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때 내가 앞면으로 눈부시도록 냈던 빛이 이제는 뒷면으로 따라와
빛보다 긴 그림자가 되어 감당할 수도 없이 끈적하게 붙어온다.
목이 부서지도록 외친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나를 놀리며 사라지고
내가 흘린 눈물은 강이, 바다가 되어
나를 무너뜨리고 잠식시킨다.
2
해가 지고 달이 지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슬퍼하는 님아,
슬픔이 바빠 죽어가는 자신을 돌아보시오.
뭐가 그렇게 당신을 바쁘게 만들었던가.
보고 싶은 그대여
부디 꺼지지 말아 주오.
3
잔잔한 바다에 깊게 빠져 얕게 허우적거리는 동안
간절할 시간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첨벙 일 적마다 빠져나오지 말라는 듯
나를 희롱하는 물방울들이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4
침수는 늘 가까이에, 늘 대비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무겁지 않더라도 늘 가라앉기 쉽도록 집어삼킨다.
겨울이 있기에, 봄은 다시 온다.
이 춥디추운 겨울만 버텨낸다면, 봄은 다시 온다.
고통을 견뎌낼 수 있기에, 꽃이 피겠지.
내가 모든 것을 바쳐 지켜낸 이 작은 씨앗이
아아- 태양이시어,
제발 헛된 것이 아니었기를.
5
환하디환하게 밝던 전구가 꺼진 춥디추운 밤 속에서
제가 당신을 원망하고 증오할지언정
당신은 아무 걱정도 근심도 말아주세요.
당신의 흔적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