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ing-불안감

1. J-프롤로그

2. 동명이인 비슷한

3. H-프롤로그

4. 흔한 이능력 배틀물

5. 기숙사 비스무리

6. D-프롤로그

7. 암살

8. 주머니에 손 넣고


직접 발로 움직이기 전에, 간부가 준 파일을 훑어보았다. 내용이 상당히 많아보인다고 해도, 사진들도 많아 오늘 안에 충분히 살펴볼 수 있는 양이었다.


우선, 사인은 복부에 박힌 상처를 보니 과다출혈이나 쇼크일 것 같았다. 확실한 게 아니라 가정형인 이유는 기어 인간들이 제대로 감식반도 부르지 않아서 그런 거고. 사망 추정 시각은 첫 신고가 들어오기 몇십분 전 정도라고 쓰여 있지만, 이건 경찰의 자료에서 빼올 수 있는 거니 믿어도 되겠지. 그 외에 사건 자체에서 이상한 점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경찰이 아무것도 안 해놔서.


대충 문서를 다 읽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우선 어떤어떤 초능력으로 일을 저질렀다, 같은 건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이 세상에 그렇게 입맛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초능력은 별로 없다. 주로 발동 조건이 지랄맞거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싶을 정도로 제한적이니까. 만약 초능력을 편히 쓸 수 있는 직업이라면 이미 그 능력으로 살인이나 다른 범죄를 몇 번이고 저질렀겠지만, 그런 소식은 아직까지는 없으니까. 혹시 모르니 머릿속 한 편에 집어넣는 편이 좋나.


책상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했으니 움직일 차례다. 몸을 둥실, 하고 떠올렸다. 역시 가장 먼저 가볼 곳은 피해자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일 거다. 태도가 적대적일 거라는 건 쉽게 짐작이 되겠지만, 그래도 부딪혀보지 않으면 안되겠지. 창문을 열고, 그대로 나갔다. 나름 싸늘한 바람이 스친다.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해서 밖으로 나와보는 것도 꽤 오랜만이다. 피해자의 생가는 서울에 있다고 하니, 남쪽으로 수백 킬로미터 정도 간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순간이동 초능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염동력을 재미있게 응용하면 고속 이동이 가능하긴 하다. 물론 팁이 있어야 몸이 덜 상하는데, 미리 내 몸 주위에 막을 싼 다음에 그 막째로 움직여야 날카로운 바람이 몸에 닿지 않는다. 소싯적에 배운 것 중에 아마 제일 많이 써먹는 걸 거다.


그래서 서울까지 빠르게 가는 건 할만 하지만, 어디가 서울인지 알고 멈추는 건 힘들다. 이번에도 모르는 새에 해안가까지 와버렸다. 적어도 서울은 해상도시는 아니니까 살짝 벗어난 거다.


어쨋든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도착했다. 어쨋든 내가 있던 곳보다 사람이 무지막지 많으니 서울이 맞긴 맞다. 아니, 내가 있는 곳이 전국에서 알아주는 시골동네라서 그런 건가. 아무튼, 집이 꽤 가난하다고 알고 있으니 집이 좀 작은 동네를 찾아가다보면 만날 수 있겠지. 그렇게 따지고 시작하니, 집 자체는 직접 걸으면서 조사하면 금방 닿을 수 있었다.


"저기, 계신가요?"

태도가 적대적일지라도 한 가지 긍정적인 면은, 그래도 체인 쪽에선 가정 방문을 안했다는 점이겠지.


"누구세요."

목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울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집이 가난하니까 제대로 된 장례도 못 했을 거고, 집 안에 향초 몇 개 피워놓은 게 다겠지. 문이 반쯤 열렸다. 피해자 어머니의 눈 밑에는 눈물이 고여있었지만, 눈매 자체는 날카로웠다. 적어도 태도가 적대적이라는 건 확실했다.


"무슨 일이죠."

대놓고 탐정이라고 말하는 건 탐정 유치원이라도 다닌 사람이라도 하지 않는 짓이다.


"현주 친구인데요."

"그럼 오지 마세요."

밑도끝도 없이 거절당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대충 예상했다.


"제 아들을 죽여놓게 만든 사람이 어딜 들어오려고 해요."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그건 소리를 지를 힘도 없어서 그런 거지 화가 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네?"


분명히 피해자의 친구들이 집에 들어와서 피해를 끼쳤다면 술이나 마약을 빨거나, 집안을 망가뜨리거나 했겠지. 하지만 죽인다는 것 까지는 너무 갔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녀는 나를 얼마간 노려보았다. 가능하다면 나를 한 대라도 치고 싶어하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해서 순순히 마음이 풀어진다면 순순히 맞아줄 생각은 있었지만 때리진 않았다. 대신 그대로 문을 쾅하고 닫았다. 대놓고 잠그는 소리가 났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상보다 태도가 부드러웠다. 칼침까지는 생각했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교섭을 할 여지가 있다. 나는 집의 벽에 기댔다.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지금부터는 약간의 연기가 필요하다.


"어머님. 이거 하나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제 동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진짜로 내가 체인의 조직원이 된 것처럼 이를 갈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미세한 소리까지 저 쪽이 들릴 일은 없겠지만, 기분을 그렇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온 겁니다. 혹시 뭔가 알 수 있는 게 있나 싶어 왔어요. 어머님께서 어떤 식으로 생각하시던 자유지만, 적어도 저희는 저희 동료를 살해한 사람을 용서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조금 기다리니 문이 열렸다. 아까보다 조금 덜 열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열려지긴 했다는 게 중요하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따지는 말투라기보다는 놀라워서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였다.

"아까 경찰 쪽에선 범죄조직끼리 싸우다가 죽은 거라고 했는데요."

아하, 그렇게 된 거였구만. 뭐, 그런 일은 흔하다. 아니, 범죄조직끼리 싸우다가 죽는 거는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밖을 둘러봤다. 사람이 적고, 경찰 쪽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지만, 생각보다 탁 트인 곳이었다.


"혹시 안으로 들여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아마 남들이 들으면 안되는 이야기를 하려는구나, 하고 생각했는지 문의 각도가 점점 넓어졌다.

"들어오세요."


엄마의 안내에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까지 경계가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성공이다. 집 안은 좁았고, 거실 한 가운데에 촛불이 있었다. 아마 장례식 대용으로 놓은 거겠지.


"아까도 말했지만, 경찰은 범죄조직끼리 싸우다가 죽은 거라고……"

역시,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좋게 말하면 선량하지만, 선량한 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안된다. 조금 사회 공부를 시켜줘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부모님이 대접해준 차를 물렸다.


"일단, 경찰이란 건, 혹시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무슨 말이에요? 경찰이라면 하나밖에 없잖아요."


웬만하면 기어, 라고 알아주기를 바랬지만, 뭐 맞는 말이기도 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경찰은 하나밖에 없죠. 그런데, 범죄조직도 사실상 하나밖에 없어요."

"사실상이요?"

"아드님께서 있었던 곳은 체인이라고 합니다. 물론 체인 말고도 다른……


그런 곳은 많이 있지만, 다른 곳은 전부 체인의 힘에 털끝도 못미치는 작은 규모입니다."

이건 사실이다. 실제로 나도 체인 때문에 탐정 장사 말아먹을 뻔했지. 체인과 경쟁할 조직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기막힌 외교술로 빠져나갔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된 거에요?"

"그러니까, 체인의 조직원을 '범죄조직끼리의 싸움' 으로 죽일 만한 다른 조직은 없어요."

"그러면, 경찰은 왜 ……"

"알 바 아닌 거죠. 자기들 입장에서 그런 사람 죽은 건 오히려 적이 한 명 줄은 거니까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일을 안 사람처럼 엄마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그럼, 경찰 쪽에서 저희 아들을 죽였다는 건가요?"


"그건 아닐 겁니다. 라고 할지,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 확실한 건, 경찰 쪽에서 피해자의 신원 확인이 끝난 다음엔 조사를 유기하다시피 했을 겁니다."

이제는 완전히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도대체 세상을 얼마나 순진하게 살아온 건지.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나는 쭈그려 앉으면서 엄마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최대한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여주었다.

"한 번 더 말씀해 주시는 게 정말 마음이 괴로울 수 있지만, 부탁드립니다. 경찰에게 했던 말 똑같이 해도, 결과는 다르게 나올 거란 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내가 복수를 하는 게 아니라, 난 범인만 간부에게 넘겨주는 거고, 그 다음부터는 간부의 몫이지만 말이지.

"정말인가요?"


뭔가 부모님이 자식의 원수를 갚아주겠다면서 눈빛을 불태우는 걸로 보이진 않지만, 협력을 받아내기엔 충분한 양인 것 같다.

"꼭 복수를 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건이 아무렇지도 않게 잊혀지는 건 싫어요."

엄마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살짝 휘청거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는 게 사실이에요. 그 쪽에 있다는 사람이니까 제 아들이 왜 조직으로 들어갔는지도 아마 그쪽에서 잘 알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 별로 중요한 정보 같지는 않아서 유심히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런 것도 파일 안에 있었다. 분명히, 자신의 초능력 때문이었지. 자신에게 초능력이 없는 걸 비관적으로 생각해서, 그래도 인정받고 싶었다는 것 같다. 혹시 피해자가 부모님에게 말한 게 다를 수도 있다 싶어 물어봤지만,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미묘하게 다른 부분은 있었다. 피해자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자신에게는 초능력이 무조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에겐 조직에 들어가서 자신의 능력을 찾아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긴, 극한의 상황에서 발현되기 시작하는 초능력이란 경우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죠."

말을 마친 엄마는 어느새 눈시울이 부어올랐다. 결국, 불쌍한 피해자에게 초능력은 없었다고 하는 일이 된다.


"이 정도면 도움이 되나요? 정말 죄송하지만 혼자 있고 싶네요."

"네.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나는 굳이 발을 움직여 걸어나갔다. 아까 생각했던 운동, 같은 개념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염동력을 응용한 비행은 그 엄마 앞에서 보여주기엔 좀 잔인하다. 내 알바는 아니긴 하지만, 자기 자식이 초능력 떄문에 열등감 느껴서 제 명줄 당긴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어이 아가씨, 여기서 뭐해?"

피해자 가족의 집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누가 말을 걸어왔다. 살짝 흘겨보니 체인 쪽인 거 같은데.


"마약 주게요?"

"아……뭐. 아니다. 외부인인 줄 알았어."


말을 건 여자는 말을 건 게 무안했는지 생각보다 금방 물러났다. 설마 걱정해준 건가. 목적이 있어서 말을 건 것보다는 낫지만,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어디 가요?"

그렇게 나를 무시하고 길을 가던 여자를 잠깐 세웠다. 여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제 갈 길 갔다. 생각해보니 짜증나네. 지가 뭔데 보자마자 반말인데.

게다가 나는 존대말로 해줬는데 변변한 대답도 안 하고 먼저 가 버렸다. 몰라,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왜 그 사람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거야.


걍 간부한테 받은 돈으로 술이나 먹자. 주머니 안에 있는 돈을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피해자의 유족이 돈에 반응할 만한 사람이었다면 주저 없이 사용할 예정이었으므로 굳은 돈이나 다름없다 그럼 그걸로 술집에 가도 되겠지.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순문학은 많이 써봤으나 이런 류의 소설은 어디다 감평받을 기회도 별로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