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 카라쿠룸은 의도적으로 우리의 진행방향을 피해서 갈 것처럼 말을 했다. 하지만 카라쿠룸이 먼저 출발했다. 그것은 카라쿠룸이 행동으로 우리가 자신이 가는 경로를 피해 다른 경로를 설정하라고 하는 무언의 압력을 표현한 것이리라. 깊이 생각하면 괘씸할 수도 있지만 선점자의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카라쿠룸이 기분좋게 사냥을 하고 있는 사냥터를 우리가 침범한 것이 되니까. 어째든 공적인 업무가 사적인 업무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공적인 일은 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한 일이니까. 정신지배를 하는 바이러스에 이 행성 전체가 감염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가? 

원래는 카라쿠룸이 간 방향이든 아니든 정신지배를 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성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으로 가야하겠지만 어떤 자존심에서인지 카라쿠룸이 간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숲 속에 진입했다. 카라쿠룸을 보면 짜능이 나면서도 아는 체를 하고 싶어진다. 또 도움이 되고 싶으나 성공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왜일까? 


어떤 경로를 통하든지 숲의 중심부쪽으로 향한다면 지성체 마을을 찾기 쉬워질 것이다. 스파링은 숲을 걷는 도중에 만난 늑대들에 대해 교감을 시도했다. 우리는 스파링의 늑대 길들이는 작업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다가오는 늑대를 향해 호소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으르렁거리며 날뛰려고 하는 늑대를 꾸준함을 갖고 대하면 늑대는 반드시 스파링에게 감화되어 복종의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스파링을 따르는 늑대는 이제 4마리가 되었다. 곰이 출현한다는 지역에서도 곰보다는 늑대가 더 많이 출현했다. 왜 곰의 출현이 더딘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물론 곰보다는 늑대의 개체수가 많다. 하지만 이 지역은 곰의 영역이므로 웬만하면 늑대가 회피하는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늑대가 많은 것은 이상하다. 나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곰이 흩어지지 않고 어딘가 모여 있기 때문에 곰을 발견하기 어렵게 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씻어낼 수 없었다. 나의 의심이 적중할까? 


아무튼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방문했던 오크 마을이 아닌 다른 지성체 마을을 발견하는 것이다. 지성체 마을은 결국 지표면의 한곳에 정착되어 있으므로 숲을 이동하면서 동일한 경로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결국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모아 형사에게 말했다.

"형사님, 혹시 단말기에 지금까지의 경로를 기록하도록 설정을 하셨나요? 만약 하지 않으셨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왔던 경로에 관한 기록을 보내드릴께요."

"한누리, 자네는 수사 경험도 없는데 준비성이 철저하구만. 당연히 나와 수전 조사원의 단말기에는 이동 경로를 저장하도록 설정이 되어 있다네. 내일은 다른 경로로 이동하면서 마을을 찾아보면 될 테니까." 

"의외로 곰은 만나기 어렵네요. 심심하군요." 

"나도 그래."


적막한 숲을 몇 시간 헤맸다. 사슴이나 노루, 멧돼지와 닮은 야생동물을 만났다. 대략 내게 익숙한 동물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동일한 생김새가 아니다. 이 행성의 특성에 맞추어 각자 다른 모습으로 갖추었다. 이른바 생태적 지위가 동일하다면 비슷한 생김새와 능력을 갖춘다는 생물학자의 논리가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타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숲 안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나무가 있고 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 열매가 나무에 달려있거나 땅바닥에 떨어져 있기도 하다. 


우리는 장거리를 성과없이 걷다 보니 상당히 지쳤다. 잠시 쉬려고 하니 얼핏 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우리 일행은 울음소리가 나는 쪽으로 빠르게 걸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곰의 울부짖음은 우렁차고도 날카롭게 들렸다. 마치 우리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위협처럼 들린다. 우리 일행은 일순 긴장했다.  곰 두 마리를 만났을 때보다 훨씬 큰 위압감이 느껴졌다.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어슴푸레한 그림자의 갯수는 4개였다. 곰 네 마리! 땅을 울리며 인정사정없이 치달아오고 있다. 그 모멘텀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우리도 기세등등하게 뛰었다. 하지만 우리 넷의 몸무게보다 곰 네 마리의 무게가 더 나갈 것이다. 


이번에도 장거리 공격능력을 가진 스파링이 방패를 던짐으로써 전투가 개시되었다. 방패는 윙 소리를 내며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톱니바퀴도 더 빠르게 돌며 섬뜩한 빛을 반사한다. 스파링의 손놀림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듯 방패의 톱니바퀴는 곰 세 마리의 턱과 팔을 할퀴며 지나갔다. 곰들은 자리에 멈춰서며 고통과 분노의 울부짖임을 뱉어냈다. 스파링보다 먼저 달리는 늑대들은 이번에는 곰을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 곰 주위를 빙둘러 뒤로 간다. 


전직 C등급 용병이었던 사모아 형사는 양손에 든 장검을 앞세우며 나간다. 분노의 아드레날린에 휩싸인 곰들이 휘두르는 앞발톱을 왼손으로 막아 왼쪽으로 흩뜨린 다음 오른손으로 심장을 노린다. 나와 수전 연구원은 각자 다른 곰의 주의를 끌었다. 장검으로 곰의 옆구리를 찌르자 사모아 형사에 집중된 공격력이 분산되었다. 


스파링이 회수된 방패를 다시 던지자 곰들은 다시 앞발톱을 이리저리 흔들어 방패의 톱니바퀴를 처내려고 했다. 곰들의 뒤로 우회했던 늑대들은 껑충 뛰어올라 목덜미들을 물어뜯었다. 곰들은 상황에 어리둥절하며 뒤를 돌아보았다가 앞을 바라보았다 했다. 나는 틈을 노려 곰의 심장을 찔렀다. 곰은 흉포성은 내지르며 내 목덜미를 향해 입을 내리꽂는다. 뒤로 물러나며 왼손의 단검으로 턱을 후려쳤다. 나와 스파링의 무기가 지속적으로 곰들의 체력을 깎아먹는 와중에 사모아 형사와 수전 연구원의 무기는 결정타를 날렸다. 수전 연구원은 곰의 가슴에 장검을 찌르며 엄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심장으로 들어간 장검의 끝에서는 날카로운 면도날이 톱니처럼 돌아 심장을 회복불능으로 찢어놓았다.  곰 심장의 생존적 가능성을 철저하게 분석한 생물학 박사의 칼날이 가죽을 뚫고 나오자 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사모아 형사의 장검 또한 곰의 중요부위를 휘저어 분쇄했다. 


곰 두 마리가 무너지자 스파링과 나의 마모성 공격은 나머지 두 마리의 곰에게 쏟아졌다. 그와 더불어 지속된 늑대의 목덜미 물어뜯기도 효과를 발휘했는지 두 곰은 땅바닥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스파링은 뛰어올라 하늘쪽으로 쳐든 도끼를 곰의 이마에 내리꽂았다. 퍽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곰의 두개골이 쪼개졌다. 나와 형사, 그리고 연구원의 예리한 칼날은 나머지 애처로운 곰 마리에게 집중되어 여러 뚫린 구멍에서 흘러나온 피의 홍수에 허우적이게 했다. 


곰 네 마리가 깨끗하게 처치되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승리의 기쁨으로 함성을 지르기보다는 순간적으로 집중된 과도한 체력소모로 숨을 헐떡이며 각자의 섰던 곳에서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손을 땅바닥에 대고 뻗어 무너지는 상체를 지탱해야 했다. 가픈 숨의 헐떡임과 어깨의 상하운동은 한 동안 계속되었다. 얼굴쪽으로 피가 과도하게 쏠렸으므로 우리는 서서히 땅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높이 자란 나뭇가지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옥빛으로 맑았다. 심장의 맥박이 진정되자 하나 둘씩 일어나 앉았다. 


스파링과 나는 단도를 들어 곰들의 배를 해체하고 쓸개를 찾아냈다. 이번에는 쓸개의 위치가 익숙했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쓸개를 떼어낼 수 있었다. 다음으로 곰의 앞발과 뒷발에 칼날을 대었다. 모두 16개의 발에 복슬복슬하게 달린 곰발바닥은 묵직했다. 스파링과 나는 곰발바닥을 두 배낭에 나누어 담았다. 사모아 형사와 수전 연구원이 나누어 짊어지겠다고 했어도 거부했을 것이다. 


스파링과 내가 돈이 되는 승리의 전리품을 챙기고 있을 때 수전 연구원은 곰들의 피를 뽑아 혈액샘플통에 담고 있었다. 사모아 형사는 단말기를 보며 우리의 이동경로를 분석하고 있었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맨 채로 수전 연구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번의 곰들이 집단행동을 한 것은 확실하지 않나요? 네 마리가 각자 우연히 우리를 공격했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이들의 공격을 뒤에서 조종하는 배후 세력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네 마리의 행동으로 보아 집단행동이 확실해 보이네요. 이들의 행동을 조종하는 기제가 있을 겁니다."

"사모아 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누리, 나도 역시 곰까지 집단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번의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네. 곰의 집단행동이 갑작스러운 생태의 변화가 아니라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조종인 것이 분명하지."

"스파링, 곰을 조종하는 것과 늑대를 조종하는 것은 차이가 있지?"

"오크의 자연 교감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곰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네."   


우리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 이상 조사를 계속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스파링과 나의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면 내일의 숲 조사활동은 더 쉬워질 것이다. 우리 일행은 각자의 운송수단에게 명령하여 지금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 주차하도록 했다. 숲을 벗어나오는 길의 공기는 상쾌했다. 


나와 스파링은 오토바이를, 사모아 형사와 수전 연구원은 승합차를 타고 소도시에 있는 용병 휴게소로 갔다. 이동 중 간단하게 눈을 붙이니 피로가 상당히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휴게소에는 용병들로 북적였다. 스파링과 나는 휴게소 카운터에 가서 엘프 여성인 리라에게 물었다. 

"리라, 안녕하세요. 곰을 상대할 때 효과적인 무기를 구매할 수 있을까요?"

수전 연구원이 자신의 장검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분들의 무기를 이 장검처럼 심장이나 내부 장기가 강한 짐승을 상대할 때 휴과적인 무기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나요?"

리라는 고개를 끄덕인다.

"곰을 상대할 때 유용한 단거리 무기를 말씀하시는군요? 그런 무기류라면 저희가 항상 비치하고 있지요."

나와 스파링은 카운터쪽으로 열린 통로를 지나 엘프 리라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걸어 무기 진열대 앞으로 가서 섰다. 무기는 다양했지만 나는 수전 연구원의 장검과 비슷하게 생긴 장검을 유심히 보았다.
"리라, 이 장검을 만져볼 수 있죠?"

"마음껏 만져보세요."

"리라, 저 오늘 숲에서 리라의 약혼자 카라쿠롬을 보았어요. 곰을 홀로 사냥하고 있더군요.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혹시 성함이 한누리라고 하셨죠? 한누리, 제 약혼자는 매우 강한 사람이기는 한데, 저도 걱정이 되어 종종 주의를 주곤 해요. 하지만 항상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네요. 엘프 남성은 항상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편이거든요. 그러한 본성을 제가 어쩔 수가 없네요." 

"리라, 실은 오늘 우리 일행은 곰 네 마리한테 공격을 받았어요. 곰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 같더군요. 곰처럼 지구력이 뛰어난 맹수가 뭉쳐서 다니면 아무리 명사수라도 활 공격으로 모두 물리치기 힘들 거예요. 카라쿠롬도 곰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을 모르더군요. 위험하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연락을 해주세요."

"제 약혼자를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장검을 보면서 엘프 리라와 말하는 사이, 오크 스파링은 장검류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젓더니 도끼류의 진열장 앞에 섰다.
"리라, 제가 가진 것보다 더 무겁고 자체 추진체를 가진 도끼가 어떤 것인가요? 보기만 해서는 잘 모르겠군요."

"아, 도끼류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진열장에 3번이라고 표시된 도끼를 한번 만져보세요." 


스파링과 나는 각자가 원하는 스타일의 장검과 도끼를 골랐다. 나는 소주 4병을 샀다. 휴게소의 테이블에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소주 1병을 든 채 밖으로 나와 건물 앞 정원의 나무 그늘에 섰다. 숲 너머로 붉게 하늘을 물들이는 태양이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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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니 문장이 부드럽지 않군요. 시간 날 때 짧은 문장으로 수정을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