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


땡그랑 한푼 땡그랑 두푼.


즐거운 마음으로 빚을 불리자.


히히. 이번 달도 가계 부채는 한계돌파였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어요.


내일 일은 내일 해결되리라.


저의 새로운 마음가짐이었걸랑요.


방금 막 완성된 따끈따끈한 라면을 옮겼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날계란이라도 하나 얹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계란은 비싸답니다.


라면의 반찬은 책으로 했습니다.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는 요전번에 끊었습니다.


광고가 너무 많아요!


광고가 없는 버전도 있지만, 그럴 돈은 없었고요.


대신 예전에 사둔 책을 읽는 거였죠.


읽는 책은 일본 소설이랍니다.


나츠메 소세키, <도련님>.


풍자 개그 소설이죠.


어찌나 즐거운지 읽고 있으면 괴로운 것도 싹 날아갔답니다.


정말 천재에요. 소세키는.


주인공의 친구와 주인공 사이에 생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읽을 차례였습니다.


진짜로 배신한 걸까요? 주인공을? 그 담박하던 친구가?



'딩동'


'쿵쿵쿵'



이런.


방문객이 왔습니다.


친구의 흉계가 실존했던 건지 궁금할 따름입니다만 일이 이렇게 되어서야 별 수 없었죠.



"예, 나갑니다."


'쿵쿵쿵'


'딩동딩동'



말을 해도 무용지물이었어요.


아주 몹쓸 인종들이네요. 제가 분명 나간다고 일러뒀는데 그 잠깐을 못 참다니.


문을 열어보니 아뿔싸, 아는 얼굴이었습니다.


한 서너명 남짓이었네요.



"집주인님, 저희 오는 게 껄끄럽슴미까?"



모히칸이 반지르르한 사내가 선두에서 물었습니다.


헤어스타일 바꾼 걸까요.


전에는 저런 닭벼슬 없었는데.



"아뇨. 그, 그게 아니고요...."


"그라믄 뭡니까? 왜 문을 안 여시더람미까?"



혓바닥을 데굴데굴 굴려가며 뇌까리는 것이 무척 흉했습니다.


마음만 같았다면 혀를 쭉 뽑아버렸을 텐데.


불행히도 저는 그 남자보다 체격이 작고, 힘도 없었네요.



"하하, 밥을... 먹던 중이라서요."


"밥을! 아하, 우리 집주인 서화씨께서 밥을."



밥이라- 하며 사내가 제 식탁을 향해 눈길을 돌렸습니다.


제 라면 뺏어먹으려는 속셈은 아니겠지요.


비겁하게.



"서화씨, 일은 구했슴미까?"


"저, 저번에 잘린 후로 아직... 입니다."


"그란데 밥이 넘어가드람미까?"



그 말을 기점으로 난동이 시작되었어요.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장정의 난리.


장난감 매장에서 어린 아이가 부리는 난동 따위와 견줄 계제가 아닙니다.


사내가 던진 라면 냄비가 날아왔습니다.


눈은 닿으면 곤란했습니다.


아슬히 비껴간 냄비는 이마에 찍혔습니다.


가열된 국물이 있던 터라 뜨거웠어요.



"여유롭게 책 같은 거이 보고 있을 때임미까? 지금이?!"



무식한 종자들.


책은 마음의 양식이란 말을 모르는 걸까요.


저들은 양식을 바닥에 팽게치고 짓밟는 거나 마찬가지인 행위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옛말에 먹을 것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지옥 가서 버린 음식들을 비벼, 코에 집어넣는다 했어요.


그렇다면 저들은 라면냄비와 책을 비벼 코에 집어넣는 형벌을 맞게 될 것입니다.


가관이겠지요.



"서화씨. 이럼 곤란함미다."



집안이 한바탕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그러곤 사내가 떠벌렸습니다.



"우리도 머 부수고 때리고... 그런 거이 안 좋아함미다.

서화씨야 모르겠지만."



모르죠! 알 리가 있나요?


제가 당신들을 본 건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모습 뿐이었는데.



"한데 서화씨가 대금을 안 갚으믄 이거이 방도가 없잖슴미까?"


"... 죄송합니다."


"죄송하믄 사회 생활 끝나더람미까?"


"1개월, 1개월만 주시면 어떻게든 돈을 구해오겠-."


"2주. 2주 드리겠슴미다."



2주. 꼴랑 2주?


2주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앞이 깜깜하였습니다.



"우리도 악마는 아님미다. 2주 안에 조금만 갚으믄 됨미다."



전부는 아니었네요.


희망을 품고 물었습니다.



"혹시 어느 정도...."



사내가 손가락을 몇개 폈습니다.


백 단위라면 아직, 해볼 만한 수치 같습니다.



"천 단위임미다."



0이 하나 더 있었군요.


어쩐지, 일이 너무 쉽다 했습니다.



"2주 임미다. 이번달 말에 찾으러 올 검미다."



무례한 사내들은 무례한 작별인사만 고하고 사라졌습니다.


어차피 한 녀석만 떠들 거면 저 멍청이들은 왜 떼로 움직이는 걸까요.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방을 닦았습니다.


저의 몸의 양식은 마음의 양식을 껴안고 방바닥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둘다 엉망진창이 되어서는 말이죠.


찢어진 부분을 테이프로 붙일 수 있을까 고민되었어요.


테이프를 찾고자 서랍을 여니 뜻밖의 전단지가 나왔습니다.


[틋녀캐피탈], 현재 돈을 빌리고 있는 대부업의 전단지였지요.




생활고에 허덕일 때, 제 눈은 이 전단지를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저는 도장을 찍었더랍죠.


틋녀캐피탈의 계약서에요.



"정말로 이자가 없는 거죠?"


"그렇습니다. 3개월까지 무이자에요."



3개월이라면 당장 돈 새는 곳도 틀어막고, 어느 정도 먹고 살 자금도 마련할 수 있는 기한.


당시의 저는 그리 판단했습니다.


하여간 그 놈의 보증이 원수죠.


그것만 아니었으면 돈이 줄줄 새고 있지도 않았을 텐데.


무이자의 '이자' 는 비쌌습니다.



"내 집...."


"아이고 총각 이를 어째. 누가 밸브를 깜빡한 모양이여."


"내 집, 내 집이...."



화불단행이란 말이 있습니다.


장을 다 보고 온 제게 선물이 들어온 선물은 화재였습니다.


장바구니만 안고, 저는 넋이 나가 불타는 집을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3개월로 갚을 수 없게 된 거죠.


은행을 찾았어요.


빚을 빚으로 갚을 속셈이었습니다.


뜻밖의 소식은 제 희망을 망가뜨렸습니다.



"대출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째서죠?"



고객님의 신용 등급이 어쩌고.


제3금융권에서 대출을 했다면 저쩌고.


요는 제가 틋녀캐피탈에서 돈을 빌려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 셈이었던 거죠.


빚은 불어가고 갚을 순 없게 되고.


이자나 근근히 갚는 정도였어요.


그러던 차에 틋녀캐피탈에서 나온 사람 중 하나가 넌지시 제안했습니다.



"이번달은 이 돈을 다 가져가기는 조금 미안하군요."



언제부터 그렇게 인정있는 성격이셨슈? 하려던 것을 집어삼켰습니다.


사내가 말을 이었습니다.



"이리 합시다.

내, 받은 돈 중에 절반만 가져가겠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어찌 되는 겁니까?"


"그쪽 마음대로 쓰세요. 구워도 좋고 삶아도 좋고.

다만, 형식적 절차라는 게 필요하니까 일단은 저희가 빌려준 걸로 합시다."



거기에 무슨 대국적 전략이 있던지는 모를 일입니다.


저는 준다니 넙죽 받을 뿐이었죠.


여하간 갚아야 할 돈은 새끼를 치며 늘었습니다.


지난 날의 일을 머리에서 떨쳐보았습니다.


더는 이러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불과 오늘 받은 통보. 2주입니다.


막 끓인 라면을 희생하며 받은 통보였죠.


포스터의 뒤를 보니 최대 전액 탕감이란 문구가 있습니다.


신경 쓰이는 구절이에요.


자세한 사항은 본사로 가라 하였습니다.


오라면 가야지요.


저 같은 반 거지에게 남은 선택지가 있겠습니까.




*



{마마}



"사원복지란 게 참 좋지."


"깔깔깔 부장님 나 배꼽 빠져!"


"차장님, 난 아직 아무 농담도 안 했다네."



어이쿠 뻘춤해라.


건성으로 듣던 걸 눈치챘구나 박 부장 녀석.


여기서 필요한 게 재치라는 친구다.



"에헤이 부장님, 전 부장님의 말씀이면 항상 유쾌하고 즐거워서 하는 말이죠."


"...."



아니다. 잘 안 먹혔나보다!


어렵다! 사회생활.


박 부장이 손을 내저었다.



"자네 모습 보니 문득 생각이 나서 하는 말일세."


"제 모습이 뭐 어때서요."


"반년 전만 해도 교통사고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나."



외눈 외팔 시절.


허허 이 양반, 별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기억을 건드는구나.



"한데 TS인가 뭔가하는 그거 받고 나니 싹 낫지 않았나."


"회사에서 주최하는 거라길래 불안했지만 결과 올라잇이죠 뭐."



시선을 멀리 던졌다.


먹먹한 안개 위에 우리 회사 간판만 빛나고 있었다.


[틋녀캐피탈]. 대부 업체다.


TS 라는 건 우리 회사에서 주관하는 프로젝트 비스무리한 것이다.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는 거지.


신체를 통으로 갈음하니 나처럼 문제가 있던 사람들도 편해지고.


호적 문제 등 귀찮은 구석도 없진 않지만 돈으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난 돈이 많으니 걱정 없었고.



"그나저나 왜 사채 업체가 생명공학 비스무리한 기술을 품고 있는 건지 미스테리네요."


"듣기론 채무자 녀석들 몸 팔게 시킨다고 발전한 기술이라던 걸."


"매춘이요? 저희 그런 거 안 하잖아요."


"그야, 기술 개발 착수 당시엔 지금처럼 매춘이 법으로 금지될 줄은 몰랐겠지."



매춘과는 조금 다른 방법이지만 채무자를 TS시킨다는 발상 자체는 돈이 되었다.


한번 기술력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한 회사는 이내, 채무자 외의 인간에게 TS 를 권하기 시작했다.


채무자에게 행하던 반강제적 형식만이 아니라,

신청을 받고 행하는 자발적 형식을 병행시킨 것이다.


나도 후자의 방식으로 TS된 부류 중 하나였다.



"하여튼 다행이군. 몸이 바뀌어 되려 불편한 건 없고?"


"성욕이 끓는단 정도죠."


"우리 차장님 지금 날 성희롱하는 겐가?"



부장의 농담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 콩알만한 몸으로 부장님을요?"



안 되는데. 이럼 부장님은 자기 농담이 재밌는 줄 안단 말이야.


안 되는데 이 몸은 웃음보가 너무 헤프다.



"참! 부장님, 오늘 회식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들었나?"



부장이 흠짓하였다.


뭐야, 들키면 안될 걸 들킨 사람처럼.



"저만 빼놓고 다들 알던데 뭐에요, 서운하게.

저도 가도 되는 거죠?"


"... 안 되네."



부장이 드물게 정색하고 말하였다.


당황스러웠다.


뭐지? 사내 이지매?



"왜, 왜 저는... 안 되나요?"



어린 애의 몸이라 그런지 감정이 숨겨지지 않는다.


혀며 턱이 떨렸다.


박 부장이 석연찮은 얼굴로 망설였다.



"그게 시답잖은 이유이긴 한데-."


[링딩동. 링딩동.]



박 부장이 입을 떼려니까 때마침 전화기가 울렸다.


어머니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죄송합니다." 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곧바로 다시 울렸다.


아무래도 받을 때까지 걸 작정이신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오죽 급했으면 근무시간에 거셨겠나."



받으라며 손짓하는 박 부장은 어딘가 안심하는 눈치였다.


고개를 숙이고 기기에 귀를 가져다대니 의외의 소식이 있었다.



"여보세요."


[아이고 인석아, 내 숨 넘어가겠다. 왜 애미 전화를 받질 않냐!]


"일 하는 중이니까 그랬죠. 위급한 건이에요?"


[응? 음, 네 아비가 꼭 전해야 하는 말이라며 난리를 치쳐서.]



아버지 여전하시군.


여전히 못말려.



"어떤 말이요?"


[그게, 반드시 직접 화법으로 전하라 하셨거든.]



에헴, 콜록콜록-.


어떤 대단한 말을 하겠다고 목까지 다듬으시는 거람.


난 바쁜데.


상대가 아버지다.


분명 장난질임에 틀림 없는데.


어머니가 목을 다 푸셨는지 그제서야 말을 옮기셨다.


예상했던 것보다 의외의 말이었다.



[네 아빠 쩔더라.]


"예?"


['네 아빠 쩔더라' 라고.]



*


썸내일은 ts 주의란 뜻으로 달아놓음
절대로 복붙 긁다가 한번에 긁혀서 그런 게 아님
ts물챈에 올린 거 백업인데 원본은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