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이 지났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6월 중순이었다. 장마철이었고 작물에 좋았다. 요제프는 머리를 들었다. 뺨에 씹는담배의 갈색 찌꺼기가 묻어 있었다. 그는 아찔한 분노를 느끼며 자기 머리를 잡아 뜯고 진흙에 얼굴을 박은채 울부짖었다. 근처에 있던 건물에서 창문이 열리더니 닥치라는 소리와 함께 오물이 날라왔다. 분명 집에 있는 오물통을 뿌린 게 틀림없었다. 요제프는 오물을 맞았고 이후 진흙 속에서 몸을 굴렀다. 그는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는 영유아처럼 굴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굽힌 채 고개를 들었다. 귀 아래 맥박이 두근거리는 소리와 장대비가 지상을 파헤쳐 놓는 두 가지 음이 하나의 재즈 음악처럼 고막에 울려 퍼졌다. 그는 오랫동안 감지 않았거나 혹은 오랫동안 운 듯이 충혈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이 마을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었고 보이는 세상을 모두 불태우고 싶었다. 세상이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요제프는 그보다 더 세상을 미워하고 있었다. 


요제프는 입속에 들어간 오물을 뱉어냈다. 그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듯 의연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마지막 걸음을 걷는 사형수처럼 차분하게 자기 집까지 걸어갔다. 그의 집은 인적이 드문 언덕 위에 세워진 다 무너져가는 오두막이었다. 이곳에 살던 인간은 예전에는 처형인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했고 그 이전에는 양치기가 살았다고 했었다. 이 나라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은 이런 작고 후미진 곳밖에 없었다. 도시에서는 부랑자나 거지가 되는 수밖에 없었고 그 이상의 계층으로 나아가기란 불가능했다. 시골에서는 요제프처럼 노예에 가깝게 사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살 수만 있는 장소였다. 다른 것은 전혀 보장하지 않았다. 


오두막 바로 옆에는 거목이 있었다. 전에 살던 인간이 아마도 이 나라에 요제프 말고 유일했을 인간이 죽은 장소였다. 그도 요제프가 하려던 것처럼 목을 매달았다. 그 인간은 여성이었고 요제프보다 더 끔찍한 짓거리를 당했다. 원치 않게 아이를 밴 적도 있었고 자살은 그것 때문에 이루어졌다. 요제프는 그 인간과 몇 달 같이 살았고 무덤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다치고 굶주린 채 군복을 입은 그를 보살펴준 존재는 그녀가 유일했다. 


요제프는 오두막집에 들어갔다. 가구라곤 의자와 침대 하나가 전부였다. 낡은 주전자도 버려진 걸 쓰고 있었다. 깡통이나 다름없었다. 요제프는 침대 밑에서 밧줄을 꺼냈다. 그녀가 자살할 때 쓴 밧줄이었다. 만약을 위해서 과거의 요제프가 버리지 않고 보관해놓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때를 미리 예견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는 밧줄을 들고 매듭을 묶었다. 그리고 그녀의 무덤 앞으로 걸어갔다. 전날 노란색의 작은 들꽃을 뜯어서 헌화했지만 오늘날 비가 그것조차 앗아가 버린 상태였다. 요제프가 입을 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신음말고는 뱉은 적 없이 없어 갈라지고 찢어진 목소리였다. 


“나도 노력해 봤어. 베카.” 


그는 잠시 침묵했다. 


“굳건하게 살아보려고 해봤어. 빌어먹을 수십 년이나.”


장마가 그의 눈에 들어갔다.


“그런데 잘 안되더라.” 


그가 눈앞에 사람이 있다는 듯 양팔을 휘둘렀다. 하늘이 번개를 품었다. 큰 소리가 났다. 


“빌어먹을 수인들이 어디를 가든 지랄이야.” 


“단 한번이라도 수인처럼 살아보고 싶어.....” 


그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무덤에 얼굴을 박고 울었다. 


그러나 그는 수인을 증오했다. 수인 덕분에 그의 인생이 꼬였다. 이 세계에는 수인이라는 게 있다. 또한 신은 인간을 창조했다. 인간은 약자고 수인은 강자다. 단순한 논리에 요제프는 희생됐다. 한때는 인간에 인간을 위한 인간을 위한 정부 아래에서 싸운 적도 있었지만 그것도 10년인가 15년이라는 시간 동안만 짧게 존재하곤 번쩍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수인들 간의 전쟁 사이에서 태어났던 국가였고 수인들 간의 전쟁으로 인해 멸망하고 만 국가였다. 그리고 인간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집단으로 학살을 당해 수인 사회에서 완전히 퇴출당하고 말았다. 소문으로는 오직 신대륙의 국가들만이 인간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수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한다고 하지만 요제프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삼십오 년이나 살았고 그런 거짓말에 속지 않을 만큼 컸다. 


요제프는 여전히 무덤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물론 얼굴을 박고 있겠다고 해서 저승에 있는 여성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그는 계속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속이 망가졌고 얼굴 또한 망가졌다. 약물로 한번 총기로 한 번이었다. 약물은 그의 속을 완전히 태워놓았고 총기는 그의 얼굴을 반쯤 쪼개놓았다. 턱과 내장의 일부가 사라졌지만 사는 데 지장은 없었다. 가끔 죽을 듯이 괴롭다는 것만 빼면. 


이게 모두 동물주의 때문이었다. 동물주의. 요제프는 그 단어를 생각해내곤 다시 무덤에 비명을 질렀다. 동물주의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고 인간은 나쁘다는 사상이었다. 부르주아, 귀족, 인간을 박해하는 이 사상 덕분에 요제프는 모든 걸 잃어버렸다. 본래 그는 푸른 피를 지닌 귀족이었다. 단란한 가족이 있었고 열 살 때는 수인이자 귀족인 여성과 약혼까지 했다. 다섯 살 때 처음 만나서 친해진 사이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동물주의에 의해 무너지면서 그는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일 년간 수용소에서 살았고 가족은 모두 흩어져서 생사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마도 모두 죽은 게 틀림없을 것이다. 유일하게 약혼녀는 잘 알고 있었는데 그녀는 같이 수용소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목숨을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수용소장의 조건이었다. 그는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자유 폴스카 군이 그들을 구했을 때 그를 버리고 본가가 있는 신대륙으로 도망쳤다. 요제프는 아직도 그 일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증오하진 않았다. 전쟁통에 어린 여자로서 할 수 있었던 일이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건 알았다. 그는 군에 입대해서 포탄 보급병이 됐다. 그리고 모르핀에 중독됬다.


일 년 후에는 요제프는 소총병이 됐고 이년 후에는 훈장을 받았다. 그는 계속해서 싸웠고 전진했다. 그는 그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쭉 싸웠다. 새롭게 만들어진 인간만의 나라가 전쟁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나라가 멸망하고 다시 폴스카를 부활시키려는 운동마저 끝난 지금 그는 전부 잃어버린 채로 방랑하다가 우연스럽게 벨기로 갔다. 그곳에서도 동물주의가 부흥하고 있었고 인간들은 모두 죽어가고 있었다. 요제프는 떠날 수 없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엘랑, 알비온, 체호프, 호르티, 그가 머물고 있는 벨기까지 지금도 갈 곳이 없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구대륙에서 이제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아마도 요제프가 이 나라에서 혹은 이 대륙에서 유일한 인간일 것이다. 하수구에 살고 있다는 비밀스러운 지하 결사를 제외하면 말이다. 요제프는 그 소문을 알고 있었다. 도시 지하에 인간들끼리 뭉쳐서 훗날 다가올 적절한 날에 또다시 폴스카 공화국 혹은 왕국을 재건하겠다는 인간들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요제프는 그 소문이 진실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가 알기론 마지막으로 국가를 형성하려는 시도는 제2차 사바나 전투에서 끝장나버리고 말았다. 인간들은 중동에서 완전히 축출됐고 얼마 안 되는 무장단체는 동방의 무인지대로 떠났다. 


소문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사실 상관없었다. 수인들은 소문을 빌미로 인간을 압박했다. 인간은 밀려났다. 더없이 낮은 곳으로. 

요제프는 갑자기 돌아섰다. 그러고는 밧줄을 들고 거목으로 기어갔다. 거목에 도착했을 때 그는 나무를 붙잡고 일어섰다. 그는 밧줄을 던져서 정확하게 그녀가 걸었던 장소에 밧줄을 매달았다. 그리고 거목을 한 바퀴 돌면서 줄을 묶었다. 그는 매듭이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요제프는 밧줄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디딤돌이 없다는 걸 그리고 멀리서 차량의 찢어지는 듯한 엔진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드문 일이었다. 이런 곳까지 차량이 오는 일은 잘 없었다. 이곳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이었으니까. 그러나 상관없는 일이었다. 요제프는 금방 차량에 관심을 끄고 집에 들어가서 낡은 의자를 꺼냈다. 차량 소리는 더 커졌다.


그는 반쯤은 정신이 나갔고 또 반쯤은 정신이 나간 만큼 분노한 채로 의자를 매듭 아래에 박아넣고 밧줄 구멍에 얼굴을 넣었다. 요제프는 밧줄이 목에 걸리자마자 의자를 걷어찼다. 그는 허공에 매달렸다. 빗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렀다. 그의 상의는 축 젖어 있었다. 무게가 나갔고 장기가 아래로 쏠리는 듯한 느낌에 그는 사로잡혔다. 허공에서 벨가 담배의 냄새가 났다. 요제프는 모르핀을 맞고 싶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양손을 버둥거리며 목을 긁었다. 본능적인 움직임은 제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게 너무 즉흥적이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살다 보면 자신이 어떤 남자인지 결정하게 될 때가 온다. 요제프는 지금은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아니어만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만약에 지금 죽어버리면 저승에 있는 자들이 비웃을 게 분명하다는 걸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자살 끝에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요제프는 궁금했다. 당장 그가 자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었다. 그의 신은 자살자를 미워했다. 그러나 신앙이 없었던 요제프는 신을 믿지 않았고 신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그는 신을 약간이나마 두려워했던 거 같다. 그는 신에게 물었다.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만 했습니까?”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비가 계속됐다. 하늘에서 청중이 쳤다. 요제프는 화약 냄새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