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대를 드넓은 공터 위에 놀려본다.
힘들여 정리한 노트도,
한때의 감성에 짓눌려 써내려간 습작도,
돌이켜 읽어보면 휴짓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차디찬 비바람이 귓가를 때려
선잠에서 깨어나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냉엄한 벽 뿐.
다만, 이렇게 내가 계속 움직이는 것은
내 안에 무엇이 자리해서일까.
배격하여 없애야 하는 것임을
나는 알면서도 안고 가려 하는 것일까.
철없는 한 때의 몽상일지도 모른다.
시류에 뒤쳐진 아집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나는 펜대를 놀려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