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운을 떼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수기를 읽기 전 당신이 알아야 하는 건 내가 죽었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지독하게 한심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산과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남부 지방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지주로서 목화 농장을 운영하셨는데 노예를 적어도 백 명을 두셨고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면서 동시에 돌아가셨다. 내 큰형은 군의 장교로 멕시코에서 싸웠고 둘째 형은 대학을 나와 법을 배워 판사가 되셨다. 나는 우리가 사는 저택에서 가장 작고 어둠이 들이차 습하기까지 한 나의 깊은 성역인 3층 왼쪽 구석 방 안쪽에서 소설을 집필하는, 적어도 그리려고 하는 작가였다. 책은 한 권도 팔리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점이 내 혈통에 걸맞은 죽음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일찍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보이는 후회와 분노는 보이지 않으시는 정중한 신사셨고 내 형님들은 그분을 본받아서 어머니의 불같은 성격을 물려받아 거칠었지만, 항상 선을 지켰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우리 집안은 성공했고 남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어머니가 없는 점만 뺀다면 이상적이기 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 완벽함에 해당하지 않았다. 나는 결함품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두려웠고 심지어 검둥이 하녀에게까지 명령하는 것조차 서툴렀던 나는 작은 용기조차 없어서 이 집안의 어울리지 않고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생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서재로 갈 일이 아니면 밖에 나가지도 않았고 인생 대부분을 내 방에서 보냈다. 


식사를 하는 것도 나에겐 불편한 의식이나 다름없었다. 인형처럼 우두커니 서서 물잔이나 접시만 바라보고 있는 노예들의 게슴츠레한 눈빛과 화려함과 빛으로 수의를 입은 형님들과 아버지의 모습과 대비되는 나의 비참함에 나는 조용히 고기를 씹을 수밖에 없었다. 그분들이 화목한 대화를 나누실 때면 나는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져서 마치 인간의 몸에서 벗어나 음식을 노리는 벌레가 된 것만 같았다. 음식을 먹기도 쉽지 않았다. 심장과 내장에 이물이 내리 앉아 날 답답하게 했고 음식을 삼키기 힘들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아버지나 형님들에게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다행히도 아니면 저주스럽게도 그분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웃으며 나의 단점을 받아들여 주셨다. 적어도 그런 가식을 보였다. 가족의 사랑이라고나 할까 그때는 단지 부끄럽기만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점이 날 자살로 내몰았던 일종의 압박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정말이지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과 같아서 나 자신도 어찌할 바 모르겠다. 서재에서 가끔은 하녀들의 비웃음을 듣는다. 백인인데도 불구하고 흑인들의 비웃음을 듣는다.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짐승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단지 내 착각이라고, 스스로 되뇌면 그럼 직접 가서 물어보라고 내 용기가 짖는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난 하녀들조차도 두려웠다. 인간이 두려웠다. 나 말고 다른 모든 인간이 두려웠다. 그들의 행동이 어떻게 변할지 몰랐기 때문에 두려웠다. 이상한 일이다. 난 아직도 왜 인간이 두려운지 구체적으로 모른다.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걸 내가 겁쟁이라는 사실을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걸까 그러면 내가 겁쟁이로 태어난 이유가 뭘까? 겁쟁이인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질문은 내 뱃속처럼 뱅글뱅글 돌아서 일종의 토악질로 배출된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의 서재에 실례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입속의 내용물을 다시 삼킨다. 그때쯤이면 머리가 빙빙 돌고 오른쪽 귀에선 이음이 들려서 이 공간 속에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그렇다. 서재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다. 늙은 검둥이 집사 한 명이 항상 서재를 지키고 있다. 내 행동을 지켜보면서 항상 못 본 척해주는 가구 같은 놈이다. 나는 이놈을 증오한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또 나를 얼마나 비웃고 있을지 또 우리 집안에 어떤 짜증 나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직접 묻지 않아도 다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머리가 없어도 그 정도 머리는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없었다. 나는 겁쟁이에게 행동력도 없는 더러운 걸레에 불과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분명히 내가 상위 계층에 속한 집사의 주인인 게 분명한데 어째서인지 우리 둘 사이엔 극복할 수 없는 높이가 심지어 내가 그 아래에 있는 높이가 있었다. 그 높이는 굳건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 탑이었고 테두리를 따라 거대한 울타리가 쳐져 있는 듯했다. 노예가 도망치는 걸 방지하듯이 말이다. 


나는 내 방으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늘 이런 식이다. 등 뒤로 시선이 따라붙는다. 내 다리는 더 빨리 움직인다. 이런 게 주인과 노예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침대에 얼굴을 묻고 곧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어울리지 않는 집안의 어울리지 않는 쓰레기에게 걸맞은 행동이라고 나는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머리 어디선가 식식거리는 생각의 웅덩이가 꿈틀거리며 수면으로 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침대에 엎드려서 울고 있는 덩치 큰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이에 걸맞지도 않았고 품위라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나는 자살을 생각한다. 머리에 드는 생각이라곤 내 혈통에 걸맞은 죽음이라는 문학적 수식뿐이었다. 권총으로 머리에 한방 혹은 내 심장에 한방 편리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용기조차 없어서 죽으려는 마음이 있음에도 그 마음에 내가 질식하고 있음에도 죽지 못한다. 간절하게 이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갈빗대 사이로 빠져나가는 내 영혼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며 죽여달라 외쳐도 죽지 못한다. 속에는 벽돌이 들어간 듯 무겁고 심장은 무언가 뻥 뚫린 듯한 공허한 고통이 잠들기 직전까지 아니 잠들지도 못하게 만드는데 죽지 못한다. 치료될 수 없는 상처에 마지막을 주지도 못한다. 모두 나의 용기 탓이었다. 아예 없어서 존재조차 없는 용기 탓이었다. 


그러면 나는 나처럼 한심한 사람이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생각은 곧 내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희생할 가치가 있었을까? 아니면 어머니에게서 혹은 아버지에게서 내가 이상한 성질을 물려받은 걸까? 그런 질문은 해답이 존재하지 않았고 항상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곤 했다. 가령 나는 무엇인가? 나는 뭐지? 왜 살아있는 걸까 삶이란 뭘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나라는 게 이 세상에 도움이 될까 그런 깊고 얕은 생각들 속에서 물장구를 치다 보면 머리가 복잡해지기 마련이고 나는 한가지 생각에 집중한다. 아마도 처음부터 오늘 아침 타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분홍빛 하늘을 보면서부터 했을 생각인 나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으로 


나는 존재한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투명하다. 나는 남들 앞에서 보이지 않고 숨어 지내는 기생충이다. 그러니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만, 나라는 존재가 가지는 가치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식사 시간에 음식이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며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하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사실이고 누군가의 자식이며 누군가의 올바른 자산을 그릇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맞으니까 나는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곧장 아버지의 총을 떠올렸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죽음 앞에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나는 극단적인 겁쟁이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죽여달라고 하는 게 편할 정도로 나는 3층 창가에 서서 생각했다. 자살밖에 없다. 아니다. 타살밖에 없다. 나는 타살 당하고 싶다. 살해당하고 싶다. 나는 그런 열망으로 집 밖을 나섰다. 용기를 얻기 위해서 집 안에 있는 술이란 술은 모두 마셔서 곤드레만드레한 상태로 도시로 나갔다. 시비가 걸려서 누군가 내 배를 열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때려지고 찌르지도 않았다. 술을 먹는 나날은 계속해서 길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멍청한 생각이다. 하지만 멍청이 머리에서 멍청한 생각이 나오지 무슨 생각이 나올까? 술은 한잔에서 두 잔을 마셨고 나는 금방 취해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나날이 하루에서 이틀 정도 지나자 한 잔은 한 병이 됐고 한 병은 금방 한 갑이 됐다. 하루에 열병 이상 해치워 버리는 경우도 잦았다. 오죽하면 형들도 아버지도 나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마셨다. 변명은 충분했다. 영감을 얻기 위해 필요해요 아버지 혹은 형이라고 하면 그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위해 배려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식을, 형제를 자살로 내몬 것이지만 말이다. 타살당하기 위해서 거리를 걷는 건 언제나 내가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멈추어 섰다. 언제는 길가에 엎어져서 그대로 토하고 잠들어버린 적도 있었다. 돈을 들고 나가서 술집에서 싸움에 휘말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맞았다. 맞고만 있었다. 일부러 시비를 건 적도 없었고 단지 옆에 앉았다는 이유로 맞는 경우도 많았다. 그걸 노리기 위해서 일부러 질이 나쁜 술집을 찾아간 적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많은 혹을 얻었고 얼굴에 찢어지는 상처를 얻었지만 가족의 걱정 빼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이러고 나니 일부로 가족의 걱정을 얻기 위해서 상처를 만들고 다니는 데 아니냐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렸다. 나는 그것에 반박하기 위해서 내 생에 처음으로 내 몸에 상처를 만들었다. 


대리석으로 조심스럽게 긁어내듯이 면도날로 내 턱에 그리고 목에 상처를 냈다. 그대로 그어버렸으면 수기고 뭐고 이런 짓도 하지 않았을 건데 나는 아직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술이 나에게 용기를 준 건 확실했다. 나는 매일 술을 마셨다. 결국에 집에 술이 바닥나면 노예들의 옥수수 술을 마셨다. 그것도 아니라면 가진 돈을 모두 들고 나가서 도시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상처를 입는 것도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목적도 뒷전이 되고 술을 마시는 것에만 집중하며 이것만으로 괜찮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됐다. 하지만 술에서 깨면 어느새 그런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가슴의 허전한 공허함과 사무치는 냉기만이 남았다. 그러고 나면 다시 술이 고파졌고 나는 다시 술을 찾았다. 


결국에는 그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게 만들기 위해 큰형이 직접 몸을 움직여서 나를 막아섰다. 형은 근엄하게 나에게 어떤 술도 용납할 수 없으며 만약에 마신다면 직접 묵사발을 내버리겠다고 경고했다. 나는 세상이 다음날 무너질 듯이 두려워서 차마 형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고통이 두려운 게 아니라 가족 중 누군가의 말에 거스른다는 게 너무 두려웠던 거였다. 나는 하느님 이름까지 들먹이며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심지어 성찬식에서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술은 쉽게 끊기지 않았고 이번에는 죽음과 함께 날 찾아와서 괴롭혔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침대에서 끙끙거리며 발광하기 직전까지 가서야 결국에 노예들의 옥수수 술을 다시 한번 맛보고 말았다. 그리고 편안하게 침대에 돌아갔고 다음 날 술 냄새를 풍기는 걸 까맣게 잊어버린 나는 차라리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형에게 호되게 맞아버렸다. 


고통 보다는 차라리 그 형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보지 않았으면 좋았으리라 나는 한달이 지난 지금도 그 시선을 잊을 수가 없다. 차라리 그때 사람을 때리면서 으레 느끼는 쾌감이 눈에 보였으면 나도 형에 대한 시선을 바꾸고 이 사람도 내가 생각하는 타인에 해당하는 사람과 같다며 그러니 그렇게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며 스스로 위안거리를 씹을 수 있었겠지만 주먹으로 날 패버릴 때마다 바닥으로 내팽개칠 때마다 눈에 보이는 죄책감과 실망감은 잊어버릴 수가 없다.


나는 술을 끊었고 다시 본래의 목적인 자살로 돌아갔다. 가족들은 여전히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책이 문제라며 책을 가져다 버리려고 하셨다. 하지만 책은 버리면 안 됐다. 책은 나에게 유일한 친구였다. 방구석에서 세상을 알려준 것이 책이었고 이야기라는 배경에서 친구가 살아난 게 책이었다. 나는 책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그리하여 나도 책을 쓰려고 하는 것인데 음울하고 이상한 이야기밖에 쓸 수 없었다. 그 점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책을 버리게 하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간청했고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켕기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용납해 주셨다. 나는 곧장 서랍으로 들어가서 내가 만들어 놓은 은밀한 습작들이 멀쩡한가 확인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습작을 발견하지는 못하셨다. 그곳에는 내 일기도 있어 자살에 관한 내 생각도 적혀져 있었다. 발견되면 곤란한 물품들이라 그날로 난 모두 찢어서 하녀에게 버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일은 정말로 현명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마음이 바뀌어 다시 책을 버리려고 했을 때 습작이 있었던 서랍장을 열어보신 것이었다. 분명 그곳에 뭐가 있었던 거라 확신하셨거나 아니면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애걸했고 그분은 다시 돌아가셨다. 


습작과 일기를 내 손으로 찢어버린 직후에 나는 대화 상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본래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단적으로 꺼리고 사람을 심하게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친구라는 존재는 환상 속에서나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잠들기 직전에 내 꿈과 대화를 나눴고 때로는 내 생각과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자살이었다. 나는 턱과 목에 생겨난 이전에 내가 만든 상처를 건들면서 점점 용기를 얻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에는 나는 아버지의 총기함에 손을 대기로 했다. 총이라면 지금 가지고 있는 적은 용기로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것이다. 그리고 알코올 부족으로 이성이 맛이 가버린 지금이 적기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항상 피곤한 정신으로 나는 몸을 움직였다. 새벽이 되었을 때 나는 이층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총기함에서 권총을 빼돌렸다. 물론 탄약도 함께였다. 집사도 하녀도 없었다. 새벽에는 오직 나 뿐이었고 나는 조용한 공간 속에서 조심스럽게 쥐처럼 내 방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삼 층에 있는 나의 작은 소굴에서 나는 무릎에 올려진 차가운 쇳덩이를 바라보며 언제 죽을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죽어야 흔적을 남기지 않을지 또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곱씹었다. 그러나 죽어야 하는 또렷한 이유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어째서였을까 그냥 죽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 정말 자살밖에 해답이 없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죽음을 찾지 못하리라는걸 잘 알았다. 그래서 나는 노트를 꺼내 들고 이 노트 자체를 유언 겸 질문으로 혹은 흔적으로 남겨두고 죽으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쓰고 있는 이 노트에 말이다. 


물론 형제들이 혹은 아버지가 먼저 찾겠지 만 그분들에게 정말로 감사한 마음밖에 없다. 그러니까 감사한 마음밖에 없어요 하지만 재가 왜 죽으려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끌린다는 느낌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고통밖에 느껴지지 않는 삶에서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모르겠네요


청년은 만년필을 내버려 두고 권총을 집었다. 두렵지 않았다. 이상하게 평온했다. 용기는 여전히 없었지만 이전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마치 죽음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게 이상했다. 하지만 평온했다. 그는 눈을 감으면서 자신이 사라진 세상에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알아차리고 이전보다 더 확고한 자신감을 얻었고 자신이 죽으면서 사라진 세상에 더 아름다운 변화가 있을 거란 확신에 묘한 슬픔과 의무감을 느꼈다.


그리고 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수기 위에 피가 엎질러졌다. 눈송이 위에 엎질러진 와인처럼 노트는 피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였고 글자들은 번져서 알아보기도 힘들게 변하고 말았다.  


그날 청년의 아버지는 워싱턴으로 정치적 모험을 떠났고 형들은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시체를 발견한 하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집사장을 불렀다. 집사장은 시체를 보고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는 놀라기엔 청년을 너무 잘 알았던 것이었다. 그는 자살에 사용된 권총을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피를 닦아내고 총기함에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소년의 방은 조용하게 닫혔다. 앞으로 소년의 가족이 오기 전까지 아무도 열지 않을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