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한기가 섞여있었다.



 펄펄 끓었던 커피는 어느새 미지근하게 식어 맛도 달짝지근하게 변한지 오래였다.



 그래도 얼어버린 손보다는 따뜻했기에 두 손으로 모아쥐고는 한모금을 들이켰다.



 "하아..."



 하얀 입김이 내 앞에서 소용돌이치다 이내 흩어졌다.



 폐건물의 옥상 위에서 맞는 겨울밤은 그다지 안락하진 않았다.



 캠핑용 의자는 낮고 불편했고, 무릎을 덮은 담요는 냉기를 막아주기엔 역부족이었다. 핫팩이야 뭐... 이미 온몸에 붙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으슬으슬함은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 파고들어와 다리를 덜덜 떨게 만들었다.



 "나도 한잔 줘요."



 망원경에 얼굴을 처박은 채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미 다 식었습니다. 추위엔 도움이 안될겁니다."

 "괜찮아요. 슬슬 졸려지려고 해서 말이죠. 뭐라도 좀 마셔야겠어요."



 미지근한 커피를 건네받고 나서야 그녀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어냈다.



 "후우, 후우우..."

 "다 식은 거라고 방금 말씀드렸습니다."

 "커피는 원래 이렇게 좀 바람을 좀 불어주고 난 뒤에 마셔야 돼요. 낭만 없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실때도 그렇게 하십니까?"

 "..."



 나는 쪼그리고 앉아 커피를 마시는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달조차 뜨지 않는 밤이라 사방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색이라할만한 것은 흑과 백. 어슴푸레함과 희미함만이 우리 둘 사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활기차보이는 빨간 머리나,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나, 퍽 매력적으로 보이던 주근깨도 이 고요한 겨울밤이 주는 암흑 속에 숨어 그 색을 감추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눈길을 하늘 위로 돌린다.



 구름 한점 없는 진보랏빛 하늘. 그 어떤 것에도 가려지지 않은, 높다란 빌딩이나 가로수 하나 없는 온전하고 높고 드넓은 밤하늘.



 그리고 거기에 펼쳐진 수천개의 별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모래 알갱이만한 빛가루들이 공허하고 차가운 세상 위에 떠다니며 반짝였다.



 어떤 것은 크고 밝게, 또 어떤 것은 작고 미약하게. 그리고 땅을 향해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는 것들까지.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별이 있었다.



 입김을 다시 불어본다.



 하얀 연기 너머로 별들이 흐릿하게 춤추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자, 이제 그럼 다시 별을 찾으러 가보실까."



 그녀는 컵에 남은 마지막 한방울까지 다 입에 털어넣은 뒤 다시 망원경에 눈을 갖다대었다.



 난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벌써 5시간째였다. 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기 팔뚝보다 커다란 망원경을 세워놓고 미동도 없이 하늘만 바라보기를 5시간.



 한기와 허기와 고독으로는 그녀의 별 찾기에 대한 열정을 꺼뜨리기엔 부족했다. 하지만, 훌쩍이는 코와 나른한 목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



 "으... 추워라."



 아무래도 육체는 열정을 따라가기가 버거운 모양이었다.



 "좀 쉬는게 어떻습니까?"

 "방금 쉬었잖아요."

 "27초간 가만히 있는건 휴식이 아닙니다. 못해도 10분 정도는 잠시 한숨 돌리시는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러다 감기 걸립니다."

 "그걸 또 세고 있었어요? 누가보면 로봇인줄 알겠어. 그리고 지금이 가장 어두울 때라-- 에취!"



 거센 재채기 소리가 메아리쳤다.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것 보라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그녀가 머쓱한 듯 말했다.



 "...담요 남는 거 있어요?"

 "10분 쉰다고 약속하시면 드리겠습니다."

 "원래 나한테 제공되는 물품이잖아요! 당신들이 나한테 준 건데 내 마음대로 쓰지도 못해요?"

 "관리는 제가 합니다."

 "밤이 얼마나 짧은데 10분이나 시간을 날려먹으라는 건 좀..."

 "그럼 망원경을 압수하겠습니다."

 "아으으... 알았어요, 알았어! 10분이에요. 딱 10분만 휴식할거에요."



 마침내 그녀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마음이 변할까봐 나는 무릎을 덮고 있던 담요를 펼쳐 그녀의 어깨에 둘렀다.



 "이건 당신이 쓰던 거잖아요. 새거 줘요."

 "그게 따뜻합니다. 지금 새로 꺼낸 걸 쓰면 체온을 더 빼앗길 겁니다."

 "그쪽이 새거 쓰려고 그러는거죠?"

 "압수하겠습니다. 이리 주십시오."

 "장난이에요, 장난. 고마워요, 잘 쓸게요. ...조금 냄새가 나는 거 같지만."

 "내놓으십시오. 농담 아닙니다."



 그녀는 웃을 뿐 마지막 말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나 그녀 둘다 잘 알고 있었다. 손을 뻗은 내가 담요를 빼앗지 않을 거라는 사실과, 손에 꽉 쥔 담요를 그녀가 바닥에 던져버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



 대신에 내가 건넨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능숙하게 불을 붙였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 얼굴이 한순간 환하게 비쳐보였다가 사라졌다.



 하얀 입김 대신 탁한 회색 연기가 밤하늘 위로 피어올랐다.



 긴 호흡을 음미하며 무릎을 끌어안은 모습이 뭐랄까, 찬 겨울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물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시는군요."

 "당신이 이렇게 찾아와서 시덥잖은 말만 하고 갈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냥 잘 계시나 보러 온 걸수도 있잖습니까."

 "퍽이나 그러겠네요. 평상시에나 좀 그래보지."

 "착각하실까봐 신경 좀 썼습니다."

 "하, 친절도 하셔라. 안그래도 바쁜 사람인건 알고 있으니까 시간 많이 뺏진 않을게요. 어디보자... 한 10분이면 적당하겠네. 말해봐요. 이번엔 뭐에요? 저번에 부탁했던 삼각대가 구하기 어려워요? 아니면 부하들이 또 별에 관련된 이야기라도 더 들려달래요?"



 이번엔 내가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찰칵, 후우.



 밤하늘에 붉은 별빛 하나를 보탠다.



 내키지 않는 말을 한숨과 함께 내뱉는다.



 "...철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여기는 못 옵니다."



 그녀의 담배 끝에서 작은 불씨가 켜졌다가, 꺼졌다.


 설명이 필요하다는 무언의 요구였다. 



 "임시작전본부의 위치가 발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공습이나 기습이 오기 전에 급하게 옮긴다고 합니다. 그 이상은 기밀사항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위를 올려다봤다.



 "언제 철수하는 거죠?"

 "내일. 정확히는 오늘 해가 뜨면 바로."

 "그럼 이게 마지막으로 보는 거겠네요."

 "아마 그럴 겁니다."



 침묵.



 이따금씩 내뿜는 담배연기만이 가라앉은 공기를 흐트려놓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를 살펴봤다. 무표정이었다. 아니, 조금 눈살을 찌푸린게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란 듯해 보이진 않았다. 뭔가... 올게 왔다는 듯한 느낌. 덤덤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아쉬운 듯한... 그런 눈빛을 띄고 있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일곱까지 세었을 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당신도 처음 만났을 때랑 꽤 많이 달라졌네요."



 대답을 하기 전에 잠시 오늘 아침 거울로 본 내 얼굴을 떠올려봤다. 다를 게 있었나.



 "글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은 나요? 첫만남에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그건 확실히 기억이 났다. 너무 강렬했기에 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 경험이었다.



 "제 뒤통수를 녹슨 쇠파이프로 후려쳤던 건 기억납니다."

 "내가 언제-!"



 빽 소리지른 탓에 메아리가 저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어디선가 새 몇마리가 놀라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랐다.


 그녀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가 이번에는 속삭이듯이 작게 말했다.



 "내가 언제 그랬어요! 그리고 그건 당신이 먼저 날 권총으로 쏘려다가 미끄러져서 멋대로 난간에 머리를 박은 거잖아요!"

 "가해자는 모르는 법입니다."

 "당신 진짜 가끔 정말로 열받을 때 있는거 알아요?"

 "부하들은 그런 말 안합니다."

 "그야 당신 부하니까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 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기가 막힌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웃지마요."



 툭, 하고 작은 주먹이 내 어깨를 쳤다. 하지만 그녀의 입꼬리도 조금 올라가 있었다.



 이런 순간들이 좋았다. 시덥잖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순간들.



 잠시나마 군인이라는 신분을 잊고, 전쟁 중이라는 암울한 상황을 잊고, 그저 평범하고 피곤한 남자로 있을 수 있는 이 귀중한 순간이 나는 참 좋았다.



 그래, 기억한다. 우리가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나는 그녀가 적의 정탐병인줄 알았다. 작전본부 근처의 폐건물 옥상에서 망원경을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겁탈하려는 줄 알았댄다. 전쟁 중엔 도덕성과 준법정신을 개나 줘버린 놈들이 들끓는다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서로 죽여버리겠다고 악을 쓰다가 시작된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질 줄은 누가 알았을까.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야.



 "아무튼... 이게 마지막 만남인데 특별히 당신한테 선물이라도 줘야겠-,"

 "자리를 하나 비워놨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렸다. 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꽤 애를 먹긴 했지만, 제 부하들의 상담역으로 직책도 따로 마련했습니다. 원하신다면... 같이 가도 괜찮습니다."

 "그게 무슨... 지금 나보고 여길 떠나자고 하는 거에요? 같이?"

 "적어도 누군가 나타날까 무서워하며 뜬눈으로 지샐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안전과 최소한의 생활 수준까지는 보장해드릴 수 있습니다."



 위조된 서류 한장을 슬쩍 끼워넣기 위해 날려버린 담배가 몇 갑이었더라.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으니.



 아주 오랜만에 그녀가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작별선물치고는 너무 조건이 좋은데요. 장난치는 거면 화낼거에요."

 "부하들도 만장일치로 동의했습니다. 꼭 와주셨으면 하더군요."

 "그것도 당신이 상급자니까-,"

 "그 애들이 먼저 부탁한 일입니다. 들려주신 별에 관한 이야기 덕분에 자기들이 살인마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다고, 꼭 모셔와달라는 말도 했습니다."



 당황한 듯 말문이 막힌 그녀의 모습은 꽤 볼만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부하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총성과 비명과 빌어먹을 정도로 지독한 화약 냄새를 누가 떨쳐 낼수 있을까.



 방아쇠 한번에 사람 목숨 하나.



 그 비정한 계산법에 예외는 없었고, 우린 모두 수십 수백의 삶을 짊어진 괴물들이었다.



 가장 어렸던 부하가 자기 입에 총구를 쑤셔넣고 한참을 울었던게 기억난다.



 가장 무뚝뚝하던 녀석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웃었다. '저 이제 집에 갑니다. 집에 갈 거에요...' 그 말이 그토록 부러울 줄이야.



 '내일'이라는 건 허상이었다. '지옥같은 오늘'만을 반복되고, 반복되고, 또다시 반복되어 살았다.



 애국심이니, 정의니 하는 것들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명분이라는 건... 생각보다 덧없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겐 자신을 지켜봐주는 별이 반드시 하나씩은 있어요.'



 그리고 이 여자를 만났다.



 '수호성(守護星)이라고 하죠. 모두 위를 쳐다보세요. 네, 지금이요. 각자 마음에 드는 별을 하나씩 찾아봐요. 그냥 아무거나 고르지 말고,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쭈욱 다 훑어보세요. 그러다 눈길을 잡아끄는 별이 보이면, 거기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면, 그게 여러분들의 수호성이에요.'



 단순한 부탁이었다. 뭐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하나 들려달라고. 이 전쟁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게.



 '잊지마세요. 여러분들이 찾은 별이 빛나는 한, 여러분들은 모두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어떤 삶을 살았든, 무슨 마음가짐을 가졌든 상관없어요. 이 밤하늘을 잊지 마세요. 지금 찾은 수호성을 항상 기억하세요. 다음번엔 다같이 별자리도 찾아볼 거니까 무조건 살아서 다시 만나는거에요. 알았죠?'



 신이 나서 손짓발짓까지 다 써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던 여자와,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바보처럼 고개를 처들고 별을 찾던 내 부하들.



 그 순간을 내가 어찌 잊을까. 



 살인자가 다시 소년으로, 병사가 다시 청년으로 돌아가는 그 광경을.


 인공위성을 별이라고 우기는 막내를 보고 다 같이 웃었던 그 상황을.


 정말로 오랜만에 '내일'을 기대하게 된 부하들과 내 꼴사나운 모습을.



 내가 어찌 잊을까.



 많고 많던 별 중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던 별이 바로 그녀였다는 것을.



 다시한번 그녀에게 말한다.



 "우리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절반의 진심, 절반의 호의.


 손을 내민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외친다.



 잡아.


 당신이 나를 잡아준 것처럼.



 "같이 가시죠."



 눈동자가 옆으로 향한다. 밑을 봤다가, 나를 흘긋 쳐다보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그 시간이 영겁같이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가 웃었다.



 기뻐 웃는게 아니라, 안타까운 듯이.






 "미안해요."






 내 표정을 본 그녀는 몸을 돌려 망원경으로 향했다. 가늘은 손가락이 망원경 끝을 훑었다.



 "난 아직... 찾지 못한게 있어요."



 망설이는 말투에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아니,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같이 찾아드리겠습니다."

 "뭐에요, 그게. 아직 뭔지 말도 안했는데."



 그녀의 어깨가 가볍게 흔들렸다. 비웃는 거라기보다는...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이건 나만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서 찾아야만 하고"



 장난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단호한 목소리. 절박하다고도 느껴질 정도였다.



 "...여기에서만."



 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도대체 뭐를 찾는거지?



 그녀는 항상 별을 보고 있었다. 잘 때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를 빼곤 늘 망원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지만 뭘 찾고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보고 있을 뿐.



 별을 찾는 여자.



 별.



 하늘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별.



 그중에 하나.



 아.



 그녀는 지금까지 자기의 별에 대해 단 한번도 말한적이 없었어.



 나 스스로도 믿기 힘든 말을 힘겹게 입밖으로 꺼낸다.



 "...수호성을 찾고 계시는군요."



 그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왔었다.



 그녀에게도 수호성이 있을거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삶에 대한 의지가 그토록 강렬하고, 활기차다 못해 열정적으로 이 암울한 현실을 이겨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니.



 나는 더 묻는 대신 담배를 한번 깊게 들이마셨다.



 내 앞에서 붉은 빛이 깜빡였다.



 그녀는 그 신호를 보곤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 이 폐건물 옥상은 나랑 동생이 학교를 다닐 때부터 매일같이 별을 보러 오던 곳이었어요. 우리 아지트였죠. 그 애는 참 별을 좋아했었는데."

 "동생...이 있었습니까? 지금 어디에-,"

 "죽었어요. 내 손으로 직접 묻었죠. 2년 전에."



 나는 눈을 감았다.



 "...미안합니다."

 "뭘요, 우리 모두가 겪은 일인데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무덤덤한 말투에 많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2년 전이라면 전쟁이 시작될 무렵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비극은 흔한 이야기였다.



 "자기는 수호성이 한 백개쯤 있댔나. 바보같이... 이름도 다 기억 못했으면서 욕심은 어찌나 많던지."



 그녀는 냉기 서린 바람 속에 한숨 섞인 담배연기를 차분하게 흘려보냈다.



 "그 애랑 약속했었어요. 내가 수호성을 찾으면 자기가 이름을 붙여주겠다고 했었거든요. 사람은 가고, 약속만 남아버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가늘은 손이 담배 꽁초를 튕겼다. 작고 붉은 별똥별이 호를 그리며 난간 너머로 떨어졌다.



 천천히.



 그리고 덧없이.



 "내 별은 동생이었어요. 잃고 나서야 깨달았죠. 내 별은 땅에 묻혔고, 하늘에 뜬 별은 나의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동생의 마지막 부탁이니까. 그러니까..."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그러니까 나는 못 가요. 남아버린 약속을 지켜야해요. 여기서 수호성을 찾아야만 해요."



 말끝이 떨렸다.



 "미안해요."



 애처로운 미소가 희미하게 보였다. 애써 웃는 모습이었다.



 별을 잃은 여자. 그리고 다시 별을 찾는 여자.



 난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눈매 끝에 맺힌 눈물이 그리 말하고 있었고,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그리 말하고 있었다.



 가슴 한켠이 욱신거린다.



 '괜찮다'라는 어설픈 위로 대신 나 역시 담배 꽁초를 난간 너머로 던졌다.



 저 멀리 떨어져 사라지는 붉은 별똥별.



 그 별이 암흑 속에 삼켜지는 걸 보며 내 마음을 삼킨다.



 한겨울밤의 하늘은 차갑고도 서글펐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게 마지막일 것이다.



 야속한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나면, 나는 별을 볼 때마다 이 여자를 떠올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겠지.



 들려줬던 이야기를 장작 삼아 이 나날을 다시 버텨야겠지. 


 "...아쉽군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어.


 "정말로."


 목 밑까지 올라온 진심을 억지로 내리누른다.


 "정말..."


 내가 당신의 별이 되고 싶었어.


 "..."



 예정된 이별 앞에서 무슨 감정을 던질까. 밤하늘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우린 별들 사이에서 해가 뜰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






 "그럼 가보겠습니다."



 천천히 밝아오는 하늘 아래서 내가 말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참 잔인했다. 얼마남지 않은 순간마저도 앗아간 뒤 나에게 어서 떠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먼지묻은 뺨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눈물자국을 차마 닦아줄 수 없어 둘러멘 담요를 여며주었다.



 "여기 있는 보급품은 전부 다 두고 가겠습니다. 봄이 올때까지는 무리겠지만, 여기 머무시는데 도움은 될 겁니다. 그리고..."



 이게 작별이라면, 선물 하나는 주고 떠나도 되지 않을까.



 권총 한자루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내가 처음으로 장교가 되었을 때 받았던 권총이었다.



 "간직하십시오. 제 작별선물입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만 쓰십시오."



 부디 이걸로라도 나를 기억해주길.



 내가 당신을 지켜주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는 걸 알아주기를.



 그녀는 권총을 받아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전부... 다..."



 내 마음마저 갈라질까봐 몸을 돌려 옥상 철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돌아보지 않는다.



 이별은 흔한 일.



 발걸음을 옮긴다.



 문을 닫는다.


 

 폐건물을 떠난다.



 이별은 흔한 일.



 눈앞이 흐리다.



 하지만 흘리지 않는다. 끝끝내 삼키어내고 군화로 땅을 밟는다.



 아스팔트 바닥을 지나, 흙길을 지난다.



 15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추억과 감정을 지그시 밟았다. 돌아가는 길이 꽤나 길었다.



 바스락,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군복이 눈에 들어왔다.



 적군의 군복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권총을 뽑아들으려 했다. 하지만 권총은 그자리에 없었다.



 -타앙!!!



 총성이 하늘 높이 울려퍼졌다.






 § 






 "..."



 아침이 되면 그녀는 잠에 들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손길이 닿은 담요 끝자락을 어루만져봤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건네받은 권총은 무거웠다. 그걸 손에 쥐고 힘없이 망원경으로 향했다.



 "별을... 찾아야지..."



 아무리 하늘을 들여다봐도 별은 보이지 않았다. 푸른 배경에 하얀 구름만이 가득했다.



 바보같은 짓이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망원경을 접으려는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땅으로 망원경을 돌려봤다.



 그리고 그 남자를 찾아봤다.



 성능 좋은 망원경은 지나가는 사슴과 떨어지는 나뭇잎을 정확하게 캐치하여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남자의 뒷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흙길을 따라 시선을 옮겨봐도 발자국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미 한참이나 지났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그녀가 한숨을 내쉬고 담요를 끌어내리려고 할 때였다.



 -타앙!!!



 총성이 저 멀리서 메아리쳤다.



 그와 동시에 불빛 하나가 숲 한가운데에서 반짝였다.



 놀란 그녀가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하지만 총알은 이쪽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아닐거야. 아니야.'



 -타앙!!!



 또다시 총성. 그리고 섬광.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망원경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 남자가 보였다.



 말끔했던 군복은 먼지투성이에 여기저기가 붉게 얼룩져있었다. 그의 주변엔 시체가 세 구 정도 있었고, 다른 사내들이 그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남자는 빼앗은 소총으로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그녀가 본 반짝임은 바로 그 총에서 뿜어져 나온 불빛이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잠시 그 불빛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딘가 익숙했다.



 불빛이 수 차례 반짝였다.



 마치 별빛처럼.



 은은하면서도 강렬하게.



 땅에 피어난 별처럼.



 눈길을 잡아끄는, 그리고 지금껏 자신을 지켜주었던 존재.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랐다.



 그녀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당신이... 당신이 내... 별이었어..."



 그에 화답하듯 별빛이 땅 위에서 춤추었다.



 날카로운 총성이 메아리쳤다.



 동시에 남자의 표정에 고통이 서렸다.



 "아... 안돼...!"



 그가 위험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미친듯이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 만한게...!"



 하지만 충격과 걱정과 환희가 뒤죽박죽이 되어 머릿속을 잔뜩 헤집어놓은 나머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손에 쥔 권총이 느껴졌다.



 무겁고, 딱딱하고 차가운 권총.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든 도구.



 내 동생을 앗아간 혐오스러운 물건.



 그걸 부숴져라 틀어쥔다.



 "내 별이... 내 수호성이 위험해..."



 별은 하늘에 있지 않았다. 바로 곁에 있었고, 다시 한번 꺼지려 하고 있었다.



 마침내 찾은 내 별을 두번 다시 잃을 순 없어.



 당신의 빛이 꺼지게 둘 순 없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망원경이 옆으로 툭 하고 쓰러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렌즈에 금이 갔다.



 그딴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별을 향해 뛰었다.



 폐건물도, 추억도, 살인에 대한 걱정도, 앞으로 느낄 죄책감과 죽을 지도 모를 두려움도 다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녀는 별을 향해 뛰었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친 채.



 그뿐이었다.












 전쟁은 그렇게 또 한명을 집어삼켰다.












 사랑과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얀데레 발현 + 전쟁이란 극한 상황 조합이 은근 맛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