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 쎈 뱀파이어 얀순이에게서 도망치는 스폰 얀붕이 - 5 - 얀데레 채널 (arca.live)

ㄴ여기서 이어짐


•••


마리아는 망연히 아이작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직 마저 타지 못한 목재들과 책과 책장들이 쓰러지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할 줄 아는 생명체라면, 이 침묵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녀가 처음 뱀파이어 스폰이 되었던 그 순간 이후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유일한 혈육, 그녀의 자식이자 애인, 하인이자 반려이며, 첫사랑이자 끝사랑일 존재.


그런 존재가 감히 그녀를 거역하고는 다른 여자와 함께 사라졌다.


최후에는 조롱 섞인 비난을 남긴 채.


마리아의 송곳니가 서로 부딪혔다.


대장간의 모루와 망치처럼 서로 부딪힌 송곳니는 소름이 끼치는 소리를 내며 불꽃을 피워냈다.


파괴 충동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그 불운한 희생양은, 그녀의 도서관지기가 될 것이 자명했다.


"주, 주인님?"


구울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추, 충직한 재키는 처음부터 저 놈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했습니다요! 그래요, 거짓말!! 거짓말쟁이!!"


마리아는 구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좀 전까지 스폰이 존재했던 곳을 응시했다.


"뒷정리도 재키, 재키에게 맡겨 주십쇼, 주인님, 주인님! 불 나기 전 그 모습 그대로 완벽하게 정리해 놓..."


꽈직.


그림자 손은 눈 깜짝할 새에 구울을 덮쳐, 그대로 머리통을 쥐어 짜 터뜨렸다.


말을 다 잇기도 전에 구울은 그 초라한 몸뚱이를 힘없이 떨군 채 잿더미 위에 눕고 말았다.


그리고 그 시체를 향해 마리아는 울분을 쏟아냈다.


"아아아아아악ㅡ!!"


꽈드득,

푸슉,

써걱, 써걱.


주먹으로 찌르고, 손톱으로 할퀴고, 손날로 도려내고,


이미 언데드로 깨어남으로써 모독당한 구울의 신체는 죽어서도 주인의 손에 처참히 능욕당했다.


살점이 찢겨져 나가 피가 낭자하고, 썩은 내장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바닥을 적시는 와중에도 그녀의 분노는 꺼질 줄을 몰랐다.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뱀파이어 로드의 비명은 서재를 좀먹으며 몸을 키우려 애쓰는 불길조차 잠재웠다.


까드드득,

써걱,

콰직, 콰직.


"아이자아아아악!!!"


손으로 구울의 몸을 헤집는 것으로도 모자라 발길질하며 시체의 몸뚱이를 으깨버린 마리아는 거친 숨을 몰았다.


피에 미친 굶주린 스폰도 그렇게 흉측한 몰골을 보이진 않을 것이다.


역겨운 썩은내를 풍기는 피를 뒤집어 쓴 마리아는 악령과도 같은 표정으로 그녀의 하인의 이름을 외쳤다.


"월터!!"


곧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충직한 데스 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해골 기사는 서재로 들어서자마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마리아는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는 뱀파이어가 아니었다.


그건 그녀가 스폰일 때에도, 뱀파이어 로드가 됐을 때도, 그리고 데이워커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감정을 쏟아낼 일이라면 그 남자의 일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애처롭도다, 사랑에 빠진 소녀여.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갈구하는 가엾은 소녀여.


데스 나이트는 입을 놀릴 수 없었기에, 설령 놀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말을 밖으로 꺼내고 싶지도 않았기에 마음으로 노래했다.


그의 주군은 이미 필멸의 감정이 매마른 지 오래인 데스 나이트가 보기에도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불안해 보였다.


마리아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월터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당장 아이작을 내 앞으로 데려와라."


목소리에는 천 개의 원한을 품은 와이트보다 더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내 앞으로 데려 와라. 사지와 목이 잘려도 곤죽이 돼도 상관 없으니 당장 내 앞에 끌고 와!!"


*딱.


데스 나이트의 턱이 부딪혔다.


그는 무릎을 꿇어 주군에게 예를 표한 다음, 빠르게 서재를 벗어났다.


"날 실망시키지 마라."


그는 말 대신 갑옷을 절그럭거리는 것으로 마리아에게 답했다.


•••


"콜록, 콜록!"


마리는 목에 끼인 잿가루를 뱉어내려 연신 기침했다.


보호 마법으로 불길은 막아낼 수 었었지만 보호막을 뚫고 들어오는 연기까지 막는 건 무리가 있었다.


"하아."


어느 정도 숨을 진정시킨 그녀는 침착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녀가 처음 와 보는 곳이었다.


한밤중의 어둠을 장막처럼 두른 우거진 숲, 그리고 달빛을 받아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버려진 작은 수도원.


그 앞에 그녀를 납치한 장본인이 멍하니 서 있었다.


마리는 당장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이미 성 밖으로 나온 상황에서, 스폰과의 불가침 계약은 이미 깨졌다.


그러니 스폰이 언제 그녀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스폰이 보이는 반응은 그녀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그는 허무한 표정으로 버려진 수도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본 마리는 아이작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는 곳이야?"


텔레포트는 시전자가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는 마법.


그렇기에 마법의 좌표는 시전자의 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당장 뱀파이어 로드가 목숨을 거두러 올 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 그녀가 정확한 위치를 구상하고 주문을 시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즉, 이 장소는 스폰의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곳이다. 마리는 그렇게 추측했다.


스폰은 한참을 가만히 서서 수도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폐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야...!"


동료로서의 정은 하나도 없는 스폰의 뒤를 왜 쫓는 것인지는 마리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차마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강에 빠져 자살할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재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마리는, 수도원에 들어서자마자 이번엔 매캐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게 되었다.


"콜록, 콜록..."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된 것 같은 예배당은 매캐한 먼지와 천장을 가득 수놓은 거미줄로 뒤덮여 있었다.


아이작은 서서히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북이 같던 걸음은 점점 빨라지다 결국 수도원을 내달리게 된 아이작은 건물 제일 안쪽의 낡은 문을 향했다.


"야...!"


마리는 불안했다. 이대로 스폰을 쫓아가도 되는 걸까?


설마 그녀를 유인해서, 매복하기 좋은 장소에서 자리잡고 손쉽게 그녀를 한 끼 식사로 삼기 위해서라면?


마리는 잠시 자리에 서 마나를 끌어 모았다.


"...이그니스."


마법사의 손에서 작은 불씨가 피어 올랐다.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건물째로 불태워 버리리라.


마리는 손 위에 불꽃을 얹은 채로 천천히 아이작이 사라진 통로로 향했다.


통로 역시 예배당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습한 곰팡이와 먼지 냄새를 참으며 한참을 내려간 곳에서, 그녀는 뱀파이어 스폰을 찾을 수 있었다.


퀘퀘묵은 석실 안에서 아이작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미 풍화되어 백골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썩은 해골 앞에서.


"!"


마리는 순간 그가 사람을 죽인 것이라 착각할 뻔했지만 해골의 상태를 보아 그럴 리가 없었다.


그 사실을 파악한 그녀는 이번엔 의구심이 들었다.


저 해골이 그와 무슨 관계인가?


"아..."


아이작은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얼빠진 한숨을 뱉었다.


"하아."


텅 빈 눈이었다.


그녀가 노예일 때 지었던, 삶의 의지를 잃은 눈빛.


어찌나 처량하고 측은한 모습이었는지, 마리는 여차하면 반격할 생각으로 피워낸 불꽃조차 거둔 채 조심스럽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 찮아?"


탁!


마리가 뻗은 손을 아이작이 재빨리 쳐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의 스폰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내 몸에 손대지 마!!"


그리고 두세 번의 숨을 내쉰 아이작은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 텅 빈 눈으로 해골을 바라보았다.


"그냥... 날 내버려 둬."


마리는 스폰과 네 구 정도 쌓인 해골을 번갈아 보았다.


그 다섯 구의 해골 중 셋은 어린 아이의 것처럼 보였다.


아이작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석실 안을 빠져 나왔다.


낡은 예배당을 가로질러 다시 밖으로 나온 그녀는 심각한 고뇌에 빠졌다.


이대로 저 뱀파이어를 죽여버려야 하나?


실리적인 판단으로는 그를 죽이는 게 백 번 옳은 일이다.


뱀파이어 스폰이 언제 피에 미쳐 날뛸지 모를 일이고, 애초에 뱀파이어 백작의 성으로 그녀를 납치한 이는 다름 아닌 아이작이었기에,


마리가 아이작에게 신뢰의 창을 열어주는 건 지금으로썬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녀는 저런 위태로워 보이는 표정을 짓는 사람, 아니, 사람에 가까운 것을 산채로 불태워버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마리는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에 빠졌다.


죽일까? 살릴까?


머릿속에서 치열한 논의를 벌이던 와중 건물 안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마리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 곳에는 아이작이 허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의 품에는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해골들이 안겨 있었다.


툭, 와르르르...


아이작은 조심스럽게 해골을 내려 놓았지만 뼈들은 요란하게 땅에 떨어져 흙먼지를 피워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예배당 안으로 사라졌다.


"야, 야...!"


마리의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그 모습을 본 마리는 더욱 격한 갈등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이성보다는 감성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가 두 번째로 예배당을 빠져나온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석실에 남아 있던 나머지 해골들을 쓸어 모은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뼈들을 내려놓아 쌓았다.


그의 시선은 천천히 마리에게 옮겨졌다.


"불 좀 빌려줘."


"뭐?"


"솔의 예법대로 장례를 치뤄줄 거야. 여긴 솔의 수도원이니까..."


그는 여전히 텅 빈 눈으로 중얼거렸다.


"성불 못한 망령이라도 돼서 나타나면 곤란하잖아."


마리는 우물쭈물거리며 아이작의 눈치를 살피다 결국 주문을 외쳤다.


"...이그니스."


뱀파이어 고성에서 피웠던 것보다는 훨씬 상냥한 불꽃이 솟아올라 해골을 은은하게 감쌌다.


뼈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 앞에 아이작은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의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리는 아이작의 옆에 앉아 그와 함께 해골을 땔감 삼아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아는 사람들이야?"


"...안젤리카 수녀님은."


아이작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안젤리카 수녀님은... 천애고아인 날 거둬 주셨어. 수녀님이 끓여주신 양배추 스튜는 웬만한 고기 스튜보다 더 맛있었지."


그는 삐져 나온 뼛조각들을 정리하면서 중얼거렸다.


"시몬은 책 읽는 걸 좋아했지. 생일 선물로 마물 도감을 사 줬을 땐 수도원이 무너져라 방방 뛰어다녔고."


그의 말은 마리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리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글로리아는 웬만한 사내 놈들보다 더 당찬 애였어. 기집애가. 나처럼 기사단에 들어가고 싶다며 제 키만한 목검을 휘두르고 다녔지."


그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요한은 어지간히도 수다스러운 놈이었지.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하면 저녁 양배추 스튜가 나올 때까지 쉬지 않고 재잘댔던 녀석이었어."


그렇게 혼잣말을 함으로써, 그들이 살아 생전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해내려 하는 것처럼 들렸다.


"베로니카는 유약하고 겁 많은 아이였지. 시체는 없었어. 죽으면 재가 돼서 사라지는 캠비온이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겠지..."


둘은 모닥불 앞에서 한참 동안을 침묵을 지켰다.


마리는 은은하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향해 고개를 숙여 잠시 묵념했다.


버려진 폐예배당의 석실에서, 그 누구도 거둬주지 않은 채 싸늘하게 썩어 갔을 그들의 시체는 애도의 묵념을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 아이작은 다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가장 괴로운 게 뭔지 알아?"


마리는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하, 눈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야."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냥... 그냥 까마득히 먼 옛날 일로 느껴져. 그렇게 슬프지도 않아. 3백 년 전 일이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냥 허망해."


아이작은 고통스럽게 손으로 얼굴을 감싸 세수했다.


"내 3백 년은 도대체 뭘 위한 것이었지?"


아이작의 과거를 알 턱이 없는 마리는 스폰의 물음에 대답해줄 수 없었다.


그저 그의 곁에서 약소한 장례식의 하객이 되어주는 것이 그녀의 최선이었다.






다음화에 얀순이가 갈비뼈로 립스 블레이드 쓰면서 존나강해짐