 미호 기숙사 뒷편에 있는 호수.

이끼가 잔뜩 껴서, 관리를 해도 변하지 않는.

그러니까, 바람이 불어도 좀처럼 흔들릴 일이 없는 호수를 닮았다.


그 전에는 이런 색이 아니었으니까.




"이거이거, 우리 젊은 사장은 보자마자 막 반하고 그러나 봐?"


"..."


"아, 네?"



마다라메 회장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다.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고서 웃음을 가리고 있는 회장.


아, 



"아닙니다. 가시죠."



겨우 정신을 차린다.

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방금까지만 해도... 방금이 아니라.


어제까지만 해도 보육원의 선생님이었다. 우마무스메가 이런 가게에 일할 수도 있다.

닮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애초에 나도 회장처럼 술을 마셨다.


비슷한 얼굴. 비슷한 몸. 얼마든지.


심지어 이런 조명 속에서는, 이런 취기 속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회장을 따라 룸을 향한다. 이상하네. 이런 바라면 당연히 바로 갈 줄 알았다.


그러고보니, 하고 왼쪽으로 눈을 돌린다. 바가 보인다.

스낵(일본식 토속 바) ... 이라고 하기엔 너무 최신식이다.

그렇다고 걸즈바(일본식 토킹 바)라고 하기에는 너무 볼품없다.


바 옆에 가라오케 기계도 보이지 않는다. 


관리하는 남자 점원도 보이지 않는다.



애매한 상태구나.

나처럼.



애초에 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상점가 2층의 이런 건물에.


용케 장사를 해나갔구나 하면서도, 여기에 익숙한 듯 자리에 앉는 회장을 보며 납득한다.

마다라메 회장은 갈색 눈동자를-사실 지금도 어두운 조명에 잘 보이지 않아서 까맣기만 하다- 들어 올리고서 내게 답한다.


"응? 아니야. 아니야. 나 절대로 그런 거 아니야."



오른 팔을 들어 올려서 휘저으며 뭘 아니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긴장도, 의심도 생기지 않는다. 믿고 있는건가.

누구를? 무엇을?



"일단 앉아 봐. 어? 여기 그런 가게 아니야. 그런 가게였어 봐. 미치루가 냅둘 거 같아?"



그거야 그렇지. 하고 회장 옆에 앉는다. 그 성질 나쁠 것 같은 포목점 주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건 분명히 혼자서 여러가지를 떠맡아서 해 내온 사람만이 내뿜는 오라였다.

아버지가 인사 시켜주려 갔던 곳의 포목점 주인을 그랬다. 어떤 의미로 아버지와 닮았었다.


"그러겠죠?"


그러고서 앉은 테이블.

둘이 앉기에 테이블은 커다랗다. 마치 누군가 와주길 바라듯이.



"둘이서 한 잔 하기에는 많이 넓네요."


"그래? 그럼 부를까?"



뭘?



"아뇨 괜찮..."



"미사에씨!"


"어머, 왜 쇼지로군?"


"나랑 우리 젊은 사장님 왔잖아~ 손님 대접이 이러면 혼나?"


"후후훗, 글쎄 우린 그런 가게가 아니래도?"


"그럼 미사에씨라도 괜찮으니까 텐션을 높여 주세요~"


"정말, 어쩔 수 없는 꼬맹이네. 잠깐 기다려. 대신에 추가 요금은 너한테 확실히 받을거야?"


"미치루한테 달아 둬!"


"너한테 달 거야."



술 취했네. 이 사람.

알고 있었지만.








.

.

.

.

.








"그래서... 젊은사장?"



아마, 이 가게에 룸은 하나 밖에 없겠지.

이러한 용도로 쓰는 게 아닐 것이다. 분명히 친구들끼리 파티룸으로 사용하는 공간.

이런 상점가에 대놓고 그러한 용도로 쓰는 공간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거기에 나와, 마다라메 회장. 그리고 가게 종업원, 바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셋.



"네, 네..."



홀복을 입은 여자 둘이 수발을 드는 와중, 위스키 병을 들어올린 마다라메 회장. 나는 자연스레

술잔을 들고 거기에 가져다 댄다. 얼음이 조금 녹아서 온 더 록이라고 부르기엔 어설프지만 분위기는

스트레이트라도 마셔야 할 분위기다. 그만큼 취해있다.

꼴꼴꼴, 술이 이상한 신음을 내며 푸르게 번지는 조명 속에서 흘러 나오고 나는 받아든다.


그런 뒤에 푸하하하고 왜 인지 모르겠지만 웃는 회장. 그런 회장의 입가에 내밀어지는 과일. 멜론.

옆의 여자가 젓가락으로 대접한 과일을 받아 먹고서 양 어깨에 걸친 여자들을 당긴다.



"왜 그래? 즐겨야지 이런 자리에서는."




이런 자리라고 해도.

하고, 회장 옆의 여자들을 바라본다.


솔직히 말해서 여자 나이를 맞추는 건 내겐 어렵다. 그치만 화장하면 20대가 20대 같고, 30대도 20대 같고, 유일하게

10대만이 20대 같지 않아 보인다.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걸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딱히 여기가 화류계도 아니고

그냥 일반 스낵이다. 그런 곳에 이렇게 세 명이나 젊은 여자아이들이 있는 게 신기할 뿐.


나는 잔을 비운다. 옆을 바라보고 싶진 않다.



"아유. 우리 사장님 잔이 비었네."



하고, 눈이 나를 넘어선다. 내 옆. 왼쪽편에 앉아있는 여성에게 향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꼴꼴꼴,



따라진 술잔.



얼음은 이미 다 녹아서 이미 스트레이트다.

들어 올려진다.




"바, 방금 마셨는데요?"



"...야 너. 저렇게 미인인 우마무스메가 따라줬는데 안 마시면 벌 받아요?"



"아... 아하하.. 이것 참. 저도 제 페이스가 있는데 회장님 또 그러신다..."



왼쪽을 바라보지 않는다.

달콤한 제비꽃 향도, 털끝 하나 닿지 않았지만 따스한 온기도

회피하듯이 오른쪽으로 계속해서 달려든다.



"그럼 저랑 짠 할까요?"


"어? 응. 좋지. 좋아요~"



짠, 하고 어설픈 소리가 울린다. 건너 편 바에서는 누군가 가라오케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더럽게 못 부르는 여자 목소리. 구태여 여기서 이렇게 불러야 하나. 라는 생각만이 머리 속을 맴돈다.

아니, 그냥 지금 상황 전체가 마음에 안 들어.


아니아니아니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마.

생각을 멈춰.

그리고 절대로 왼쪽을 바라보지마라.



"근데 왜 옆에 누나가 그렇게 해주는데 쳐다도 안 봐? 싫어?"


"아... 뭘 안 본다는 거에요. 회장님 술 드실 때마다 보고 있는데"


"야 너 그거 범죄야. 잡혀간다?"


"하하하, 그러면 몸이 닿은 회장님 부터죠."


"어? 나 어깨에 팔 올린 거 밖에 없는데?"




짠, 하고 한 잔. 두 잔. 계속해서 갈수록 시간은 갈 길을 잃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점점 둔해져만 간다. 그건 눈 앞의 남자가 흔치 않게 -라고해도 같은 자리를 많이 해보지 않아서 모른다- 만취해서 선을 넘은 소리를 시작했으니까.


"자, 먹여주는 건 고마운데. 우리 동생도 챙겨 줘. 우리 젊은 사장도 아앙 해줘야지"


"아오, 근데 우리 젊은 사장은 여기 데리고 와서 불편한 거 아니지?"


"미치루한테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리고...



"근데 왜 우리 젊은 사장 옆의 친구는 이렇게 이쁜데..."



"우리 젊은 사장은 눈길 한 번 안 줄까?"




"..."


"네...?"




취했으면 곱게 자던가. 하는 마음도 사라진다.

당황하던 마음을 찌른 말을 그대로, 내 몸을 얼어붙게 만들고 굴러가서 식는다.

취기도 가끔씩은 도움이 되는구나.



"언제 제가 안 줬다고 그러세요. 계속 쳐다 봤는데~"


"그래? 근데 계속해서 나만 바라보는게 뜨거운데?"


"좋아해서 그렇죠. 앗, 저 게이 아닙니다?"


"하하하하"











"그래서."



"왜 한번도 안 쳐다 보는건데?"




뭐야.

갑자기 정색하고.

방금 웃으면서 넘겼잖아.




"나도 이렇게 보여도, 장사치거든?"


"뭐야? 나 무시하는거야? 재미 없어?"




그의 얼굴은 삽시간에 차갑게 내려앉는다. 내려앉은 고개에서 쳐다보는 눈알은 마치 찔러 죽일듯이 날카롭다.

취했다. 취한 사람 특유의 적의다. 자신의 무언가에 건드렸다는 그런 적의. 가게에서도 종종 봤다.

생맥을 8잔을 마시고서 그 빈 잔을 들고 휘두르며 던지면 취객. 마다라메 회장은 취했다.


하지만 골치 아프고, 섣불리 반응 하지 못하는 것은

그는 손님이 아니라. 상점회의 회장이기 때문인가.

웃기네. 하고, 왼손을 뻗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녀를 향해서 뻗은 뒤, 느껴지는 온기가 없음에 안도한다.



"봐요? 이렇게나 친한데. 그치?"


하고 얼굴을 빠르게 왼쪽을 돌린 뒤에 마다라메 회장한테 웃어줄 생각이었다.

그 일순.



"..."



"그러네요. 즐거워요. 저도. 이런 멋진 손님과 함께 해서"








돌아 본 곳의 얼굴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

슈퍼 크릭은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얼굴.


평소에 얼마나 다정한 인상인 사람도, 이렇게나 차갑게. 이렇게나 텅 비게 지을 수 있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놀라서 딸꾹질.




"에윽"



"뭐야 젊은 사장? 취한거야?"



"윽, 에윽!"




고개를 곧바로 숙인다.

그... 방금 그 눈은... 날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색. 그 선명한 푸른색의 눈동자는 천왕성처럼 깊고, 혹은 무서웠다.




"하으...하으하으... 하웃.... 하아... 하아아...하아아...하아하아...."




그래.

그녀가 날 용서할 리가 없다.

난 그녀의 모든 것을...



"어, 어이. 젊은 사장?! 괜찮아?"



"괜...괜찮...습니다... 저... 잠시... 화장실 좀....!"





회장이 걱정스레 뻗는 손을 뿌리친다. 단숨에 테이블을 밀어 젖히고, 룸의 문을 연 뒤에 화장실을 찾는다.

믿고 싶지 않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방금까지 왼 쪽에서 이렇게 따스하게, 있었는데.

그럼에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으...하으...하으..."



몇 번이고 개워낸다. 술에 취해서가 아니다. 아니, 술에 취해서 일지도 몰라.

아니야.


그녀가 두려워서.

그녀가 무서워서.

그녀에게 미안해서.


그녀에게 들 얼굴이 없어서.




겨우 개워내고난 후에도 속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감정.

오른쪽 손가락으로 입 안에 집어 넣고서 꾸욱 누른다. 깊숙히 누른다.

자연스레 머리가 변기 입구에 부딪히고, 불꽃이 또 튄다.





겨우 씻어낸다.

코 끝의 냄새는 씻어지지 않고, 동시에 피가 전신을 돌면서 팽팽팽, 오히려 취기가 다시 도는 것 같다.

화장실 거울 아래는 차가운 물.


손을 계속해서 때린다.




"..."




어쩌면, 그녀가 아닐 수도 있다.

슈퍼 크릭이 아닐 수도 있다.

그녀는 어제까지만 해도 보육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데도.



이다지도 무섭다.

혹시나 화장실 문을 열면 그녀가 있을까봐.

그녀가 아닐수도 있는데.


나는 문을 연다.




"아... 트레이너씨. 다행이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시길래. 큰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취하신거네요?












그냥 취하신거네요? 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 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다. 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 그 때처럼 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 그냥 취하신거네요? 고개를 왼쪽으로 그냥 취하신거네요? 웁...우우웁... 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 너는 왜,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는거야? 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 이상하잖아?! 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 웁....우우웁.... 우....하하.... 우악....! 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  그 자애로운 미소에 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 그 다정한 얼굴에 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 우웁....우...우욱....웁...! 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그냥 취하신거네요?







"하윽....하윽... 하하흑....아하악... 흐윽... 아악.... 흐으윽...!"




"...트레이너씨?"




"잠깐, 크릭? 저 손님 뭔가 이상한데?"







"아학....아아아흑...아아악....아학... 어헉.... 아아..아하아악... 헉,헉,헉,헉,헉,헉 하흑, 헉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