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식 - 1

#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 X ]

 

언뜻보면 슬롯과도 같은 무언가가 내 눈앞을 둥둥 떠다니기 시작한 것은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내 기억이 뚜렷해지기 시작했을때부터 나를 따라다녔을거다.

 

“현찬아. 아직도 그 슬롯이 보이니?”

 

“조상님께 기도를 드린다면...”

 

“믿습니까!”

 

안과 , 정신과 , 무당 , 사이비.

 

안 가본 곳이 없을정도로 내 유년 시절은 바쁘게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엄연한 비정상. 세상의 누구도 나와 같은 것을 보고 있지 않다는 걸.

 

‘너 뭐하는 놈인데.’

 

시야 한쪽 구석을 가리는 불투명한 슬롯. 초등학교 , 중학교를 넘어 내 자아가 뚜렷해질때도 슬롯은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외계인의 짓이 분명해!”

 

“그건 아니죠...”

 

상담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컬트 동아리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괴짜 선배에게 붙잡혀 사상을 주입당하기도 했다.

 

[ X ]

 

“으응... 아직도 보여?”

 

“보이네요.”

 

20살이 넘었을 나이. 괴짜라고만 불렀던 선배와 연인사이로 발전하고도 표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벌써 전역이네.”

 

“부럽지 말입니다.”


“좆뺑이 쳐라.”

 

“너무 하십니다!”

 

그렇게 군대를 전역하고 여자친구를 떠나보낸 시린 겨울이 지났다. 난 시간이 지나 다시 복학했고 슬롯은 언제나 내 곁을 쫓아다녔다.

 

“집착 좀 하지마라.”

 

이제는 인생의 동반자로 보일지경의 녀석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언젠가 말을 걸으며 대화도 시도해봤지만 될 리가 있을 턱 없었다. 녀석은 언제나 그랬듯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졸업이 다가왔다.

 

남들다가는 적당한 4년제. 전 여자친구 덕에 공부를 했기에 나는 운좋게 인서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춥네... 스읍.”

 

두른 목도리를 더 세게 조이며 어느새 26살까지 먹어버린 나이를 체감했다. 20대 초의 팔팔함은 온데간데 없고 몸은 이제 매너리즘과 나른함이 통제권을 지배한 채 연신 하품을 강요해댄다.

 

“오셨어요 선배?”

 

“어. 나리야.”

 

“커피 사주실?”


“··· 뭐 마지막이니까.”

 

“오오~ 나이스나이스~”

 

유나리.

 

전 괴짜 여자친구의 친한 동생 중 하나였다. 애초에 두루두루 인맥이 넓었던 전 여친이었기에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하나언니는 요새 어떻게 지내요?”


제 머리를 살짝 귀뒤로 넘기며 묻는 질문에 난 고개를 저었다.

 

“글쎄··· 연락을 안해서 모르겠네. 너가 연락 좀 하지 않나?”

 

“아아... 그렇구나. 네? 아뇨~ 먼저 졸업하시고 연락도 없으시구! 정말 서운하다니까요?”

 

“바쁜가보지.”

 

사실 상 집에 늘어져 있을게 뻔했지만 괜히 나오는 씁쓸한 미소에 생각을 날렸다.

 

“앗뜨뜨...”

 

“불어먹어. 춥다고 화상 안 입는거 아니잖아.”


“불어 주실래요?”


제 컵을 내미는 나리의 머리에 작게 딱밤을 먹였다.

 

“헛소리 하지말고. 동훈이가 들으면 울겠다.”

 

“걔 얘기는 갑자기 왜 나와요 선배!”

 

“썸타는거 아니었어?”


“아..아니거든요?! 선배 혹시 여태껏 그렇게 알았어요?”


“뭐어... 그렇지?”

 

“왠지 철벽이더라니...!”

 

‘거짓말 쳤던건가.’

 

예전 술자리때 내 바지가랑이를 붙잡던 동훈이를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이제 졸업인데 뭐.’

 

스읍 -

 

목을 적시는 따스한 카페인을 느끼며 강당으로 향했다. 받을 상따위는 없다만 그래도 기분을 즐길 생각이었다. 어쩌나 저쩌나 20대의 절반을 날린 대학교였으니까.

 

“선배.”

 

“응?”

 

나리의 말이 나를 멈춰 세웠다.

 

“이제 졸업하면... 못보겠죠?”

 

‘난 또 뭐라고.’

 

“아무래도? 가끔 밥먹고 싶으면 부르든가.”

 

지갑 선배가 될 생각은 없다만 나리 정도면야 가능했다. 남자와 여자를 따로 두고서도 나리는 내게 소중한 후배였으니까.

 

“그..그럼요. 선배 혹시 -”

 

“형!”

 

“동훈아?”

 

저 멀리서 멀대같은 놈이 달려왔다. 신동훈.

 

갓 전역한 놈은 밤톨처럼 자란 스포츠 머리로 뛰어오다 나리 쪽을 흘깃 바라본다.

 

‘여자먼저 쳐다보는 싸가지는...쯧.’

 

나이를 먹으니 꼰대라도 된걸까.

 

“응? 나리야 말해.”


“아..아니에요...”

 

얼굴을 붉히는게 수상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자 그럼 이제부저 졸업식을 -

 

“들어가볼게.”


“유나뤼이~ ... 어라?”

 

“네 들어가세요 선배~”

 

“어? 잠깐. 잠깐 주먹 내려... 억?! 어억?! 서...선배!”

 

비명과 인사를 뒤로하고 강당을 향했다. 오페라 하우스마냥 좌석으로 가득찬 안쪽. 꽤 늦게 들어온 모양인지 자리는 구석밖에 없었다.

 

“뭐... 보이긴 하니까.”

 

대학교에서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남은 커피를 들이키곤 그대로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자 회장이 먼저 나와 인사를 -

 

“하암... 왜 졸리냐...”

 

슬슬 눈이 감겼다.

 

지옥의 조별과제 또 수업을 병행한 아르바이트는 커피따위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내 이성을 사정없이 두들겨 반죽했다.

 

‘그러고보니.’

 

전 여자친구의 졸업식도 참여했던 것 같았다. 그때 분명.

 

하아암 -

 

따듯한 공기와 푹신한 의자 덕일까. 졸음이 몰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흐릿해지는 시야. 나른한 기분에 난 그냥 눈을 감기로 했다.

 

‘어차피 분위기만 느끼려고 했으니까 상관없겠지.’

 

쪽팔리게 스태프한테 쫓겨나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꾸벅 -

 

꾸벅 -

 

몰려오는 졸음을 참는 방법 따위는 없었고.

 

“드르렁...”

 

난 그렇게 잠에 들고 말았다.

 

///

 

헤어지자 -

 

“그 때네.”

 

꿈이었다. 지독할정도로 생생했던 꿈.

 

첫 연애. 첫 경험. 그리고 언제나 편견을 가지지 않고 나를 상담해주었던 그녀.

 

전역까지 6개월정도 남았을때였다. 매미가 우는 여름. 괴짜란 별명답게 본인만의 스타일로 옷을 입은 그녀는 제 밀짚모자를 내게 건네며 이별을 권했다.

 

이유는 그녀만큼이나 터무니 없었다.

 

나 사업할거야. 이제 바쁘니까 시간도 없을거고. 그러니 깔끔하게 끝내자 -

 

일방적인 이별통보. 아마도 군인이 되어버린 20대초 남자가 듣는 최악의 선고들 중 하나.

 

여기서 남자의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이미 군대라는 족쇄로 자신은 죄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처절하게 매달리거나.

 

그래 -

 

아니면 나처럼 병신같이 놓아주던가.

 

어느쪽이든 그닥 유쾌한 선택지도 나은 미래도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받아 들일 뿐. 동료들의 이별통보 부메랑이 내게 돌아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화가나거나 슬프지도 않았다.

 

성공해 누나 -

 

응. 다음에 밥이나 먹자! -

 

언제나 괴짜였던 그녀였기에. 원체 자유로웠던 그녀를 속박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시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냐고?

 

“잘지내려나.”

 

그랬다면 이 가슴이 이렇게 먹먹하고 기분이 더럽진 않았을거다.

 

‘루시드드림을 꿔도 이런걸.’

 

난생 꿔본적 없는 첫 경험이 이런 거라니. 불쾌하기 짝에 없었다. 고개를 들어 혹시나 싶어 슬롯을 찾았다.

 

[ X ]

 

‘꿈이라면 될려나.’

 

혹시나 싶은 마음에 난 마음 간절히 염원했고 그 염원은 반쯤 이뤄져버렸다.

 

띠링! -

 

“아?”

 

찬물에 담궈지듯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와버린 정신. 그리고 눈 앞에 떠오르는 무언가.

 

[ 현 시점을 기점으로 세이브 됩니다! ]

 

그에 감탄하기도 전에 난 180도 바뀐 상황에 적응해야했다.

 

철퍽 -

 

불이꺼진 강당. 오래 잠에 빠져들었던 탓일까.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이끌어 바닥을 짚자 무언가 액체를 밟는 듯한 소음이 작게 울린다.

 

“··· 뭔데?”

 

조금 오바하자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주머니에 핸드폰을 기억해낸 나는 그대로 무언가 밟았던 바닥을 비추었다.

 

“...?”

 

휴대폰의 후레쉬가 비추는 웅덩이. 마치 피와 같이 새빨간 그것을 비추고 있자니 후레쉬 끝에 무언가가 걸치듯 나와있었다.

 

‘머리카락?’

 

기다란 머리카락. 왜 바닥에 머리카락이? 라는 생각도 잠시 난 서서히 휴대폰의 후레쉬를 움직였고.

 

“...미친.”

 

난생 본적도 없는 그로테스크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욱.”

 

무언가에 강하게 뜯겨나간 듯 바닥을 구르는 머리. 소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연신 피를 꿀럭이며 내뱉는 그 머리는 들짐승한테 뜯기기라도 한것같은 흉측한 몰골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이어진 머리카락은 내 발 아래에 웅덩이로 향했으며 그 옆에는 잘쳐줘야 걸레짝이 되어버린 목의 단면이 내 발까지 피를 뱉어내고 있었다.

 


우웨에엑!!! -




참지 못한 구역질이 피웅덩이에 섞여 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한다.



“장난...이지?”

 


여전히 울렁거리는 속이 난리를 피워댔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그저 본능적인 생각이었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는 본능.



‘얼마나 잤다고.’

 

난 천천히 피웅덩이에서 발을 빼 나왔다. 그리곤 주인모를 머리를 넘어 계단에 서 그 아래를 후레쉬로 비춘다.

 

“··· 아.”

 

한 구.

 

고작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꿈...인가?’

 

그것말고는 설명조차 되지 않았다. 그로테스크한 공포게임을 보듯한 저 시체의 더미들은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근두근! -

 

어느새 미친 듯이 박동치기 시작하는 심장. 가슴에 손을 얹어 진정시키려해도 비릿한 피내음은 계속해서 흥분을 부추겼다. 당장 움직이기라도 하란 듯이.

 

인생의 그 어느때보다 날카로워진 몸의 감각은 손가락 끝을 스치는 바람에도 느낄정도로 예민해진 것만 같았다.

 

하아 하아 -

 

어느새 거친숨을 토해내고 있는 것조차 모른 채 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아.”


쿠당탕! -

 

뒷걸음질치던 발이 무언가에 걸려 그대로 넘어간다. 공중에 날아가는 휴대폰 라이트.


‘뒤집히면 못찾는다...!’

 

넘어지는 와중에도 나는 급하게 자세를 틀어 휴대폰 쪽으로 몸을 날렸다.

 

철푸덕! -

 

“젠장...젠장...!”

 

확인할 것도 없이 진동하는 쇳내음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축축하게 젖기 시작하는 옷을 애써 무시한 채 난 핸드폰이 떨어진 좌석 밑으로 손을 넣었다.

 

‘닿아라... 닿아!’

 

닿을 듯 말듯한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는다. 사이에 껴버린건지 하필 아침에 깎아버린 손톱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살살 긁어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에 젖어버린 액정을 애써 옷으로 닦아낸다.

 

“나가야 돼...”

 

딱히 생각하고 나온 결론은 아니었다. 그저 본능이 그리 말할 뿐. 고립된 공간을 벗어나고자하는건 당연한 본능이었다.

 

휴대폰을 쥔 채로 난 라이트를 따라 걸었다.

 

우욱 -

 

이건 꿈이 아니다. 미친듯이 생생한 오감을 부정해봐도 돌아오는 것은 혀끝에 남는 비릿한 쇠맛 뿐.

 

 몇 번이고 올라온 오바이트를 달래며 하나같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죽어나간 시체들을 최대한 밟지 않고 넘어선다.

 

 배려라거나 그런 감상적인 감정이 아닌 일반적인 혐오. 난 그렇게 애써 시체무더기 사이들을 걸어나갔다. 본능적으로 발소리를 죽이며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한 채 그렇게 탈출구까지 걸어나갔다.

 

“··· 아.”

 

순간 긴장이 풀린 탓일까. 난 숨을 크게 내뱉었고 그대로 강당의 문 손잡이를 잡았다.

 

‘탈출!’

 

서서히 비치는 빛의 줄기. 들뜬 기분 탓일까.

 

“그어어 -”

 

난 뒤로 달려오는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어..어라?”

 

탈출까지 한 발자국. 갑작스래 우왁스런 무언가가 내 머릿칼을 잡아당겼다. 그 힘이 보통이 아니었기에 내 고개를 맥없이 끌려가는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콰드득!!! -

 

“끄으으으으윽?!!”

 

화끈하면서도 날카롭게 째진 고통이 삽시간에 내 목덜미를 집어 삼키며 이내 단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탈력감이 몸을 지배한다.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통증. 

 

콰드득! -

 

난 2차로 가해져오는 통증 역시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흐악...! 흐아아아악!”

 

철푸덕! -

 

콰득! -

 

“아...아파.”

 

3차.

 

콰드득! -

 

“아파아...! 아파아아아!!!”

 

그리고 4차 역시 맥 없이 허락하며 형편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콰득! -

 

“그만...제발 그...그르륵...!”

 

한계치를 넘어선 고통에 동공이 돌아가고 터진 피분수가 차게 식는 뺨을 적셔댄다. 차오르는 핏물은 발성을 방해하며 들끓었고 통증이 일었던 자리는 마비되기 시작하며 빳빳히 몸을 굳혀갔다.

 

알 수 없는 적의 기습.

 

콰드득! -

 

그렇게 내 시야는 암전 됐으며.

 

[ 세이브를 불러옵니다! ]

 

철퍽! -

 

“시...시바알...!”

 

평생을 함께해온 무언가는 담담히 내게 2화차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