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청각과 후각이 좋았다. 짐승처럼 좋았다. 


중기관총의 소리가 사방에서 터졌다. 그는 달리고 있었고 옆에는 회색 제복에 방탄복을 걸친 돌격대가 돌격소총을 들고 수류탄 가방을 메고 요제프와 함께 발을 맞추고 있었다. 그들은 전방 참호에 있었고 후방 참호는 적어도 100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뛰면 금방이지만 전쟁에서는 일 미터가 일 킬로미터나 같았다. 아군의 지원 포격이 계속되는 한 중기관총 사격이 덜하겠지만 그것도 십초 뒤면 끝난다. 요제프는 구덩이에 숨고 싶었다. 구덩이, 사방이 구덩이였다. 대포가 꽝꽝 울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수십 일 동안 만들어낸 이 아수라장은 잘못 만든 파이의 표면 같다. 사흘 동안 장마가 계속돼서 고랑이며 구덩이며 파인 장소엔 물이 고여 있었다. 


  요제프는 입술을 깨물고 비명을 참았다. 그는 살아남고 싶었다. 멀리서 유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적의 참호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이제 이 자리에서 형제가 된다. 그리고 서로의 등을 맡기고 아마 죽어도 가끔은 기억해줄 것이다. 수류탄을 매고 있던 병사가 전방으로 폭탄을 던졌다. 잠시 후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 그것은 그들의 의식보다 빠르고 원초적 본능으로 움직이며 의식하고 싶어도 의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성은 첫 폭음과 총성이 고성과 함께 뒤섞여 메아리치기 시작할 때 끊어지고 파괴되고 만다. 요제프는 목에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불었다. 돌격대가 그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참호에 들어갔다. 


참호는 이미 수류탄과 포탄에 짓이겨져 있었다. 그러나 아직 살아있는 게 있었다. 도베르만 견종인 듯 한 개 한 마리가 낑낑거리면서 잘려 나간 다리를 찾았다. 파벨이 그것의 목에 총검을 박아넣었다. 요제프는 삽으로 소총을 쥐고 양다리가 잘린 토끼 한 마리의 머리를 쪼갰다. 뭔가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찢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북소리처럼 울렸다. 


그들은 참호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포격은 멈췄고 소형 박격포의 지원 사격도 끝났다. 이제 그들의 임무만이 남았다. 요제프가 이끄는 스무 명의 돌격대는 아군의 착검돌격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중기관총 진지와 야포를 파괴하고 가능한 적들의 수를 줄여놓는 것이었다. 아군은 전차가 없었기 때문에 요제프를 비롯한 돌격대가 전차의 역할을 해줘야 했다. 전선에 구멍을 뚫는 것이었다.

돌격대는 최고 중의 최고만 뽑힌다. 인간 중에서도 재능 있는 자들만 돌격대가 될 수 있었다. 전투와 살인에 태생적으로 능한 인간들, 짐승들에게는 도살자로 여겨지는 자들이다. 그들은 가장 좋은 갑옷을 걸치고 돌격소총에 박격포와 소형 경 야포를 지원받는다. 그리고 망치와 삽을 지급받고 그것으로 적들을 무자비하기 으깨버리며 가죽을 벗겨버린다. 그들의 앞에서는 총을 들어도 소용이 없다. 이빨은 바스러지고 발톱은 부러지게 된다. 


요제프는 돌격대의 지휘관으로 오 년을 버텼다. 그는 오 년간 전선에서 싸웠고 지금까지 수백 회의 작전을 지휘했다. 이번에도 같은 임무가 될 것이다. 항공 정찰에 의하면 적들은 현재 전차가 없었다. 심지어 장갑차도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도살만 하면 끝날 일이었다. 요제프의 부대는 거리낄 것 없이 참호의 심장부로 나아갔다. 중기관총 진지를 발견할 때마다 그들은 폭탄을 던지고 돌격소총을 쏘아댔다. 


소머리 수인이 반쯤 찢어진 채로 내장을 내보였다. 이 미터에 가까운 체구였지만 폭탄이 눈앞에서 터지자 일 미터도 안 되게끔 쪼그라들었다. 곁에 있던 사슴 수인은 용케 살았다. 놈은 소총을 내던지고 다른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요제프가 외쳤다. 


“파벨! 죽여!” 사내가 총을 쏘았다. 사슴의 머리가 쪼개졌다. 


그들은 수십 개의 중기관총 진지와 야포를 파괴했고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다. 적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돌격하면 돌격소총을 갈기면 그만이었다. 수인들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다가 무참히 학살당한다. 어떻게든 가까이 붙는다고 해도 사슴이나 소 따위의 힘만 쓸 줄 아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삽에 머리가 쪼개지고 둔기에 골통이 터진다. 하나가 쓰러지면 다른 열 놈이 겁을 먹고 도망친다. 그런 식으로 참호 하나가 깔끔하게 정리된다. 


이제 할 일이 끝났기 때문에 요제프는 전장의 안개 속으로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그러자 쥐들이 발아래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수만 명이 발을 구르면서 뛰기 시작하면 그 일대가 진동해서 마치 지진이라도 온 것만 같다. 요제프는 아군을 기다렸다. 그의 병사들도 느긋하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꽤 되는 거리를 뛰어서 달려온 병사들이 하나둘, 참호 속으로 발을 디딘다. 그리고 요제프를 발견하고 놀라지만 곧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기를 내린다. 그들은 참호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적들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반격을 시작한다. 수인 중에서 날개를 지닌 것들이 하늘을 날며 입에 물고 있던 폭탄을 떨어트리지만 그것만으론 진격을 막을 순 없다. 


구멍이 뚫린 항아리에 물을 들이붓는 것처럼 거침없이 돌진하는 인간들의 착검 돌격은 첫 번째 방어선을 돌파하고 두 번째 방어선에 이르렀다가 세 번째 방어선에서 멈췄다. 적들이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는 장소가 그곳이다. 요제프와 그의 부대도 그곳까지는 갈 수 없었다. 그곳에는 중기관총이며 대포며 박격포며 생명을 꺼트릴 수 있는 잔혹한 전쟁 기계가 잔뜩 모여있다. 으레 그렇듯이 그곳에서 진짜 싸움이 벌어진다. 피 냄새, 고름 냄새, 땀 냄새와 석탄, 화약 냄새, 화염 냄새 오만가지 냄새가 그의 민감한 후각을 자극한다. 전쟁 속에서 맛이 갈법한데도 그의 후각은 고장 나지 않았다.


그는 기묘한 사내였다. 인간의 몸을 하고 있지만 신체 능력은 수인 만큼 특이했다. 놀랄 만큼 빨리 달릴 수 있었고 힘이 좋은데다 체격이 건장했고 조금만 먹어도 오랫동안 움직였다. 상처를 입어도 다음 날이면 나았고 쉽게 겁을 집어먹지도 않았다. 그는 수인과 인간의 장점을 한대 뒤섞어 놓은 듯 했다. 그리고 그 어떤 인간들 보다도 살인에 재능이 있었다. 그는 싸움과 생존에 재능이 있었다. 


모든 인간은 한 가지 혹은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을 타고난다. 그건 운명과도 같으며 피할 수 없다. 어떤 인간은 발명에 재능을 가지고 시대의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된다. 어떤 인간은 음악에 재능을 가진 채 하나의 음표가 된다. 인간의 혈연과 혈연에 엮인 가문처럼 인간의 이러한 특징은 인간만의 것이었고 수인들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살인에 재능을 가진 인간은 인간들 사이에서 재능 없는 존재로 두려움과 멸시를 받아 왔다. 요제프 같은 경우는 정말 드물게 태어난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버려진다. 삶의 목적이 이미 정해진 상태로 태어나는 인간들에게 살인을 목적으로 태어나는 존재들이란 그렇게 사라진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면 달랐다. 군대가 근대화되면서 그들은 장교로서 혹은 돌격대와 같은 특수한 군대의 일원으로서 하나 될 수 있었다. 요제프는 살인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 중에서도 각별했다. 그 재능이 다른 모든 인간을 합친 것보다 더 강렬했기 때문이다. 요제프는 생존과 살인을 위해 태어난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생존과 살인이 인간의 모습을 한 것 같았다. 


그는 참호에서 다른 참호로 몸을 움직이며 돌격소총을 난사했다. 그의 눈앞에 있던 돼지 수인이 죽었다. 중기관총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곧 거대한 납탄을 쏘면서 기괴한 비명을 외친다. 요제프는 몸을 굴렀다. 함께 보조를 맞추던 돌격대 한 명이 중기관총을 맞고 상반신이 터져나갔다. 


요제프는 수류탄을 집어던졌다. 중기관총 진지가 침묵했다. 


그는 참호에 엎드린 상태였다. 동지의 피가 그의 몸에 튀었다. 다른 돌격대가 그의 곁으로 왔다. 그러곤 그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일어나!” 


그는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요제프는 불안했다. 그는 그대로 엎드려 있었고 돌격대는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때 요제프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이쪽을 향해서 포신을 돌리는 대포를 볼 수 있었다. 그가 외쳤다. 


“튀어!” 


포탄이 그의 동지들을 휩쓸었고 그들이 있던 자리엔 발목만이 남았다. 흙더미가 비처럼 떨어졌다. 요제프는 여전히 귓가에 메아리치는 그들의 목소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요제프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목이 막힌 것 같았다. 그는 목을 부여잡고 구덩이 깊숙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아래로 그 속으로 그 깊은 물 속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영영 나오지 않겠다는 듯 혹은 못 한다는 듯이 입을 뻐금거리며 무어라고 소리치려고 했다. 


병사들이 그의 앞을 지나갔다. 그의 몸을 밟고 지나갔다. 그는 시체 속에 묻혀 있었다. 머리 위에 회색 하늘이 펼쳐져 있다. 관측용 열기구가 보인다. 대포 소리, 총소리, 병사들의 고성과 비명이 메아리친다. 요제프는 눈을 감았다. 그는 몹시 피곤했다. 그리고 ‘일어나’ 하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그리고 시원한 것 무언가 차가운 것이 그의 얼굴에 흘렀다. 이것은. 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