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눈이 감겨오고 있었다.

밖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많이 내리는 것은 아니고, 딱.

길 위를 하얗게 코팅할 정도로.


당직사관은 이미 자고있었다. 의자 두 개를 붙여 하나는 뒤로 쭉 땡겨 등을 기대고, 다른 하나에는 다리를 올린채.

초병의 남는 스키점퍼 하나를 몸 위에 덮은 채로 코를 골고 있었다.


비실비실한 목소리로 교대신고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 불침번을 마지막으로 한 채, 행정반은 반복되는 소음의 정체에 빠져들었다.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당직사관의 코고는 소리.


규칙적인 소리들의 화음이 점점 귓가에서 멀어져가며 한 줄기 의식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몽롱함의 한 가운데에서 행정반 바깥, 막사쪽 문이 열리는 소리가 산란하는 의식 한 가운데를 뚫고 들렸다.

잽싸게 고개를 들고 당직사관을 채 깨우기도 전에 행정반 문이 벌컥 열리며 네줄 완장을 어깨에 매단 군수과장이 인상을 벅벅 쓰고 손을 비비며 들어왔다.


"하, 씨 춥다. 추워. 장갑낄걸."

"쉬어! 3중대 근무중 이상 무!"

"어. 그래. 그래. 당직사관은?"


사관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큰 목소리로 보고했건만, 사관은 당최 눈을 뜰 기미가 아니였다.

불안한 내 시선을 따라 당직사관의 자고있는 모습을 본 군수과장의 인상이 더더욱 험악하게 구겨졌다.


"하, 이 새끼봐라. 야. 야. 저 새끼 깨워."


군수과장의 입에서 욕이 걸죽하게 튀어나왔다. 

나는 당직사관의 옆으로 가 슬슬 어깨를 흔들었다. 


"사관님. 사관님. 일어나셔야합니다."

"아... 깨우지 말랬지."


내 애탄 손짓에도 불구하고 당직사관은 눈을 뜨지도 않은채 고개를 돌려 스키파카 속으로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 뿐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당직사령은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몇번 짓고는 말했다.


"야. 나와. 나와."


잽싸게 옆으로 비켜서 총기함에 붙자 당직사령이 성큼성큼 다가와 스키파카를 홱 낚아채들었다.

갑자기 다가온 찬 기운에 당직사관이 끙끙대다가 눈을 사알짝 뜨고는 바로 보인 네 줄 완장에 기겁해 허둥지둥 다리를 올려놓은 의자를 밀치고 일어섰다.


"3...3중대. 아니. 충성! 3중대 근무중 이상 무!"


그런 당직사관의 머리 위로 당직 사령이 들고다니던 체크리스트가 떨어졌다.

코팅한 종이들이 맞부딫히면서 나는 요란한 소리가 지나고, 군수과장의 혀차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새끼야. 부끄러운 줄 알아. 소대장이라는 새끼가 뭐? 깨우지 마? 미쳤나 아주 이게. 여기가 느이집 안방이야? 새끼야?"


당직사령의 불호령이 떨어질 때 마다 당직사관은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나는 재빠르게 뒤로 돌아서 총기함과 벽을 쳐다보았다.


"아주 빠져가지고. 야. 그럴거면 씨발, 그냥 BOQ들어가서 쳐 자. 쳐 자라고. 이 새끼야. 정신못차리고."


당직사령의 욕설에 간간히 들려오는 당직사관의 기어들어가는 변명과 대답.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당직사령이 거칠게 문을 열어 반쯤 문가에 몸을 기댄채 말했다.


"너 이새끼야. 똑바로 해. 똑바로. 알았어? 다음번에도 이따위여봐. 니는 대대장님한테 지휘보고할거니까."

"죄송합니다."

"야. 하, 씨. 까먹을 뻔 했네. 폐목재 버리는데 쪽, 구체력단련장."

"넵."

"거기 불. 불 켜져있으니까 가서 확인해봐."

"예. 알겠습니다."


폭풍이 나가고, 당직사관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재빨리 문 밖으로 나가 외쳤다.


"충성! 계속 근무하겠습니다!"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당직사령은 차단기 다 내렸는데. 라는 뜻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다시 행정반 안으로 들어오자, 당직사관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자리에 앉아 갈색 눈이 뭍은 정강이를 매만지고 있었다.


"야. 하, 씨. 당직사령이 오면 온다고 말을해야지. 니만 살겠다 그러냐?"

"죄송합니다."

"죄송은 시발. 하. 폐목재 버리는데가 거기야? 그, 300고지쪽 울타리?"

"네. 맞습니다."


당직사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3중대 생활관에서 구 체력단련장까지는 거리가 멀었다.

충의천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대대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지나고 페목재를 쌓아놓은 물골을 건너는 외나무다리.

외나무다리까지 건너야 파란 슬레이트의 지붕을 가진 구 체력단련장이 있었다. 


사관은 불평불만을 내쏟으며 베레모를 찾기 시작했다. 자기가 확인했으면 자기가 가면 될 것이지, 왜 공연히 이런 걸 시키냐는 말들을 뱉던 당직사관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 찾으십니까?"

"너 구 체력단련장 가봤지."

"네. 그렇습니다."

"너가 갔다와라. 거기 백퍼센트로다가 5대기팀이 순찰돌면서 차단기 안내리고 사령한테 내렸다고 거짓말한거야. 전기가 좀 오래되서 그거 누전나서 불켜진거일거라 그냥 차단기 내리면 돼."

"저 혼자갑니까?"

"그럼 씨. 같이가리? 무섭냐?"

"아닙니다.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하는 대답을 끝으로 당직사관은 다시 스키카파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그 모습을 살짝 째려보다가, 나는 베레모를 쓰고 견장이 제대로 달려있나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통제성 열쇠 하키가 목에 제대로 걸린  걸 확인하고 문을 열려는 순간, 당직사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가냐?"

"지금 나갑니다. 충성! 다녀오겠습니다."


스키파카 밖으로 삐져나온 손이 앞뒤로 흔들렸다.

문을 닫고, 좁은 복도를 지나 막사 밖으로 나오자 불침번 둘이 반갑게 인사해왔다.


"오, 김뱅상뱅님. 개털리셨슴까?"

"그래. 민규야. 너는 당직사령님 보면 경례 딱 박어서 안에까지 들리게 해야지."

"오... 군수과장님 CP가 아니라 즈어쪽 초소쪽에서 오셔가지고 못봤슴다. 보고 경례 박을라 했는데 그냥 고생한다 말 한마디 하시고 들어가셔가지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당직사령이 왔다는 초소쪽을 바라보았다. 대대 뒤쪽의 300고지를 감싸는 울타리의 초소였다. 지금은 CCTV로 관제하고 있어서 투입하지는 않지만.


그 쪽을 향해 몸을 돌리자, 말없이 있던 불침번이 말을 걸었다.


"병현아. 뭐, 어디 가냐?"

"박진식 병장님. 사령님이 저기, 구체력단련실 불켜져있다 해서 확인하러갑니다."

"응? 근데 거길 너가 왜 가냐?"

"사관님이 저보고 갔다오랍니다."

"혼자??"


박진식 병장은 내 말을 듣고 잠깐 고개를 갸웃 갸웃 거렸다. 그러고는 옆으로 몸을 돌려 다른 불침번에게 말했다.


"민규야."

"일병 황.민.규."

"너네 구체단실 뭐 얘기 들은거 없어?"

"엥. 그런거 없슴다."

"음."


박진식 병장은 그 다음으로도 잠시 음.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말을 이었다.


"거기 혼자 가면 안돼. 보급관님하고 당직 같이 서면 순찰돌아도 그쪽은 절대 안가셔."

"오, 뭐 귀신이라도 나온답니까?"

"어. 너희 몰랐냐?"


뜬금없는 박진식 병장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난 1년 2개월간 군생활하면서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아니.. 지금 그쪽 가야하는데 그런소리 마십쇼."

"병현아. 진짜야. 부사관분들 당직 설때 그쪽으로 절대 안가. 옛날에 신기있는애가 거기에 귀기가 가득하다고, 절대 비오는 날 혼자가면 안된다고하더라."

"그건 또 무슨... 누가 그럽니까?"

"몰라. 전역했겠지. 인사과 한윤주상사님한테 들었어."


박진식 병장의 말을 듣자 발이 섣불리 떼지지가 않았다.


"오...이제 그럼 귀신보러 가시는 겁니까?"

"야. 귀신이 어디있어."


황민규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나는 살짝 발끈하며 말했다. 나는 손전등 끈을 어깨 견장에 매달아 묶었다.


"박진식 병장님. 귀신같은게 어딨습니까. 그런걸 믿으시다니, 정말 실망입니다."

"너 5대기 순찰코스 알아? 걔네는 구체단실 근처는 얼씬도 안해."

"사관님이 5대기가 차단기 안껐을거라고 저보고 가서 끄라던데 말입니다."

"3소대장? 그 인간이 뭘 알긴 아냐? 그냥 자기 가기 싫으니까 아무소리나 주워삼는거지. 야. 잘됐다. 그냥 가지 마. 가지 말고 불 안꺼진다 그래."


살짝 혹하는 기분이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울타리쪽 초소를 가리켰다.


"저기 cctv있어서 안 가고 뺑끼치면 걸립니다."

"허 참. 안 가는게 좋을 것 같은데."

"귀신같은게 어딨습니까.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야. 귀신보면 소리쳐라. 거기로 뛰어갈게."


박진식 병장의 말을 손짓으로 받으며 나는 몸을 완전히  돌렸다.

울타리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자갈길을 지나 초소 앞에 서자, 고가초소의 입구에 하얀색 판넬로 써붙여진 2-3초소 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 글자 옆으로는 CCTV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 CCTV 야간 근무자가 누구더라. 3중대 순번은 아니였다. 아는 사람도 아닌데 뭐.

나는 초소로부터 몸을 돌려 울타리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얀 흙길 위로 눈으로 덮여가는 발자국들이 남아있었다.

당직사령이 내려간 발자국, 그리고 되돌아온 발자국.

그렇게 울타리를 따라 내려가자, 대대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충의천이 나왔다. 

검은색 철제 수문 위에 하얗게 쌓여가는 눈을 보면서 콘크리트 다리를 빠르게 건너갔다. 다리 아래로는 죽은 나뭇잎과 잘라내 말라비틀어진 풀들이 눈을 맞으며 쌓여있었다.

다리를 건너 도로를 지나자 앞으로는 대대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보였다. 쓰레기 분리수거장 위를 울타리 방향으로 외로이 비추는 경계등을 지나자 폐목재들을 버리는 물골이 있었다.


여기 이상으로는 넘어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밤. 당직사령도 그건 마찬가지인 것 처럼 보였다.

초소에서부터 보인 얇게 코팅된 눈 위로 찍힌 발자국들은 여기까지가 마지막이였다. 물골 위에 있는 위태위태한 외나무다리 위에는 그저 눈만이 소복이 쌓이고 있을 뿐이였다.


외나무 다리 너머로는 구 체력단련장이 보였다.

파란 지붕. 얼룩이 덕지덕지 묻은 하얀 판넬 벽. 그리고 당직사령이 말한 것 처럼, 희미한 빛이 체력단련장에서부터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싸고있던 손을 빼 어깨에 매달았던 손전등을 들었다.

외나무 다리 위에 발을 올리자, 다리가 무게를 견디며 내는 삐걱 소리가 길게 울렸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나는 순간 숨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귀신이 나온다던 박진식 병장의 괜한 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삐걱 삐걱대는 외나무 다리를 건너 낡은 건물의 유리문 앞에 나는 섰다. 유리문은 검은색 테이프로 안에서 막혀 내부를 볼 수는 없었고, 손잡이는 체인으로 감겨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다.

소용없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공연히 유리문 두개의 손잡이를 잡고 동시에 흔들었다. 물론 문은 그저 흔들릴 뿐, 자물쇠나 체인이 풀릴 기미는 없었다.


차단기를 내려보라고 했지.

나는 차단기를 찾아 건물을 돌아 건물 옆쪽으로 향했다. 외나무다리에서는 보이지 않던 부분. 하지만 차단기처럼 보이는 건 없었다.

대신에 붉은색으로 X표쳐진 문만 볼 수 있었다. 문 손잡이는 온통 녹슬어 붉게 변해있었다. 문을 열어볼까 하고 손잡이를 잡아봤지만 문 위쪽으로 자물쇠가 덕지덕지 붙은 것을 보고 나는 금새 포기했다.


다시 벽을 돌아 이번에는 건물 뒤쪽으로 돌아갔다.

건물 뒤쪽 벽에도 차단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지하로 향하는 계단과 쓰지 않는 유류탱크만이 반겨줄 뿐이였다.


구체력단련실 지하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손전등을 내려 계단을 비추었다. 짧게 나있는 계단의 끝으로는 검은색 철제 문과 그 위로 하얀 페인트로 보일러실이라 씌인 글자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차단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차단기를 찾아 건물을 다시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왼쪽 벽에도, 정면에도 없었다.


다시 붉은색 X표 쳐진 문 앞으로 가자, 건물 뒤쪽으로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는 쿵 소리가 났다.

떨리는 마음으로 구 체력단련실 뒤로 갔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봤던 대로, 유류탱크와 계단. 그 뿐이였다.


손전등을 다시 내려 계단을 비추자 그제야 달라진 것이 보였다. 아까는 분명 굳게 닫혀있던 검은 철제문은 살짝 열려있었다. 그리고 그 끝으로는 붉은 조명이 보였다.

쌓이는 눈을 밟으며,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 검은 문의 길다란 손잡이를 잡고 당겼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기름칠이라도 된 것 마냥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안은 온통 붉은 조명뿐이였다. 붉은 조명들 틈으로 웅웅대는 보일러가 보일 뿐이였다.

별 것 없네. 바람이라도 불었나. 하고 문을 다시 닫으려는 순간, 안쪽 깊숙한 곳에서 알수 없는 흐으윽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을 다시 열어제꼈다. 소리는 분명히 나고 있었다. 보일러실의 붉은 조명이 비추는 끝에서, 분명히 소리는 나고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안으로 발을 디뎠다. 


누가 있는거지? 여기는 아무도 쓰지 않는 곳인데? 누가 숨으러 왔나? 혹시 자살이라도 하러 왔나?


온갖 안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마구마구 스쳤다. 그럼에도 내딛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군가가 저 안에 있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으니까.


붉은 조명에 가려 손전등의 빛은 희미하게만 보였다. 나는 보일러 기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소리가 들려오는 벽의 끝에 가 섰다.

조명은 더이상 비춰주지 않았고 눈 앞으로는 벽, 그리고 모서리를 돌아 있는 공간 뿐이였다.


소리는 거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모서리를 돌아 있을 공간에서.

그리고 내가 이상함을 느낀건 바로 그 순간이였다.

손전등이 벽을 비추고 있지 않았다.

손전등의 빛이, 붉은 조명 너머를 비추고 있지 않았다.

벽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벽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제자리에 멈춰설 수 있었다.

잊었던 공포들이 미친듯이 몰려와 발목을 잡아챘다.


흐으윽 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확인하러 갈 수 없었다.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코너를, 모서리를 돌자마자.

바로 그곳에 소리가 있었다. 


나와 소리 사이에는 오직 90도로 된 얇은 모서리만 있을 뿐이였다. 붉은 조명으로 비춰지는 벽만 있을 뿐이였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뒤돌아 도망갈 수 없었다.

뒤도는 순간 볼 모서리 너머의 소리를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뒷걸음질 칠 수도 없었다. 뒤는 쉬익거리는 보일러 뿐이였다. 보지 않고 몸을 비집을 순 없었다.


몸을 붙잡는 긴장 속에서, 끝없이 귓가를 맴도는 알 수 없는 소리와 보일러소리가 섞여 내 의식을 낚아채가고 있었다.


그렇게 눈앞은 점점 흐려져갔다.



내가 눈을 뜬 건 군 병원의 병실에서였다.

그 곳에서 나는 보급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상황을 설명받을 수 있었다.


내가 구 체력단련실로 가고, 근무를 교대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자 박진식 병장과 황민규 일병은 당직사령에게 가서 말했고, 당직사령은 둘을 데리고 가 구 체력단련실 앞에 쓰러져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했다.

나는 보급관에게 내가 본 것과 들은 것을 모두 이야기했다. 내가 말하는 내내 침묵을 지키던 보급관은 내 말이 끝나자 한마디 할 뿐이였다.


거긴 지하실이 없다.


병원에 있는 동안 나는 구체력단련실이 감찰결과 안전등급  위반으로 철거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퇴원인솔하러 온 레토나의 뒤에 타, 눈으로 하얗게 덮힌 대대를 가로지르며 나는 정말로 구 체력단련실이 없어진 걸 볼 수 있었다.


그게 내 마지막 군대에서의 겨울이였다.

그 다음으로는 그런 일은 없었다. 흩날리는 낙엽을 맞으며, 무사히 전역할 때 까지, 붉은 조명도, 흐으윽 하던 소리도, 그리고 검은 철문의 지하도.

볼 수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오곤 하는 날이 되면,

얇게 내려 바닥을 펴바르는 눈이 오는 날이 되면,

어디선가 그때의 그 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돌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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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걸 즐기는 편은 아닌데... 무서운걸 좋아하긴 합니다.

천성이 겁이 많아서 그런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