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린다



봄은 나들이의 계절


흩날리는 꽃잎의 눈보라를 가로지르는


강아지 같은 애 딸린 가족


만난 지 1년도 채 안 된 연인


반 세기는 함께해온 노년의 부부



돗자리 하나 깔고


도시락통에서 샌드위치 하나만 꺼내들면


소풍 기분이 나는


온갖 풀에도 온갖 나무에도 꽃이 피는


화려 강산의 계절



봄은 나들이의 계절


흩날리는 꽃잎의 눈보라 사이의


꼭두새벽에도 불 켜진 공장


다 무너져 가는 판잣집


무료 급식소



돗자리 하나 깔고


도시락통에서 샌드위치 하나만 꺼내들면


저어 절벽 너머로의 소풍 기분이 나는


온갖 풀에만 온갖 나무에만 꽃이 피는


유리 걸식의 계절



바위로 태어난 죄는 무슨 죽을 죄이며


쇳덩이로 태어난 죄는 무슨 대역죄인가


원죄에 대한 단죄의 시간을


서른네 해 만에 스스로 끝냄은 괘씸죄일까



소박하지만 새하얀 꽃 피우던


겨울이 그립더냐


풀도 나무도 가로등도 자동차도 지붕도


꽃 피우던 겨울이 그립더냐



그래서 뭐하너냐


국회의사당 둘레길 뒤에서부터 열네 번째


우뚝 선 벚나무로 태어났기에


나는 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