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지루하다. 


분명히 일어서 있는데도,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졸음이 쏟아질거 같았다. 체감상 1분에 한번씩 하품이 밀려오는 듯 하다. 하품이 나와서 나온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또 다시 하품이 새어나올 정도다. 김이 빠질대로 빠진 몸상태는 적당한 활동이나,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숙면을 원하고 있었다. 


야간 시간대는 정말로 미묘하다. 초반에 발주 되어온 상품을 진열하고, 청소를 하고나면 할게 없을정도로 한가하다. 하지만 할게 없다고 해서 완전히 늘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주기적으로 간간히 찾아오는 손님들의 수는 적지만 낮의 손님들에 비하면 진상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야간은 잠이 올 정도로 널널했다.


원래 이 시간대에 일하는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지루한 이 시간을 활용할 방법을 가지고 있겠지만, 잠이 많은 나로서는 이 시간까지 깨어있는것조차 고역이었다. 표백되어가는 정신머리를 붙잡아 주는건 간간히 찾아오는 손님들이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있으면 신경은 쓰이니까 잠시나마 졸음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밤이 더 깊어감에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점점 더 뜸해졌다. 음악을 틀어도 폰을 들여다 보고 있어도 좀처럼 잠이 깨질 않는다. 정적이 계속 되었다. 들리는 거라곤 무식하게 커다란 냉장고에서 웅웅거리는 소음정도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계속되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눈 앞이 캄캄해지고 소음마저 들리지 않기를 수차례. 그 상태에서 억지로 깨어나기를 또 수차례. 의식은 모스부호처럼 수없이 명암을 오고가고 있었고, 계속 그곳에 붙어 있다간 잠이 들거나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았기에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뛰쳐 나올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바깥 바람을 맞으니 조금 나아진 기분이었다.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아무도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그런 생각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를 크게 들여 마시니 폐에 사무칠 정도로 스며 들어온다.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숨은 아주 깊게 그렇지만 천천히 담배는 타들어갔다. 두 개피 째를 거의 다 태워갈때 즈음에 이젠 자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걸로 봐선 손님인 듯 하다. 담뱃불을 발로 밟아서 끄고 옷을 대충 털어서 배여버린 담배냄새를 조금이라도 날려 보내고선 매장 안으로 돌아갔다. 


"어서오세요."


역시나 잠시 뒤에 손님이 들어왔다. 나이는 대략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여자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개의치 않고 매장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음료수가 있는 냉장고 쪽이었다. 거기서 무언가를 빼오더니 다음엔 식품 진열대에서 잠시 서성거렸다. 전부 고르는 데에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소주 세병과 마른 오징어채, 과자 한봉지.


계산을 하고 나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여자를 훑어보았다. 위아래로 편한 추리닝 차림인걸 보니 꽤나 가까운 곳에 사는 모양이다. 다만 추리닝 위에 걸쳐진 숄더백은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봉지는 됐어요."


내가 숄더백을 쳐다 보는게 신경쓰였는지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자신쪽으로 당겨서 끌어안은 채 계산이 끝난 물건들을 주섬주섬 넣기 시작했다. 


"여기에 항상 계시던 분이 아니시네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대답을 이어나갔다.


"아, 그 분은 일이 있어서 대신 나왔습니다."


"저기, 무슨 일 때문에 그런건가요?"


입에 고인 침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게 느껴졌다. 


"요즘 세상이 흉흉하니까 걱정이 되네요."


여자는 웃으면서 붙임성 있는 말투로 덧붙여 말했다. 의미를 알수 없었다.


"음... 사실은 좀 크게 다치셔서 병원에 계시거든요. 당분간은 나오시기 힘들거 같네요."


최대한 머릿 속에서 단어를 골라가며 말을 했다. 


"그것 참, 어쩌다 그렇게..."


여자는 손으로 입을 감싸쥔 채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입의 모양은 손으로 완전히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혹시, 점장님이 입원하신 병원이 어디신지 아시나요?"


"자세한 얘기는 저도 못들어서요. 그것까지는 잘모르겠네요."


"그렇군요... 아쉽게 됐어요."


여자는 진심으로 동정하는 눈길을 내비치며, 돌아서서 가게를 나섰다.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했지만 여자는 대답은커녕 돌아보지도 않았다. 나는 카운터에 한참을 서서 매장을 나선채, 점점 멀어져 가는 여자의 뒷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샌가 졸음은 완전히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아까부터 목이 타들어 가는거 같아서 음료수 캔을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갈증이 해소되니 이번에는 담배 생각이 절로 났다.


어두침침한 새벽이 끝나고,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휴대폰을 보니 시간은 오전 6시를 넘기고 있었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라면 슬슬 바빠질 시간대다. 실제로 아까까지만 해도 인적이 없는 거리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연거푸 담배를 들이 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하며, 만지작거리던 휴대폰을 보다가 이윽고 전화를 걸었다. 의외로 상대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점장님. 

네. 잘하고 있죠. 

근데 아까 전에 그 여자가 찾아왔던데요. 

그... 물건 훔치고 경찰서에 풀려나서 점장님 찌른 그 미친 여자요. 

인상착의 보니까 확실해요. 정말.

네. 좀 있다가 경찰들 불러서 cctv 확인 하려고요. 

아무래도 퇴원해도 당분간 안나오시는게 좋을거 같아요.

네. 그럼 몸조리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