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눈을 떠보니 본 적도 없는 장소였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반 기업의 회의실 느낌이 물씬 풍기는 천장, 시계, 테이블, 스크린과 빔 프로젝터, 검은 플라스틱 등받이가 있는 철제 접이식 의자. 그리고 아까 그 여자와 남자. 거기다 의자에 꽁꽁 묶여 있는 나.

 

일어났네요. 그럼 시작합시다.” 여자가 양손을 비비며 일어난 다음 선배로 보이는 남자를 한 대 쳤다. 아니, 사람을 묶어놨으면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보든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그래도 뭐라도 말해야겠다 싶어서 입을 열자 여자가 바로 대꾸했다.

 

뭐 물어볼지는 다 알고 있으니까 그냥 조용히 하고 설명 하세요. 5분 걸리고, 중간에 질문 있으면 나중에 해요.” 그리고 리모컨을 꾸욱.

 

남자가 25살이 넘어서도 동정이면 대마법사가 된다는 짤이 스크린에 떴다.

 

이거 알죠? 모르진 않을 거고.”

 

끄덕끄덕.

 

다행이네요. 이 말은 사실입니다.”

 

뭐라고요 시발?

 

첫번째 주어를 대한민국 국민, 두 번째 주어를 초능력자로 바꾸면 더욱 완벽하게 대응하는 문장이 되죠. 이걸 설명하기 위해선 다음 그림이 필요한데요...”

 

다시 꾸욱. 이번엔 파란색으로 가득 찬 사람의 그림이 스크린을 채웠다.

 

화면에 보이는 사람을 채운 파란색은 열정입니다. 이 열정은 인간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우리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음식물이나 수분 섭취를 통해 우리 몸을 채워줍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인간에게 있어서 열정이 채워지는 양이 분출되는 양보다 많아지는 현상이 몇 년 이상 지속될 경우, 이 열정은 인간이 통제하기 힘든 능력으로 분출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돌 덕질,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는 경로를 통해 열정을 분출할 수 있어요. 그 중 가장 효과가 좋은 건 역시....” 여자가 말끝을 흐리자 남자가 말을 받아서 계속했다.

성관계입니다. 하지만 윤정화 님은 지금까지 애인 한 명 없었고, 열정을 통제하는 능력을 요하는 삼수 후 간신히 대학에 붙으니 입영통지서나 와서 나라에 몸을 바치고,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긴 다음 지금은...온 몸이 부싯돌이 되는 초능력이 발현되었습니다. 박수!” 여자와 남자가 박수를 쳤다. 온 몸이 부싯돌이라고?

이해를 돕자면, 손가락 두 개를 마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라이터 하나 정도의 능력을 낼 수 있단 거죠. 여기서 하진 마시고요, 스프링클러 작동하니까. 설명을 계속하자면 지금까지 그런 인물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게 대한민국 정부에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작동했죠! 그래서 정부는 이런 초능력자들만 모아서 니들끼리 뭐 나라에 도움되는 일이라도 해보라는 양 공기업을 하나 차렸습니다. 그리고 그 공기업의 회의실 중 하나를 지금 우리가 쓰고 있죠.”

축하합니다, 이제 공기업 직원이 되셨네요. 박수!” 짝짝짝. 이 사람들은 사람 납치해놓고 박수만 치면 다 되는 줄 아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