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의 중간고사를 앞둔 날, 나는 지아와 함께 도서관으로 향했다. 정숙을 미덕으로 삼는 공간, 창을 타고 흐르는 빗소리는 그 정숙의 의미를 확고히 하고 있어 도서관은 한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이따금 들리는, 샤프의 흑연이 깎여나가는 소리조차 빗소리에 천천히 잠겨 사라지고.
그렇게 한동안 노트에 글을 적어가며 시험 공부를 하던 중, 나는 문득 지아를 바라봤다. 책상 위를 훑는 눈동자, 그 움직임을 따라 바삐 글귀를 적어가는 손. 그 모습이 등 뒤에 빼곡히 들어선 책장과 너무도 어울려서 하나의 작품과도 같았다. 사진으로 찍는다면 꽤 좋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빗줄기가 궤적을 그리는 창문까지 포함한다면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도 있으리라.
“...공부 안해?”
“잠깐 쉬는거야.”
그렇게 너스레를 떨고 고개를 다시 내리지만 어느 순간 나는 고개를 올려 지아를 보고 있었다. 내 눈은 긴 속 눈썹에 꽂혀, 한동안 그 얼굴을 관찰했다.
생각해보면 지금만큼 지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없는 것 같다. 지아의 얼굴은 늘상 저 긴 머릿결 사이에 가려져 언뜻 언뜻 내 눈에 비치기만 할 뿐이었으니까. 어쩌면 이렇게 함께하는 지금은 정말 소중한 때 아닐까.
“자꾸 보면 부담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라면 다시 또 고개를 내릴 시간이 되어.
“좋아서 그래, 좋아서."
나는 페이지를 넘겨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지문을 써내려가도, 참고서의 문제를 풀어도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없어서. 그저 무의식 중으로 펜을 움직이지만 할 뿐.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어느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노트 구석에 새겨 넣는 건 사람의 얼굴, 지아의 얼굴. 언뜻 비치는 눈동자부터 길게 뻗은 속눈썹까지. 그려나갈 수 없다면 그 때만 조금 고개를 들어 흘깃 살펴보고 다시 펜을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조금 두근거리는 가슴이 있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림이 완성에 가까워질 수록, 그렇게 지아의 얼굴이 내 공책의 한 구석에 자리잡아 갈수록 내 손은 점점 더 갈피를 잡지 못했고.
“아.”
선을 긋는 와중에 그만 힘 조절을 잘못해서 심이 부러졌다. 그와 동시에 지아의 얼굴에 흉한 선이 그어지고, 빨리 지우개를 찾아 지우려고 했다. 그런 내게 내밀어지는 희고 고운 손이 있었다.
“여기 지우개.”
“아...응.”
몰래 쳐다보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다 들킨걸까. 지아는 그런 내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고개를 들기 부끄러워 조심스럽게 지아의 손 위의 지우개를 집었다.
“...얼굴 몇 번 보는 건 상관없으니까.”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정말 지아가 그런 말은 할걸까. 의문을 품고 올려 바라본 곳에 있는 건 붉게 상기된 지아의 모습.
“그림은 완성해야지.”
지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말에 어떻게 대답할 말은 찾지 못했지만, 어쩐지 해야할 행동은 알 수 있었다. 나는 하염없이 지아의 얼굴을 쳐다보며, 같은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점차 달궈지는 스스로를 알아가며.
“그림 안 그려?”
"모델을 관찰하는거야. 걱정 마, 이제 그릴거니까.”
닮은 우리 둘에 대해 생각했다. 결국 그림은 다 그리지 못한 채 내일로 미뤘다. 아마 내일도 마무리짓지 못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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