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결국 누웠다.

동생의 허벅지는 근육 때문에 딱딱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탱글탱글했다.

레이스에서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럴 수가 없을텐데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구조인지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최강의 도주마라는 주제에서 꼭 언급되는 사일런스 스즈카, 그녀는 굉장히 선이 가는 체형이었다.

예전에 한 번 그녀가 나오는 오래된 영상자료를 tv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가는 다리에서 어떻게 그런 폭발력이 나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동생도 그렇고 역시 우마무스메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곳에서 인간과 다른 구조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녀와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동생의 허벅지는 말이 되는 수준 같았다.


"오빠."

"왜?"

"귀는 못 파줄 것 같아."

"왜?"

"가슴 때문에 안 보여."


난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위로 돌렸다.

거대한 산맥 하나가 동생과 내 얼굴 사이에 있었다.


"어우."


나도 모르게 감탄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동생은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 산맥이 내 얼굴에 닿았다.


"이래서 못 해줘."


난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이상, 아니 그 밑으로 딱딱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마터면 동생의 허벅지 위에서 꾸부정하게 무릎을 끌어 안을 뻔 했다.

동생은 그 후로도 종종 내게 들이댔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갈 자꾸 해주려 한다.

적당히 핑계를 대고는 있지만 그렇게 자주 다가오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 정도는 모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우리는 그렇게 친한 남매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어릴땐 티격대기 바빴다.

뭔가 내게 잘못한 것이 있다거나 숨기는게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정작 뭔지는 모르겠다는 것, 덕분에 동생이 집에 오는 날이면 상당히 불편했다.

동생의 합숙 시즌이 되면 또 2달 정도는 얼굴을 안 볼테니 빨리 그 때가 왔으면 좋겠다.

그냥 지금 좀 한가하니 저러는 거라 생각하고 싶다.



우리 학교는 문화제를 1학기에 한다.

작년에 반에서 뭘 하긴 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질 않는다.

적당히 물건 나르는 일이나 조금 도왔는데 정작 문화제 당일엔 도울 일이 없어서 그냥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역시나 조금 


"그러면 우리반은 핫도그 노점으로 결정. 다들 괜찮지?"


반장의 진행은 시원시원했다.

부모님이 핫도그 트럭 운영중이라 도매가로 재료를 구할 수 있다는 남자애 하나가 의견을 제시했고 다들 아이디어가 없던 차에 찬반투표를 바로 진행, 찬성표가 근소우위였고 그대로 학급회의를 끝냈다.

불도저식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다들 뭘 하는 것보단 놀러다니고 싶은 분위기였다.

1학년 때 뭘 열심히 했지만 남는게 피로라는 걸 알았으니 다들 의욕이 없었다.

반에서 뭘 하는 것이 아니라 야외 노점이면 매대만 지키는 소수 인원을 제외하면 많은 인원이 놀러다니는게 가능하니까.

더불어 반 자체를 휴식공간으로 쓸 수도 있을테니까.

그리고 야외 공간을 쓰려면 빠르게 결정해야하니까.

반장은 그렇게 설득했고 통했다.

매대 당번과 요리 담당, 식재 관리나 교체 인원을 포함해도 열 명이 안 되는 인원을 제외하면 다들 자유인 셈이었다.


"내가 걸리지만 않았어도 참 즐거웠을 것 같은데."

"그냥 포기해. 나도 같이 있잖아."


안타깝게도 그 자유가 내겐 없었다.

반장과 나는 지금 매대에 서 있다.

최초 입안자와 반장은 필수로 참여했고 부반장은 나머지 비참여자들의 관리를 하기로 했다.

판매 수익은 뒷풀이 용도로 쓰기로 했으며 추가로 노점 참여 인원들에게 수익 일부를 떼어주기로 했다.

관심 있던 친구들 몇몇이 자원하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인원이 부족해 제비뽑기를 했고 내가 걸렸다.

개인적으론 최저 시급도 안 되는 그 돈 필요 없으니 바꿔줬으면 좋겠다.


"그러지 말고 표정 좀 풀어."

"하필 그걸 뽑아가지고..."

"그래서 일부러 첫째 날 마지막 타임에 넣어줬잖아."

"으에에에에"

"나이도 한 살 많으면서 좀 참아."

"나이도 한 살 많은데 이런 걸 나한테 시켜야겠니?"

"내가 시킨게 아니라 스스로 뽑은 거잖아?"

"쳇."


작년과 다르게 반 애들하고도 좀 친해졌으니 같이 놀러다니고 싶었다.

특히나 이런 오후시간이면 다른 학교 애들도 올 테니 혹시나 청춘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했다.


"그런 걸 기대하는 것부터 이미 글러 먹은거잖아. 한 살 많은 거 맞아?"

"새삼 너 원래 이런 캐릭터였어?"


반장은 작년에도, 올해도 같은 반이고 반장이다.

3년 내내 반장을 할 생각인 것 같았다.

선생님들께 성실한 이미지를 줄 수 있으니 그렇다나 뭐라나.

실제로 반장으로서나 학생으로서, 둘 다 타인에게 모범이 될 것 같은 학생이긴 했다.

청순함, 청량감, 산토리니에서 광고하는 이온음료가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면서 맡은 일은 똑부러지게 잘 한다.

오히려 겉보기와 달리 비서, OL 같은 능숙한 느낌이 있어서 선생님들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근데 왜 나한테는 이러는지 모르겠다.

작년엔 몇 번 챙겨주러 오기도 했으면서 갑자기 태도를 확 바꿨다.


"작년엔 안 그랬으면서 좀 쌀쌀 맞은 것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내숭 안 떨기로 한거야?"

"내숭이 무슨 말이야 오빠~."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나는 표정을 확 일그러뜨렸다.


"오빠 소리 하지마, 여동생 생각나니까."

"여동생이 있었어?"

"어... 있어."


흐름따라 뱉어버렸다.



1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