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아니에요. 생각해 보니까 말씀을 드리지 않았던 것 같네요. 저는 지금 소속사에 소속된 피팅 모델로 일하고 있어요.”


 “오, 안 그래도 모델 아니신가 많이 생각했었는데, 정말이네요?”


 나의 입발린 말에 성희 씨는 미소로 화답하였다.


 “혹시 지금 그럼 여성복 쇼핑몰 같은 곳에서 일하고 계신 건가요? 제품 사진도 찍으셨겠네요?”


 “네, 그렇죠.”


 “와, 그럼 사진 좀 보여 주실 수 있어요?”  


 “물론이죠.”


 성희 씨는 뭐 그리 어렵겠냐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어 쇼핑몰 페이지를 열어 주었다. 쇼핑몰 페이지는 생각보다는 참 수수했다.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사진에 성희 씨의 얼굴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사진에 얼굴이 없네요?”


 “네, 원래 계약 때부터 얼굴 없이 나오는 조건으로 시작했어요.”


 “왜요? 성희 씨 얼굴이 너무 아까운데. 얼굴 나오면 다른 곳에서도 더 많이 찾고 그럴 것 같은데요.”


 보통 다른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아부성 멘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은, 외모로는 누구와도 비교를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 사람이 모델로 일하는데, 얼굴이 나오지 않는 다면 그게 무슨 손해인가. 물론 몸매만 나와도 매출이 폭등할 테지만. 나의 진심 어린 말에, 성희 씨는 살짝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얼굴 나오는 걸 싫어해요.”


 “아이고, 아까워라. 성희 씨, 그냥 연예인 해도 되는 분인데. 진짜 아까워요.”


 성희 씨는 다시 미소 섞인 침묵으로 대답하고서는 말을 돌렸다.   


  “어쨌든 방금 말씀 드렸던 것처럼, 지금 가는 데는 샵이에요. 사실 제가 생각해도 샵이라는 게 미용실을 이름만 바꾼 것 같긴 하지만, 여긴 그래도 보통 동네 미용실보다는 좀 더 전문적인 곳이에요. 저도 일하기 전에는 들르는 곳이고요.”

 

 “성희 씨.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 진 게 있는데요.”


 “뭔데요?”


 “사진에 얼굴이 안 나오는데 머리를 하고 가시는 거에요?”


 “가끔씩 뒷모습 촬영도 있거든요. 아니면 피팅 말고 다른 쪽 사진을 찍을 때도 있고.”


 “그... 래요.”


 내 떨떠름해진 대답과 표정에, 성희 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민재 씨? 뭐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부분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기 보다는, 모델 분들 다니고 그런 곳이면 가격대가 좀... 많이 나가지 않을까 해서요.”


 “아아, 가격. 네, 그렇죠. 일반적인 곳보다는 커트 자체도 한 두세배 비싸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헐.”


 가격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숨이 턱 막힌다. 나는 동네 미용실만 다닌다. 이것은 내가 머리 스타일에 원체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비용적인 면도 한몫 한다. 고학생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오죽하면 이발소도 한 번 도전해 본 적이 있다. 언제나 일직선으로 구레나룻을 잘라내는 것 때문에 바로 포기했지만.


 “오늘은 근데 걱정 마세요, 민재 씨. 제가 여기 많이 다녀서, 마일리지는 좀 많이 쌓아 놨으니까. 공짜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네? 아이구. 그런 말씀 마세요. 리돌한테 그렇게 베풀어 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저까지 그럴 수는 없어요. 제 머리는 제 돈으로 깎겠습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성희 씨의 호의를 만류했다. 가격이야 어쨌건간에 성희 씨가 신경 써서 알아봐 준 곳이고, 선 자리 보러 가기 전에 머리는 당연히 자를 계획이었다. 괜히 성희 씨의 신세를 질 필요가 없다. 

 

 “에이, 여기 어차피 제 돈 내고 다니는 게 아니라, 회사 돈으로 다니는 곳이라 괜찮아요. 민재 씨 너무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계속 공짜로 쌓이는 건데요, 뭐.”


 “아, 그래요?” 


 그 말을 들으니 조금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람이 받고만 살면 안 되는 법. 


 “음... 그럼 이렇게 해요. 제가 대신에 오늘 점심을 살게요. 성희 씨 오늘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면 아무거나 다 얘기하세요. 제가 다 사드릴게요.”


 사실 성희 씨와 외출을 같이 나간다고 결정된 때부터, 어느 정도 수순은 결정되어 있었다. 내가 어떻게든 식사는 대접하려고 하였다. 남자된 도리가 어쩌고 에스코트가 어쩌고 하기 전에 이건 신경 써 준 사람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사실 그리고, 매우 안타깝게도, 성희 씨와 나는 그냥 위아랫집 관계일 뿐이다. 물론 받기 황송할 정도의 식사를 거의 매일 챙겨 주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안부 인사를 묻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내 머릿속에서 혼자 진도를 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건, 리돌에 대한 호의니까. 

 흔히 이야기하는 '썸'타는 관계하고는 거리가 매우 먼 것이다. 물론, 이렇게 접점을 계속 만들어 나가면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은 무척이나 충만하지만.

 내 예의 넘치는 제안에 성희 씨는 박수를 치며 화답하였다.

 

 “아, 그러면 그렇게 할까요? 저 그런데 비싼 거 먹을지도 모르는데?”


 “아유, 뭐 괜찮아요. 성희 씨한테 지금까지 받은 게 얼만데. 제가 이 정도는 해야죠.”


 성희 씨의 웃는 얼굴에, 나도 웃으면서 대답을 해 주었다. 어차피 리돌 일 때문에 성희 씨한테 한 번은 대접을 할 생각도 있었고, 이런 미인과의 데이트를 마다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주머니 속 가난한 나의 지갑은 이미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쩌면, 지갑을 움켜쥔 손바닥 안에서 식은땀이 줄줄 새는 것일 지도. 어쩔 수 없다, 친구여. 이것은 선 보기 전에 전초전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만 더 위치를 사수해 달라. 그대의 희생은 영원히 기억되리.

 성희 씨와 이야기를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 새 샵 앞에 도착했다. 나는 복잡한 심정을 표정 뒤로 숨기고서는 성희 씨의 뒤를 따라 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다시 한 번만... 말해 줄래요?”

 

 “그 헤어스타일, 잘 어울려요, 민재 씨.”


 “그렇... 습니까.”


  내 목소리는 복날 땡볕에 길바닥에 나앉은 문어처럼 축 처져 있었다. 목소리 뿐만 아니라, 내 정신, 눈빛, 모든 것이 처져서 땅바닥에 떨어질 기세였다. 오로지 빳빳하게 서 있는 것은 왁스바른 머리카락 뿐인 듯 했다. 성희 씨는 의자에 반쯤 기대어 널부러져 있는 내 모습을, 기대감 가득 담아 쳐다 보고 있었다. 

 그러지 마세요, 성희 씨.  호박은 유전자 변형을 해도 수박이 되지 않습니다. 

 대답은 없었다. 빠져나갈 힘이 없는 목소리는 울대 안에서만 메아리 쳤고, 내 머리에서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웅얼거림만이 피어나올 뿐이었다.

 새삼 다시 깨달았다. 

 미용실은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빠지는 곳이라는 것을.

 내가 다니는 미용실에서도 주인 아줌마는 단골 손님만 오면 그렇게 볼륨이 높아졌다. 그 수다의 대상이 내가 아니기에 지금까지는 그래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곳은 프로들의 전장이었다. 그 말인 즉슨, 손기술 뿐만 아니라 입놀림 역시 프로였다는 것이다. 성희 씨의 담당이라는 헤어 디자이너 양반은,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시동을 걸더니, 손길이 종료될 때까지 혓바닥의 엔진을 끄지 않았다. 


 '아유, 사장님은 왜 이렇게 잘 생긴 얼굴을 두시고 왜 이렇게 머리를 혹사시키셨어요? 우리 가게에만 조금 더 일찍 오셨어도 아주 그냥 여기 강남 바닥에 다 사장님만 쳐다 볼텐데. 지금 같이 오신, 네 성희 양이요. 성희 양. 아주 그냥 우리 단골이신데, 보세요. 이렇게 예쁜 사람이 또 어디 있어요. 이게 다, 머리 관리를 꾸준히 받으시는 사람의 특권이에요. 특.권. 성희 양, 자기도 말이야. 이렇게 멋진 분이 있으면 좀 이렇게 데려 오고 해야지 말이야. 이렇게 꼭꼭 남자친구를 꿀단지 숨겨 놓듯 감춰 놓고 다니면 돼? (여기서 성희 씨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격렬하게 관계를 부정했고, 나는 머리를 자르며 말을 할 수 없어 입을 다문 채 격렬하게 실망했다) 그리고 말이야. 자기 맨날 머리 다른 건 우리 집에서 모두 받는데 꼭 염색은 다른 집에서 하잖아. 뭐, 좋다 이거야. 나도 그렇게 뿌리까지 빡빡하게 염색 잘 해 주는데 있으면, 나라도 거기 갈거야. 근데 말야. 사람이 그 일체감이라는 게 있잖아, 일체감. 아무리 그래도 같은 집에서 해 주는 편이...”


 어쩜 그렇게 손과 입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지. 나는 혹시나 이 아저씨가 입을 놀리다 가위질이라도 한 번 삐긋하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무언가라도 대답해야 하는 건가 양쪽을 계속 같이 고민하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결과물은 꽤나 괜찮았다. 머리 옆쪽은 투블럭으로 밀어서 깔끔하게 정리하고, 길게 자랐던 윗머리를 기장만 다듬어서 왁스로 모양을 냈다. 아마도 내가 머리 한 번 감으면 풀리겠지만, 미용사 양반은 그것까지 이미 생각을 한듯 어떻게 머리 볼륨을 올리는 지를 내 손을 잡고 직접 시범을 보여 주었다. 왠지 TV에서 많이 보았던 머리 스타일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머리 셋팅이 끝난 후, 나는 성희 씨에게 메뉴를 물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엄청난 지출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들려오는 메뉴의 이름이 꽤나 구수한 까닭이었다. 

 

 “민재 씨, 우리 부대찌개 먹으러 가요.”


 “네?”


 내 예상 범주는 유럽 쪽이었다. 파스타 맛집, 혹은 수제 버거, 혹은 시간은 좀 이르지만 고기에 칼질이라도 하러 가는 것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희 씨는 대뜸 의정부의 맛을 이야기했다. 

 침착하자. 여긴 강남이야. 아무리 부대찌개라 할 지라도 이 동네에 엄청난 명품 맛집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일단 성희 씨가 어떤 의도로 이야기를 꺼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 보기로 했다.

   

 “어디 아시는 맛집이라도 있어요?”


 “맛집...이라기 보다는, 좀 땡기는 데가 있어서요. 오늘은 거기 가고 싶어요.”


 그리고 성희 씨가 데려 온 곳은, 전국 어디에나 볼 수 있는 그 전래동화 속 형제가 하는 부대찌개 집이었다. 나는 '왜' 라는 표정으로 성희 씨를 바라 보았고, 성희 씨는 '뭐' 라는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여기는... 그냥 체인점이잖아요?”


 “네, 그래서요?”


 “그... 아까는 비싼 거 드실 지도 모른다면서요?”


 “아, 그거요? 에이, 그거야 말이 그런거죠.“


 아무래도 성희 씨는 지금 나를 과도하게 배려해 주는 것 같다. 이 정도쯤 되면 좀 자존심이 상하려 한다. 나는 짐짓 헛기침을 하고서는, 성희 씨에게 말했다.

 

 “성희 씨, 아까 성희 씨 덕분에 저도 머리 잘 다듬었는데, 부대찌개 말고 다른 거, 좀 좋은 거 드세요. 이건 나중에 집에서 제가 해드릴...”


 “아, 그냥 들어가요. 제가 먹고 싶은게 이거라니까요? 돌격!”


 성희 씨는 그냥 내 말을 자르고선 내 손목을 잡고 부대찌개집이 있는 3층으로 짓쳐 올라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력에, 나는 얼렁뚱땅 성희 씨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만일 선을 볼 때 이런 상황이 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고민을 하는 편이... 좋을까? 아마도 전혀 일어나지 않을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