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홀로 한 잔 하고 싶은 날
편의점에 들러 맥주 몇 캔을 사왔다.
안주는 냉동실의 만두 정도면 충분하겠지.
팬에 기름을 두르고
자글거리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타서 눌어붙은 조각들
급히 덜어 내 보지만
달라붙어 버린 조각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이젠 보내 줄 때가 되었구나 싶더라
폰을 들어 새 팬을 주문했다.
번거롭게 마트에 가지 않아도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으로 충분한 세상
일단 이건 치워야겠지.
생각해보니 참 오래도 썻다.
군데군데 벗겨진 코팅
긁혀진 자국들, 지워지지 않는 얼룩
뜨겁게 타올랐던 만큼
단단하게 굳어버린 비늘들을
그저 묵묵히, 수세미로 벗겨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운다는 것은,
채우는 것 보다 몇 배는 수고스러운 일이구나.
그럼에도,
나는 비워내기도 전에 다시 채울 궁리만 하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