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신문지로 칠해진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총번이 지워진 권총을 조립한다. 점장은 흰색도자기로 만들어진 잔에 우리가 주문한 커피를 따르고, 잔뜩 어질러진 참나무 탁자에 내려주었다. 요즘 프렌차이즈카페에선 상상하기 힘든 서비스였다.
인간베스트는 태블릿PC를 꺼내 지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막 생일이 지나 서른둘이었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잔주름이 졌고, 새치가 드문드문 자라있었다. 나름의 경험과 지식으로 이뤄진 계획을 설명하는 그의 눈빛엔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 왜 경찰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가 맡는 거죠? 뭐 우리야 목돈 챙겨서 좋지만”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는 녀석을 돌아봤다. ‘아스카’란 닉네임을 쓰는 그는 얄팍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의자를 기울여 앉은 채 휴대전화로 이세계물소설을 보고 있었다. 관리하지 않아 구겨진 옷을 입고 다니며 사람과 대화를 해본 적 없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받아줄 자리는 없었고, 그것이 그가 스물셋이란 나이부터 더러운 일에 손을 담그는 이유였다.
“경쟁사 쪽에서 넣은 의뢰니까. 남 잘되는 꼴은 보기 싫나 보지.”
나는 그렇게 말을 뱉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주황색 조명 대여섯이 카페를 비추고 있었다. 옆을 바라보았다.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적힌 메뉴가 보였다. 오천 원짜리 샌드위치. 식사하기엔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적어도 우리 셋은 이런 날이 아니면 여기서 저녁을 먹지 않았다.
권총 세 정을 조립하곤 태블릿을 바라보았다. 딥웹에서 유통되는 성매매 관련 건물을 ‘조사’하란 의뢰였다. 이런 일이 다 그렇든 ‘조사’버리란 뜻에 더 가깝지만 우리는 일이 쉽게 풀리길 바랐다.
빗줄기가 거세지고 번개가 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방수와 보온이 되는 옷을 여미었다. 여름철이어도 비가 내리는 날은 춥다. 바람이 부는 날이라면 더욱 그렇다.
인간베스트는 태블릿과 권총 한 자루를 집어넣고 말하였다.
“출발하자”
……
런치세트를 구매하면 아메리카노가 1500원! 이라 적힌 광고판이 허공을 나부낀다.
대로는 비바람이 더욱 거세지기 전에 서둘러 제 보금자리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걸고 있다. 페인트가 벗겨진 콘크리트와 벽돌담, 전봇대엔 물에 불은 광고지가 가득 붙어있었다. 배달음식부터 콜걸까지, 돈만 준다면 무엇이든 줄 수 있다. 말하듯.
가끔씩 판잣집을 지날 때 품종을 알 수 없는 개가 짖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판잣집에선 기말고사를 망친 아이를 질책하는 소리와 회초리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판잣집에선 술에 취한 가족이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CCTV는 낡을 대로 낡아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늙은이의 기침 소리가 들려오곤 다시 정적이 흘렀다. 오랜 정적을 깨뜨린 건 아스카였다.
“진짜 별일 안 일어나네요, 애니에선 이런 데서 전투씬 찍던데”
아스카는 주변을 힐끔거리다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화면에선 헐벗은 그림들이 날뛰며 번쩍이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급이 나왔다. 쓸데없이 화려한 흰색인 걸 보며 이놈이 돈을 받는다면 어디에 새어나갈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아스카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인간베스트는 여전히 지도를 보며 폐쇄회로를 피하고 있었다. 그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진흙이 튀며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발자국은 빗물에 쓸려나가고 뒤따라오는 사람의 발자국을 다시 받아들였다.
판자촌 너머 거리를 바라보았다. 초록색 페인트로 칠해진 육교엔 제17회 동통 중학교행사가 자랑스레 붙어있었고, 그 아래로 승용차 몇 대가 전조등을 켠 채 물줄기를 흩뿌리고있었다. 조금 더 시선을 올리면 층이 낮고 페인트가 벗겨져 가는 아파트가 보였다. 그 너머엔 삼원색 네온으로 치장한 주상복합단지가 보였다. 빈부 격차를 나타내기 위해 외신기자가 사진을 찍었지만 그는 두 건물의 가격이 차이가 없단 걸 알지 못하였다.
빗물이 발목까지 차오를 땐 자정이 막 지나갔고, 인간베스트가 눈치를 주자 나는 아스카에게 말하였다.
“좀 전에 전투씬 찍고 싶다 했지?”
“아뇨? 그냥 조용하다 말한 건데요”
나는 권총을 먼저 꺼내 들고는 말을 이어갔다.
“네가 원하는지는 내 알 바 아니고, 꺼내둬, 쓸 일이 생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