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살을 결심하게 된 건 길에서 본 벽돌 타일이 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맑고 고요한 날이었다. 


나는 권총으로 자살하려고 한다. 미국인 자살자의 절반은 총으로 죽는다고 한다. 나머지 절반은 스스로 목을 매달고 죽는다고 한다. 총이라는 건 정말로 편리한 도구다. 동내 마트에서도 팔고 총포상이라고 전문적으로 총을 취급해주는 장소도 있어서 접근성이 좋은데다 죽고 싶을 때 버튼 하나만 꾹 누르면 한 방에 갈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죽으려고 한다. 입에 100달러 주고 산 싸구려 권총을 물고 방아쇠를 꾹 누를 거다. 직장은 진작에 때려치웠다. 오랫동안 일한 세탁소였는데 갑자기 일을 때려치운다고 하니까 사장이 여간 당황해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자살을 할 거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사장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진짜로 죽고 싶어졌습니다.” 라고 말했다. 사장은 날 내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로 진심으로 죽고 싶어 하는 거라면 당장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내가 침묵하자 그다음에는 왜 자살하려고 하는지 물었다. 나는 오늘 길에서 본 바닥에서 벽돌 타일이 깨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한참을 침묵하더니 나에게 욕을 하면서 나가서 절대로 돌아오지 말고 아예 죽어버리라고 소리쳤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뒤에 퇴직금도 받지 않고 그대로 총포상으로 향했다. 


총포상은 내가 일하는 세탁소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장소에 있었다. 걷기에도 무언갈 타기에도 애매한 거리였지만, 그날은 햇빛이 강해서 몸에 땀이 나서 나는 그냥 근처에 있는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23세기 여름답게 버스 정거장엔 은은한 에어컨 바람이 불고 있었다. 흰 브라우스를 걸친 여성이 밀짚모자를 머리에 쓰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여행객처럼 보였다. 아마도 남부에서 왔을게 틀림없을 것이다. 피부가 햇빛에 그슬렸기 때문이었다. 난 그 여자랑 하고 싶었다. 나는 평생 여자랑 해본 적이 없다. 왼손이 내 유일한 위안이었다. 자살 직전에 누군가랑은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난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 하나 심하게 고민했다. 어차피 차여도 죽을 거고 성공해도 죽을 건데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버스가 왔다. 우리 둘은 버스에 탑승했다. 전기차 특유의 귀신 비명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량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날, 그 시간대는 아직도 노동 시간이었기 때문에 마을 자체가 한적했다. 나는 그녀에게 천천히 접근했다. 그녀의 턱에 땀이 고여 있었다. 그녀는 에어컨을 맞으면서 입술을 내밀고 손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나는 그녀 앞에 섰고 그녀는 날 올려다봤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키가 꽤 크다. 그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 말했다. “저기 실례지만 당신이랑 하고 싶어요.” 여자는 당황한 듯했다. “뭘요?” 내가 말했다. “섹스요.” 그녀는 날 괴상한 사람으로 인지했거나 혹은 모종의 성추행범으로 인지하기 이전에 구시대에 유행했던 몰래카메라를 떠올렸다. “이거 몰래 카메라 인가요?” 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버스가 흔들렸다. 나는 오른손으로 손 걸이를 잡고 왼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아뇨, 말을 더 길게 하기 싫네요 난 오늘 자살할 거고 죽기 전에 당신이랑 하고 싶어요.” 


그녀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는 말했다. “농담도..” 나는 한 없이 진지했기 때문에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변하는 것이라곤 버스와 버스의 창문에 비추는 세상뿐이었다. 버스가 멈추어 섰다. 총포상으로 가는 길은 앞으로 두 정거장 남았다. 나는 그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 도착하는 즉시 총을 사고 집에 가서 자살할 거라고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녀는 그제야 얼굴을 굳히고는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질문을 했다. “왜 자살하려는 거죠?” 나는 사장에게 설명했던 그대로 설명했다.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게 이유가 되는 거죠?” 나는 나도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단 그게 기폭제가 된 건 맞으며 그게 아니었어도 만약에 오늘 하늘이 정말 맑은데 맑은 가운데 구름이 뭉쳐 있었다면 그게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녀는 또다시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질문을 했다. “왜 나죠?” 나는 내 눈앞에 보인 여성이 유일하게 당신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 듯 아니면 고난에 처한 자신을 구해줄 사람을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버스에는 아무도 없었고 총포상까지 앞으로 한 정거장 남았다.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내 집에서 하는 거로 해요.” 그녀는 여행객이 아니었다. “난 당신이 여행객인 줄 알았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한때는 예. 여행객이었죠 난 남부 출신이에요 하지만 여기 정착했죠.” 집이 어디 있느냐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여기서 열 정거장은 가야 나온다고 말했다. 나는 창밖을 둘러봤다. 아직 태양이 쨍쨍했다. 가만 보고 있으니 눈이 아플 정도였고, 창문은 열기에 달궈져 만지고 있으면 뜨거웠다. 열 정거장이면 해가 어쩌면 질지도 모르겠네요 라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긍정했다. 하지만 우리가 대화할 시간이 늘어나는 거죠 그녀가 말했다. 그는 대화가 하기 싫었기 때문에 대화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분위기를 좀 지켜달라고 말하면서 대화를 이어가자고 말했다. 나는 귀찮았기 떄문에 그냥 수긍하고 말았다. 거부하는것도 대화였다.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일단 자리에 앉았다.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선선한 장소였다. 차량이 멈춰서서 정거장에서 사람을 기다려도 아무도 탑승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거장이 또 하나 지나갔다. 그녀가 무슨 말인가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햇볕을 느꼈다.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받는 따스함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가지 단어가 들렸다. “죽는 것도 사실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살 수 없다는 건 나빠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레미제라블에서 나온 말인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죽을 겁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오늘 죽을 겁니다. 당신이랑 관계한 다음에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난 시체랑 하는 건가요?” 나는 잠시 생각해봤다. 나는 이미 죽었다. 죽은 목숨이다. 죽을 것이다. “네 맞아요.” 


나는 창문을 바라봤다. 익숙한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가로수들도 몇 개 보였다. 이곳은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없을 땐 산책하기 좋았다. 난 산책을 정말 좋아한다. 길거리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는 통, 누군가 흘린 토사물 그걸 쪼아먹는 작은 새 따위만 없으면 평생을 산책만 하고 살라고 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이 거리와 산책을 사랑했다. 이 거리는 이름이 없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아름다워서 나는 이 거리를 아름다운 거리라고 부른다. 아름다운 거리가 내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주마등을 보는 것 같았다. 차량이 속도를 그리 내지 않았는데도 내 눈앞에서 흐물흐물하게 녹아들면서 다른 풍경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잠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어깨에 기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뺨 한쪽이 축축했는데 땀인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그녀의 눈물이었다. 나는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내가 불쌍해서 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어디가 불쌍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냥 죽는 사람을 옆에 두고 있다는 게 너무 무섭고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고도 말했다. 나는 죽어야 하고 죽을 것이라고 말이다. 난 그렇게 말했고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건넸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버스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무인으로 움직이는 버스는 다음 정거장에서 멈출 것이다. 나는 다 왔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브라우스 아래 살결을 상상했다. 여자의 몸을 본지도 꽤 오래됐다. 엄마는 내가 8살 때 목을 매고 죽었으니까 그때 이후로 여자와 연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엄마가 자살하고 나서 아빠는 내가 10살 때 총으로 죽었다. 나는 사촌의 손에 길러졌고 17살 때 독립했다. 우울한 가정사지만 나는 우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가정사다. 라고 생각된다. 그게 나에게 무슨 영향을 준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가령 지금의 자살이라던가 그나저나 나는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진지하지 않은 이유로 자살하려고 한다. 그 이유가 뭘까? 나도 궁금하다. 나는 그냥 자살하려고 한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살 의지가 없다. 지쳤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지치진 않았다.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인 적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냥 단순하게 죽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죽을 것이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담배가 피고 싶어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담배를 꺼냈다. 여자에게도 한대 권했지만 그녀는 사양했다. 애초에 버스에서 피우는 것도 불법이지만 어차피 죽을 거 사소한 법 하나 어긴다고 해서 나쁠 건 없으리라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고 그대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경고 알람이 울려 퍼졌다. 나는 무시하고 담배를 피웠고 다음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담배를 밟아서 껐다. 그녀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진정된 모습이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군인처럼 나를 이끌고 버스에서 내렸다. 


해가 지고 있어서 세상이 황금빛이었다. 나는 다른 담배를 꺼내서 물었다. 빛 속에서 담뱃불이 반짝였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으며 우리는 주택단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름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공기에 연기가 뒤섞여서 뒤쪽으로 사라졌다. 담배 연기는 사라졌지만 입에는 여전히 담배 맛이 돌았고 난 담배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여자는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걸음은 담담했지만, 갈수록 포복이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빨리 걸으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몇 걸음 더 걸었지만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가 말했다. “못하겠어요.” 나는 담배를 마저 피우고 그녀를 버리고 총포상으로 떠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버스 정거장에 앉아서 다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천천히 오고 있었다. 앞으로 40분 혹은 50분만 더 기다리면 다음 버스를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여성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달려와서 내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난 내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와 입을 맞춰서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처음 감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단지 입술이 다른 무언가와 부딪혔다는 느낌만 들었다. 나는 입술을 때가 되려고 했다. 그녀에게 다시 나랑 하고 싶어졌냐고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입술을 때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나랑 입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밀어내다가 실수로 그녀의 가슴을 만지고 말았다. 그녀는 왼손으로 내 손을 잡고 오히려 가슴 부분을 꾹 눌렀다. 나는 그녀의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양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붙잡고, 잡기보다는 꾹 누르면서 우리는 입을 맞췄다. 때맞춰서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버스에 타야 했다. 그리고 죽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했다. 죽지 말아요 나랑 해요 당장 우리 집에 가요. 그녀가 거의 절망하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버스에 타지 않았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태양이 가라앉으면서 타오르는 햇볕이 집 안쪽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했고 나는 여전히 그녀의 가슴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녀는 내 곁에 있었다.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데가 나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해줬으니 정말이지 죽지 않으면 안 되겠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고 보니 우리 둘 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색하게 진행된 그것 때문에 내 몸은 찌뿌둥했다. 나는 그녀를 보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도 고개를 들고 날 응시했다. 허공에서 시선이 묶였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정신과에 가봐야 해요.”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내 정신은 어느 때보다 맑고 깨끗하며 또렷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부정했다. 당신은 우울증 말기에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 왜 죽으려는 거냐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단순히 타일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진실을 말하라며 소리쳤다. 나는 계속해서 그 말을 반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쳤다.


그녀의 집을 나가기 직전에 나는 체코 사람들이 하는 것 처럼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한 직후에 반드시 자살할 테니까 뉴스 봐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가지 말라고 외쳤지만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버스 정거장에 도착했다. 그 무렵 태양은 가라앉기 직전이라 세상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한 손으로 턱을 괸 채로 허공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총포상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100달러 주고 권총을 하나 샀다. 그리고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집은 여기서 멀지 않았다. 버스를 타기엔 너무 가까워서 돈이 아까웠다. 그러다가 나는 그냥 거리에서 총을 쏘면 되는게 아닌가 싶어서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조깅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늦은 시각까지 놀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담배 꽁초를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바로 옆에 있는 밴치에 갔다. 


그리고 앉았다. 세상을 바라봤다. 땀방울이 떨어져서 눈이 따가웠다. 사람들이 뛰고, 웃고, 여름 밤을 느끼고 있는 풍경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늘 죽기 직전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혹은 어떤 풍경을 보는지 궁금했다. 더 없이 평온하고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사온 권총에 탄약을 넣고 나는 입에 물었다. 이제 내가 기다리는 건 이 평온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파괴하는 단 하나의 총성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