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렇게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단지 이 일은 누군가에게 알려야하겠기에 쓰는 것 뿐입니다. 선생님은 그저 제 말을 들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선생님은 이미 손 쓰실 수 없습니다.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는 일입니다. 요컨대,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소리지요. 이미 엎질러진 일이고, 이미 끝난 일이고, 이제는 더 나빠질 일도 없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엎질러진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끝입니다. 선생님, 다 끝나버렸습니다. 전부 다 끝장났습니다. 아, 부디 선생님은 안타까워 하여 주십시오… 부디 노여워 하여 주십시오…  선생님은 모든 것을 바르게 보고있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알고 계실것이라 믿습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불을 놓으러 갑니다. 모든 것을 태우고 재로 만들어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할 생각입니다. 선생님, 제발 저를 말리지 마십시오. 제가 하려는 일은 결코 부당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조건 옳습니다. 자명한 이치라는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그만 둘 수는 있습니다. 물론이지요. 언제나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저를 막지마십시오. 선생님은 저를 막으셔서는 안됩니다. 일이라는게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 저는 바로 그 장엄한 불기둥앞에 서서 그 모든 것을 엄숙하게 바라볼 생각입니다. 선생님도 보십시오. 보셔야합니다. 그 불기둥을 바라보시는 동안 선생님은 절대로 시선을 돌려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정면으로 노려보시고, 단 하나도 빼먹는 것 없이 모두, 모조리 기억하시고 원통해 하십시오. 
선생님, 부탁입니다. 제 소원입니다. 제발, 저를 막아 주십시오. 제가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없게.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감히 그런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것을 태워버리다니요? 그것은 제 모든 것입니다. 제 열정입니다. 제 삶입니다. 제 이상입니다. 제 소망입니다. 제 꿈입니다...

아, 이미 불이 붙어버렸습니다. 선생님, 안타까워 하십시오.  하지만, 제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아십시오. 선생님은 들으십시오. 선생님께 전합니다. 저 불은 절대로 제가 붙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것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때는, 이미 그것은 맹렬히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검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불은 저에게도 옮겨 붙었습니다.
선생님, 뜨겁습니다. 제 몸이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길은 제 심장보다 더 붉게 타오르지는 못할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고통스럽습니다. 너무나도 고통스럽습니다, 선생님! 이것은 제 눈과 귀를 태우고 혀까지도 태워버려 저를 장님, 귀머거리에 벙어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선생님, 제가 이토록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은 흐느껴주십시오. 선생님은 모든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선생님만은 부디. 아니, 오직 선생님만이 가능합니다. 선생님은 이 모든것이 불타기 전의 세상을 아시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검고 붉게 타오르기 전의 세상을요. 그러니 선생님은 슬퍼하시겠지요. 선생님, 그러셔야합니다.  제 몫까지 슬퍼해주십시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불은 선생님께서 놓으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선생님은 불꽃보다도 밝게 타오르는 제 심장을 오래토록 간직해주십시오. 

보십시오, 제 심장의 마지막 박동을 두 눈에 새기십시오! 제 심장은 이토록 붉게 타오르고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