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톡 왕국의 경찰이자 카그란 제국에서 섭외한 고정간첩인 켐브리에 대응하기 위해 이센그린과 프레드가는 숨겨놓았던 소총을 꺼냈다. 마력이 모두 충분되어 있어서 바로 발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켐브리의 눈은 보라색이었다. 그 말인 즉슨 본래 레스톡 왕국의 사람이었고 그 마법을 온전히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켐브리가 경찰용 권총으로 이센그린에게 쏴갈겼다. 이센그린은 그가 가진 절반의 마력으로 방어진을 펼쳤다. 그리고 마법을 적절히 써서 가방 안에 있는 군복으로 바꿔입었다. 이는 방탄을 위함이었다.
켐브리는 그걸 보고 더욱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이센그린과 프레드가도 필사적으로 반격했다. 프레드가는 선글라스도 벗고 제대로 전투에 임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시장은 이미 총탄으로 인해 난리가 아니었다.
켐브리의 권총이 프레드가와 이센그린에게 타격을 주고 이센그린과 프레드가가 소총으로 반격하기가 계속되었다. 켐브리는 그녀의 무지막지한 마력으로 날아오는 총탄들을 죄다 쳐내었다. 그래서 전투가 길어질수록 피해를 입는 쪽은 이센그린과 프레드가였다.
"포기하시지, 이센그린 가드너?"
켐브리가 계속 권총과 마법을 쓰며 살기 가득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센그린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 그런 그쪽은 괜찮으려나? 시장에서 깽판을 벌였으니 이제 감옥에 쳐들어갔겠구만."
"그거야 쉽지. '테러리스트와의 교전'. 마침 니들 옷차림이 딱 적절하잖아? 사람들은 다 내 말을 들어주겠지. 그러니까 제국이 죽으라고 했을 때 얌전히 죽었어야지."
켐브리가 또 한 발 쏘았다. 프레드가가 거기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이 스파이 새끼가! 대체 왜 이러는 건데? 그리고 애초에 왜 내가 에스텔라랑 동일인물이었던 거지?"
"글쎄다, 그것까지 알려주면 재미가 없잖아? 대신 네 단물은 우리들이 다 빨아먹었다는 건 말해줄 수 있겠네."
이센그린이 격노하며 켐브리에게 한 발 쏘았다.
"이 새끼가!"
"네가 어떻게 그 전투에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오늘은 네 제삿날이라는 거다."

"과연 그럴까?"
누군가가 눈깔을 내리깔며 독기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경찰복을 입은 그 여자는 이신다였다.
"분명 서장님은 경찰서에서 대기하고 있으라 그랬을 텐데?"
이신다의 존재를 알아챈 이센그린과 프레드가는 환호하는 한편 불안해했다. 지금 입고 있는 것은 카그란 제국의 군복이었기 때문에 오해를 사기 딱 좋았다.
"봐, 얘네들은 카그란 제국의 첩자라고! 소총 안 보여?"
켐브리가 그럴싸한 거짓말로 진상을 왜곡시켰다. 프레드가는 궁지에 몰린 느낌을 받았다.
"장난하냐? 다 들었어. 첩자는 니새끼겠지."
그리고 이신다는 켐브리에게 돌격했다. 둘 간에 대규모 교전이 펼쳐졌다. 시장의 각종 자재들이 그들의 마법에 나가리가 되었다.
켐브리는 마침내 이신다에게 한 방을 먹였다. 이신다는 피를 흘리며 균형을 잃었다.
"이신다!"
이센그린이의 부상을 보며 걱정하며 말했다. 그러나 이신다는 태평하게 사랑 가득한 말투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괜찮아. 이게 있거든."
그 말과 함께 가슴에서 무언가가 잠시 번쩍이더니 고막을 찌르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켐브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경찰들이 죽거나 다치면 바로 또다른 경찰을 호출하는 배지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급습에 잊어버렸던 것이었다.
사이렌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누군가가 나타나며 켐브리를 포위했다. 특수한 경찰복을 입은 요원들이었다. 켐브리는 그들을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질과 양 모두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요원들의 피해는 전무했다. 켐브리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이신다는 상황이 종료되자마자 이센그린에게 달려들어 와락 끌어안았다. 옷이 적군의 군복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에스텔라! 고생했어!"
"어, 그래."
이센그린이 얼떨떨하게 말했다. 켐브리를 죽이려 들었을 때와 행동이 너무 달라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따라오시죠."
경찰복을 입은 요원들 사이에서 케스 경찰서장이 나오며 말했다. 프레드가는 자신의 차림을 걱정하고는 불안한 마음에 말했다.
"그, 저기, 이건, 그러니까..."
"알고 있습니다. 프레드가 버로우스 중위죠?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분은 에스텔라 가미지이자 이센그린 가드너 대위."
"아니 그걸 어떻게...?"
프레드가가 당황하며 물었다. 벌써부터 정체를 꿰고 있었다니 까무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케스 서장은 그런 그들을 보며 태연히 말했다. 말투에 적의가 없는 것으로 보아하니 죽이러 온 것은 아니었다.
"저만 알고 있는 기밀사항이었죠. 자세한 이야기는 가서 합시다."
"잠시만요, 그럼 이신다도 알고 있었어요?"
이센그린이 반문했다.
"이신다는 몰랐습니다. 이신다는 방금 당신 찾으러 다니다가 우연히 엿들어서 알게 된 거고요. 그럼 따라오시죠."


군복 차의 이센그린 대위와 프레드가 중위는 케스 서장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이신다는 여전히 이센그린의 바로 옆에 있었다. 그곳에는 낯설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
"다행히 결국에는 이리로 오셨군요."
이숨브라스 뱅크스 중령이었다. 이센그린과 프레드가는 적의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걸 본 이숨브라스 중령은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예상했는지 그들에게 말했다.
"죽이거나 고문하거나 할 일 없으니 안심하세요."
이센그린과 프레드가는 일단 그 말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뒤이어 누군가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이 들렸다.
"왔으니까 시작하자고."
"저분은 누구시죠?"
이센그린이 경계하며 말했다. 이숨브라스 중령이 설명해주었다.
"베크마 룰 국정원장님이시다. 이 일은 1급 기밀사항이라 직접 출두하셨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심각하게 행동하나 싶었다. 

베크마 국정원장과 이숨브라스 중령의 인도에 따라 이센그린과 프레드가는 어떤 방으로 이동시켰다. 이신다도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은 어느 정도 걸어가더니 어떤 문 앞에서 멈춰섰다. 그러더니 베크마 국정원장이 말했다.
"프레드가와 이신다는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같이 들어가면 조금 곤란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남겨두고 이센그린 혼자서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나이든 여자 한 명이 있었다. 로브를 쓴 그 여자는 딱 봐도 마법사의 기운을 풍겼다. 그녀는 이센그린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들?"
여자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이센그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에서 무언가 마법이 튀어나오며 이센그린의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마법의 결과를 확인한 그녀의 눈에는 재회의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이센그린을 부드럽게 포옹했다.
"에스텔라!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
이센그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황 상 이 여자는 에스텔라의 어머니였지만 그런 기억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센그린은 말 없이 그녀를 톡톡 두들겨주었다.
"에뉴린 대마법사님, 어서 기억을."
에스텔라의 어머니 에뉴린 가미지가 베크마 국정원장의 말에 눈물을 닦고 이센그린을 눕게 했다. 이센그린은 반항하지 않고 바닥에 누웠다.
그가 눕자마자 에뉴린이 무언가 주문을 외었다. 이센그린의 주변에 마법진이 이중삼중으로 쳐졌고 톱니바퀴 모양의 마법진들도 서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이센그린은 그의 의식이 점점 몽롱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과 박힌 돌이 굴러온 돌을 밀어내는 느낌을 받았다.
이센그린은 평안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 모든 기억들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

때는 6년 전이었다. 당시 21살이었던 에스텔라는 그의 업무처에서 그가 해야될 일에 대해서 듣고 있었다. 젊었지만 일처리와 마력이 훌륭해서 발탁된 인물이었다.
"최근 카그란 제국과의 국경지대에서 대량의 실종사건은 들어 봤을 거다. 경찰이 아무리 수색했으나 단서조차 잡지 못한 사건이었지. 그런데 바로 오늘 경찰이 단서를 찾아내었다. 그게 바로 이것이다."
사진에는 흙길에 찍힌 굵은 타이어 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그 자국은 국경을 넘고도 한참을 더 가서야 자리잡은 포장된 도로에서 끊어졌다.
"이쯤되면 알겠지? 국경지대에서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실종사건의 배후는 카그란 제국이다. 그리고 바큇자국의 방향을 보아 므네몬 마을이 최종 도착지인 것 같다."
"그럼 왜 카그란 제국이 우리 국민들을 납치하고 있는 거죠?"
에스텔라가 물었다. 한참은 높은 상사였던 베크마가 말했다.
"마법 때문이겠지. 모두 알다시피 카그란 제국에는 마법을 쓸 수 있는 자가 극소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들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카그란 제국이 노리는 것은 우리들의 마력이다."
에스텔라가 그 사실에 놀라며 카그란 제국에 쌍욕을 퍼부었다. 베크마가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구출할 것이다. 대마법사의 피를 받아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너라면 가망이 있다. 그래서 너를 선택한 것이다."
에스텔라가 그 작전지시를 받아들이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에스텔라는 베크마가 세운 작전을 머릿속에 새겨들었다. 실패 시 리스크가 매우 큰 계획이었지만 에스텔라에게는 승산이 충분한 싸움이었다.
"언론에는 비밀로 할 것이다. 카그란 제국은 아마 우리들이 이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이 작전은 비밀작전이다. 그러니 꼭 성공시키도록.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하게나"
"예!"
에스텔라가 거수경례와 함께 짐을 챙겨서 떠날 준비를 했다. 에스텔라가 건물을 나서 므네몬 마을로 떠났다. 
에스텔라 가미지는 중개무역자로 위장한 레스톡 왕국 국정원의 공작원웠다.

에스텔라는 므네몬 마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중소규모 도시 폰토에 들렀다. 폰토는 외국으로 가는 중간지점 역할을 수행하는 도시였다. 폰토는 그의 고향이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드는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에스텔라가 오는 걸 멀리서 알아챈 이신다가 바로 반갑게 맞이하였다. 에스텔라도 매우 반갑게 그 인사를 받아쳤다.
"오늘은 어디로 가? 텔란? 부르스틱?"
"아니, 조금 험한 곳."
에스텔라는 슬쩍 답변을 피했다.
"얼마나 걸리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길어봤자 1년? 그쯤 될 거야."
"그러면 조금 머물렀다가 가면 안 돼? 말해주고 싶은 게 있거든."
이신다가 또 기다리기 싫다는 듯 요청했다. 이는 에스텔라가 하도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이었다. 에스텔라도 속으로는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므네몬 마을로 가야했다.
"아니, 빨리 가봐야해서. 그럼 갈게."
에스텔라가 등을 돌리고 떠났다. 이신다는 그런 그를 멈춰세웠다.
"잠깐만."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다음에 봐."
이신다가 뭔가 숨기는 것처럼 말을 무마하였다. 그녀의 등 뒤로는 초콜릿이 든 작은 하트모양 상자가 들려있었다.
"어, 알겠어."
에스텔라는 뭐지 싶어하면서 다시 갈 길을 갔다. 그래도 이신다 덕분에 위험한 임무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는 이번 기회를 마치고 나면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신다는 그런 에스텔라가 적당히 멀어졌을 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에잇, 오늘도 고백할 기회 또 날려버렸네.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