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



"정말로 괜찮으신 거죠?"



괜찮을 리가 있나요?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진행해주세요."



옛날 특촬물이 생각났어요.


주인공이 악의 조직에게 신체개조를 당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저는 똑같은 자세로 관에 누워있었어요.


관에는 뚜껑이 있었어요. 투명한 뚜껑.


먼저 새어나오는 것은 마취 가스였네요.


크게 아프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의식이 몽롱해질 즈음 이름 모를 액체가 뚜껑에서 떨어졌어요.


한방울, 두방울.


액체에 닿은 제 몸도 액체처럼 녹아내렸습니다.


갈비뼈가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TS 후엔 대개, 본래의 사람과 동일인물이란 걸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저란 존재 하나를 사회적으로 파괴해버리는 중인 거죠.


사회적으로 죽이는 중이고요.


절찬 융해 중인 몸뚱이와 함께.


듣기로 졸부들은 다르다곤 해요. 금전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나.


뭐, 전 애초에 돈이 없어 TS 하게 된 경우니 관련 없겠지요.


졸려워라.


제 인생이 송두리 째 지워지고 있는데 느끼는 감상이 졸려워라 입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어머니.


당신 아들 여기서 죽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눈을 떠보니 거울이 있었습니다.


파란 눈 파란 머리의, 꽤 육감적인 몸매의 여성이었습니다. 새로운 '저' 죠.


위는 크고, 허리는 작고, 그 아래는 다시 크고.


도도하게 생겼지만 우는 모습이 예쁠 듯한 여자네요.


누가 씌워놓은 건지 푸른 원피스까지 입고 있었어요.


아드레날린이 치솟았습니다.


뭘까요, 이 대접은?



"마음에 드세요?"



웬 여자가 물었습니다.


이 치들은 자기네들이 미용실하는 건 줄 아는 걸까요?


마음에 들겠어요?


끝나버린 겁니다, 저는 이제.


이 꼬락서니로 어머니 성묘를 갔다칩시다.


꽃다발을 놔둔다 가정해봐요.


어머니가 절 알아나볼까요?


왠 미친 여자가 아들래미 흉내를 낸다며 저주나 하지 않을까요?


고등학생 동기들 동창회가 열렸다 칩시다.


가면 뭐라고 할까요?


누구세요라고 하지 않을까요?


보증시켜놓고 도망간 동생 녀석과 재회한다손 쳐봐요.


제가 무슨 낯짝으로 그 애에게 화를 낼까요?


이 푸른 눈으로? 고양이 눈으로? 생면부지의 여성의 눈으로?


마음에 들 리가 없죠.


이딴 게.


이딴 짓거리가 성에 찰 리가 없죠.



"마음에 들어요. 예쁘게 됐네요. 이 파란 색 머리도 그렇고."



그래도 울분을 삼켰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가 더 중요했으니까요.



"이걸로 남은 빚은 없는 거죠? TS 되는 것만으로 부채를 탕감해준다고 들었어요."



거울 옆에 있던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응답은 다른 이가 하였습니다.



"허어, 이 아재 참 말귀 어두운 양반이네.

아니지, 인제 아가씨임미까?"



뒤에서 거한의 사내가 다가왔습니다.


발뺌을 하려는 속셈 같았어요.


호락호락 당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찌라시에 분명히 그렇게 적혀있었는 걸요. 시치미를 떼시려고요?"


"찌라시를 똑바로 읽으셨어야죠. 보쇼. 이 앞에 뭐라 써져 있는지 안 보임디까?"



남자가 품에서 전단지를 꺼내고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최대' 라고 했슴미다. 최대란 거이 이론상이란 말 아님미까?"



맙소사.


쌩 사기였다고?


멍해졌습니다.


거짓말에 속아넘어가 저는 저자신을 죽인 거였어요.



"그럼 대, 대출은...."


"까이기야 했슴미다."



'까이기야' , '했어' ?


남아있단 거잖아요.


대부 업체란 게 사골국 비슷한 작자들이에요.


한번 빚이 생기면 절대 놓아주려 하지 않죠.


우리고 우리고 또 우리고.


남아있는 빚이 얼마든간에, 틀림없이 다시 뻥튀기 시킬 거에요.


아아,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이고, 그 불쌍한 표정 좀 치우십쇼. 내 이라믄 맴 약해짐미다."



마음이 약해져?


너희가?


사탕발림도 저 정도면 예술이었어요.


현대 미술은 다 끝났군요. 동네 사채업자한테 패배하다니.


사내가 지껄였습니다.



"알았슴미다. 보쇼. 내 서화씨한테다가 특별히 알려주는 거임미다."



사내가 귀에 입을 가져다 대었습니다.


저는 그 꼴이 역겨워 사내를 밀칠 뻔하였습니다.



"첩으로 들어가시믄 될 낍니다."


"... 첩?"


"틋녀캐피탈과 연관이 있는 부잣집이 있슴미다.

리스트 중에 내 적당히 하나 골라서 첩으로 집어넣겠슴미다."


"첩이라고요? 아랍도 아닌데?

일부일처제 국가잖아요."


"법에는 안 적히는 첩인 거임다.

TS 녀면, 특히나 TS 된지 얼마 안 됐으믄 그 아가 실존하는지 아닌지도 세상은 모름미다.

말뜻 알아들으심미까?"



악취 나는 말뽄새에 지독한 내용이었어요.


첩이 할 일이라면 제 머릿 속에 떠오르는 건 하나 밖에 없었으니까요.



"가서 밤일을 하란 거에요?"


"집안일도 하겠지예."



부정은 않는구나.



"얼마 받고요?"


"받는 돈은 죄 압수혀서 부채 탕감으로 돌릴 낌미다."



노예란 거잖아요.


아.


나 어쩌다 여기까지 떨어졌지.


눈 앞이 아찔했습니다.


마음의 양식을 짓밟던 무례한 사내가 재촉했습니다.



"어떻심까? 할 생각 있슴미까?"


"기, 기다려주세요.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그럴 시간이 어딨슴미까. 자리 꽉꽉 찼을 텐디.

이거도 윗선에서 누구를 어디에 배치할 지 마음대로 할라꼬 극비로 하라 했슴미다.

고거를 내 서하 씨한테다가만 귀띔하는 의미를 모르겠슴미까?"


"그, 저는 저, 저기...."



말이 얼어 유창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내는 기다리다 지쳤다는 듯 이내 몸을 일으켰어요.



"그라믄 저는 수락한 걸로 알고 가보겠심다."


"잠깐만요! 아직 못 정했는데 1시간, 아니 30분만이라도-."


"안 하겠단 거임미까?"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고, 저 그게-."



뭐라 입만 뻐끔거렸습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지 않으면 어쩌지?


또 사채에 시달리는 거야?


한줌 끄트머리이던 내 경력은 어떻게 됐지?


바람에 날아간 거 아니야?


여자 몸으로도 노가다가 되나?


뭘 할 수 있는 거지 이 몸으로?


어차피 남는 건 창관 뿐인 건가?



"저, 저기... 기왕이면 밤일은 적게 하고 잘 대해줄 듯한 집으로 알아봐주세요!"



이뤄질 리 없는 부탁인 겁니다.


첩으로 들인다면서 밤일을 적게 한다고요?


그러면 애초에 거금을 들이고 첩을 살 리가 없죠.


그래도 그런 부탁 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사내가 피식 웃었습니다.



"하모, 애지중지할 집으로 알아봐주갔슴미다.

오늘은 배 고파지믄 아래 식당으로 가보십쇼.

잠자리는 그 옆에서 당신 시중 드는 그 여자가 알려줄 거임미다.

첩으로 이동될 때꺼정 신변은 캐피탈 소속이란 거이 잊지 마시고."




*



<마마>



"어때?"



아버지. 우리 존경하는 아버지.


나의 존경하는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나.


오랜만에 집엘 들르니 맞는 이가 꼬맹이 여자아이였다.


나도 지금은 꼬맹이 여자아이니까 나랑 비슷한 키 정도 될까.


아니다, 까치발 들면 내가 이기겠다.



"어떠냐니깐! 쩔지 않아?"


"착잡한데요."


"아이고 아들아, 좋은 감상으로 말해줘야지.

여자가 '나 오늘 어때' 하면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법이라고 누누이 일러주었거늘."



시끌벅적 요란한 이 꼬맹이가 아버지란다.


세상에.


요 얼마 전에 자원해서 TS 하신 거겠지.



"머릿 속에 뭐 떠오르는 구절 같은 거 없니?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아버지, 늦바람에 꽂힌 시에 아직도 헤어나오질 못하셨군.


나오지 못하고 끙끙대던 헤어 (hair) 도 이제 나온 모양인데, 슬슬 시에서도 헤어나오시면 안 되나?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 수 읊었다.



"아부지. 여전히 없으시지. 철부지."


"50점 주마."



글렀다! 이대론 계속 아버지한테 놀아나겠어!


이 놈의 영감탱이 때문에 내가 못살지 정말.


참다 못하여 내가 소리쳤다.



"어쩌다 TS 하신 거에요? 어디서 하신 거고? 언제? 누구랑?"


"어쩌다라니, 숙녀의 비밀이다. 허허."


"몸뚱이는 유녀고 소갈머리는 할아범인데 숙녀가 어딨어요!

퍼뜩 이실직고하세요!"


"하기는 몇주 전에 틋녀캐피탈에서 했다.

나는 부작용 걱정했는데 우리 아들 다니는 회사 세련되더만.

부작용인가 나발인가 일절 없어!"


"어쩌다 했냐니까요!"


"궁금하면 장기나 한판 이기면 알려주마."



이 놈의 계집.


성질머리 벅벅 긁는 걸 보면 아버지가 맞긴 했다.


나는 결국에 포기하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옛날부터 그랬다.


남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초조한데 무사태평으로 일관하는 저 태도.


할머니 장례식 때도 그랬고 어릴 적 파산 신청을 할 때도 그랬다.


기왕지사 집에 온 김이었다.


휴양이라도 할 요령으로 어려진 나의 몸을 마루 한바닥에 뱅글뱅글 굴렸다.


휴가는 내고 왔으니 걱정 없다.



"늦둥이 딸래미가 집에 둘이나 생긴 느낌이네."



어머니께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무안해진 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실이라도 나가려던 심산이었다.



"어디 가냐?"


"동네 산책하려고요."



그 말에 어머니는 "같이 가자. 시장 가서 사올 물건이 있다." 라며 달라붙으셨다.


새삼스레 부모가 부끄러운 연령은 지난 터라 "그러죠 그럼." 이라고 대꾸했다.


입술을 달싹이는 게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음이 분명했다.



*


이번에도 ts 주의란 의미로 짤 붙임.
역시 ts물 채널 대회 출품작 백업이긴 한데 원본은 이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