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생은, 계속 기다리고 있었나이다. 먼 길 달려오셨는데 시장하지 않으신지요? 곧 찬을 올릴 터인데, 그 전에 담소라도 하지 않으시겠나이까."



"…연아. 오랜만이구나. 가축들은 다 어찌되었니."



"수년 간 호란이 들어 전부 범에게 물려갔나이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어찌되었니."



"아바마마는 호환을 잡으러 가셨다가 창귀가 되어 돌아오셨고, 어마마마는 창귀에 홀려 범의 한끼 식사가 되셨지요. 저만이 살아남아 매실로 창귀를 봉하고, 범의 심장을 취해 두 분을 하늘로 보내드렸나이다."



"아녀자의 몸으로 용케 범을 잡았구나."



"확실히 일격으로는 힘들어 매일 매실을 뿌리고 창을 찔러넣은 즉시 도망치는 걸 반복했나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인가 범이 죽어가길래, 그 심장을 취했지요."



"마을 사람들은 어찌 되었니."



"호환은 우리 집에만 닥치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강대한 범이었겠구나. 어찌 그런 범을 네 힘으로 잡았느냐."



휘릭.



피 묻은 아홉 갈래의 꼬리가 누이의 치맛자락 밑에서 빠져나오며, 춤추듯 요동치며 피를 털어냈다.



저 피는 범의 피인가, 아니면 사람의 피인가. 아니면 양쪽 모두의 피인가.



"아무리 범이 날래고 용한들, 결국 필멸의 것 아니겠나이까. 필멸의 것을 잡는 데에, 영물이 힘을 들여서야 되겠습니까."



"여전히 말솜씨가 현란하더구나, 요물아. 그 현란한 거짓으로 아버님과 어머님을 속이고, 그들의 간을 취하며, 이 마을을…"



"예. 범을 불러들여 이 마을을 부쉈고, 일이 끝난 후에는 그 범도 처리했지요. 허나, 결과적으로는 호환 아니겠나이까. 오라버니께서는 이것이 호환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 범은 그저 네놈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다. 호환이라니, 말도 안 되는 것이지. 그들은 네놈에게 환을 당한 것이다."



"예에, 역시 오라버니이십니다. 누구에게 미움받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해도 홀로 자신이 보고 믿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진실이더라도 관철하시는 강인한 나의 오라버니다운 말씀이십니다. 허나 오라버니, 소저는 기쁘면서도 슬픕니다."



"무엇이 말이냐."



"오라버니께서, 아직도 소저를 죽이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으셨다는 것이 말입니다."



누이의 아홉 갈래 중 8개의 꼬리가 점점 오라비에게 다가오며, 그의 몸을 감싸온다.



오라버니가 짐승으로 변한 누이의 눈을 바라볼 때는 언뜻 입가에 붉은 피가 묻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누이의 비열한 미소는 그런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입술을 움직이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오라버니는 소저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자. 소저는 오라버니와 맞서기 위해 태어난 자. 그럼에도 오라버니께서는 이 참상을 보고도 소저를 죽이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은 것입니까."



"입 다물거라, 요물이여. 그런 것을 말해 내 결의를 흐트러뜨릴 작정인가."



"서지도 않은 결의를 흐트러뜨려 무엇을 하겠나이까. 오라버니는 진정으로 소저를 죽일 각오가 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소저는 그저, 오라버니가 자신의 운명을 마주하지 못하는… 아니, 마주하지 않는 것이 기쁘면서도 슬플 뿐입니다."



"웃기지 말거라, 요물아. 그렇지 않다면 왜 내가 여기 왔겠느냐."



"저를 죽일 결의가 있더라면 어찌 지금 오셨겠나이까. 소저는 알고 있나이다. 허리춤의 세 호리병을 얻은 건 제가 막 범을 불러들인 3년 전이었고, 환도와 준마는 아직 아바마마와 어마마마, 그리고 약간의 마을 사람이 살아 있던 2년 전에 받으셨지요. 소저를 죽일 것이었다면 이미 2년 전에 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라버니는 진정으로 소저를 죽이고자 온 것입니까."



"…"



누이의 말대로, 오라버니는 이미 누이를 죽일 준비를 2년 전에 끝내 놓았다.



호리병은 누이가 여우라는 것을 스승에게 알린 시점에 얻었고, 검과 준마는 준비를 착실히 하기 위해 1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2년 전에서야 받았다. 어찌 누이가 그것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



"신중에 신중을 기했을 뿐이다. 너 같은 요물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준비를 착실히 해야 할 것 아닌가. 아버님과 어머님을 구하지 못한 건…"



"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구하지 않은 것 아니십니까."



"…뭐라고?"



누이는 교활한 미소로 오라버니를 바라보며 여덟 갈래의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였다.



"소저는 기억한답니다. 오라버니가 제 실체가 여우라는 것을 아바마마께 알렸을 때, 아바마마는 오히려 오라버니를 누이를 질투하는 짐승이라 부르며 내쫓으셨지요. 제 실체를 옆집 돌쇠에게 알렸을 때, 오라버니는 얻어맞고 쫓겨나가셨고, 앞집 춘화에게 말했을 때는 뺨 맞고 쫓겨나셨지요. 그런데, 제가 그때 참 웃긴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어느새 누이의 입에 걸쳐 있던 교활한 미소는 사라지고, 굳어버린 표정과 생기 없는 눈동자로 오라버니를 바라보았다.



"전 그때, 그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저는 오라버니와 언젠가 적대할 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인간의 몸이라고는 하나, 간단한 술법 정도는 쓸 수 있었기에 오라버니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것 같다면 술법을 써서라도 오라버니를 그럴 수 있는 곳으로 보낼 것이었건만, 하, 정말 한심하게도, 아무도 여태껏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마을에 많은 도움을 주었음에도 주워온 자식이라는 이유로 오라버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배척했지요.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하지 않으십니까? 수없이 자신들을 도운 오라버니는 주워온 자식이라는 이유로 그토록 불신하면서, 저는 엄연히 부모의 배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면서 간단하게 믿고 오라버니의 충언을 그저 질투 어린 소년의 허언으로 취급하다니 말입니다.


오라버니는 끝까지 그들을 구하기 위해 헌신했건만, 그들은 오라버니를 모함하고 배반했습니다. 오라버니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소저를 믿은 걸 후회했겠습니까? 오라버니를 믿지 않은 걸 뉘우쳤겠습니까? 아니면, 끝까지 오라버니를 원망했겠습니까?"



누이는 짧게 비웃음을 흘리고는



"결국 그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도 참으로 가련하군요. 저주 속에서 태어나 버려지고, 거둬진 곳에서조차 마지막까지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했고, 끝까지 아무도 당신을 신뢰하지 않지 않았습니까."



"네놈, 그런다고 내가 네놈을…"



"살려 두실 것 아닙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저는 오라버니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라버니가 제 적이 되는 것이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저는 오라버니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라버니가 저를 죽이기 위해 간악한 술수를 쓰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저는 오라버니의 가족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저만큼은 누이로서 오라버니와 맞설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가엾으신 나의 오라버니의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오라버니를 이해하지도, 쉬지도, 가족으로 남아 주지도 않았습니다."



어느새 누이는 붉은 빛을 내뿜는 눈동자로 오라버니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오라버니를 모함하지 않았더라면, 가축 정도로만 끝냈을 테지만, 그들은 감히 저만의 오라버니를 모함하며 쫓아냈습니다.


그들이 오라버니를 신뢰했더라면, 적어도 신뢰한 자들은 살려줄 생각이었지만 그들은 오라버니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오라버니를 가족으로라도 여겼다면!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는 살려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라버니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조리 죽였습니다. 오라버니를 감히 모욕한 저 더러운 것들을 없애기 위해."



누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지었다. 죽은 자들을 비웃는 것이 아닌, 오라버니를 향한 애정과 광기가 서린 미소를 지었다.



"예. 이상한 것은 압니다. 여태껏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라며 지껄인 주제에 이렇게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시겠지요.


하지만, 소저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필시 싸울 운명이라 한들, 소저가 느낀 진정한 가족의 연이라는 것은 그런 운명 따위보다 훨씬 질긴 것이라는 것을.


오라버니, 소저는 저런 것들과는 다릅니다. 끝까지 오라버니 곁에 남을 수 있습니다.


자, 함께 저들을 비웃어 봅시다, 오라버니. 끝까지 오라버니를 배척하고, 신뢰하지 않았던 그것들이 죽을 법도 했다고.


오라버니도 사실 바라셨던 것 아닌가요? 자신을 버린 자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버리는 걸!"



"…"



말문이 막힌 듯 오라버니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자, 누이는 이내 옷의 앞섬을 헤치며 광기와 애정이 뒤섞인 미소를 지었다.



"자, 오라버니. 함께 짐승으로 전락해 봅시다. 그리고, 함께 그들을 비웃도록 하죠. 이 마을을, 우리의 자손으로 가득 채우면서!"



구미호는 본래 길조를 고하는 영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며, 구미호는 영물에서 요물로 전락해갔다.



하지만 요물로 전락해가는 중에도, 이들은 본래 영물이었던 영향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사악한 자를 벌하려는 본성이 있다.



이 피바람은 영물로서의 벌하고자 하는 본능인가, 요물로서의 욕망을 쫓는 본능일까.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 본성과 욕망이 뒤섞인 삶과 죽음의 피바람이 영물의 것인지, 요물의 것인지는 무엇이 중요할까.



그저, 그 피바람 끝에서, 구미호는 두 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결론을 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