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와 민우가 탄 세단은 주택가로 들어섰다.

주택가는 밤이 되었음에도 환하고 화려한 장식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녀의 집이 위치한 주택가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부자들만이 사는 부촌 중 부촌 단지이었다.

몇 블록마다 검문소처럼 설치된 경비실과 구역마다 설치된 보안실이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고, 모든 도로에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하여 안에서 새어 나갈 수 있는 비밀들을 막았다.

이 단지는 모두 여명 재단 소유였는데, 여명에서는 집을 구매하여 재산세를 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과 사생활을 신경 쓰는 사람들을 상대로 집을 빌려주고 관리해 주는, 사실상 거대한 호텔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당연하게도 경비와 관리 등, 단지에 관련된 모든 것이 여명 재단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 유명 기업의 회장도 이곳으로 입주를 희망했지만, 여명 재단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여 반려당한 적도 있다.

그 여명 재단의 주인이 수아의 아버지인, 이성왕 회장이었다었다.

수아가 탄 세단이 단지 안으로 이동하자, 경비원들은 차량을 향해 머리숙여 인사했다.

수아의 집은 단지 내에서도 가장 안쪽, 깊숙이 위치한 저택이었다.

세단은 미로처럼 굽어진 길들을 지나,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이동하여 성인 남성 키 세 배는 되어 보이는 철문 앞에서 멈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의 힘으로는 열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철문이 천천히 열린다.

검은 세단은 철문을 통과해, 안뜰에 차를 멈춰 세운다.

“도착했습니다, 이사님.”

운전기사는 룸미러로 민우와 수아를 힐끗 훑어보았다.

“수고했어요.”

민우는 아직 곤히 잠들어 있었다.

“깨울까요?”

“아뇨, 제가 데리고 갈게요. 뒷자리 세차 좀 부탁해요.”

수아는 차에서 내린 후, 반대편으로 가 문을 열었다.

서늘한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오자, 민우는 몸을 움츠렸다.

수아는 민우를 안아 들었다.

수아가 여성치고는 덩치가 좀 있는 편이었지만, 성인 남성이라기엔 작은, 가볍게 들리는 민우의 몸은 연약하고도 부드러웠다.

수아는 혹여나 민우가 깨어날까, 아기 다루듯 조심히 품 안으로 끌어왔다.

그러자 민우는 고양이가 이불을 파고들듯, 따뜻함을 찾아 수아의 몸 안으로 파고들어 안겼다.

민우의 행동에 수아는 온몸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수아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민우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지우의 표정에는 심술이 가득하다.

“저번처럼 또 잠들어버린 거 아니야?”

지우는 화가 난 듯, 길가에 떨어진 깡통을 발로 걷어찼다.

깡통은 저 멀리 날아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니, 이내 어둠 속에서 몇 번의 소리를 낸다.

지우는 학교에서 야간 학습을 한다.

민우는 어떻게 해서든 여동생을 학원에 보내려고 했지만, 지우는 집안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민우 때문에 야간 학습을 택했다.

어차피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혼자서도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기에, 민우도 지우의 뜻을 따를 수밖에는 없었다.

집에서 지우의 고등학교까지 걸어서 30분, 야간 학습이 끝날 즘에는 버스가 끊긴다.

지우는 매일 이 30분이, 민우가 자신에게만 온전히 써주는 이 꿈만 같은 시간이 좋았다.

민우는 집에 돌아가면, 지우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집에 하나밖에 없는 방에 지우만을 남겨두고 거실로 나갔다.

지우가 복습을 끝내고 거실로 나가보면, 어느새 그는 수평이 맞지 않아 흔들거리는 상을 베개 삼아, 오래되어 시끄럽게 돌아가는 노트북의 소음을 이불 삼아 잠들어있었다.

지우도 차마 그런 민우를 깨울 수는 없었기에, 꼭 성공하여 그와 함께 행복하게 살 것을 꿈꾸며 조용히 그의 곁에 기대어 잠들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지우에게 민우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 시간은 유일하게 오랫동안 그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버스가 늦게 오는 건가…?”

지우는 길을 따라 내려와 대로 쪽을 살펴보지만, 어두운 공기만 깔려 자동차는커녕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야간 학습이 끝난 지 17분 하고도 40초가 지났지만, 민우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지우의 짜증은 점점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왜 안 오는 거야…, 혹시 대학교 여자들이랑….”

지우가 꿈꾸는 그와의 미래에는 다른 여자의 자리는 없었다.

혹여나 그가 여자 친구가 생기진 않을까, 여자 지인이 생기진 않을까, 여자 사람을 알고 있진 않을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매일 민우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핸드폰 화면의 배경도 민우와 자신이 함께 찍은, 마치 연인처럼 보일 법한 사진으로 설정해두었다.

착한 오빠인 민우도 그런 지우를 위해 잠금도 되어있지 않은 자신의 핸드폰을 매일 그녀에게 넘겼다.

그러다 혹여나 다른 여자의 흔적이 보이면, 민우에겐 세뇌와 회유를, 그 지인에게는 협박과 스토킹을 하며 민우와 주위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내게 했다.

민우의 평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더러운 그녀들보다 우월하고 뭐든지 더 잘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지우는 민우가 어찌 되었든 자신만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18분이나 기다리게 했다.

18분하고도 5초 동안 자신보다 더 우선시될 무언가와 함께하고 있다.

지우는 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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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빠르게 집을 향해 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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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지만 글 분량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 편의를 위해 연재 주기를 줄이고 한편 분량을 늘릴까 생각중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