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한 숲 속에는 이리떼가 있고, 깊숙한 산간에는 귀신이 있다.


서슬퍼런 계곡으로는 호랑이가 머무르고 물 깊은 곳에는 이무기가 있으니


밤이면 돌아다니고 낮이면 숨어버리네


우리의 옷깃을 당기고 발을 깨물며 횡행하니 그를 제어할 길이 없음이라


무고한 사람들에게 해가 되니 그 기세가 거칠어


이에 우리가 칼을 벼려냈으니 그 이름이 운인이라


지신을 떨게 하고, 천신과 통하니


일월성신께 맹세한다.


우리를 얽어메는 삿된것들은 운인 앞에서 끊겠노라고





홍철릭을 걸친 사내가 검을 사선으로 내려들고서 앞에선 괴물을 가만 바라보았다.


얼마나 많은 목숨이 저 괴물의 이빨 아래에 스러져갔을까.


감상을 마친 사내는 자신에게 내달려오는 괴물을 시선에서 놓치지 않고서


한밤중을 흔들어 깨어놓을만한 기합과 함께 검을 그어 올렸다.


진홍빛 피가 메마른 흙바닥을 따뜻히 적셨다.


괴물은 두동강 나 사내의 몸을 자신의 피로 흥건히 적셨다.


그런 괴물의 피가 만족스럽다는듯, 피를 털어내기 위해 검을 퉁겼으나 검은 그 진득한 피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 차례 더 검을 퉁겨 피를 떨어뜨린 사내는 뒤로 돌아서 반듯이 동강난 괴물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곧 이어 합장했다.


"아귀야, 너의 죄는 천 번을 묻고 단죄해도 모자르지 않으나 그것은 나의 재량이 아니거니와


너 또한 이 세상의 인과에 묶인 육신이니 비록 너의 마수에 스러져간 목숨이 많다고 하여 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는 없는 


노릇이다. 마침내 죽음을 만나 갖은 번뇌를 벗고서 안식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렇게 너를 위해 다음 생에선 슬픔도, 시름도 


없기를 간절히 빌겠다."


동틀 무렵, 홍철릭의 사내가 길고 긴 합장을 마치자 따스한 햇빛이 세상을 밝히기 위해 산중 너머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은 다시 한 번 빛을 되찾았고, 차갑게 메말랐던 대지를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식어가던 육신에 김 모락 모락 피어오르던 괴물의 시체가 햇살을 만나니 밝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괴물의 육신은 햇살 아래에 한 줌 재가 되어 자유로이 부는 바람을 타고서 저 멀리 흩날렸다.


홍철릭의 사내가 마른 수건을 꺼내 얼굴을 한차례 닦은 뒤 갓을 고쳐쓰고서 발을 옮겼다.



이빨이 살갗을 뚫고, 뼈를 갉는 소리가 소름끼쳤다.


소년의 어미는 소년을 살리기 위해 소년을 초가집 밖으로 등 떠밀듯 밀어버리고서는 징그럽게도 발목을 붙잡았다.


소년을 어미와 함께 뜯는 생각에 들떴던 아귀는, 어미의 눈물겨운 저항에 소년도 당장에 먹어치워버리겠단 생각은


접어두고서 우선 어미를 먼저 잡아먹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들썩이는 몸과 미약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그녀는 아직 살아있다는걸 보여줬지만, 살이 씹히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날때마다 그런 생명의 흔적이 서서히 멎어갔다.


아귀는 소년의 어미를 뜯어 먹으면서도 그녀에게 들으란듯 말하는걸 잊지 않았다.


"아니 어차피 먹을텐데 내가 혹시라도 놓칠줄 알았나, 냄새가 솔솔 나는데 말이지, 이래봬도 이 몸이 교양있는 사람이라


원래 이렇게 잡아먹는 어르신은 아니지만, 네년은 너무 설쳤어, 고통을 좀 알아야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말이야"



소년은 눈밭을 구르다시피 달렸다.


아직 밤은 깊었고, 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어딘지조차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만 소년은 멈출 수 없었다.


어머니가 지르던 비명과 사람같지 않던 것의 실랑이가 아직도 눈 앞에 선했다.


흩뿌려지는 피와 부러지는 뼛소리들이 소년의 눈과 귀를 선명히 채우고서 떠나지 않았다.


여느때와 다를것 없는 하루였다.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신걸 아랫마을에 넘겨주고 오는 길이었다.


가까워지는 초갓집 위로 밥 짓는 연기가 몽글 몽글 솟아났고


해는 어느덧 늬엿 늬엿 저물어 산등성이를 타고 있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부족하지도 않은 우리집이었다.


하지만, 불행은 갑자기 찾아온다던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처럼 말이다.


어느덧 마당까지 눈에 들어올 거리가 되자, 비릿한 피냄새가 코 끝을 맴돌았다.


거칠게 뜯겨져 나간 대문은 소년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대문을 건넌 소년의 시선이 닿은 곳은 자신에게 휘둘러지는, 피 뭍은 손을 억지로 잡아 실랑이를 벌이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단, 도망쳐!"


힘에 부쳐하던 어머니가 막 대문간을 넘어지다 시피 뛰어들오어던 나를 발견하더니 소리쳤다.


"도망쳐, 동생들을 지키렴!"


"뭐야, 애가 하나 더 있었잖아, 근데 한 눈 팔아도 되는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보던 어머니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어머니가 실랑이 하던 손이 어느새 어머니의 배를 뚫고서 튀어나와 있었다.


그 뒤로 어머니가 무어라 더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더이상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듯 했다.


맥 없이 스러진 어머니의 위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괴물은 입맛을 다시며 손에 흥건한 피를 핥았다.


"뭐야 꼬맹이가 하나 더 있었잖아?"


그렇게 괴물이 나에게 다가오려하더니 멈칫 거렸다.


괴물에게 가려진 어머니의 손아귀가 괴물의 발목을 잡아서 놓아주지 않았다.


희미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괴물 너머로 들려왔다.


"단    사당, 사당으로 "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괴물의 발목을 붙잡으면서 까지 나에게 무어라 소리쳤다.


세상이 붕 뜨는듯한 느낌이다.


숨이 벅차올라 가슴을 찢을듯한 고통에도 쉬지 않고 달렸다.


사당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나를 발견한 현아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가득찬 목소리로 외쳤다.


"오빠!"


아이들은 고개를 들고서 나를 보더니 울며 품으로 달려왔다.


다른 동생들과는 달리 울음을 보이지 않던 현아가 반가움을 뒤로하고서 나지막히 물었다.


"어머니는?"


현아의 말에, 다시금 머릿속으로 어머니의 참혹한 모습이 그려졌다.


질끈 깨문 입술 사이로 신음성이 나오자, 현아는 얼굴이 어두어지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을 고르고서, 사당 안에 우두커니 앉았다.


어머니께서는 사당으로 가라고 이르셨지만,


그 후로는 어찌하라는 말씀은 없으셨다.


어떻게 해야되지?


아니, 그전에 어머니는 어찌되셨을까?


결국 죽으신걸까, 한참을 사당에서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허름한 사당은 찾는 손 하나 없을 따름이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사당 한 가운데 우두커니 있는 내 모습에 현아는 딱히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서, 배고프다며 칭얼거리는 동생들을 달래기 바빴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 무렵, 사당 밖으로 무언가의 발걸음소리가 점차 가까워져왔다.


이내, 현아도 그 낌새를 느꼈던건지 불안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아이들을 꼬옥 품에 끌어안은체, 어쩔 줄 모르는 불안한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대문은 걸쇠에 걸려 굳게 닫혀 있었다.


현아와 아이들을 뒤로 한체, 낡은 등불에 의지해 대문으로 나아갔다.


"어머니?"


작고 떨리는 내 목소리에 대한 대답은 대문 너머로 들려오지 않았다.


재차 사무치는 이름을 입에 담아보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고서 그저 무거운 발걸음 소리만 가까워올 따름이었다.


이윽고 발걸음이 이제 지척에 달할 무렵,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가 막아서던 괴물의 목소리와 닮았다.


그 괴물이 온걸까?


"여기 숨어 있었구나?"


으르렁거리는 낮고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


잠시 아이들을 돌아봤다. 사당 안쪽 깊숙한 곳에서 사색에 물들어 현아의 품을 파고들어갔다.


사색에 물든건 현아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고개를 돌렸던 그 순간, 대문은 걸쇠와 함께 우지끈하는 소리를 내며 박살나버렸다.


흉악한 괴물이 피가 채 마르지 않아 뚝뚝 떨어지는 손을 대문 안으로 들이밀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생 하나가 비명 지르며 현아 품을 벗어났다.


현아가 막내 동생을 붙잡아보려 했지만, 현아의 손짓은 공허한 시도로 돌아가고 말았다. 


막내 동생은 그 짧은 발을 바삐 놀려, 박살난 사당문을 넘어서려 했지만


그 시도는 무참한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어둠속에서, 다시 나타난 괴물의 손아귀가 막내동생을 잡아채어 가더니 목을 비틀어 죽여버렸다.


"곤아!"


그리곤 동생을 우적 우적, 씹어먹었다. 하얀 뇌수가 붉은 피와 함께 섞여 흘러내렸다.


동생의 육신을 씹어삼킨 괴물이, 입맛을 다시더니 나를 집어던지고서는 현아와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다시 일어서려고 떨리는 발에 힘을 주어보았지만, 밀려드는 고통은 숨 쉬는것 조차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날라가는 충격에 몸 어디 한 군데가 망가진걸까,


떨리는 목소리로 현아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당 안방에서 들려오는 현아의 비명과 아이들의 비명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게 끝인걸까?


그저 하루 하루의 행복을 위해 살아오던것 뿐이었다.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동생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살아오던 것이 아니었는데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홍철릭을 입고서 검은색 갓을 눌러 쓴 사내가 사당내 마당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붕 뜨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의식이 흐릿해져 갔다.




"늦은 것인가?"


홍철릭의 사내가 사당 내부로 들어오며 낮게 읇조렸다.


비명은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대문을 넘어서보니 사당의 마당 구석에는 사내 아이 하나가 의식을 잃고서 쓰러져 있었고 사당 내부는 이미 아귀가 잔치를 벌이는듯 하얀 뇌수와 피, 갖은 육편으로 칠해져 있었다.


홍철릭의 사내가 띠돈을 돌려멨다.


"이 곳의 일은 네놈의 소행이렸다?"


돌려멘 띠돈에서 서슬퍼런 검을 뽑아든 남자가 한창 포식에 열을 올리던 괴물에게 으르렁거렸다.


낯선 불청객의 등장에 괴물은 고개를 돌려서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려 했지만


홍철릭의 사내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베겠다."


말이 마치기도 전에, 홍철릭의 사내가 사람의 움직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속도로 낮은 자세와 함께 괴물에게 달려갔다.


괴물의 얼굴에 보기좋게 검날이 들어가 피 분수를 뿜어내게 만들었다.


믿기지 않는 사람의 속도에 경악하기도 잠시, 자신이 베었다는 것을 자각한 괴물이 몰려오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넌 뭔데 나를 방해하는거지! 아프다, 아파!"


"아픔을 아는 놈이 이리 무참히 굴었단 말이냐!"


거칠고도 낮은 사내의 목소리에는 진득한 분노가 가득했다.


"도대체 몇 명을 잡아먹은것이더냐, 도대체 얼마나 많이 죽여왔던거지?"


그렇게 공격을 멈추지도 않은체, 누구 들으라는 것도 아닌것인양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울분을 토해냈다.


홍철릭의 사내가 담아내는 베기 하나 하나가 명중할때마다 괴물의 육신에서 피가 분수처럼 샘솟았고 창자가 비집고 흘러내렸다.


자신을 막아서려는 괴물의 강철같은 손아귀도 그의 검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었다.


다가오는 괴물의 손가락을 마디째로 썰어내며 괴물의 품을 파고들었다.


괴물은 자그마한 인간이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사실보다도, 자신이 진정 죽을 수 도 있겠단 위험에 전율했다.


평범한 사람들과 달랐다.


여태까지 자신이 먹어온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다.


잘려나간 손가락이 땅에 채 닿기도 전에 다른 손가락들이 썰려져나갔다.


마지막으로 사내의 검이 괴물의 발목 힘줄을 힘차게 썰어내자, 괴물은 더이상 서있기도 힘든듯 풀린 다리를 어찌하지 못한체 무릎 꿇고 말았다.


"제발, 용서해주......"


괴물의 말은 사내에게 닿기도 전에 끝났다.


괴물을 무릎 꿇린 남자는 더는 듣기 싫다는듯, 깔끔한 솜씨로 괴물의 목을 검으로 쳐냈다.


경악과 공포심으로 물든 괴물이 눈도 감지 못한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괴물을 뒤로하고서, 홍철릭의 사내가 괴물의 뒷 쪽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무참히도 조각 나있었다.


가장 나이 먹어보이는 여자아이는 구석으로 날려가 의식을 잃어보이는듯 했다.


그 모습을 확인 하고서, 홍철릭의 사내는 괴물을 죽일듯이 바라보더니 합장했다.


"아귀야, 너의 죄는 천 번을 묻고 단죄해도 모자르지 않으나 그것은 나의 재량이 아니거니와


너 또한 이 세상의 인과에 묶인 육신이니 비록 너의 마수에 스러져간 목숨이 많다고 하여 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는 없는 


노릇이다. 마침내 죽음을 만나 갖은 번뇌를 벗고서 안식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렇게 너를 위해 다음 생에선 슬픔도, 시름도 


없기를 간절히 빌겠다."


언제나 하는 기원이지만, 이 일을 시작하고서, 가장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리라,


씹어 삼켜도 모자랄 요괴들의 명복을 빌어줘야하는 이 행동이


형식적인 행동을 마치고서, 홍철릭의 사내는 의식을 잃고서 살아남은 두 명의 아이를 품에 안고서 허름한 사당을 나섰다.




밝은 모닥불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흐릿한 시야 안으로, 모닥불 앞에 앉아 불을 쬐이는 홍철릭의 남자가 들어왔다.


"곤아, 건아..."


메말라 갈라지는듯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정신을 차린것이냐?"


단이 깨어난걸 기다리기라도 했듯, 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서 홍철릭의 사내가 말했다.


"아픈곳은 없느냐"


"구해주신겁니까?"


그 말을 끝으로, 단의 바쁜 시선이 아직 흐림에도 홍철릭 사내 주변을 훑었다.


현아가 멍한 눈으로 홍철릭 사내의 옆에 앉아 있었다.


"현아!"


동생을 부르니 죽은듯한 눈길이 나를 향했다.


"현아, 건이와 곤이는.....연이는?"


현아는 대답이 없었다.


그 대답은 홍철릭 사내에게서 들려왔다.


"너희 둘만 살아남았다. 내가 너무 늦은 바람에"


그의 마지막 말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래, 이제 어쩔테냐"


그의 물음에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가족들을 잃었다는 슬픔이 심장을 때리고, 폐를 조여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 집안의 맏이로써 슬픔은 뒤로 하겠노라 맹세했건만, 눈물은 그런 내 마음조차 무너뜨리고서 흘러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서, 홍철릭의 사내가 다시 물었다.


"다 울었으면, 이제 어쩔것인고"


여전히 눈길조차 주지 않고서


"성함이 어찌되십니까"


우느라 부은 목때문인가 한껏 내려간 목소리는 내 목소리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잠시 생각에 빠진 홍철릭의 사내가 말했다.


"야순이라고 불러라"


"야순 어르신, 감사합니다. 저희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아까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들려줄 차례가 된거 같구나"


"모르겠습니다."


한참을 뜸을 들인 단의 입에서, 기어들어가는듯한 대답이 나왔다.


모닥불을 쬐며 단의 대답을 기다리던 야순이 허릿춤을 뒤적이더니 쌈짓주머니를 꺼내고서 단의 앞에 던졌다.


"오늘 일은 잊고서, 여느때와 같이 살아가거라, 내가 살아갈 곳을 알아봐줄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자기 앞에 툭하고 떨어지 쌈짓 주머니를 멍하니 쳐다보던 단이 입을 열었다.


"혹시 저 괴물들은 무엇인지요?"


"그러한것까진 알 필요 없다. 너는 오늘의 일을 잊어야한다."


야순의 매몰찬 대답에 단이 손톱이 제 손을 파고들어가 피가 날정도로 꼬옥 쥐었다.


그 모습이 옛날의 저와 같아 보였기에, 야순이 자기에게 묻듯 물었다.


"억울하느냐, 괴롭드냐"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제가 징그러울 정도입니다. 어머니가 눈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있단 생각이 들지 않던 제가 밉습니다."


그러곤 단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 샘물인양 다시금 볼을 타고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참으며 끅끅 거리는 단의 울음은 들썩이는 어깨로 그 슬픔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야순또한 저랬으니까


"하지만 그들을 안다고해서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복수를 하겠느냐, 그렇다면 그러지 않아도 좋다. 너의 원한을 산 요괴는 나의 손에 죽었으니


그렇다면 너와 같은 피해자들이 생겨나는걸 지켜볼 수 없겠느냐,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너는 약하다. 그런 너에게 무슨 선택지가 있단 말이냐? 그저 살아라,


구해진 목숨을 헛되이 쓰지말고 너는 홀몸도 아니지 않느냐, 지켜야할 사람이 아직은 남아있지 않느냐?"


그렇게 말을 마친 야순이 흘끗, 현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현아의 멍한 시선은 줄 곧 타오르는 모닥불만을 가르키며 그 눈 속으로 밝은 모닥불을 비추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