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릴적, 아버지는 자주 매를  드셨다. 그 때문에 내가 어릴적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는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께서 매를 드신 날이면, 나는 울다지쳐 잠이 들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잠든 날이면, 아버지는 조용히 방에 들어와 잠든 내곁에 앉아 한참동안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물론, 나는 그때까지도 깨어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내게 속삭이시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널 사랑한단다, 아들아."
그것이 아버지가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 없이 홀로 우리 삼형제를 키우셨다. 내가 어릴적, 아버지는 아버지의 지인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셨고, 우리 집안의 형편은 그때부터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우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 어머니는 집을 나가셨다. 사실, 내가 나의 어머니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주 적다. 아예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릴적에 집을 나가셨기 때문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목 뒤에 커다랗게 나 있던 화상 흉터뿐이다. 그것만은 어째서인지 내 기억 속 한 자리를 분명하게 차지하고 있다.

우리 삼형제는 무서운 아버지에게 감히 대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맞선다는것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딱 한번 아버지에게 반항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반항했던 것은 둘째 형이었다. 둘째형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따졌다.
"왜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게 하세요?"
나 역시도 형과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던 터라 형과 같은 편에 서서 따지기 시작했다.
"맞아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어머니를 만나게 해 주세요."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첫째 형은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형, 형도 조용히 있지만 말고, 말좀 해봐? 도대체 자식이 낳아주신 어머니를 뵙지 못하게 하는 법이 어딨어?"
"그만해, 얘들아. 아버지도 다 사정이 있으신거야..."
당시 나는 어렸기 때문에 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형은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은건가?' 하고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형을 그저 원망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아버지는 소리없이 굵은 눈물 방울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나는 그것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게하는 이유에 대해 형과 내게 설명해주시는 대신, 흐느끼며 그저 하염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셨다. 그것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그토록 무섭던 아버지의 눈물은 우리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고, 그 뒤로 우리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입밖으로 꺼내지않았다.

2.
그 무섭던 아버지는 지금, 그저 힘없이 죽어가는 노인네일 뿐이다. 아버지가 가장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보려 습관적으로 피우셨던 담배가 문제였다. 아버지는 갑자기 쓰러지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어느 날, 우리 삼형제가 아버지 앞에 모두 모였을때,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너희들, 창공의 왕국을 아느냐? 나는 그곳의 전사였단다. 그곳은 지상에 존재했던, 또는 존재할 그 어떤 왕국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드넓은 곳이었지. 아마 너희들은 그곳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거다. 그곳에 대한 비밀은 엄격하게 지켜지니까. 너희들은 아마 하늘 위의 지상낙원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거다. 

우리는 그 넓은 하늘 위의 세계를 세 쌍의 날개로 자유롭게 날았단다. 원을 그리고, 때로는 지그재그로, 때로는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또 우리는 수천, 수만마리의 새들과 함께 날았단다. 그 광경이란… 이 세상의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겠구나. 너희들은 아마 평생 보지 못하겠지만, 나는 보았다. 너희들도 그 광경을 보았더라면 내가 어째서 그곳을 낙원이라 칭하는지 이해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않는다. 만약 너희들이 그 광경을 볼 수만 있다면… 아마도 모두 한입모아 그곳을 낙원이라 부르겠지. 
우리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매일매일을 수많은 새들과 함께 자유로이 날며 보냈단다. 그 행복은 지상의 어떤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지. 

그러던 어느날, 나는 사랑에 빠졌단다. 그곳을 천국이라 부른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천사라고 불렸겠지. 나는 나의 천사와 함께 날았단다. 그것이 하늘 위의 행복 중에서도 가장 큰 행복이었단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새들처럼 구름위에 둥지를 지었다. 나와 그녀는 그곳에서 알을 품었단다. 아마 세개쯤 품었을거야. 그녀는 한시도 알의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어. 그녀는 지극정성으로 알을 돌보았단다. 내가 알에게 질투를 느낄 정도였지. 

알을 깨고 새들이 세상으로 나오던날, 나는 기쁨에 겨워 이렇게 말했단다.
'이 창공의 왕국이 모두 너희들의 것이다! 날아라, 나의 아들아! 높이 솟아라! 하지만, 절대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떨어질때는 눈을 감지 말거라. 그리하여 더욱 세차고 맹렬하게 떨어지거라. 만약 그리하기만 한다면 지상의 왕국까지도 모두 너희들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너의 이름을 부르게 하여 온 세상 천지에 너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곳이 없게 하라. 너의 이름이 울려퍼지지 않는 곳이 없게 하라. 드넓은 창공을 자유롭게 날거라 아들아!'

행복한 나날은 영원할 것만 같았지…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단다. 요술을 부려 천둥번개와 세찬 비바람을 일으키며 셀 수 없이 많은  까마귀들을 거느리는 마왕이 우리의 둥지를, 우리의 터전을 모두 박살내고 나의 천사를 납치해갔단다…"

아버지는 여기까지 말하시고는 연거푸 기침을 하셨다. 우리 삼형제가 아버지께 이제 쉬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고집불통이셨다. 아버지는 곧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아버지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을 쉬지않고 이야기하셨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기억하는 것은 아버지의 마지막 한마디  뿐이다.

"미안하다, 아들아. 저 드넓은 창공의 왕국을 너에게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

아닙니다, 아버지. 저는 이미 드넓은 창공의 왕국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날개 역시 보았습니다. 당신이 구름 위에 지었다고 하셨던 둥지 역시 보았습니다. 그 어떤 곳보다도 따듯하던 둥지를요. 모두 당신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