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2학년이 되어 난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1년 동안, 병원 신세까지 포함하면 거의 2년에 가깝게 친구가 없었던 것이 너무 외로웠다.

자각하고 나니 심각했다.

내가 종종 우울감에 빠지는 이유도 이것의 연장선이라 생각했다.

간단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소개를 할 때 난 솔직하게 밝혔다.

사고 때문에 입원까지 포함해서 1년 정도 병원에 다녔다.

나이도 다르고 또래랑 대화를 못 한 것도 거의 반 년이 넘어가다보니 어색해서 1학년을 그냥 조용히 지냈다.

그게 너무 불편하기도 하고 성격하고도 잘 맞지 않아서 힘들었다.

앞으로 노력할테니 자주 말걸어주고 도와줬으면 좋겠다.

대충 이런 느낌의 내용이었다.

선생님의 반응은 좋았지만 애들 반응은 미묘했을지도 모르겠다.

대책없이 질러버린 기분이지만 어차피 이런 건 정면승부가 속 편하다.

망하면 망하는 대로, 잘 풀리면 풀리는 대로, 확실히 상황을 정리할 쾌도난마 그 자체니까.

물론 미래의 내가 흑역사로 고통받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가 있지만 사소한 문제다.



그렇게 생각했던 과거의 나에게 달려가 목을 조르고 싶다.

대가리 터져버린 그 미친 놈의 입을 꿰맸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잘 풀렸냐고 묻는다면 맞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도 창피했다.

내가 너무 조용히 있던 탓인지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애들보다 오히려 새로 같은 반이 된 녀석들과 친해졌다.

그런 걸 밝히기도 했으니 걔네 입장에선 어색해질 빌미를 던져준 것 같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또 아니었다.


"행님, 오셨습니까!"

"하지마, 그런거!"


작년에도 리얼충 애들한테도 거침없이 들이대던 레이스 오타쿠 녀석이 그 중 하나였다.

1학년을 지내며 자주 봤지만 그래도 새삼 얘는 사람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한테도 바로 형님, 행님, 그렇게 부르면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거는 진짜 재능인 것 같다.

아니면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으니 일부러 더 노력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루텐 보셨습니까?"

"어, 봤지..."

"우리 마왕님은 질 생각이 없나봅니다."

"걔는 너 얼굴도 모를텐데."


마왕은 어느새 내 동생의 별명이 되었다.

2월에 나왔던 기사 제목이 꽤나 인기를 끌었다.

용사들을 박살냈으니 마왕이라는데 유치하다고 하기엔 커리어나 레이스 전법을 생각하면 썩 어울리긴 했다.



나는 원래 동생의 레이스를 챙겨보질 않았다.

보더라도 하이라이트나 인터뷰 등이나 챙겨보고 레이스 전체를 본 적도, 생중계로 본 적도 없었다.

위닝라이브에서 하트를 날려대고 귀여운 척을 할 동생의 모습을 생각하면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안 보는 것이 서로에게 예의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날은 처음으로 동생의 레이스를 생중계로, 이후 위닝라이브까지 쭉 이어서 봤다.

레이스의 경우엔 오랜만에 추입으로 나가 편하게 레이스를 끝냈다.

게이트가 열리자 도주 포지션으로 빠르게 3명이 뛰쳐나갔고 동생은 그걸 보고 맨 뒤로 자리를 잡았다.

다른 추입 라인에 있는 다른 상대들보다 반마신 정도 뒤에 자리를 잡고 그대로 레이스를 이어나갔다.

동생은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같은 표정을 보여주었다.

그저 앞만 노려보면서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코트를 펄럭이며 달리고 있었다.

같은 표정이기도 했지만 같은 상태이기도 했다.

호흡의 흐트러짐, 어깨의 들썩거림, 보폭의 변화나 체공시간 등의 모든 것이 일정했다.

아나운서도 그 부분을 강조하며 동생의 스퍼트 타이밍이 레이스의 행방을 가를 것이라 말했다.

맨 뒤에 있지만 그 앞에 있는 모두가 동생에게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동생은 중반 마지막 직선부터 외곽으로 슬쩍 빠지더니 그대로 속도를 올려 상대들을 순식간에 앞질러버렸다.

특히나 종반 오르막에서 보여준 속도가 객석의 함성을, 아나운서의 경악을 불러이르켰다.

마치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 옆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성큼성큼 걸어올라가는 수준의 차이였다.

그대로 코너에서 모두를 제쳐버리고 최종직선에 선두로 진입, 이후 순위가 변하는 일은 없었다.

관중들을 향해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동생은 재수없는 마왕님다웠다.



그리고 위닝라이브는 많이 힘들었다.

보는 내가 힘들었다.

손가락부터 목, 팔다리, 온몸에서 돌돌 말려들어가는 관절들을 펴주고 긁으며 공감성 수치를 느꼈다.

예쁘긴 예쁘니까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것이 그렇게 흔들리고 저 엉덩이를 저렇게 흔드니까 남자애들의 그런 반응이 납득이 된다.

그래도 결국 동생인지라 그런 표정들을 보는게 너무 힘들었다.

끼부릴 때의 동생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잘 모르는 내가봐도 춤을 잘 추는 것 같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괜히 내가 괴로운게 억울해서 놀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애쓴다], [힘내라] 같은 메세지를 보낼까 싶었지만 어떤 역풍이 날아올지도 모르겠으니 그만두기로 했다.

억지로 하고 있거나, 진심으로 하고 있거나, 아무튼 본인은 프로의식으로 하고 있을텐데 그것을 놀리는 게 썩 옳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넌 거기서 열심히 살고 있구나.



뒷내용부턴 오래걸릴 수도 있음

딱 여기까지가 세이브본이었음

1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