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요?"

"그때가 거석에 연등회 하는 거석이었을겨. 선암사 가면은 온 산 입구에 연등을 흐드러지게 많이 걸어놨어야잉. 그때 나가 아마 열일곱인가... 열아홉이었나.. 워쨌든 그쯤됐을 것이여. 연등회 하는 게 궁금해가지고 어무니께 밭일 하루만 쉬고 연등회 좀 구경좀 하자고 혔지야. 어무니는 가는 것도 험하다고 무슨 씻나락 까묵는 소리냐고 하셨는디 부득불 졸라서 이장님 차를 얻어타고 갔어야."

"이장님이랑 친하셨어요?"

"우리 아부지가 이장님이랑 친구였어갖고 얻어 타는게 쪼까 쉬웠어야잉."

"우와, 할머니네 엄청 부잣집이었나 보네요."

"나름 넓은 논 있는 그런 집이었어야. 부자는 아이었제. 가만있자, 나가 워디까지 얘기혔당가?"

"이장님 차 얻어타고 가신 것 까지요."

"그렇제. 절 안에 들어서는디 연등이 흐드러지게 많았어야. 분홍 연등이 눈에 들어와서 고것을 보고 있었는디 갑자기 워떤 남자가 와가지고는 자기랑 같이 놀자고 하데. 첫눈에 반해부렀다나. 나는 뭔가 무서워가지고 싫다고 혔어야."

"그 남자는 어떻게 됐어요?"

"근디 막 자기는 차가 있는 부잣집인디 왜 싫어하냐고 억지로 우왁스레 끌고 갈라 했어야잉. 거그다가 옆에서 두 명인가가 더 와가지고 끌고 갈라고 혔어. 참말로 놀래가지고 아무 거석도 못하고 있는디 말이여."

"나빴다. 어쩜 그렇게...."

"저런 썩을 호로잡놈의 자식."

갑자기 할머니께서 욕을 하셨다. 슬슬 치매기가 도지실 시간이라는 엄마 말씀이 생각나서 할머니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할머니의 걸음이 너무 빨랐다. 할머니께 손을 뻗는 순간, 할머니의 손이 다른 관광객 아저씨의 뺨에 닿았다.

"이런 써그럴 놈."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그 아저씨가 화난 말투로 말했다. 당연히 모르는 사람에게 뺨을 맞았는데 화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재빨리 다가가서 그 아저씨께 저희 할머니께서 치매라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할머니께서 치매신데 잠깐 멀쩡하시다가 갑자기 또 이러시네요. 당황하셨을텐데 죄송합니다. 할머니,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밥 먹으러 갈 시간이에요."

어떻게든 할머니를 밥 핑계를 대서라도 여기서 빠져나오시게 하려 했다. 하지만 일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니는 또 뭔디 나를 거석혀? 연등회 와가지고 우왁스레 끌고 갈라븐 그놈이랑 한패당가? 이런 우라질 놈 같으니."

"아니 할머니, 저 할머니 손자 민석이에요. 저 민석이라구요."

"나는 그런 사람 몰러 이런 우라질 놈아. 그라고 날 끌고 갈라항께 좋았당가?"

"할머니, 왜그래요...진짜..."

"이런 금수만도 못한 놈! 뒈져부러라!"

그 말과 함께 뺨이 얼싸해짐과 동시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무얼 위해 여기까지 왔던가. 내가 그 불한당 놈이랑 비슷하게 남을 정도면 나는 할머니께 어떤 존재였던 걸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게 대하지만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할머니라는 존재를 어떻게든 숨기고 도려내고 싶어 했고, 말만 거시면 짜증으로 화답하였다. 그래서 나를 이렇게 대하시는 걸까.

찰나에 할머니께서 또 한 번 내 뺨을 후려갈기려고 하던 참, 저 멀리서 엄마께서 달려오셨다.

"워메 어머님, 또 누구한테 거석하신 거에요!"

"워메 잘못했시요. 나가 그저 잘못했시요. 나가 시방 허벌나게 잘못했시요. 지 좀 살려주시라요."

"어머님, 어머님에게 해끼칠 사람 아무도 없응께 빨리 일로 오세요."

"나가 시방 잘못했소. 나가 잘못했소."

집에서의 상황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어떻게 여기서까지 이 장면을 봐야하는 걸까. 

겨우 할머니를 차에 태운 후 밥을 먹으러 갔다. 마침 오늘이 20일이어서 딱 웃장날이었다.

웃장 국밥은 순천시에서도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밀어주는 그런 음식이다. 특히 순천식 순대국밥이랑 재첩국밥.

그러고보니 재첩국밥을 할머니께서 좋아하셨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나는 왜 이렇게 무심하게 살았는지 참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치매라는 걸 알고서 나를 괴롭혔던 그 아이들이 나를 이렇게 만든건지, 아니면 내 폐쇄적이었던 마음이 나를 이렇게 만든건지.

알 수가 없는 복잡한 감정을 품고 웃장 국밥골목에 도착했다. 나는 순대국밥, 할머니는 재첩국밥, 부모님은 뼈해장국.

"맛있으세요?"

"참말로 맛있어야."

"맛있으시면 다행이에요."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